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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2022년 가을호
【김현경의 회고담 15】
김수영 시 읽기 (5)
일시 : 2022년 2월 22일. 4월 1일. 4월 26일. 6월 15일.
장소 : 경기도 용인 자택
맹문재 : 오늘은 「기자의 정열」을 읽어보려고 해요. 김수영 시인이 기자 생활하면서 쓴 작품으로 보이네요. 실제로 김수영 시인의 연보를 보면 1955년부터 1956년까지 『평화신문』의 문화부 차장으로 근무한 것으로 되어 있지요. 기자 생활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네요.
김현경 : 이 작품은 김 시인이 『평화신문』에 다닌 경험이 들어 있어요. 김 시인은 아침에 신문사에 출근해서 저녁에 얌전하게 귀가했어요. 『평화신문』은 일간지였어요. 김 시인은 문화부 차장이어서 현장 취재는 안 한 것 같아요. 한 달에 한두 번 번역한 원고를 실었어요.
맹문재 : 작품을 읽어보면 신문기자라는 직업이 무거운 짐을 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휴식을 취하기 어려운 것인데, 그것은 곧 자유를 갖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정열이 있는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대한 “희한한 상상과 무수한 활자를” 생각하지요. 그것이 기자의 생활이고 의무이고 보람이고 그리고 역설적으로 휴식이고 자유인 것이지요. 다음의 구절이 그 상황을 여실하게 담고 있는 것 같네요.
“결혼 윤리의 좌절
―행복은 어디에 있나?―”
이것이 어제 오후에 써 놓은 기사 대목으로
내일 조간분 사회면의 표독한 타이틀이 될 것이라고 해서
네가 이 두 시간의 중간 위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해서
어려운 휴식
참으로 어려운
얻기 어려운 휴식
―「기자의 정열」 부분
다음으로 읽어볼 작품이 「구름의 파수병」이에요. 표현력이 대단하지요. 김수영 시인이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요?
김현경 : 작품에서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김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어요. 자신이 부르주아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지요. 김 시인은 물질주의를 싫어했어요.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라는 작품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주제라고 볼 수 있지요.
맹문재 : 이 작품에는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살아간다고 그리고 있는데, 실제의 모습인지요?
김현경 : 마포구 구수동에 이사 갔을 때 그랬어요. 그랬는데, 내가 양계를 하고 옷을 만들어 돈을 벌면서 봄이나 가을에 집을 넓혀갔어요. 마루방까지 해서 방이 다섯 칸이 되었어요. 마루의 문을 유리문으로 바꾸고, 다이닝룸도 만들고, 김 시인의 앉은뱅이책상도 큰 테이블로 바꾸어주었어요. 번역하는 데 사전을 올려놓아야 하니 앉은뱅이책상은 아무래도 좁았어요. 그렇게 해서 김 시인이 수필에서도 말했듯이 엉터리 양옥이 된 것이지요. 김 시인이 시작품에서 말한 것과는 다르게 좋아했어요. (웃음)
맹문재 : 이 작품에서 “시를 반역한 죄로/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라고 표현했는데, 참으로 감각적이에요.
김현경 : 김 시인의 시작품들은 표현이 대단해요. 제목도 참으로 좋아요. 이 작품을 읽으면 김 시인이 청년 같아요, 아니 소년 같아요. 김 시인이 구름의 파수병이 되려고 하는 것은 하늘을 보고 대화하려는 것이지요. 물질주의를 거부하고 정신주의를 추구하는 것이에요. 시인 정신 내지 시인 자세라고 볼 수 있지요.
맹문재 : 다음으로 읽어볼 작품이 『백의(白蟻)』에요. 한자의 뜻은 ‘흰개미’인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요. 이 작품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현경 : 6․25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구호물자를 배급받았잖아요. 밀가루도 받고, 빵과 우유도 받았지요. 이 작품은 그와 같은 상황을 담고 있는데, 그것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것이지요.
맹문재 : 이 작품에서 ‘백의’는 밀가루를 비롯한 구호물자로 볼 수 있지만, 미국의 화폐인 달러로도 볼 수 있네요. “어떤 나라의 지폐보다도 신용은 있”다라거나, “어느 삼류 신문의 사회면에는 간혹 그의 구제금 응모 기사 같은 것이 나오고 있다”와 같은 구절에서 유추할 수 있네요. “백의의 비극은 그가 현대의 경제학을 등한히 하였을 때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라는 구절에서도 연상되네요. 작품의 화자는 그 달러를 좋아하면서도 좋아할 수 없기에 갈등하고 있네요.
나는 그날부터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어저께 내가 오래간만에 거리에 나가니
나의 친구들은 모조리 나를 회피하는 눈치이었다
그중의 어느 시인은 다음과 같이 나에게 욕을 하였다
“더러운 자식 너는 백의와 간통하였다지? 너는 오늘부터 시인이 아니다……”
―「백의」 부분
김현경 : 김 시인의 시인 정신으로 볼 수 있지요. 김 시인은 물질주의를 대단히 경계했어요.
맹문재 : 이 작품에는 『애틀랜틱』과 『하퍼스』가 등장하고 있어요. 김수영 시인이 『엔카운터』나 『파르티잔 리뷰』과 같이 구독했는지요?
김현경 : 『애틀랜틱』이나 『하퍼스』는 구독한 잡지가 아니라 김 시인이 명동의 상업은행 뒤, 즉 미도파 백화점 옆에 잡지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서 사 가지고 온 것이에요. 당시 그러한 잡지들이 미군 부대에서 파지로 나왔어요. 김 시인은 그 잡지들을 사서 번역거리를 찾은 것이에요. 실제로 여러 편 번역해서 잡지사 등에 갖다 주고 용돈을 받았어요. 내가 그 잡지들을 궤짝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만 충북 보은에서 살 때 도둑을 맞았어요.
맹문재 : 참으로 아깝네요. 한국전쟁 뒤 미군 부대에서 나온 물건들이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지요?
김현경 :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는 것이 없었잖아요. 미군 PX(Post Exchange)에서 많은 물건들이 시장에 나왔어요. PX에서는 면세된 가격으로 물건을 파니까 시장에서도 국내 제품보다 쌌지요. 구제품(救濟品)도 엄청났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암시장을 찾았어요. 지금 남대문시장 자리에 천막을 친 부스가 있었어요. 상호는 없고 칸막이를 하고 있었어요. 나도 그곳에 가서 김 시인의 옷, 코트, 구두, 넥타이, 목도리, 손수건, 혁대, 내의, 양말 등을 샀어요. 옷은 단 하나 고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딱 맞았어요. 신발 사이즈가 42였고, 옷 치수가 나인디(9D)였어요. 구두는 장교 단화였어요. 그 옷들을 김 시인이 세상을 뜬 뒤 문인들에게 나누어 드렸어요. 유정 시인이 많이 가져갔어요.
맹문재 : 이 작품에는 “신세계극단의 연출자 S씨”가 등장하는데, 혹시 누구인지 아시는지요?
김현경 : 누구인지 모르겠네요. 잊어버렸어요. 6․25전쟁 전에 ‘부길부길쑈’가 아주 인기였어요. 단장이 윤부길이데, 지금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윤항기와 윤복희의 아버지이에요. 노래도 하고, 희극 연기도 하고, 악기 연주도 하고 등등 재주가 많았어요. 무대도 무척 화려했어요. 김 시인이 중앙극장에 데리고 가 한두 번 보았는데 대단했어요. 그곳에서 나애심 가수의 노래도 들었어요. 탁한 소리였는데, 정말 멋있었어요. 김 시인이 중앙극장에서 무대 장치 일을 하는 박일영 씨를 따라 일한 적도 있지요.
맹문재 : 윤부길(尹富吉, 1912~1957)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대단한 분이었네요.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음악 공부를 한 뒤 작사가, 성악가, 뮤지컬 배우, 극작가, 희극인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네요. 가요 작사를 했는데 1953년의 실화 노래인 <처녀 뱃사공>(한복남 작곡, 황정자 노래)의 사연이 참으로 감동을 주네요. 위키백과에 정리된 내용을 옮겨볼게요. “1953년 9월 함안군의 가야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대산장으로 부길부길쑈라는 유랑극단을 이끄는 단장인 윤부길이 강을 건너려고 나룻배에 몸을 실었는데 나룻배의 뱃사공이 20대의 처자였다. 윤부길은 왜 그 처녀가 뱃사공을 하나 그 이유를 물어보니 1950년에 군에 입대한 오빠 박기준(한국전쟁 중 전사)이 소식이 없어 오빠를 대신하여 여동생 박말순, 박정숙 두 처녀가 교대로 나룻배를 저어 길손들을 건네준다는 애절한 사연을 듣고 “낙동강 강바람이 치맛폭을...”으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갈무리하여 그 당시 싱어송 라이터였던 한복남에게 자기가 쓴 노랫말에 곡을 붙여달라 의뢰하고 한복남으로부터 <오동동 타령>을 받아 인기 가수가 된 황정자가 불러서 알려진 노래가 <처녀 뱃사공>이다.”
다음 작품으로 「예지(叡智)」를 읽어볼게요. “바늘구멍만 한 예지를 바라면서 사는 자의 설움이여/너는 차라리 부정한 자가 되라”라는 구절이 와닿네요.
김현경 : 김 시인의 자문자답이지요. 항상 이러한 태도였어요. 자신의 인격 도야에 힘썼고, 자기 인품에 투명하려고 했어요. 자기 연마를 보통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자기를 모래알처럼 생각하고 겸손했어요. 동네의 노인들에게 꼬박꼬박 인사를 했어요. 김 시인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모두 놀랐다고 했어요. 백낙청 교수가 김 시인에게 『창작과비평』에 시를 싣자고 했을 때도 신동엽 시인에게 양보했잖아요.
맹문재 : 말씀을 들으니 “너의 벗들과/너의 이웃 사람들의 얼굴이/바늘구멍 저쪽에서 떠오르리라/축소와 확대의 중간에 선 그들의 얼굴/강력과 기도가 일체가 되는 거리에서/너는 비로소 겸허를 배운다”라는 구절이 더욱 이해가 되네요. 민중의식이 확인되기에 한층 더 주목되네요.
다음 읽어볼 작품이 「눈」이에요. 제가 김수영 시를 읽기 시작할 때부터 좋아했던 작품이에요. 제가 10대를 경북 포항에서 보냈는데, 그때 이 시를 읽고 많은 힘을 얻었어요. 그 얘기를 문학사상사에서 간행한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 4』(2003)에서 밝힌 적이 있어요. 작품의 전문을 읽어볼게요.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눈」 전문
김현경 :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을 받은 작품이지요. 상 받으러 갈 때 나도 같이 갔어요. 김 시인의 시는 그 당시 청록파류의 작품과는 사뭇 달랐어요. 그렇다고 김 시인의 작품에 서정이 없는 것도 아니었어요. 단수가 아주 깊고 높았어요.
맹문재 : 이 작품은 리듬이 있어 생동감과 친밀감을 주고 있어요. 작품을 쓴 계기나 동기가 있는지요? 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현경 : 겨울이 되면 마포구 구수동 집에는 눈이 많이 쌓였어요. 김 시인은 쌓인 눈을 팔짱을 끼고 내다보곤 했어요. 예전에는 눈이 참으로 많이 왔어요. 녹을 사이도 없었어요. 늦봄에도 온 적이 있어요. 지금은 겨울이 너무 짧은 것 같아요. 김 시인은 자신의 욕심이나 순수하지 못한 양심을 순수한 눈에 다 뱉으려고 했어요. 세속적인 것, 타락한 것, 속된 생활을 정화하려고 한 것이지요. 청교도 정신 같은 것이에요.
맹문재 : 그 자세가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생각할 정도이니 결연해지네요. 다음 읽어볼 작품이 「서시」예요.
김현경 : 어느 신문의 신년시 청탁으로 쓴 것 같은데요.
맹문재 : 발표했다가 다시 실었는지 모르지만, 작품 연보를 보니 『사상계』 1957년 8월호에 발표되었네요. 작품 발표지를 제가 소장하고 있어요. 이 작품에는 “소크라테스”가 나오는데 김수영 시인이 소크라테스에 관한 책을 읽었는지요?
김현경 : 나는 이 작품이 신년시로 발표된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아무튼 김 시인의 신년시는 다른 시인들의 신년시와는 아주 달랐어요. 판에 박힌 시가 아니라 이런 작품이 신년시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하게 여길 정도로 개성이 강했어요. 김 시인은 소크라테스 책도 읽었어요. 칸트와 하이데거의 책과 마찬가지로 일본어로 된 책이었어요. 소설책보다도 철학책을 더 읽었어요.
맹문재 :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라는 구절이 눈길을 끌어요. 이승만 정권 시대이니 시대성을 느낄 수 있어요.
김현경 :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라고 되어 있지요. 부엉이는 밤에 움직이잖아요. 김 시인이 맞서 싸우겠다는 자세이지요.
맹문재 : 작품이 마치 “나무”처럼 조용하면서도 힘이 있어요. 다음 읽어볼 작품이 「영교일(靈交日)」이에요.
김현경 : 영교의 의미는 영혼을 교류하는 것이지요. 김 시인이 만든 말이에요. 김 시인은 속세를 부정하고 이상적인 에스프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김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사는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집념을 가지고 몰두해서 시를 썼어요. 일상생활에 빠진 적이 없어요. 돌아가신 해 4월 부산에서 열린 펜클럽 주최 문학 세미나에서 「시여 침을 뱉어라」를 발표하실 때 온몸으로 시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그 모습이지요.
맹문재 : 이 작품에서는 “젊은 사나이의 그 눈초리”가 주목되는데, 김수영 시인은 그의 가장 깊은 영혼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고 하고 있어요. 그의 눈초리는 “무수한 공허 밑에 살찌는 공허보다/더 무서운 악몽이 있나요”라고 묻고 있듯이 공허한 상태로 있어요. 그리하여 김수영 시인은 잊어버리고 싶은 그 눈초리를 건져달라고 신을 찾고 있어요. 이 의미가 영교로 읽히네요. 다음의 작품이 「광야」에요.
김현경 : 이 작품은 마포에서 쓴 것이에요. 철학적이어서 어렵지만 힘이 있어요. 죽음을 몇 번 겪은 사람이 되어서 그런지 힘이 있고 생명의 고귀함을 알았어요. 제대로 된 생활이 없던 사람이 마포에서 살면서 생활이 생겼지요. 전쟁이 없으니 평화롭고 모든 것이 자라고 있으니 생동감을 느낀 것이지요. 의용군에서 살아왔고, 포로수용소에서 벗어났고, 아이가 있는 가정도 있으니 황홀했던 것이지요.
맹문재 : 이 작품의 제목인 “광야”는 마포구 구수동 집이라고 볼 수 있는지요?
김현경 : 그렇지요. 우리집 앞뒤가 아주 넓었잖아요. 김 시인은 집의 뜰을 확대해서 광야라고 본 것이지요. 그 광야에서 김 시인은 자신이며 생명의 소중함을 자각한 것이에요.
맹문재 : 이 작품에서 “도피하는 친구들”이라는 구절이 나와요. 무슨 의미일까요?
김현경 :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너절한 친구들이지요. 그냥 살아가는 시인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에 비해 김 시인은 의지를 가지고 시를 썼어요. 생명의 소중함을 알았고 자유 의지가 확실했어요. 밤낮 그러한 태도로 시를 썼어요.
맹문재 : 이 작품에는 “간디”가 등장하는데, 김수영 시인이 간디와 관련된 책을 읽거나 그의 사상을 얘기한 적이 있는지요?
김현경 : 우리 집에 간디 책이 일본어로 된 것이 있었어요. 김 시인은 간디를 존경했어요. 간디는 영국의 식민지 정책을 몸소 겪었잖아요. 전 재산이 팬티 한 장이었어요. 김 시인은 간디의 그 의지와 태도를 존경했어요.
맹문재 : 말씀을 들으니 “이제 나는 광야에 드러누워도/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나를 발견하였다”라는 구절이 좀 더 이해가 되네요. “시대의 지혜”라고 말할 수도 있지요. 이렇게 본다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어떻게 뒤떨어지느냐가 무서운 것”이라는 표현이 더욱 와 닿네요. 김수영 시인이 말한 대로 “공동의 운명”을 생각하게 되네요. 다음으로 읽어볼 작품이 「봄밤」이에요. 이 작품도 많은 독자들이 좋아하지요. 작품 전체를 읽어볼게요.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 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봄밤」 전문
김현경 : 정말 봄밤 같은 시에요. 나른하면서도 정다워요.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같은 표현은 마음을 울려요. 생활의 질서 같은 것도 느껴져요. 싸움에 들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평화롭고, 자유롭고, 인생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맹문재 : 이 작품에서 “너”를 아내로 읽는다면, 왜 “서둘지 말라”고 반복해서 당부하고 있을까요?
김현경 : 내가 하도 서두르니까 나온 것 같아요. 나는 생활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어디까지 등으로 계산을 해놓아요. 그리고 정해진 그 일을 마치려고 하루 종일 다람쥐처럼 애썼어요. 그러한 모습을 보고 김 시인이 가끔 나를 나무라기도 했어요. 가령 닭장에 들어가 계란을 줍는 일을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하면 되는데, 어떤 날은 다른 일이 없어 닭장에 더 들어갔어요. 계란을 줍는 행복감이 컸어요. 김 시인은 그러한 나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김 시인은 계란이 깨지거나 말거나 그냥 두었어요. 양계장에 들락날락하는 것을 싫어했어요. 닭을 100마리 이상 기르니까 계란이 매일 소쿠리 하나 가득했어요. 그렇지만 계란을 못 팔아서 걱정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장사들이 미리 사러 왔어요. 닭을 키우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에요. 병아리를 기를 때는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해요. 구공탄 위에 삿갓을 만들어 놓고 피우는데, 온도를 맞추기가 어려웠어요. 조금만 추우면 병아리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압사할 수 있어요. 어떤 날은 김 시인이 서두르는 나에게 앉아보라고 해요. 내가 앉으면 김 시인은 생활 얘기를 했어요. 어디에서 원고료가 들어온다는 등 모두 속이지 않고 말했어요.
맹문재 : “서둘지 말라”라는 구절이 김현경 선생님의 생활과 연관되었다고 생각하니 작품이 좀 더 이해가 되고 친밀하게 느껴지네요. 이 작품은 표현도 뛰어나지만 리듬감도 좋아요. 혹 김수영 시인이 이 작품을 쓴 계기나 동기가 있을까요?
김현경 :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인이니까 느낀 것이라고 보여요. 우리집 앞뒤에 광야 같은 뜰이 있었으니 시상이 떠오른 것이지요. 우리집은 생활 감정이 매일 새로웠고 재미있었어요. 나같이 재미있게 산 사람도 드물 것이에요. 김 시인의 술주정은 철저한 몸부림이었어요. 김 시인은 사는 태도가 항상 겸손했어요. 도둑놈이 들어왔는데도 경어를 쓸 정도였잖아요. (웃음)
맹문재 : 산문 「양계 변명」에 보면 김수영 시인이 도둑한테 존댓말을 쓰는 장면이 나오지요. 다음 읽어볼 작품이 「채소밭 가에서」예요. 이 작품도 리듬감이 있어요. 그리고 마포구 구수동 집 뜰의 전경이 눈에 선해요.
김현경 : 마포의 집 뜰에 심은 채소들이 얼마나 잘 자라는지 몰라요. 닭똥 거름을 사용해서 그랬는가 봐요. 파를 뽑아서 동네의 반찬가게에 갖다 팔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단을 만들어 팔았는데, 가게 아줌마가 친절했어요.
맹문재 : 파 외에 어떤 채소를 심으셨는지요?
김현경 : 무와 배추를 심었어요. 쑥갓도 심고, 시금치도 심고, 가지도 심었어요. 계사 위에는 호박이 열었어요. 박도 심었는데, 박꽃이 정말 이뻤어요. 박이 예쁘게 여물게 하려면 앉은자리를 잘 받쳐줘야 해요. 그때 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지금도 몇 개 가지고 있어요. 수세미도 정말 잘 자랐어요. 세 뿌리 심으면 주위에 나누어 주고도 설거지하는 데 충분했어요. 껍데기를 벗겨 삶아 씨를 빼내어 수세미를 만들어 설거지하는 데 사용했어요. 화장품으로 사용해보려고도 했는데, 쉽게 상해 포기했어요. 채소를 기른 것을 생각하면 6․25전쟁 때 화성군 사랑리로 피난 가서 동생들과 농사를 지은 일이 떠올라요. 고구마도 심고, 참깨도 심고, 옥수수, 콩, 고추 등도 심었는데, 큰동생은 똥지게를 지기도 했어요.
맹문재 : 이 작품에는 “강바람은 소리도 고웁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마포구 구수동에서 강바람 소리를 들으셨는지요?
김현경 : 그럼요. 강바람 소리가 들렸어요. 여름에는 장마가 지면 우리집 길가까지 물이 들어왔어요. 작품에 “달리아”가 나오는데, 실제로 집에서 키웠어요. 김 시인은 이와 같은 구수동의 뜰에서 기운을 느꼈는가 봐요. 광야처럼 느끼기도 했지요.
맹문재 : 다음으로 읽어볼 작품이 「초봄의 뜰 안에」에요. 앞의 작품들과 비슷한 분위기와 주제를 담고 있네요. 초봄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데, 소개해볼게요.
초봄의 뜰 안에 들어오면
서편으로 난 난간문 밖의 풍경은
모름지기
보이지 않고
황폐한 강변을
영혼보다도 더 새로운 해빙의 파편이
저 멀리
흐른다
보석 같은 아내와 아들은
화롯불을 피워가며 병아리를 기르고
짓이긴 파 냄새가 술 취한
내 이마에 신약(神藥)처럼 생긋하다
흐린 하늘에 이는 바람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데
옷을 벗어 놓은 나의 정신은
늙은 바위에 앉은 이끼처럼 추워라
겨울이 지나간 밭고랑 사이에 남은
고독은 신의 무재주와 사기라고
하여도 좋았다
―「초봄의 뜰 안에」 전문
김현경 : “보석 같은 아내와 아들은/화롯불을 피워가며 병아리를 기르고/짓이긴 파 냄새가 술 취한/내 이마에 신약(神藥)처럼 생긋하다”라는 표현이 참으로 좋아요. 실제로 파를 이겨 병아리에게 먹였어요. 서편으로 낸 문도 있었어요. 마당이 보이고 서강 다리가 보이고 강물이 보였어요. 서쪽으로 집을 늘려간 것이지요. 애들도 병아리를 좋아했어요.
맹문재 : “옷을 벗어 놓은 나의 정신은/늙는 바위에 앉은 이끼처럼 추워라”라는 표현도 아주 감각적이에요.
김현경 : 김 시인이 자신의 정신을 이끼처럼 춥다고 한 것은 그만큼 겸손한 것이에요. 추운 사람이 있으면 자기 옷을 벗어줄 사람이에요. 평소에는 고독한 사람이었어요. 절대 고독을 추구했어요. 김 시인은 구수동 집을 많이 좋아했어요. 나는 구수동 집에서 여름을 좋아했어요. 모든 것이 잘 자라고, 그리 덥지도 않고 바람도 잘 통하고, 한강을 내려다보면 윤슬이 반짝거렸어요.
맹문재 : 구수동 집의 언덕에 파출소가 있었지요?
김현경 : 우리집 산 언덕에 있었어요. 가끔 정보부 형사가 집으로 찾아왔어요. 창동 시댁에도 찾아갔어요. 주로 김 시인이 자고 있는 새벽에 왔어요. 지프차를 타고 둘이 왔는데, 한 사람은 서울대 출신이었어요. 와서는 월북한 김 시인의 동생이 찾아오지 않나 물어보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내가 안방으로 데리고 가 홍차도 대접하고 예쁘게 얘기했어요. 김 시인이 술이 과해 한참 서재에서 자고 있다고 둘러대었어요. 그들은 굉장히 유식했어요. 유명한 소설도 다 읽었어요. 사람도 좋았어요. 그래서 서로 대화가 되었어요. 동이 트는 6시쯤 갔어요. 그들이 갈 때 김 시인이 깨어나면 찾아뵈라고 할까요 하고 물으면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어요. 4․19 무렵과 5․16 무렵 많이 왔고, 김 시인이 돌아가실 무렵에는 거의 안 왔어요.
맹문재 : 말씀을 듣고 보니 마포구 구수동 집의 여러 상황이 새롭게 생각되네요. 다음으로 읽어볼 작품이 「비」에요. 이 작품에서는 “움직이는 비애”라는 구절이 눈길을 끌어요.
김현경 : 김 시인은 문학은 비애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에서 말하는 “움직이는 비애”는 빗소리, 그림자 등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어요. “계사 위에 울리는 곡괭이 소리/동물의 교향곡”이란 닭장에 있는 닭들과 복실이라고 불린 개의 소리 등이에요. 복실이는 우리가 5~6년 키우다가 양계를 접으면서 창동 시어머니의 댁으로 보냈어요. 시어머니는 복실이를 얼마나 아끼셨는지 몰라요. 복실이가 자연사를 해서 뒷산에 묻어주었어요. 시어머니는 정말 훌륭한 분이셨어요.
맹문재 : “움직이는 비애”에서 비애가 움직인다는 면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이 비의 모습이기도 하지요. 결국 김수영 시인은 움직이는 존재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여요. 역동성을 띠는 것이지요. “움직이는 비애”는 곧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것이어서 “결의하는 비애/변혁하는 비애”이지요. 그것이 “비”이기도 하지요. 김수영 시인은 그 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보”를 부르고 있네요.
김현경 : 김 시인은 아주 가정적인 면이 있었어요. 비가 오면 마루 끝에서 바라보며 즐겼어요. 마음이 평온했어요. 그렇게 평화롭고 달콤한 시간도 많았어요. 술을 드시고 와서 주사를 부린 날도 있었지만. 김 시인에게 비애의 핵심은 자유에요. 문학 하는 사람은 철저히 고독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맹문재 : 읽어볼 또 다른 작품이 「반주곡」이에요. 『사상계』 1958년 8월호에 발표된 작품인데, 선생님께서 원고지에 정서하셨는지요?
김현경 : 그럼요. 제목이 멋있지요. 시를 옮겨 적을 때 모던하고 기분이 좋았다는 기억이 떠오르네요.
맹문재 : 『사상계』에 작품을 발표할 때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요? 잡지사의 직원이 작품을 받으러 오는지요?
김현경 : 『사상계』는 당시 최고의 잡지였어요. 잡지사의 직원이 원고를 받으러 집으로 오기도 하고, 김 시인이 원고를 가지고 잡지사에 가기도 했어요. 『사상계』에 작품을 발표할 때는 원고료를 가져오라고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러한 잡지사는 계산이 정확했어요. 『현대문학』도 그랬어요.
맹문재 : 김수영 시인이 음악을 좋아했는지요?
김현경 : 김 시인이 음악을 적극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싫어하지는 않았어요. 마포 구수동 집에 매킨토시 전축이 있었어요. 에스피(SP)판, 즉 스텐더드판이 아니라 엘피(LP)판이 나왔을 때여서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그림도 좋아했지만, 음악을 무척 좋아했어요. 이화여대에 다닐 때 서대문에 있는 <자연장(紫煙莊)>이라는 음악다방에 매일같이 가서 베토벤이나 차이콥스키를 신청해서 듣곤 했어요. 김구 선생님이 사시던 <경교장> 근처에 있었어요. 그곳에 문학청년들도 많이 왔어요. 김 시인도 오고 이종구 씨도 왔어요. 클래식을 듣는 곳이었어요. 청춘 남녀들이 모인 곳이어서 담배들도 피우고 했어요. 어느 날 김 시인은 음악이 문학이나 미술보다 빠르게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김 시인은 소음에는 민감했지만 음악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았어요.
맹문재 : 김수영 시인이 <이수일과 심순애>를 잘 따라 했고, 강홍식 가수의 노래를 좋아했다고 언젠가 말씀하셨지요. 그러한 것을 보면 음악을 나름대로 좋아한 것으로 보이네요.
김현경 : <이수일과 심순애>를 똑같이 했어요. 강홍식은 당시에 인력거를 타고 다닐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어요. 그러다가 월북했어요. 강홍식의 딸이 영화배우 최무룡과 결혼했어요. 지금 영화배우인 최민수가 그 사이의 자식이에요.
맹문재 : “일어서 있는 너의 얼굴/일어서 있는 너의 얼굴/악골(顎骨)에서 내려가는 너의 경련/-이것이 생활이다//나의 여자들의 더러운 발은 생활의 숙제”라는 구절이 나와요. 여기서 “너”는 아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김현경 : 그럼요. 내가 모델이지요. 나를 생활하는 사람의 전형으로 본 것이지요. (웃음)
맹문재 : 김수영 시인은 “너의 얼굴”을 “앉아 있는 내 방의 촛불 같은 재산, 보석”이라고 평가하고 있어요. 따라서 자신의 시가 대항할 수 없다고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작품에는 쉬페르비엘 같은 인물이 나와요. 자료를 찾아보니 쥘 쉐페르비엘(Jules Supervielle, 1884~1960)로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이고 소설가이네요. 김수영 시인이 그의 작품들을 읽은 것으로 보이는데, 새삼스럽지만 독서를 참으로 많이 했네요.
김현경 : 김 시인은 생활을 위해 시를 쓰기보다 시를 쓰기 위해 사회를 보고 생활을 보는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똑같은 시를 안 써요. 항상 벗어나려고 했어요. 그렇게 함으로써 남이 보지 못하는 데를 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꼈어요. 아주 섬세한 표현들을 쓴 것이에요. 철학서 등 책도 많이 읽었고, 번역도 열심히 했어요.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생활을 높게 보았어요. 생활의 숙제, 생활의 지혜를 배우려고 했어요.
맹문재 : 김현경 선생님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구의 음악을 특히 좋아하셨는지요?
김현경 : 나는 베토벤의 곡을 특히 좋아했어요. 초기에는 심포니를 많이 들었는데 나중에는 실내악을 주로 들었어요. 정말 베토벤의 곡들은 대단해요. 차이콥스키의 곡들을 들으면 힘이 나요. 김수영 시인도 좋아했어요. 수필 「현기증」에서 크리스마스날 함께 들은 이야기를 썼잖아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나 <겨울 여행> 등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줘요. 정말 고운 곡이에요. 김 시인이 돌아가신 뒤 생활에 바쁘다 보니 음악을 못 들었어요.
맹문재 : 다음으로 읽어볼 작품이 「말복」이에요. 마포구 구수동 집 풍경이 들어오네요.
김현경 : 네. 우리집 풍경이에요. 이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어요. 적당한 생활에 평화롭고 안정되었어요. 300마리 정도 닭을 키우니 계란을 판 수입도 좋았고, 김 시인의 번역료도 들어왔어요.
맹문재 : 이 작품에는 “달팽이는 닭이 먹고/구더기 바람에 우는 소리”라거나 “강아지풀 사이에 가지는 익고/인가 사이에서 기적처럼 자라나는 무성한 버드나무”, “버드나무 발아래의 나팔꽃” 등이 나오는데, 구수동 집의 상황인지요?
김현경 :. 그럼요. 닭이 달팽이를 먹었어요. 사금파리도 먹고, 구더기도 먹었어요. 계사에 던져놓은 생선 대가리에 구더기가 생기었어요. 우리집과 아래 캐비닛 공장 사이에 내가 포플러를 심었는데 잘 자랐어요. 작품에서 말하는 “버드나무”는 그 포플러에요. 나중에 그늘이 져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나팔꽃도 있었어요. 연분홍색 꽃이 정말 이쁘지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오므라졌어요. 강아지풀도 무성했고, 가지도 많이 열었어요. 고즈넉한 구수동 집 풍경이에요. 점심시간이 지나 저녁 되기 전의 농촌 풍경은 아침에 분주한 것과 다르게 참으로 평온했어요.
맹문재 : 이 작품에는 “나는 졌노라”, “자연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 “영원한 한숨”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무슨 의미일까요?
김현경 : 자연을 어떻게 이길 수 있나요? 자연은 여행을 하지 않지요. 자연은 엄정한 것이에요. 따라서 우리는 자연에 굴복할 수밖에 없지요. 말복 같은 절기도 외경스럽지요. 절대 자연을 이겨낼 수 없어요. 김 시인은 그 자연을 보면서 겸손을 배운 것이에요.
맹문재 : 닭을 300마리 정도 키울 때 수입이 좋고 생활하는 데도 여유로웠다면 양계 수를 더 늘리지 않은 것이 좋았겠는데요.
김현경 : 그렇지 않아요. 300마리를 키우는 일이 벅찼어요. 만용이가 있었지만, 방사해서 키우다 보니 닭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배터리식으로 만든 것이에요. 모이 주는 일도, 물 주는 일도, 닭똥 치우는 일도 쉬웠어요. 손실도 적었고, 양계장이 깨끗했어요.
맹문재 : 다음으로 읽어볼 작품이 「사치」에요. 이 작품에는 “새로 파논 우물전에서 도배를 하고 난 귀얄을 씻고 간 두붓집 아가씨”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언젠가 말씀해주신 동네의 두붓집 딸을 가리키는 것인지요?
김현경 : 네. 그렇지요. 내가 겨울에 돼지를 길러 그 집에 가서 비지를 얻어왔어요. 물통에 담아서 지고 왔지요. 어떤 때는 두부 찌꺼기가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려 그 집 안방에 들어가 기다리기도 했어요. 그 집의 딸이 나를 좋아해 우리집에 놀러 오기도 했어요. 어느 날 김 시인이 창동의 시댁에 간 사이 그 집 딸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고 도배를 했어요. 모란꽃이 그려져 있는 도배지였는데, 천장하고 벽하고 똑같은 것으로 했어요. ‘귀얄’은 풀을 칠할 때 쓰는 솔이지요.
맹문재 : 이 작품은 “오늘 밤에는 아내를 껴안아도 좋으리”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부부 사랑을 그린 것으로 보이네요.
김현경 : 우리는 부부 금실이 참 좋았어요. 김 시인이 한창 좋을 나이였잖아요. 김 시인이 보신탕도 즐겨 먹었어요. 나를 많이 사랑했어요.
맹문재 : 김수영 시인은 “자연이 하라는 대로 나는 할 뿐이다/그리고 자연이 느끼라는 대로 느끼고/나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노래했듯이 부부 사랑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그런데 「밤」에서는 “부정한 마음아”라고 했듯이 다소 윤리적으로 인식하고 있네요. 그렇지만 사랑을 포기하지는 않네요.
김현경 : 그렇지요. “사랑이여/무된 밤에는 무된 사람을 축복하자”라고 노래하고 있지요.
맹문재 : ‘무되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행동을 분별없이 마주하는 경향이 있다’라는 의미네요. 이 의미를 적용해보면 이 작품에서도 김수영 시인의 열정적인 사랑을 볼 수 있네요. 다음으로 읽어볼 작품이 「말― K․M에게」이에요. 이 작품에서 ‘K․M’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김현경 : 누구인지 모르겠네요. 알았던 것 같기도 한데.
맹문재 : 작품의 내용을 보면 화자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 찾아갔는데, “당신은 집에 없고 당신의 아우만이 나와서 당신이 없다고” 해 그냥 돌아오고 말아요. 화자가 당신에게 찾아간 것은 “현실을 직시하기 위하여서”였는데, 화자는 “총에 맞는 새” 같고, “전재(戰災)를 입”었고, “설움”이 있는 존재예요. 그러므로 말하지 못하고 되돌아온 화자는 자신을 미워하고 있어요. 이와 같은 면을 보면 화자는 한국전쟁과 관련해서 상처를 안고 있다고 보여요. 김수영 시인의 상황으로 읽히는데요.
김현경 : 김 시인을 반공 쪽으로 이용하려는 문인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의용군 갔다가 온 이야기를 쓰라고 하거나 포로수용소 얘기를 쓰라고 은근히 강요했어요. 김 시인은 그런 부류의 문인들과 잡지를 싫어했어요. 그래서 그런 잡지에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어요. 한 평론가 비슷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도 김 시인에게 눈치를 주었어요. 그는 완전 반공주의자였어요. 김 시인이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주사를 부린 날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걸려들었기 때문이에요. 그 화풀이를 나한테 한 것이지요. 김 시인은 반공도 아니고 친공도 아닌데, 우익들이 자꾸 반공 쪽으로 만들려고 덮어씌운 것이에요.
맹문재 : 말씀을 듣고 보니 그 상황이 참으로 심각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분단국가의 비극이지요. 다음으로 읽어볼 작품이 「동맥(冬麥)」이에요. 이 작품은 1959년 2월호 『사상계』에 발표했네요. 작품에서 김수영 시인은 “내 몸은 아파서/태양에 비틀거린다”라고 했는데, 왜 그랬을까요?
김현경 : 김 시인이 시달림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반공주의자가 되어 시를 쓰고 강연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싫어 회피했어요. 김 시인에게는 그 일이 항상 고민이었어요. 그 상황을 해명하고 설명해야 하니 기분도 상했지요. 그래서 「김일성 만세」 같은 작품도 쓴 것이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김 시인은 몸이 좋지 않았어요. 기관지가 나빴고, 위가 안 좋았고, 결핵성 치질도 앓고 있었어요. 그래서 항상 약을 먹었어요.
맹문재 : 이 작품에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믿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김수영 시인은 어떤 근거로 이와 같은 자신감을 내보였을까요?
김현경 : 김 시인이 생각하는 정의나 진실, 또는 그와 같은 생활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시 창작에서도 그랬어요. 김 시인의 작품은 남의 언어를 빌려 쓴 것이 없어요. 자신의 작품을 복제해서 쓰지도 않았어요. 언제나 진실한 창작을 했어요. 그래서 시 한 편을 쓰고 나서 산고를 겪었다고 말한 것이에요. 인류를 위해 시를 쓴다고 했어요.
맹문재 : 이 작품의 제목인 동맥, 즉 겨울 보리는 마포구 구수동에 있는 풍경으로 보이는데요?
김현경 : 구수동 밭들에 겨울 보리가 심어져 있었어요. 겨울에는 보리를 밟아줘야 해요. 나중에는 밭 주인들이 보리는 안 심고 결명자차를 많이 심었어요. 결명자차 꽃이 아주 예뻤어요.
맹문재 : 여러 가지 귀한 말씀 감사해요. 다음에는 「자장가」를 읽어볼게요.
■ 김현경
1927년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나 경성여자보통학교(현 덕수초등학교)와 진명여고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수학했다. 김수영 시인과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다. 에세이집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우리는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공저) 『먼 곳에서부터』(공저)가 있다.
■ 맹문재
대담집으로 『행복한 시인 읽기』 『순명의 시인들』, 시론 및 비평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 『지식인 시의 대상애』 『시학의 변주』 『만인보의 시학』 『여성시의 대문자』 『여성성의 시론』 『시와 정치』가 있다.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