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4-40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살아나는 회개와 세례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됩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의 심령에 새겨집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와 거룩과 영광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그리스도를
밖에 두고 믿는다고 하는 교회는 주님을 먹고 마시지 못하므로 그들은 부요하다
하나 가난하고 본다고 하나 눈이 멀었고 입었다 하나 벌거벗었습니다(계3:17-18)
유대인들이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이미지가 달라져 참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신
하나님의 아들을(요일5:20) 알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과 같습니다.
말세의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는 믿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밖에 두고 그들은 적그리스도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적(안티)이란
반드시 반대한다는 뜻만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대신하여 믿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겉사람만 부요하고 화려하면 그게 전부라고 여기기 때문에 뱀이
먹는 흙에서 난 양식으로 배부르고 그들의 속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짐승의
형상(계13장)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을 내고 회개를
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 돌아갈 문과 길이 막혀 있는 상태라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시지 않으면 부활도 장차, 천국도 장차라고 할 겁니다.
그러나 참 회개를 통해 진리의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계명을 지키면 주의
나타나심으로 인해 진리로 거룩함을 얻어 영광으로 말미암아 주와 하나가 되고
그 하나됨이 온전하게 되면 드디어 사랑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요17장) 그야말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표기도입니다. 지금도 그 기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히7:25)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생명의 떡으로 먹지 않고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 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계3:21) 그 사랑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그 안에 거하고 그 안에서 구하라
하시고 아버지께서 주님을 사랑하시는 방법대로 주님도 우리를 사랑하시니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요15:9) 사람들이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의
말씀을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진리의 성령 안에서 우리가 주 안에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새 계명 곧 새 언약의 말씀을 지킴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또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겁니다(요14:20-21)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라(요14:15)는 말씀은 진리의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새 언약을 붙잡으라는 말씀으로 들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는 하나님의 영인지 세상의 영인지 분별할 수 있는 영분별이 필요합니다.
율법아래에 있는 유대인은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해도 입은 주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들은 멉니다(마15:8) 장차 부활과 장차 천국을 외치는 사람들의 전형입니다.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자식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리는 새 언약의 복음을
받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건 고양이 쥐 생각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마무리 합니다(고전16:22)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계시는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해 바깥에 나타나는 성령의 나타남의 은사만 좇을 뿐 그들 안에 부활과 생명이
되며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으므로 아무리 개굴개굴해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아도 멀쩡하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라는 식으로 바울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여 그리스도 안에 옮기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와
하나가 되게 하심은 율법의 의 곧 사랑을 이루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주의 영과 생명이
우리에게 충만해 지면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입술로 터져 나오고 온 몸이
주를 사랑하므로 개가 주인 앞에서 엎드리듯 경배와 찬양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토록 지긋지긋하던 못난 자화상이 바뀌어 자신을 사랑하기에 이릅니다.
그때로부터 다른 이들을 사랑하게 되는 겁니다. 바로 온 율법과 선지자의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와는 달리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가지고 천사들조차 관광객으로
만들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에베소교회를 향해서는 바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 지어다 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되는 겁니다(엡6:24)
다시 한 번 말하자면 3복음서를 통해 예수를 배웁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통해서는
진리의 성령 안에서 주와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배웁니다. 그 참고서가
바로 로마서입니다. 로마서적인 구원을 얻지 못하면 그 잘난 자유의지로 아무리 잘 믿으려고
해도 의식의 변화 곧 생각이 영의 생각으로 전환이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담 안에서
난 사망의 몸에서 그리스도의 안에 있는 영의 몸으로 환승이 되질 않기 때문인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통해 왜 구원이 필요 한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구원받은 결과가 뭔가를
파악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에서 해방이 되는 자리로
환승을 한 다음에 영을 좇아 살면 생각이 바뀌고 주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달게 지고 좇아가면 몸의 구속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에 자유에 이르게
되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인생의 행불행이 다
합산이 되어 선이 되는 데 그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때문인 겁니다(롬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