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사업은 돈벌이가 아니다.
이범수씨는 이미 우리 신문지상에 소개된 바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미 해놓았고 또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 하도 남과 같지 않은 보람이 큰 일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말해주고 싶었다.
지금부터 8년 전 즉 1997년도에 알마틔로 왔는데 여기로 오기 전에는 한국에서 무역사업을 했다고 한다.
여기로 온 첫 시기에는 운동화를 파는 사업을 했는데 상품 품종을 점점 늘려 물건 파는 돈벌이를 계속했으면 지금쯤은 비즈니스에서 큰 성공은 못했다 할지라도 당장 먹고사는 문제는 없었을 것이고 여태까지 벌어놓은 뭉치돈은 아니나마 자기 돈을 들이면서라도 보람이 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충동심이 어느 순간 생겼던 것이다.
-어째서 이 낯선 나라에 와서 이미 하고 있었고 경험도 없지 않은 안전한 사업을 계속하지 않고 책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까?
-다른 외국나라들에 나가있는 사람들도 다 그렇겠지만 저 역시 여기 남의 나라에 와 좀 살다보니 무엇보다도 우선 중요한 것이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임을 깨달았어요.
즉 언어죠.
그래서 이 방향에서 자기 사업도 물론 좀 되고 남을 위한 보람이 있는 일을 찾아본 것이 바로 제가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세권의 책 즉 카자흐-한국어 사전, 한국-카자흐어 사전과 카자흐어 회화집입니다.
-이 나라는 아직 러시아어를 민족간 교제어로 쓰고 있는 나라인데 한국사람들을 위해서는 오늘 당장엔 러시아어 습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습니다.
그러나 원주민이 반수가 넘으니 그들과 단순하게 물건을 팔고사고 하루 이틀 살기위한 의사소통보다는 이 나라 원두민들의 심리상태, 민족적 특성을 알고 우선 우리 외국인들이 그들의 심리상태에 맞게 행동하고 그들과도 더 가까워지려면 인사말이라도 그들의 조상들이 사용하던 말을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외국인이 우리말로 인사라도 해주면 그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잖아요?
-그건 정말 그렇습니다. 책이 좀 팔렸습니까? 원가라도 나와야 할터인데...
-좀 팔리긴 했으나 많이 적자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것은 예상했으니까 괜찮아요.
-광고가 부족할 수도 있고 또 우리 민족의 특징의 하나가 의식주를 생활의 기본으로 삼으니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앞으로는 그 책들의 수요가 반드시 커질 것입니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사업은?
-역시 이 방향인데 카자흐어를 아이들처럼 흥미를 느끼며 배울 수 있게 그림책 즉 월간 연속만화 잡지를 펴낼 예정입니다.
이 그림 잡지는 언어습득뿐만 아니라 아동들을 위한 교양자료도 될 것입니다.
-또 다른 계획은?
-이 일이 돼가는 걸 보면서 아동들을 위한 일간 신문을 펴낼 생각도 하고 있어요.
이범수씨와 이런 담화를 나누면서 어떻게 보면 돈키호테같은 사람이아는 인상을 어느정도 받기는 했으나 몹시 감탄할 일이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한인회나 상사협의회, 한국 대사관에 가 지원들 해 줄 것을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것같지 않았다.
워낙 문화 사업이란 당장 이득이 나오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몹시 어렵게 살고 있다는 것을 그가 말은 안 해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좀 가지고 외국으로 나가면 술집, 오락장소나 다니고 여자드르이 향취에 취해 버리는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도 아니다.
정식으로 현지 원주민 여자에게 장가를 들고 어린애도 낳아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니 물질생활이 더 어려울 것만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조금도 후회하거나 실망해 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하고 있는 일에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아주 낙천적이고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무리 보람있는 일이라도 배가 고프면 하기가 어려울 것인데도 이범수씨는 이런 일을 자진해서 하고 있으니 고마울 수밖에 없다.
원래 문화 사업이란 돈벌이인 것이 아니라 사회와 사람들을 위해 희생적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존경심을 갖게 됐고 넉넉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책들을 한권씩만 사주어도 그에게 심정적인 도움으로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출처 : 고려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