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인의 마음을 기리며
전란 속에서도 예를 지킨 사대부의 아내로 자애로운 어머니이신 정부인 강성문씨는 충선공 삼우당 문익점의 후손이요, 별시위 문천일의 따님으로, 선조 5년 임신년(1572) 2월 13일에 태어나, 선조 38년 을사년(1605) 5월 8일에 서른네 살의 나이로 생을 마치셨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선조 30년(1597)경, 의병으로 참전하신 매헌공 이겸익 할아버지께서 난중에 미타암에서 정부인과 인연을 맺으셨다.
전란의 혼란 속이라 예식을 올리기 어려웠으나, 정부인께서는 “아무리 난세라 하나 사대부의 혼인은 예를 잃어서는 아니 된다.” 하시며 사주단자를 주고받을 것을 요구하셨다.
이에 할아버지께서 친히 부채에 예장지를 써서 증표로 드리고, 스님의 주례로 혼인을 올리셨다. 하니, 예와 절의를 지킨 참된 사대부의 규수이셨다.
전란의 폐허 속에서도 내조를 다하시며 살림을 꾸리셨고, 1599년 장남 창발을, 1601년 차남 융발을 낳으셨다.
그러나 잇따른 출산과 가난한 형편 속에 병을 얻으시어, 오랜 병환 끝에 서른네 해의 짧은 생을 마치셨다.
생애 마지막에 정부인께서는 “남편께서는 나라의 일과 학문에 전념하시라. 아이들은 심씨 할머니께 맡기노라.” 하시며 어린 두 아들을 부탁하셨다.
그 말씀에는 남편을 위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자애와 덕성이 깃들어 있었다.
그 숭고한 예절과 모성의 마음은 오늘의 후손들에게 큰 가르침으로 남았으며, 그 품격과 정신은 세세토록 우리 가문을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매헌공 12세손 이오걸 근서
貞心遺愛 정부인의 마음을 기리며
亂世孤心守禮儀 혼란한 세상에서도 예를 지키시니,
煙塵萬里不忘詩 전쟁의 먼지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으셨네.
禮憑扇紙成良約 부채 위의 약속이 혼례의 증표가 되었고,
誠託靈庵結舊期 미타암에서 맺은 인연은 백년의 사랑이 되었도다.
寒月添愁催別淚 차가운 달빛 아래 이별의 눈물 더해지고,
春風拂夢化慈姿 봄바람 속에 자애로운 모습은 꿈결로 남았네.
百年後裔思慈母 백 년이 지나도 후손은 어머니를 그리며,
梅下香魂共月知 매헌의 매화 아래 그 혼을 달빛이 알리라.
[참고]
열려 강성문씨 할머니
정부인(貞夫人) 문씨의 관향(貫鄕)은 강성(江城)이며, 충선공 삼우당 휘(諱) 익점의 후손으로 별시위 휘(諱) 천일(天日)의 딸이다. 강성문씨(江城文氏)는 선조 5년(1572) 임신년(壬申年) 2월 13일에 태어나서 1605년 을사년(乙巳年) 5월 8일에 생을 마쳤다.
강성문씨 할머니가 큰아들 창발을 1599년 낳은 것으로 보아 결혼한 후 1-2년 뒤에 첫 아이를 낳았다고 볼 수 있으므로 1597경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전쟁이 끝나기 전에 결혼을 한 것으로 보여 전쟁 중에 미타암 절에서 매헌공 할아버지와 만나 부부의 연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쟁 중이어서 의병으로 우리 할아버지께서 겸수 형님을 따라 활동을 한 것으로 보아 주남에서 수문마을까지 가서 결혼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매헌공 할아버지께서 청혼을 하자 문씨 할머니께서 아무리 난중이라도 사대부 집안에서 아무른 증표도 없이 그냥 혼약을 한다는 것은 도의가 아니라고 하여 상호 집안의 사주 단자라도 주고 받을 것을 요구하자 할아버지께서 직접 부채에 예장지를 작성하여 스님의 주례로 혼인을 한 것으로 본다. 난중에 결혼을 하였기에 가정 상항이 아주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 해에 첫 아들을 낳고 2년뒤에 둘째 아들을 낳아 제대로 산후 조리를 하지 못해 출산 후유증으로 병을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문씨 할머니가 돌아 가실 때 둘째 융발이 4살인 것으로 보아 4년간 병간호를 누군가 하였을 것으로 본다. 할아버지께서는 살림하랴 전쟁 뒤의 마무리 일을 처리하면서 병간호를 하는 사람을 붙였을 것으로 본다. 그분이 바로 심씨 할매로 봄이 타당하다. 4년간 병환으로 고생하시면서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면서 심씨 할머니께 어린 두 아들을 부탁하였을 것으로 본다.
강성문씨 할머니께서 건강 회복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오직 두 아들이 훌륭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면서 할아버지께서 편안하게 밖 일을 하고. 그리고 글도 마음껏 하실 수 있도록 심씨 할머니께 부탁한 것은 그만큼 열려요 자상한 어머니상임이 명백하다.
문씨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도 할아버지를 위하고 자식들을 위한 깊은 마음을 우리 후손들은 본 받아야 하며 후대 길이 되새겨야 할 것으로 본다.
매헌공 12세손 오걸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