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굿 셰퍼드’를 보면서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고전 7:29-31)
지난 주 성서일과 중의 한 부분이다. 이렇게 몇 줄 잘라내서 읽으니 마치 요즘 세태에도 맞는 말 같아서 다시 찾아 앞뒤의 문맥을 이어 읽어보았다. 아마도 도덕과 질서의 측면에서 훈계하는 뜻이 더 내포되어 있는 것 같은데 어쨌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말씀인 것 같다.
일찌기 없었던 불경기가 온다고 다들 두려워하고 있는 이때에 생각에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생산과 소비와 고용이 앞뒤로 맞물려 돌아가는 게 요즘의 경제라 할 수 있는데 헛된 탐욕과 소유욕을 부추겨야 소비가 일어나고 소비가 일어나야 생산이 일어나고 생산이 일어나면 고용이 유지되고 소득도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득이 줄어드니 소비욕구가 줄어들고 소비가 줄어드니 생산이 줄고 생산이 줄어드니 고용이 줄어들고 다시 소비가 줄어들고....
우리에게 생산과 소득이란 창조의 세계 안에서 뽑아내고 심하게 말하면 착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데 생각이 미치면 과연 우리가 이러한 경제를 계속 유지해야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든다. 지속적인 생산과 소득, 소비, 고용의 댓가는 생태환경의 고갈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고 그것은 오히려 지속 불가능한 세계로의 역행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당장 눈앞에 불경기가 닥쳐서 우선 시급한 불부터 끄고는 봐야하지만 끊임없는 경제성장, 고용과 소득보장이라는 것이 장기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봉창 두드리는 짓일까.
‘때가 단축되어진’ 고로 이 기회에 또 다른 세상으로의 이행을 꿈꾸는 것은 어떨까.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십시오. 이 세상의 모습은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표준새번역)
발전과, 성공과 소유의 의미가 다른 세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 이교광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