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소수의 답변 불가능한 오류가 있어도 성경은 무오하다.
(2) 두 번째 증거: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
성경에서 둘은 증인의 숫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씩 파송했고, 계시록에도 두 증인이 나옵니다. 그래서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을 수 있는 두 가지 확실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하나는 단회적인 사건인데 예수님의 부활(행17:31)이고, 다른 하나는 지속적인 사건인데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입니다.
마가복음 16:15-18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부활처럼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도 하나님께서 믿으라고 주신 증거입니다(히2:4). 성령의 은사는 속임수나 허구가 아닙니다. 눈으로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이는 실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요 활동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정확한 예언들이 선포되고, 정확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확실한 치유들이 일어나고, 실제로 귀신이 쫓겨나갑니다. 심지어 창조적인 기저들이 일어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기도 합니다. 모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일어날 수가 없는 일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의심을 떨쳐버리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이 증거들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을 더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기독교가 단지 신약성경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면, 즉 단지 인간들의 상상과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부활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표적과 기사 역시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저 교리와 종교의식만 있어야 합니다. 교리, 전통, 종교의식, 예배, 종교적인 의무만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공허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고, 정확한 예언이 있고, 실제적인 치유와 축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오늘날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모든 이론을 잠재우는 것, 즉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생각과 이론과 반론들을 잠재우고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의 목적입니다(고후10:3-5). 그러므로 표적과 기사가 함의하고 있는 것은 "성경은 진리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구원자다! 천국과 지옥 등 성경이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이 진짜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한편, 성령의 은사는 예수님의 부활의 현재적인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부활하셨습니다(롬8:11) 성령님이 부활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날 부활의 능력이신 성령이 교회에 부어졌습니다.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성령의 각종 은사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은 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을 통해 성경의 권위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은 예수님과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것인데, 성경은 예수님과 복음을 계시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을 통해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타종교에도 기적과 신비한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타종교에도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선교지에서 자주 일어나는 '능력대결'을 보면 백이면 백 항상 타종교가 깨집니다. 그래서 타종교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역사의 배후세력이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라는 것이 밝히 드러납니다. 기독교가 독보적이고 유일무이하다는 것이 그것을 통해 가장 극적으로 증명됩니다.
제가 알기로는, 타종교에서 기적이 가장 강하게 나타난 곳 중 하나가 인도네시아입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이나 『20세기 사도행전 인도네시아 부흥 이야기』라는 책에 그것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책들에 따르면, 귀신의 능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소위 남한 끝에서 북한 끝까지도 갑니다. 또 귀신의 역사에 의해서 칼로 살을 베어도 베어지지 않고 불로 태워도 태워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땅 속에 며칠 동안 묻혀 있었는데도 죽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주술적인 칼을 가지고 몸에서 영이 빠져나와 어린아이나 다른 사람의 콩팥의 일부를 잘라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경찰들도 두려워서 잡지를 못합니다. 이런 극적인 귀신의 역사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런 사람들이, 단순히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성령 받은 전도단과 마주쳤을 때 박살이 났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성령 받은 평범한 전도단 앞에 정체가 드러나고 패배했습니다. 이것은 타종교에서 나타나는 역사는 속이려는 귀신의 역사이고 기독교에서 나타나는 역사는 참 하나님과 복음을 믿게 하려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마귀의 역사요, 하나는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요10:10). 즉 다른 종교들에도 기적들이 일어나지만 그 원천과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아! 정태영 주임
1년 전 청송교도소에 초임간부로 발령받아 나와 같은 부서에 배치된 정태영 주임의 첫인상은 영락없는 로마시대 검투사였다. 떡 벌어진 체구에 엄정한 표정은 물론, 어투에도 강직함이 뚝뚝 묻어났다. 그러나 그의 부임인사를 받는 내 마음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
그의 인사 기록부를 들춰 종교란부터 찾아보았다.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기독교' ... 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원불교'라고 적혀 있었다.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어서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
'그래 원불교면 어떻노. 같이 지내다가 잘 전도해서 믿음의 일꾼 만들면 되것제.'
애써 스스로 위로해보았지만 날이 갈수록 그 소망마저 사라져갔다. 한 공간에서 종일 함께 살다시피 근무하며 지켜본 바로, 그는 도저히 전도 대상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대구에서 유명한 사찰의 암자에 들어가서 고시공부를 하다가 도를 깊이 닦는 선승을 만나 공부보다는 아예 수도를 시작했다. 얼마나 깊이 심취했던지 공중부양을 연마하며 때로는 자기 영이 육체를 빠져나가는 유체이탈의 경지까지 넘나들었단다.
당시 그의 아내가 진주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했는데, 그가 한 밤중에 명상과 수도에 깊이 들어가는 순간 영이 육체를 쑥 빠져나가서 순식간에 진주로 날아가 그날 매상이 얼마며, 무슨 물건이 다 팔렸고, 아내가 어떤 옷을 입고 장사했는지조차 훤히 알고 돌아오기도 하는, 실로 초자연적인 능력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
나는 그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교회 가자는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해 기도조차 하지 않았다. ...
어느 깊은 밤 느닷없이 정 주임 부부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러고는 앉자마자 전혀 뜻밖의 말을 불쑥 내뱉었다.
'계장님, 저희를 계장님께서 다니시는 교회로 데려가주십시오.'
완전히 포기했던 부하직원이 제 발로 교회에 오겠다고 하니 내심 뛸듯이 기뻤지만, 이유가 궁금해서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와 그라요? 교회로 인도해달라니 좋긴 한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능교?'
그는 이내 눈시울을 붉히더니 어깨를 들먹이며 울기 시작했다.
'제가 이곳에 부임해서 지금까지 지옥 같은 삶을 살았는데, 모르셨습니까?'
'와? 내가 정주임한테 뭐라 카등교? 내사 아무 감정도 없는데 무신 소리요?'
'아침에 출근해서 계장님과 마주 앉을 때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계장님은 아무 말씀하시지 않아도 저는 계장님으로부터 어머어마한 기를 느낄 뿐 아니라, 그 기에 짓눌려 숨도 못 쉴 지경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랐던지! 대체 내게 무슨 기가 있단 말인가! 나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간의 심정을 심각하게 털어놓았다. 나는 마주할 때마다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에 매 순간 자신이 밀리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상하다. 내가 저 박 계장보다 못한 게 뭐가 있나? 체력도 앞서고 갖가지 단련도 더 많이 하는데 왜 저 사람에게 이토록 눌린단 말인가? 내일부터 얼음물에 더 오래 들어가고 수양에 더 깊이 정진해야겠다.'
그런데 이를 악물고 수련의 강도를 높일수록 내게서 느끼는 압박감은 오히려 커져만 가니 고민이 깊었단다. 물론 나는 단련 따위를 해본적 없고, 기공에 대해서도 문외한이며, 무슨 별난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한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오랜 세월 강력한 기 수련으로 무장한 정 주임을 내리누르는 힘이 있다니 나 역시 의아스러웠다.
나중에 사실을 깨닫고 보니 해답은 극히 간단했다. 그는 비록 방향이 다르긴 해도 영적 세계에 민감한 사람이라 겉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듯한 박효진 장로를 성전 삼고 계시는 위대한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을 기로 느낀 것이다. 그러니 전능하신 성령의 '기'를 누가 당하겠는가? 숨 막히도록 압도될밖에!"
끝으로,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아 성경의 권위를 부정한 결과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신론자가 되거나 수많은 종교 중의 하나로 기독교를 믿는 종교인이 되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가톨릭 신자들처럼 종교다원주의에 빠져 가짜 기독교인이 되어버리는 것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과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을 통해 성경의 권위를 믿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유일한 구원자로 믿으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인생의 참 의미와 올바른 목적을 발견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고 닮아가면서 하나님과 뭇 영혼들을 위한 가장 숭고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참된 평화와 만족과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성령의 기름부음과 은사들이 나타납니다. 선한 열매가 맺히고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뚜렷한 예들로, 성 프랜시스, 성 안토니, 비오 신부, 윌리암 씨무어, 캐더린 쿨만, 스미스 위슬스워스, 존 레이크, 마리아 우드워스 에터, 썬다 싱, 리즈 하월즈, 존 하이드, 최권능, 오랄 로버츠, 케네스 해긴, 에녹 아데보예, 하이디 베이커, 김옥경 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십시오. 그들은 복음을 통해 타고난 본성적인 사람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고 예수님이 보여준 거룩한 사람, 사랑의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기쁨과 평화와 영적인 만족 즉 천국을 이 땅에서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또 그들의 삶에는 자신이 느낄 수 있음은 물론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이 현저하게 함께하셨습니다. 그들이 받은 계시들은 실제로 이루어졌고, 사람이 모방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놀라운 기적과 역사들이 삶 속에서 나타났고, 그로 인해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영원히 변화되었습니다. 합의된 종교나 신조는 이렇게 실제적이고 엄청난 역사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모두 성경이 주장하는 복음과 진리가 참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즉 성경이 진짜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말입니다. 만일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듯 성경이 그저 인간의 글이라면 이런 일들은 절대로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억하고 성경에 대한 모든 의심을 떨쳐버리십시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성경의 권위를 믿고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과 복음과 진리들을 받아들이십시오.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사십시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많은 이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