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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말씀의 능력
✛ 시119편 103-105절 ✛
.⦿주님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도 단지요? 내 입에는 꿀보다 더 답니다. ⦿주님의 법도로 내가 슬기로워지니, 거짓된 길은 어떤 길이든지 미워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코미디 같은 성경말씀대로 살아보기
미국 남성 패션 잡지<에스콰이어> 편집자인 제이콥스가 쓴 <성경대로 살아본 1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이콥스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1년 동안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한번 실천하면서 살아보기로 결심을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글자 그대로 똑같이 실천에 옮겨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사실 웃기는 코미디 같습니다. 더구나 신앙인도 아닌 그가-무늬만 종교인행세를 하면서-그것도 오늘 기독교인들이 전혀 그렇게 살 엄두를 못내는 성경 말씀대로 1년을 한번 살아보겠다는 계획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가 뭐라 하든지 자신의 생각대로 성경으로 1년을 살아보기 위하여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준비를 위해서 그가 해야 할 가장 우선 과제는 성경읽기였습니다. 이왕 마음먹고 시작한 시도인데-그는 제대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비록 신앙은 없었으나 그걸 통해 위대한 것, 영원한 것을 발견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서로 다른 16권의 영어 성경을 구입해서 한 달 동안 하루 5시간씩 집중적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앞으로 실천해야 할 계율, 지침, 조언, 금언 들을 일일이 찾아서 컴퓨터에 입력했습니다. 이렇게 정리한 실천 목록은 700개가 넘었습니다.
나름대로 치밀한 준비를 마친 다음에 그는 마치 아브라함시대의 목자들처럼 수염을 길게 기르고, 목자들의 복장을 하고, 샌들을 신고,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손에는 양 한 마리를 이끌고 뉴욕의 맨해튼 일대를 순례길을 떠나는 자신을 상상합니다. 이렇게 준비를 해나가던 어느 날-자신이 생각해서 이쯤이면 완벽하게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을 내립니다. 그래서 제이콥스는 순례길을 떠나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려다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재료를 섞어 짠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레19:19b.]는 구절을 생각해 냅니다. 이 말씀을 지키려면 폴리에스테르와 면 혼방 티셔츠부터 벗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단 시작하려던 순례를 멈추고 섬유 감별사를 불러서 자기 옷가지들을 샅샅이 조사하게 했습니다. 감별사는 제이콥스가 봉급의 3분의 1이나 들여서 산 비싼 단벌 양복의 여기저기를 포크 비슷한 도구로 마구 쑤셔대더니-목깃 안쪽에 댄 흰 천을 의심합니다. 혼방인지 아닌지 조사하려면 그걸 연구소에 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직 순례가 시작도 되기 전에 난관을 만나게 됩니다.
❙좌충우돌 1년-긍정적인 변화
이렇게 성경대로 살아보려고 한 제이콥스에게는 여러 성경 구절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의 아내 줄리가 생리를 시작하자 그는 고민에 빠집니다. 생리를 하는 일주일간은 부정하다는 레위기의 성경말씀대로-아내와 스킨십은 커녕 가까이해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생리를 하는 동안에 제이콥스는 줄리가 한번 앉았던 의자에는 절대 앉지 않았고, 집 열쇠를 건넬 때도 30센티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그녀의 손 위에 떨어뜨렸습니다. 아내는 마치 한센병(문둥병) 환자가 된 듯한 불쾌감에 휘감겼습니다.
자녀 교육도 꼬였습니다. 구약성경 잠언서에 [(13:24)매를 아끼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또 [23:13-14아이 꾸짖는 것을 삼가지 말아라. 매질을 한다고 하여서 죽지는 않는다. 그에게 매질을 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목숨을 스올에서 구하는 일이다.]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녀를 두들겨 패서라도 똑바로 키우라는 얘기가 여러 군데에서 튀어나왔습니다. 한 번도 아이를 체벌한 적이 없었는데, 성경 구절 앞에서 지금까지의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주체하기 힘든 감정이 몰려왔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고심에 고민을 거듭한 제이콥스는 결국 스티로폼으로 된 장난감 방망이를 삽니다. 그래서 아이의 장난이 극에 달하자 방망이로 아이의 엉덩이를 때렸습니다. 근데 아이가 동요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신이 나서 장난감 방망이로 아빠의 엉덩이를 마구 때리면서 웃어 젖혔습니다. 결국 체벌 시도는 장난으로 끝났습니다.
성경의 역사가 길다 보니 그 내용에는 별의별 희귀한 얘기가 다 나옵니다. 그걸 글자 그대로 지키면서 살려니까 온갖 해괴망측한 체험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제이콥스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십일조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남편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했더니 아내도 수입의 10%나 기부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습니다. 둘은 꼼수를 생각해 냅니다. 수입의 십일조가 아닌 자신의 수입 중에서 일부만 십일조를 내자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이건 성경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고 양심에 찔립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말씀의 능력
이렇게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좌충우돌로 성경말씀대로 살아보기 1년을 마칩니다. 그 체험으로 책을 냅니다. 제이콥스는 그 책에서-성경말씀대로 살아본 그 자신의 1년이 기이한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신앙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 1년 동안 제이콥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일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감사'였습니다. 전에는 특별히 감사할 일에만 감사했는데, 지금은 모든 일상에 감사한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평화와 나눔과 감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이콥스는 세상의 모든 소소한 기쁨, 모든 음식, 눈떠 있는 모든 시간, 물을 마시는 모든 시간,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그 기적과도 같은 사실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개인주의로 찌들었던 자신의 삶이 공동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전혀 신앙과 관계없이 제이콥스는 성경대로 살아 본 삶의 긍정적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단순히 책이 아닙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랍고 강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영적인 변화로부터 일상적인 삶의 변화로-우리 삶을 이끄는 거룩한 능력(힘)이 성경말씀 가운데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우들에게 거의 강요하다시피 말씀읽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을 읽는 개인에게 미치는 아름다운 능력이 있습니다. ➀삶의 정리정돈하게 해주고 ➁눈을 열어 긍정적인 세계관을 갖게 하고 ➂축복의 삶을 알게 합니다. 이 3가지가 말씀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성경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다 동일한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거룩한 말씀읽기가 사람마다 영향력이 나타나는 방법이나 시기가 다 다릅니다. 또 이 세 가지 능력은 언제나 정해진 순서대로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성경을 생명의 말씀으로 읽는 사람들이면 누구든지 그의 삶에는 반드시 3가지 변화가 온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 가지를 꿰뚫는 핵심은 거룩한 성령의 인도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걸음을 바르게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말씀을 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풍파 많고 험한 세상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참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 말씀을 들어야하고-진정으로 영의 귀를 열고 말씀을 듣는 사람마다 그 삶은 아름다워집니다. 이것이 생명의 말씀인 성경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구체적으로 이렇게 기록합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양날 칼보다도 날카로워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향을 가려냅니다.] 히브리서의 이 말씀은 말씀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하고 힘이 있는 지를 말해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편기자는 히브리서 기자와는 다르지만, 성경의 말씀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주님의 법도로 내가 슬기로워지니, 거짓된 길은 어떤 길이든지 미워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시편의 기자는 우리의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인도하시는 말씀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경험한 말씀을 요한복음서에서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 영광은 아버지께서 주신 독생자의 영광이며, 그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고 증언했습니다.
❙우리 축복이자 생명인 말씀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신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을 읽는다는 것은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겁니다. 이 땅에 오신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울은 [고후13:3)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대하실 때에 약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러분 가운데서 능력을 떨치십니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개인적인 간증입니다만-저 역시도 말씀을 읽는 가운데 말씀의 능력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어떤 꿈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웠던-피폐하고 황량한 삶을 살아가던 청년시절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말씀을 읽던 그 청년이었던 제게 희망과 꿈을 지어주셨습니다. 오늘 제가 살아가는 삶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말씀의 능력이었습니다. 주님은 말씀 안에서 축복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이라는 물 위에 떠다니는 배와 같습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배도 물이 없으면 배가 항해를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말씀의 은혜에 젖는 묵상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서에 여러번씩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마19:30) 하셨습니다. 오래 교회를 다닌 사람보다는 오늘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사람을 들어 쓰시고-이 사람들의 삶에 말씀의 은혜와 축복을 지어가십니다. 말씀은 우리 삶을 아름답게 가다듬어 주십니다. 그 까닭은 주님의 말씀이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 되어 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우리 교우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주시는-내 은혜의 이야기요 내 축복의 이야기이며 내 생명과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7년 동안 담임목사는 우리 교우들에게 말씀읽기를 아주 많이 강조해왔습니다. 교우들이 속회를 통해서 함께 말씀을 읽는 목회를 해왔습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담임목사가 말씀읽기를 강조하고-속회를 말씀읽기를 중심으로 담임목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서 우리 빈들공동체에서 말씀읽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읽기가 중요한 것은 성경말씀이 우리 빈들공동체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빈들공동체는 말씀공동체입니다. 담임목사는 교우들의 말씀읽기와 한 호흡으로 목회를 합니다. 제가 목회적으로 생기를 얻을 때는 여러분들이 말씀읽기가 잘 될 때입니다. 담임목사가 목회적으로 우울하고 낙심이 될 때는 우리 교우들이 말씀읽기가 제대로 안될 때입니다.
목사가 된 이는 누구든지 축복하는 권한을 특별하게 위임받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목사안수를 받았을 때-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목사 된 제게 여러분을 축복할 수 있는 축복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제가 여러분을 축복해도-여러분들에게 거룩한 말씀의 감격과 말씀의 섭리를 사모하는 은혜가 없으면 제가 드리는 축복의 기도는 허공을 치다 그냥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축복을 여러분들에게 이어주는 통로입니다. 물탱크에 받아 둔 물이 호수를 통하여 아무리 콸콸 쏟아져도 그릇 없이 빈손으로 온 사람은 물을 받아갈 수가 없습니다. 거룩한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을 가득 받을 수 있도록 우리 삶이 말씀으로 그릇을 준비하시는 한해가 되고-말씀을 읽으면서 그 그릇에 주님 주시는 축복을 가득 채우는 한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기자는 고백이-[⦿주님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도 단지요? 내 입에는 꿀보다 더 답니다.]는 고백이 우리 교우들 모두가 한 입술로 고백하는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나 자신의 영적인 부흥이 없이는 내 삶의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교회를 섬길 수도 없습니다. 직분이 교회를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없는 직분은 부담입니다. 직분이 일꾼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은혜가 일꾼으로 서게 해줍니다. 내 안의 은혜가 교회를 섬기는 열망을 지어주기 때문입니다. 이웃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존재가 그리고 내 삶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넘치는 축복이 없을 때-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야 할 내 축복의 그릇이 비어 있으면-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은 하찮고 형편없는 싸구려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도도 그렇습니다. 내 안에 넘치는 은혜가 고갈되면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선교와 전도가 부담이 됩니다.
❙거룩한 말씀이 우리 지어가시기를
문제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삶은 언제나 늘 문제와 직면하게 됩니다. 날마다 대면하는 크고 작은 문제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가는 사람은 말씀도 놓치게 되고 문제의 답도 놓치게 됩니다. 결국 문제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문제의 사람으로 여전히 문제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에 직면하나 그 문제를 무시하고 말씀에 깊이 묵상하는 사람은 말씀의 능력으로 문제를 이기고 물리치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의 기자는 [(119:92-3)⦿주님의 법을 내 기쁨으로 삼지 아니하였더라면, 나는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법도로 나를 살려 주셨으니, 나는 영원토록 그 법도를 잊지 않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오늘 내 고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은 말씀을 읽는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의 능력입니다. 거룩한 생명의 말씀은 나를 변화시켜 문제를 이기고 극복하게 해주십니다. 말씀이 우리를 능력의 사람으로 나를 지어가십니다. 말씀은 나를 위한 은총이요 내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빈들공동체 카페에서-최근 거룩한 말씀읽기와 관련해서 의미 있는 글하나를 읽습니다. 아마 다 읽으셨을 줄 믿습니다. 인터넷이 서툴러 못 읽으신 분들을 위해서 그 글의 내용을 본인의 육성으로 들어봅니다.
<전략>어젯밤에는 권집사와 장모님 몸이 불편하시어 건양대학교 병원에서 약을 타서 공주에 다녀왔다. 가는 길에 권집사 왈 장인어른께 전화하였다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사위도 바쁘고 자기도 바쁜데 일을 왜 이리 번거롭게 하냐. 미리미리 전화하여 병원을 가든지 약을 지어 택배로 보낼 수 있도록 하든지 해야지 밤에 이렇게 공주까지 가야하냐" 라고 하면서 핀잔을 주었다고 하길래 "장인어른이 내년에 팔순이신데 아직까지 이정도 건강유지하고 살아계셔 이 밤에 공주를 갔다 오게 하심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하고 밤길을 달려 산골짜기 처가로 갔습니다.
장모님이 무언가를 가지고 가라 하셨는데. 권집사는 잘 먹지도 않는데-하면서 가지고 가지 않았으면 하였다. 부모님이 무엇인가를 줄때에는 무조건 "예"하고 받아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정작 필요 없는 물건이라도-올 때에는 깜빡 있고 가져오지 못하였지만-부모는 자식에게 무엇이든[푸성귀 하나라도] 주고 싶어 하고 주려고 한다. 그런데 자식들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여 필요 없는 것 같은데. 먹지도 않는데-하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하나님 아버지도 그런 마음이 아니실까? 축복을 주려하고 은총을 베푸려 하는데-정작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그 축복을 거추장스러워하고 별거 아닌 양 하면서 배척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고난도 축복이며 감사하여야 한다"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누구의 목소리인줄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글에는 그의 삶과 생각과 마음이 녹아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참 따뜻하게 읽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입니다. 이 글에서 저는 올해 빈들의 권사가 된 원용호권사의 의미 있는 변화를 봅니다. 원 권사는 자아가 강하고 신앙적으로는 가슴보다는 머리가 더 발달되어 있습니다. 성품이 곧아서 자신이 이해가 안 되면 받아들이는 것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속은 기름지나 겉은 호두처럼 딱딱해서 쉽게 변화되기 어려운 성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만큼은 어디에도 그런 예전의 원권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물론 아직은 그 변화의 완성도가 숙성해있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저는 권사님의 이 변화가 놀랍고 감사합니다. 그의 다른 글에서도 거룩한 말씀읽기에 대한 변화된 모습을 봅니다.
올 한 해 동안 복된 삶을 위하여-[⦿주님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도 단지요? 내 입에는 꿀보다 더 답니다.]는 본문의 고백처럼 말씀의 맛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시편기자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고백이 가능하도록 성령께서 거룩한 말씀을 읽는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장난삼아-말씀을 읽고 말씀을 코메디처럼 실천했던 비(非)신앙인 제이콥스도 말씀으로 그의 인생관이 새롭고 긍정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정말 한번 말씀을 읽고 거룩한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 자신이 변화되는 체험으로 한 해를 살아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담임목사로서 정말 안타까운 건-말씀을 읽으면서 감격 없이 은혜 없이 억지로 말씀을 읽는 교우들을 지켜보는 겁니다. 주의 말씀의 맛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라도 말씀을 읽다보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말씀의 은혜와 능력을 지어주시고-말씀의 맛을 깨닫고 알 수 있게 해주십니다. 올 한 해 동안 거룩한 말씀의 능력으로-우리 삶을 정리정돈해주시고, 거룩한 말씀의 능력으로-하나님이 아름답게 지으신 세상을 제대로 꿰 뚫어보는 긍정적인 세계관을 지어주시고, 거룩한 말씀의 능력으로-우리 살아가는 날이 늘 <발의 등불처럼 길의 빛처럼> 축복으로 인도되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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