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 아래의 관찰 / 이영광
너거 부모 살았을 때 잘 하거라는 말은
타관을 오래 떠돈 나에게
무슨 침 뱉는 소리 같았다
나 이제 기울어진 빈 집.
정말 바람만이 잘 날 없는 산그늘에 와 생각느니
살았을 적에 잘 하는 것이 무슨 소용 있으랴
무대 위에서 잠깐 어른거리는 것은
幕뒤의 오래고 넓고 깊은 어둠에 잠기기 위한 것.
산다는 것은 호두나무가 그늘을 다섯 배로 늘리는 동안의 시간을
멍하니 앉아서 흘러가는 것
그 잠깐의 시간을 부여안고 아득히 헤매었던 잠깐의 꿈결을 두 손에 들고
산다는 것은, 苦樂을 한데 버무려 짠 단술 한 모금 같은 것
흐르던 물살이 숨 거두고 강바닥에 말라붙었을 때
사랑한다는 것은, 먼지로 흩어진 것들의 흔적 한 톨까지도
끝끝내 기억한다는 것
잘 한다는 것은 죽은 자를 영원히 잊지 못한다는 것,
죽은 자가 모두의 기억 속에서 깡그리 죽어 없어진 뒤에도
호두나무 그늘을 갈구리벌레처럼 천천히 기어가
바지에 똥을 묻힌 채 헛간 앞에서 쉬던 생전의 그를
젖은 날 마당을 지나가는 두꺼비마냥 뒤따라가
그의 자리에 앉아 더불어 쉬는 것.
살아서 잘 하는 것이 무슨 소용 있으랴
호두알이 떨어져 구르듯 스러진 그를 사람들은 잊었는데
나무 그늘 사라진 자리, 찬바람을 배로 밀며
눕기 위해 그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 아무도 보지 못하는데
물불 / 이영광
1억 5천만km를 날아온 불도 엄연한 불인데
햇빛은 강물에 닿아도 꺼지질 않네
물의 속살에 젖자 활활 더 잘 타네
물이 키운 듯 불이 키운 듯한 버드나무 그늘에 기대어
나는 불인 듯 물인 듯도 한 한 사랑을 침울히 생각는데
그 사랑을 다음 생까지 운구(運柩)할 길 찾고 있는데
빨간 알몸을 내놓고
아이들은 한나절 물속에서 마음껏 불타네
누구도 갑자기 사라지지 않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것이,
저렇게 미치는 것이 옳겠지
저 물결 다 놓아 보내주고도 여전한 수량(水量),
태우고 적시면서도 뜯어말릴 수 없는 한 몸이라면
애써 물불을 가려 무엇 하랴
저 찬란 아득히 흘러가서도 한사코 찬란이라면
빠져 죽는 타서 죽는
물불을 가려 무엇 하랴
고사목 지대 / 이영광
죽은 나무들이 씽씽한 바람소릴 낸다
죽음이란 다시 죽지 않는 것
서서 쓰러진 그 자리에서 새로이
수십 년씩 살아가고 있었다
사라져 가고
숨져 가며,
나아가고 있었다
유지를 받들 듯,
산 나무들이 죽은 나무들을 인정해 주고 있었다.
정상 부근에서는 생사의 양상이 바뀌어
고사목들의 희고 검은 자태가 대세를 이룬 가운데
슬하엔 키 작은 산 나무들 젖먹이처럼 맺혔으니,
죽은 나무들도 산 나무들을 깊이
인정해 주고 있었다
나는 높고 외로운 곳이라면 경배해야 할 뜨거운 이유가 있지만,
구름 낀 생사의 혼합림에는
지워 없앨 경계도 캄캄한 일도양단도 없다
판도는 변해도 생사는
상봉에서도 쉼 없이 상봉 중인 것
여기까지가 삶인 것
죽지 않는 몸을 다시 받아서도 더 오를 수 없는
이곳 너머의 곳, 저 영구 동천에 대하여
내가 더 이상 네 숨결을 만져 너를 알 수 없는 곳에 대하여
무슨 신앙 무슨 뿌리 깊은 의혹이 있으랴
절벽에서 돌아보면
올라오던 추운 길 어느 결에 다 지우는 눈보라,
굽이치는 능선 너머 숨죽인 세상보다 더 깊은 신비가 있으랴
독방 / 이영광
혼자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나는 믿었지만
행복 속에 안녕이 없네
나는야 뭉게구름 같은 숲 가녘에
안내인마냥 외따로 선
키 큰 소나무 한 그루 사랑했지만,
그 나무 오징어 다리 같은 뿌리 내놓고 길게 쓰러졌네
혼자 있는 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
한마디도 하지 않는 자
무엇이든 저지르고 마는 자이네
그의 몸은 그의 몸 이기지 못해
일어나지 않는 몸,
기필코 자기를 해치는 몸이네
이 독방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독방
현관문 열고,
방문 열고 들어서면
더 들어갈 데가 없는 곳에
그러나 더 열고 들어가야 할 문 하나가 어디엔가
반드시 숨어 있을 것 같은 곳에
쓰러지지 않고
침묵하지 않고
기어 다니지 않아도 되는
더 단단한 독방 하나, 나는 믿었지만
그 꿈 같은 감옥
불 켜면 빛 속으로 사라지고
지금, 타는 듯한 벌판에서 눈 감는 사람은
또 다시 문 밖에 누워 잠드는 사람이네
시인들 / 이영광
어딘가 아픈 얼굴들을 하고 시인들이 앉아 있다
막 입원한 듯 막 퇴원한 듯 위중해도 보인다
암 투병 중인 여류시인 문병 갔다가 걸어서 연말 술자리에 갔더니
울긋불긋한 선거 현수막이 만장같이 나부끼더니
얼음장 아래 모인 한 됫박의 마른 물고기들처럼
오직 시인들끼리, 시인들이 모여 있다
자리에 앉았는데도 멀리 떠난 얼굴을 한 아픔도 있고
어디든 너무 깊이 들어앉아 칼끝처럼 자기를 잊은 아픔도 있다
면도로 민 머리에 예쁜 수건을 쓴 마른 몸이 생각났다
젖과 자궁을 들어내고 젊은 죽음 냄샐 풍기는 몸들이 생각났다
아픈 그녀의 자리는 여기 없고,
그녀는 이곳보다 더 춥고 어두운 들판을 걸어가고 있고, 시인들이
이름 부르면 끌려 나가야 할 인질들처럼 모여 있다
많은 것을 버렸는데도 아직 더 버릴 게 있다는 얼굴들이다
별로 얻은 게 없는데도 별로 얻을 게 없다는 표정들이다
시인들은 영원히 딴 곳을 보고 있다
무섭게 아프고 무섭게 태연하다
간혹 한눈팔지 않는, 사촌 같은 아픔도 끼여 있는데
병을 흉내 내는 것이 더 큰 병임을 알기에
모르는 척 속은 듯 함께 앓아 넘기기도 한다
나는, 여기 머물면서도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사람들이 좋다
이상(異常)한 것에 정신없이 끌리는 사람들이 좋다
제가 아픈지 안 아픈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좋다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좋다
마음 가난과 어지러움은 면허 같은 것이니 길이 보전들 하시되
내년에도 몸이나, 어떻게든 몸 하나만은 잘들 보살피시라고
나는 조등(弔燈)처럼 노랗게 취하며 기원했다
얼음 물고기들이 순한 주둥이를 뻐끔대며 옹송그리는
차디찬 환영이 나무 벽 위로 자꾸 지나갔다
진통제를 꽂고도 시 읽고 시 읽어 달라던 안 아픈 영혼,
아직 시집 한 권 낸 적 없는 그녀 생각이 났다
하느님의 자연 시간 / 이영광
다신 몸 받지 않으려는 이들의 집도
헐면 고쳐서 살아야지.
송장 나간 자리도 훔치고 누우면 또
잠자리 아니던가.
佛事 중인 봉영사,
앳되고 오랜 봄날이 와서
앉은뱅이 풀꽃 느티나무 어린 싹,
죽음보다 멀고 깊어라.
나물 캐던 늙은 봄 처녀들
웃다 간 꽃밭은
하느님의 자연 시간인가.
주지도
공양주도
객승도, 외도하듯
볕을 쬐네.
居士는 낮술에 젖어
찬물 한 잔 청해 놓고
실눈으로 보느니,
명부전 그늘 어딘가에서
몸 없는 이들의
머리핀처럼
넥타이처럼
날아오는
노랑나비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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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메모
“길을 잘못 든 시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북국의 여관방에서 베개에 머리를 박고 흐느끼던 토니오 크뢰거는
결국 생활인과 시인의 혼란스런 경계를 넘어 제 길을 찾지만,
그를 기다린 건 “길을 잘못 든 시인”의 삶이 아니었을까.
시인의 시민적 정체성은 왜 꾀죄죄하거나 우스꽝스러울까.
어느 쪽이든 다 길이 아닌 것인가.
시인과 생활인의 대립보다 더 깊은 곳에 성과 속의 갈등이 있다.
부처나 예수의 행장을 읽을 때면 드는 생각:
이 자들, 대단한 인간들이네, 거의 인간 이상이야.
내 어머니의 안쓰러운 멘토들이 툭하면 ‘구라’ 친 대로
나에게 중 팔자가 씐 것인가.
시를 쓰면서도 시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돈 벌어
세금 내면서도 시민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 때,
나는 로봇처럼 멍해진다.
이 흠 많은 인간덩어리는 진실한 덩어리인가.
이 구멍 숭숭 난 생활은 생활인가.
그것을 확신할 수 없기에 나는 지금 전력을 다해, 가만히
멈춰 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에 겨우, 하지만 기쁘게 한마디 할 것이다.
그래, “괴물은 되지 말자”.
이영광 시인
경북 의성 출생
1998년 <문예중앙> 등단
2008년 노작문학상 수상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
『그늘과 사귀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