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장소에 다시 찾아왔지만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가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중략)
강가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생각이 깊어 빠져 죽기에 충분했다
- 장난감의 세계 中 / 김소연
연애편지는
그냥 편지가 아니다
사랑하는 한 사람
너의 마음에
헌혈을 하는 심정으로
내 심장에서
피를 뽑아 쓰고 쓴
사랑의 글이다
너와 나 서로
혈액형은 다르지만
내 사랑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너에게
수혈을 해주겠다는
소망이 담긴 헌혈증이다
너를 사랑한다는
너만 사랑하겠다는
너는 내 사람이라는
믿음과 약속이 담긴
내가 너에게만 주는
사랑의 헌혈증이다
사랑하는 한 사람
너를 위해
내 심장에서
사랑의 피를
뽑아 주었음을
증명하는 증서이다
그래서 연애편지는
사랑의 헌혈증이다
- 연애편지 / 김병훈
어떤 기억은
방울로 맺히지 않을 뿐
눈을 깜박일 때마다 일상의 얇은 막 위를 흐른다, 흐를까
기저의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오래 전 죽은 이의 연작에서
당신을 이해할 것만 같은 밤이
자주 찾아와서 두렵다는 문장을 발견한다
밑줄을 긋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오후
언젠가 채운역을 지나며
그 지명에서 태어난 시인에 대해 말해주던 당신,
살에서 구름 냄새가 날 것 같은 날들이었다
같은 시인을 함께 동경하는 일은 우연이거나 우연일 뿐
흘러간 구름의 당신과
흐르고 있을 구름의 무늬를 듣기 위한 질문이 길다
- 구름의 무늬 中 / 이은규
너를 처음 보았을때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너를 바라보는 기쁨 만으로도
나는 혼자 설레였다
다음에 또 너를 보았을때
가까워 질 수 없는 거리를 깨닫고
한 숨 지었다
너를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충분 하다고 생각 했었는데
어느새 내 마음엔
자꾸만 욕심이 생겨 나고 있었던 거다
그런다고 뭐 달라질게 있으랴
내가 그대를 그리워 하고
그리워 하다 당장 숨을 거둔다 해도
너는 그자리 그대로
냉랭하게 나를 내려다 볼 밖에
내 어두운 마음에 뜬 별하나
너는 내게 가장 큰 희망이지만
큰 아픔이기도 했다
- 저녁별 / 이정하
첫사랑은 아니다마는
이 울렁거림 얼마나 귀한지
네가 알까 몰라
말은 속되다
어째서 이리도
주머니마다 먼지 낀 언어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
다 버리고 버리고
그러고도 남아 있는
한 가지
분명한 진실
이 때아닌 별소나기
울렁거림
네가 알까 몰라
- 너를 위한 노래 3 / 신달자
자꾸만 발꿈치를 들어보아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때로 기다림이 길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들어요
까마득한 하늘에 새털구름이
떠가고 무슨 노래를 불러
당신의 귓가에 닿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만나지 않았으니
헤어질 리 없고 헤어지지
않았어도 손 잡을 수 없으니
이렇게 기다림이 깊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늘어납니다
- 그대 가까이 2 / 이성복
나무에게도 쉬운 일은 아닌가봅니다
낙엽 한 잎 떨어질 때마다
여윈 가지 부르르 전율합니다
때가 되면 버려야 할 무수한 것들
비단 나무에게만 있겠는지요
아직 내 안에 팔랑이며 소란스러운
마음가지 끝 빛 바랜 잎새들이 있습니다
저 오래된 집착과 애증과 연민을 두고
이제는 안녕, 이라고 말해볼까요
물론 나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 낙엽 한 잎 / 홍수희
노래가 질펀한 거리를
그대는 걷고 있다
시간은 내 속에 정지해 있고
어쩌면 눈물만이 아프다
혼자 불끄고 누울 수 있는
용기가
언제쯤이면 생겨날 수 있나
모든걸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때가
나에게 있을까
잊음조차 평온함으로 와 닿을 때
아, 나의 흔들림은
이제야 끝났는가
- 홀로서기 3 中 / 서정윤
각자의 길 떠나는 날
사랑인 줄만 알았던 것들은
푸른 하늘 한 조각구름처럼 흩어지고
우리 기억도 추억의 구름으로
아픔 마음 남겨 놓고 떠나갔지만
그래도 가끔
미소를 잃지 않고 견디는 것은
아름다운 추억이
조금이라도 기억으로 남아 있어
준비해놓은 그리움 다리 건너
그래도 만날 수 있다는
작은 희망 때문입니다
- 그리움 다리 건너 / 이병주
첫댓글 ㅠㅜ도탁스 가입해야 다른거 볼 수 있네요 ㅠㅜ
일단 저 댓글좀 달아주세여 ㅠㅠ
:D
너무 좋네요! 새벽에 시 읽기 ㅜㅠ
시 너무좋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