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인지는 모르지만 그때도 가을이었습니다.
만세교 검문소에서 버스를 바꿔 탈려고 내려서서는 그만 주저앉아 한참 동안 넋을 잃었습니다.
산에는 산마다 붉은색 노란색의 단풍이 그날 만큼은 그렇게 허허롭고 외롭게 보일수가 없었습니다.
위병소를 나오면서 전령에게서 받은 한 장의 편지 때문이었습니다.
박 병장님앞.
저는 모월 모일 모처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이때까지 아름답고 멋있는 인생을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님으로 인해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고,행복하다는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님과 같이한 수많은 시간. 잊을수 없을겁니다.
.
앞으로 좋은 친구로 인연을 이어갔으면 합니다.
내내 행복 하세요.
님의 영원한 벗. ***올림.
"꺼이~~꺼 꺼이~~"
'친구'라 했습니다.
님은 친구로 순식간에 헤까닥 할 수있겠으나,나에게는 택도 없는 말씀입니다.
나에게는 오로지 님 뿐이었는데, 님은 어찌하야 그 많은 친구들과 동격으로 둘수가 있습니까.
나에게 한것과 똑 같이 님의 그 많은 친구에게 똑 같이 했다는 말입니까?
너무 불공평하고 억울해서 땅이 다 빙빙 돌아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진짜 님은 가진자의 횡포를 마음대로 부리는 악녀이십니다.
고참 일병으로, 또 마이까리 상병으로 으시대던 일년전.
밑으로 졸병이 한개 들어왔는데, 나만 졸졸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하도 기특하고 구여버서 PX에서 맛있는것도 농갈라 먹었으며,
힘든 사역 하지말라고, 몸이 뻐적지근해서 어디 꼬불쳐 쉬고 싶은것도 참고,
불러내서 탁구도 같이 쳐 주었습니다.
하루는 그놈이 나를 불러 어디로 같이 가잡니다.
위병소옆에 면회실이 있는데, 동생이 면회왔으니 맛있는것 함께 먹자고 신이 나 합니다.
그래야지 그래..
애비에게 잘 보여야 하지 않는가베...
별 생각없이 슬리퍼 질질 끌고 졸랑졸랑 따라갔습니다.
' 니 동생 이쁘나?'하면서...
세상에,
나 솔직이 태어나서 그렇게 이쁜것 처음 봤습니다.
살짝 구부린, 한 모금도 안 되는 허리는 버들처럼 꺽어질듯 유연합니다.
가지런히 빗어내린 하늘거리는 머리결은 당시 둘다섯의 '긴머리소녀' 를 보는듯 했고,
크나큰 눈망울은 '눈이큰아이' 가사의 주인공인듯 했습니다.
한마디 한마디 내 뱉는 말은 천상에서 울리는 옥소리인줄 알았습니다.
군생활 2년이 이렇게 미적감각을 바꾸어 놓을줄 그 당시에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사역면제,PX매점 단팥빵,탁구놀이 등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후배는 사랑스런 동생에게 침이 마르듯 나를 칭찬하는것으로 답해 주었습니다.
진짜 눈물이 다 나왔습니다.
동화책의 왕자님이나 그리스신화의 용사에게만 그런 미인과 짝이 되는줄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하루건너 배달되는 꽃잎 편지지는 회색의 연병장을 알록달록 봄꽃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이 모두 내것 같았고, 아무리 힘든 훈련도 병정놀이 소꿉장난 하듯 가벼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한구절 한구절을 거짓말 안 보태서 하루에도 열번도 더 읽었을것입니다.
아마 내가 미쳤나 걱정 되기도 했습니다.
얼굴은 단 두번밖에 본 적이 없는데
이틀에 한번씩 배달되는 편지를 하루에 열번읽으면 열번 본것같고,
백번 읽으면 백번 본 것 같은 친밀한 착각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님이 쓴 편지내용과 내가 쓴 편지내용을 수백번 읽다보니,
후배동생에서 친구로, 얼마 지나지 않아 둘도 없는 애인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신기빠꿈합니다.
아~그때의 그 포근하고 짜릿한 느낌은,지금은 가물가물하나 분명히 최고의 행복이 그럴것입니다.
뭐 잘했다고 부대에서 포상휴가 일주일을 받았습니다.
대구로 내려가는 길에 서울을 들러라 합니다.
같이 놀아주고 맛있는것 마니 사 주겠답니다.
보고싶어 죽겠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때빼고 광내고,,벌렁벌렁하는 가슴으로 둥둥떠서 서울로 날라갔습니다.
여고생인 동생과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학교수업도 빼 먹고 같이 놀아주겠다는 말에 당연히 그래야제,,
으시대면서도 애틋한 감정을 가눌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을 이쁘게도 차려줍니다.
사제음식은 언제나 맛이있지만, 그날은 그냥 음식맛 만은 아니었습니다.
동생방에 포드라운 카시미론 이불을 깔아주고 밍티엔쩬(明天見)~ 합니다.
뀌뚜라미 소리에다 행복의 포만감으로 잠을 못 이루고 한 밤을 헤메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문을 두드립니다. 배시시한 웃음을 머금고 식혜를 살짝 넣어 줍니다.
거봉같은 포도도 넣어줍니다.자라는 건지 말라는건지 도체 모르겠습니다.
아침 새소리와 함께 일찍 일어나 마당도 쓸고,
구보도 하면서 하나밖에 없는 남자친구 구실을 열심히 했습니다.
자취집 주인 아주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대견한듯 쳐다보는것에 그만 님의 남편정도나 되는듯
뿌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세상에 태어나 그런 느낌 처음이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안암동에 있는 고대앞 골목골목을 눈요기 하러가자고 합니다.
이가게 저가게 기웃대기도 하고, 빵집에서 맛난 빵도 사 먹었습니다.
내 아내가 된 양 빵조각을 잘게 찢어 입에 넣어주며 환하게 웃습니다.
록카페에 들러 자청해서 무대로 올라가 피아노를 치는 그 손가락은 ,
세상의 것이 아닌듯 아름다웠습니다.
서울역 근처에 내려 낙옆을 밟으며 걷는 기분은 내사랑과 같이 가는 황홀한 인생인듯 했습니다.
지나가며 흘끔흘끔 훔쳐보는 남자들이 왜 그리 쪼다같이 보이는지,,
우쭐우쭐 느껴지는것이 갑자기 키가 한 10센티 자란듯했습니다.
아~잊었습니다.팔짱을 끼자고 할 걸 정신이 없어 그만 까 먹었습니다.
그러면 더 멋이 있었을텐데...
귀대하고 그렇게 꿈같이 1년정도 지났는데...
아~
하늘이 노랗게 물든것 본 적이 있습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들어 본 적 있습니까?
.
외출하고 돌아오니,
부대원들이 어떻게 알았던지, 취침 점호가 끝나자마자 밖으로 살짝 불러냅니다.
식당뒤가 쫄다구의 놀이터 입니다.
시무룩히 따라가니 막걸리와 돼지비게,또 어디서 쎄벼온 찌짐까지 있습니다.
나를 이리저리 위로합니다.쎄고 쎄 빌었는게 여자라고~
그래서 나는 가리늦은 24세에 처음으로 담배를 배웠습니다.
흑흑,,가을은 반다시 없어져야 하는 물건입니다.진짜~
오늘 나는 집사람에게 허벌나게 맞아 디져야 합니다.힝~~
첫댓글 가심 아픈 사랑 이야기.....낼 안부 글 올려 주세요...맞아 ㄷㅈ는지....
선생님, 아!!! 삼류?단편소설 읽은듯이 재미 나네요. 옛사랑이야기,만약에 내 남편이 스쳐간 여인 하나 없었다면 전 오히려 더 실망스러울것 같은데요. 행여 아름답지 못한 일이 있었다면 이렇게 자랑스럽게 옛 이야기도 못할테구요. 맞아dg면 저의 사부님 어디가서 구해야되지요? 사모님,가을 앓는 추남 사부님위해
보약 한 재 해드릴분이시란걸 믿어 확신합니다. ㅎㅎ
추억이 되버린 아픈사랑이야기? 그만큼 시간이 지나버렸네여? 군바리?때 추억은 밤새두 모자른거 맞져?? 문장력은 왜 글케도 출중하신지.. 푹빠져서 봤으여~^^
악!!!!!!스프링님!아름다운 가을이 그렇게도 군발이 시절에 아픔이 있었군요. 그래도 행복하십니다. 그런 추억도 못만들어본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udt출신들 말입니다.ㅎㅎㅎ
음~~재밋는 이야기....가을은 없어 져야 하는 물건??????그거 없애면 안되는데................
울 스프링 오라버니를 (감정)농락한 여성동지에게 경하를!!!!!!!!그래두 가을은 가끔 꺼내보게 쪼개 냄겨야 하는디......진짜 몽땅 없애부리면 클났다!
hhh 저는 추억이고 부인은 과거라고? 에라이~
고따우로 가슴아픈 가을은 없어져야 합니다, 암만~ ㅎㅎ 탈영하지 않은 스프링님이 대견(?)합니다 ^^
하하..그렇습니다.
추억을 살려주는 가을인데...없어지면 추억은 잼나고 슬프게() 읽고갑니당
그럼요.없으면 삶이 참 재미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