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있는데 밖에서 아내가 부른다. 벌써 10시가 넘었다며 아침이나 먹고 잠을 자라는 것이다. 일요일마다 듣는 소리다. 토요일이면 늘 그랬듯이 어젯밤에도 늦도록 원고지와 씨름을 하다가 새벽 3시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눈곱을 떼며 억지로 일어나 현관으로 나갔다. 아내는 화장실 청소를 하는지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났다.
“여보, 여기 좀 와 보세요.”
웬일인가 싶어 화장실 문 앞에 서서 하품을 하며 물었다.
“뭔데 그래?”
아내는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변기를 가리킨다.
“여기 좀 봐요!”
“변기가 깨졌어? 물이 새?”
아내가 가리킨 것은 노란 소변이 찐득찐득하게 말라붙은 변기였다. 내가 보기에도 좀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의 말이 떨어졌다.
“제발 소변 좀 앉아서 보세요! 화장실 청소할 때마다 힘들어 죽겠어요.”
“…….”
“도대체 변기가 닦아지질 않아요. 또 지린내는 어떻고….”
아내의 말에 잠시 어이가 없었다. 앉아서 소변을 보라니 오늘은 참 별스럽게 군다고 생각했다. 조물주가 인간을 이 세상에 내보낼 때 남자는 서서 소변을 보고 여자는 앉아서 보라고 했는데, 이를 거역하는 것은 조물주를 능멸하는 게 아닌가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아내가 한마디 한다.
“그 잘나가는 탤런트 아무개도 앉아서 소변을 본다는데 당신도 좀 앉아서 볼 수 없어요? 그 사람처럼 아내를 사랑하지는 못하더라도 힘들게 하지는 말아야지요!”
며칠 전 TV에 카리스마가 넘친다는 유명 탤런트 최 아무개가 나와서 토크쇼를 하는데, 자기는 앉아서 소변을 본다고 했다. 사회자가 왜 남자가 앉아서 소변을 보느냐고 묻자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며 아내를 위해서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방송이 나간 후 이 말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물론 아내에게 부대낀 남편이 많았을 것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서서 소변을 보는 남자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로도 들린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내를 골탕 먹이는 남편은 서서 소변을 아무렇게나 보는 남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내에게 내가 따지듯 물었다.
“세상 남자들이 다 앉아서 소변을 보면 소변기 만드는 공장은 문 닫는 것 아니야?”
“문을 닫다니요? 생각해 봐요. 앉아서 누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만큼 좌변기를 더 생산하게 되잖아요? 좌변기가 소변기보다 더 비쌀걸?”하며 지지 않는다. 나도 질세라 따졌다.
“그럼 모든 남자들은 치마를 입어야 할 게 아니야?”
“치마를 입으면 어때서요? 영화에서 보면 치마를 입고 백파이프(bagpipe)를 불면서 행진하는 스코틀랜드 남자들은 멋지기만 하던데.”
“이야기는 간단하네, 뭐. 남자들이 아기를 낳으면 그만이지.”
남자들이 아기를 낳는 것으로 아침 실랑이는 끝났다.
요즘은 여자 전성시대다. 각종 선발시험에도 여자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정당 대변인은 물론 각 단체장들도 여성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남녀 평등시대다. 이제 부부 간에도 공동재산이란 말이 없어지게 됐다. 아내의 수입은 아내의 재산, 남편의 수입은 남편의 재산인 것이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남녀평등을 넘어서 여성 우월시대가 됐다. 경제권도 사회적인 지위도 모든 것이 여자 편중 쪽으로 돌아가는 추세다.
이런 마당에 갈수록 남녀의 모든 구별이 없어지고 오히려 남자 열세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말할 것도 없이 생각과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 그 길만이 남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인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도 탤런트 아무개처럼 앉아서 소변을 본다. 혼나지 않으려면 앉아서 보는 게 문제냐, 변기를 들고 하라면 들고 해야지. 물론 아내가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앉아서 소변을 보는 진짜 이유는 딴 데 있다. 그것은 화장실이야말로 나의 수행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문 한 장과 볼펜 한 자루를 들고 변기에 앉아서 한 시간쯤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내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신문지 빈 공간에 적어보기도 한다. 때로는 여기서 한 편의 글을 낳기도 한다.
변소를 순 우리말로는 뒷간이라 한다. 한자어로는 측간, 사찰의 화장실은 해우소(解憂所)라고 부른다. 해우소, 그곳은 온갖 근심과 걱정을 훌훌 털어 버릴 수 있는 곳이니 얼마나 좋은 곳인가? 그 이름에서 구린내를 연상하는 사람은 없을 줄 안다. 오히려 도통할 수 있는 선방처럼 여기는 게 당연하려니 싶다. 최근에는 화장실을 우리말로 적지 않고 영어로 표기해 놓은 곳도 많다. WC(Water Closet·수세식변소), Toilet(보통 변소), Restroom(휴게실이 딸린 화장실) 등 다양하다.
그런데 화장실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특히 공중화장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물론 옛날보다 깨끗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 중에는 식사대사(食事大事)라는 말이 있다. 물론 식사는 배설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사흘을 굶어도 병은 되지 않지만, 사흘을 못 보면 병이 되기 때문이다. 생리적인 배설도 식사 이상의 대사임에 분명하다. 불교에서는 출가수행자는 잘 싸고 버리는 무소유를 덕목으로 한다. 결국 변소라는 것은 버림과 무소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런 버림과 무소유의 공간인 변소는 나의 수행공간임이 틀림없다. 오늘도 나는 이 수행공간을 위해 앉아서 소변을 본다. 나는 아내에게 “오늘도 앉아서 소변 봤어! 이제 됐어?” 초등학생이 엄마에게 자랑하듯이 말했다. 아내의 대꾸가 가관이다.
“당신, 이제야 철들었구려.”
칭찬을 받은 나는 갑자기 고래가 되었다.
[[정성수 / 시인]]
• 서울신문으로 문단 데뷔
• 저서 : 시집/공든 탑. 동시집/첫꽃. 장편동화/폐암 걸린 호랑이 외 다수
• 수상 : 세종문화상. 소월시문학대상. 아르코문학창작기금수혜 외 다수
첫댓글 ㅎㅎ 저도 어제께 울남자 둘이 이용하는 화장실 청소하다가 부부 말다틈했습니다. 정말 속상에서 저녁먹을때 말한마디안했습니다.
님~~
넘 재미있으십니당.ㅎ
ㅎㅎㅎㅎㅎ~
ㅎ`
앉아서 소변 보는 남자
잼나게 입가에 미소 지우면서 읽고 나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