어제는 근처에 있는 구청 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 가서 치매검사를 받았다.
특별히 치매현상이 심해 라면냄비를 태워먹었다거나 욕조에 물을 넘겼다거나 아파트 출입문 번호를 몰라
문을 못 열었다거나 하는 실수는 없었지만 가끔 가까운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사실은 그것보다 보건소 카렌다를 얻을 욕심으로 검사 신청을 했었다. 무료인데다 금방 받을 수 있으니까.
신분증을 혹인하고 검사가 시작되었다. 검사관은 서른 살 이쪽 저쪽의 예쁘고 친절한 여성이었다.
문제는 작년과 똑같았다. 그런데 결과는 30점 만점인데 29점을 받았다.
"민수는 11시에 자전거를 타고 공원에 가서 야구를 했다" 였는데 5분 후에 그 말을 되풀이해야 하는데
야구가 생각나지 않아 '공놀이를 했다"고 해서 1점을 잃었다.
나머지 문제는 "금수강산"을 거꾸로 "산강수금" 하는 문제였는데 좀 더듬거렸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과일, 채소 이름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몇 개 이상을 말해야 만점인 모양이었다.
검사를 마치자 검사관은 말하지도 않았는데 내 속셈을 들여다 보았는지 검사 잘 받았다며 벽걸이 달력을 주었다.
글자도 큼지막하고 12장짜리로 메모하기에 좋은 달력이었다. 그리고 근육통에 붙이는 파스도 한 갑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샛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노란 융단처럼 길바닥을 뒤덮고 있었다.
은행나무 아래 울타리처럼 키우고 두부모같이 전지를 한 꽃댕강나무 위에도 수북하게 떨어져 있었다.
길바닥에 있는 것을 다리가 아파 엎드릴 수가 없어 줍기 힘들지만 울타리 위에 떨어진 것은 서서 그대로 주울 수 있었다.
그냥 아깝기도 하고 문득 대학시절에 슨 시가 생각이 나서 한 웅큼이나 주웠다.
집에 와서 학보에 실린 까마득히 잊었던 시를 들추어보았다.
1970년 11월 26일자 [水大學報]에 실린 치기어린 시다.
[ 낙엽은]
- 그것은 落下가 아닌 화려한 飛翔이었다.
낙엽은 / 칠팔월의 열풍을 호흡하던 / 어젯날의 추억을 반추하지 않는다
낙엽은 / 이별의 서글픈 의미를 알려하지 않는다
쓸슬한 것은 / 다 떠나버린 매촐한 졸가리 뿐이다
낙엽은 / 어둠을 몰고오는 / 볼그레한 저녁노을이 아니다
낙엽은 / 마지막 며칠의 가을날을 단장하는 / 결혼전야의 신부이다
낙엽은 꿈꾸고 있다
- 어느 꿈 많은 소녀의 책갈피 속에 묻히고 싶다
억새풀 덤불 속에서 산새의 지저귐을 듣고 싶다
코스모스 울타리집의 들창을 두드리고 싶다
바위 틈에 숨어서 도란도란 흐르는 여울 소릴 듣고 싶다
낙엽은 / 가고 싶은 어린 날의 고향도 없는 / 방랑하는 짚시의 후손들이다
시방도 / 여기저기 / 길 떠나는 낙엽의 대열이 있다
머지않아 나도 / 어딘가를 헤매는 / 한 잎 낙엽이 되리라! ***
그때 받은 원고료는 액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막걸리 두 되 값은 되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