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기독교 전파 이전에 로마를 기준으로 가정하면...
답이야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죠..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로마인 이야기 때문에 너무 미화된 경향이 많이 보입니다.
굳이 로마가 노예들에게 관대했다는 증거는 별로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나 로마나 노예를 다루는 개념 자체는 별로 틀리지 않았고 이건 지중해 세계 모두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이었죠.. 단지 그리스와 달랐던 것은 그리스 애들이 외부에서 주기적으로 노예 사냥질을 했던 것과는 달리 로마는 대규모 전쟁을 통해서 도시 전체 혹은 지역 전체의 주민을 모조리 노예로 만드는 노예의 조달 방식이었고, 이것이 노예를 다루는 방식에서 독특한 차이를 낳게 됩니다.
일단 로마 자체가 노예 노동력을 유지되는 시스템으로 변화하는데 잦은 노예의 반란이나 반항에 직면하여 이들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논의는 로마사회 내부에서도 꽤 많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대개는 주인의 각 개인의 판단에 맏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배계급이 피지비계급에 대한 전통적인 통제수단인 교육의 제한, 매우 극단적으로 제한된 출세의 기회, 잔인한 형벌, 복종의 댓가 등으로 통제하고 있었고, 당시 기준으로도 노예의 삶은 좋다고 말할 수 없었고 최소한의 자유로운 시민으로 남는게 좀 부잣집에서 노예로 지내는 것보다 훨씬 행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민의 경우 최소한 법의 보호는 받거든요.. 아무리 로마 귀족이라고 해도 길가는 시민을 처죽이는 건 정치적 스캔들이지만 집안에서 노예를 고문해 죽이는 것은 그냥 "점잖지 못한 행동"으로 구분됩니다. 대상이 된다고 했을 때 어느 쪽이 나은지는 뻔할 뻔자지요..
게다가 노예들에 대한 성적인 착취 문제는 다들 생각하는 대로입니다. 단지 전체적으로 여자 노예보단 남자 노예가 훨씬 많았다고 하더군요.. 충성스러운 노예에게 아내를 주는 것은 대표적인 노예들에 대한 포상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경우 시집가는 여자 노예의 생각 따위는 절대 중요한 것이아니죠.. Rome에서 풀로가 보라누스 집의 노예와 성관계를 요구하는데 노예는 거부하지 못하고 사실혼 관계의 남자 노예는 그냥 처다만 보고 있죠.. 당시 노예들의 삶은 이랬습니다. 이런데 노예들과 주인들이 그리스 보다 훨씬 가깝다 식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죠.. 그리스도 별로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요..
노예들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은 주인의 변덕이나 다른 상황으로 인하여 전혀 예측하지 못한 불행이나 삶의 변화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개 이것은 강력한 통제수단이 되었죠.. 특히 여자노예의 경우 부유한 가정집(일반 보통 집안에서 여자 노예를 둘 정도로 여자 노예는 꽤 가치가 높은 상품이었던 것 같습니다.)에서 팔리게 되어서 매춘(...)업소로 넘어가는 것은 정말 최악의 인생 변화라고 할 수 있죠.. 대개의 경우 많은 여자 노예들이 이런 운명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매춘을 목적으로 여자 노예를 사들이는 경우도 굉장히 많았다고 하더군요..-_-;;
게다가 사실상 고문과 같은 가혹행위들은 법적으로 인정되는 부분이라 주인의 이러한 잔인한 변덕에 노예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거세는 명백히 로마 법으로 금지된 사항인데도 불구하고 사실상 사문화 된 거나 다름이 없었다고 하죠.. 주인이 화를 내서 노예를 죽여버리는 경우도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돈을 모아서 스스로의 몸 값을 사들이거나 죽기전에 주인이 좋은 일 한다고 해방시켜준 해방노예 이야기가 시오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데 이런 해방노예도 궁극적으로는 원 주인에게 예속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즉 해방시켜준 주인은 해방노예의 아버지였다는 것이고 가부장적 사회인 로마안에서 아버지는 자식의 목숨도 거둘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의 행사자라는 것이죠.. 당연하지만 이런 해방노예들이 주인을 이어 당주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해방노예가 전체 노예의 비중에서 얼마나 차지하는냐인데..
거의 없었습니다. -_-;;
사실 광산, 농장, 목장 노동 노예의 경우 스스로 자기 벌이를 해봐야 뻔한 거고.. 가정 노예들도 따로 월급을 주지는 않거든요.. 대체적으로 그들이 주인 몰래 돈을 모으던가, 혹은 주인을 대신하여 장사나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나 가능합니다. 아니면 주인의 재산을 빼돌리는 불법적인 행동을 통해서나 가능했지요.. 한 마디로 해방노예는 삼성의 이병선 회장 같은 사람들이었던 셈입니다. 그 정도 능력이 없으면 스스로 노예가 자기 몸값을 낸 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전쟁 포로의 경우는 더 심해서 대체로 이런 부류는 철저하게 통제되기 때문에 더덩욱 가능성이 없었죠..)
ps. 로마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애 낳고 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소위 수집업자들이 줏어 갔다고 하더군요.. 상당수의 노예들이 이런 버려졌다가 업자들이 줏어서 노예로 팔아치운 케이스라고 합니다.
첫댓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정말 터무니 없더군요. 로마를 무슨
초특급 유토피아로 묘사한 -_- 그냥 말그대로 "이야기"수준
저도 이 카페에 들어와서 뎃글 눈팅하며 공부하기 전까지는 로마가 고대의 유토피아인 줄 알았습니다. 쩝.
당시 노예들의 실정이 참으로 비참했군요. 근데 왜 일부 노예들이 주인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려했을까요?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오더라구요. 또 안토니우스가 노예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는데, 노예가 차마 그렇게 못하고 스스로 자결도 했는데요. 혹시 이것도 모두 나나미의 창작일까요? 거참 갈수록 로마인 이야기에 신뢰도가 떨어지네요...
같이 살으면 미운정 고운정 다 들어서 그렇게 되겠죠. 로마인 이야기에 나온 바로는 로마 정치계의 불안정성 때문에 똘똘한 노예 몇명을 귀족아이 한명에 붙여서 서로 불알친구를 만들어 버린다고 들었습니다. 자유민 사이의 우정이나 충성심은 서로의 이익때문에 쉽게 깨지는 반면, 어디 다른 기댈곳도 없고 어릴적부터 불알친구였던 노예의 충성심은 거의 의심할바가 없었을 겁니다. 로마 정치계같은 살벌한 곳에서 자기목숨도 맏길수 있는 수족을 가진다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이었을테고요.
듣고 보니 그럴수도 있겠네요...
가장 큰 동기는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지 않다는 것일 겁니다. 거의 모든 노예들이 가장 두려워 한 사태가 다시 팔리는 것이었거든요.. 이건 주인이 죽는 거 다음으로 최악이죠..(종종 주인이 죽으면 그 집안 노예들 다 죽여버리곤 했습니다. -_-;;)
뭐 주인이 잘해주는 경우 자유민 못지 않게 누리고 사는 노예도 있었겠습니다만(로마 최고 권력자의 측근노예라면 들어오는 것도 적지 않았겠죠.) 안토니우스 자체가 정치적 판단력이 떨어져서 그렇지 개인적으로는 꽤나 매력적인 인물이었다는 것도 한 몫 한 듯 싶습니다. 정말 최후의 최후까지도 안토니우스에게 충성하는 로마병사들이 많았거든요..
서양인들의 우월의식을 대표하는 '오리엔탈리즘'도 완전 창작이나 다름없군요. 게다가 이슬람군이 한 손엔 칼, 또 한 손엔 코란이라는 말도 완전 사기수준... 요즘 토탈워에서 제일 많이 깨달은건 이슬람교도가 기독교도보다 훨씬 신사적이고 온정적이었다는 것...!!
임용관/ 뭐 로마는 그 대부분의 생존기간동안 기독교 사회가 아니었으니 이슬람과 비교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만은... 전근대 사회라면 동서양 가리지 않고 비참했을 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원수정 초기 시절에 '주인이 노예한테 죽임을 당하면 그 집안에 사는 노예들은 죄다 사형임. 해방노예도 해당됨' 이런식의 법이 공표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뭐 이것만 봐도 답이 나오죠. 사실 기독교 이전의 로마사회는 현대의 시각으로 봤을때 정말 도덕성이 결여되었던 사회였던것 같습니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는 물론 노노라고 하겠죠..). 뭐 기독교 이후에도 입으로만 도덕 도덕 외치고 하는짓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것 같지만..
우리 조선시대의 노비들도 참으로 비참했죠. 주인의 불법을 고발할 수 없다는 관례 때문에 사람까지 죽이라는 명령을 수행했다는...
근데 사극에서는 서로 반말까고 사이좋은 친구사이로 둔갑... ㅋ
사실 4세기인가 5세기 정도 이탈리아로 들어온 랑고바르드의 부족법에는 도망노예를 숨겨주는 행위를 엄벌에 처한다는 왕의 칙령이 여러번 반복된 사례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도입되면서 평등의식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겠죠.. 뭐 그래봐야 전 유럽이 다 여전히 노예질이었습니다만;;;
원론적으로 고대 사회는 귀족사회이며 로마도 사실은 다르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귀족 사회란게 다 저 모양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단지 그들의 공화제나 그들의 제정은 신분의 이동이 다른 체제들에 비해선 역동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는 거겠죠..
조선 노비들은 생존권에 재산권까지 보장되었지 말입니다.
어느날 매맞은 노비가 밤에 아내와 밤일하다 죽으니까(...) 조정에서 '그날 주인이 매를 너무 많이 처서 죽은 거 아냐? 주인 조사좀 해봐. 노비라 해도 사람인데 생명 존중해야지' 하는 케이스도 있었고.
노비, 라는 것 자체가 꽤나 다양해서 기준이 애매하지 말입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 주인하고 노비가 말싸움하다 화난 주인이 지팡이 던져서 그게 잘못 맞아 노비가 죽었습니다 이에 두려워한 주인이 주위 사람들과 입을 맞추었는데 국가에서 검시관을 보내서 무려 2검이나 조사한 끝에 주인이 노비 살해한 것이 밝혀져 처벌 받았습니다 ㅡ.ㅡ;;;;
또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이 이런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이제 늙어서 더이상 부려먹을 수 없을 때, 자유를 준다고 하죠. 해방되는 순간 내가 널 먹여살릴 필요가 없다라는 거죠. 밥값안들어가서 좋다.. 이겁니다.
그거참 비겁한 행동이네요... 인간은 참 잔인해요...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어찌되었건 자기 밥벌이는 해야 겠지만 해방노예의 경우 자기 피보호자(클리엔테스였던가..-_-;;)가 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도움은 주어야 했습니다. 노예도 물론 노예가 아니다 뿐이지 해방시켜준 주인에게 계속 충성을 해야 했지요 그렇지 않을 경우 배은망덕한 새퀴로 찍히고 사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대신 많은 사람들이 노예는 자립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격언이었죠.. "노예는 해방시켜줘도 비참할 것이며 결국 스스로를 다시 팔 것이다." 그래서 노예 본인을 위해서 대우는 좋게 해줄지언정 해방은 안시켜주는 사람도 꽤 많았다고 하더군요..
그건 그러죠. 공화정 말기라면 그라쿠스 형제 아버지가 통과시킨 법에 의해서 해방노예 본인이나 후손이 시민권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지죠. 시민권을 얻는 순간 클리엔테스 변신. 유권자로 변신이죠. 하지만 제가 말씀 드린 예는 병든 노예나 다친 노예를 저런식으로 보내버린다는 거죠.
말씀하신대로 병들거나 늙은 노예는 그냥 죽이면 됩니다. ㅡㅡ; 굳이 자유를 줄 필요조차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늙기전에 대부분의 노예는 이런 저런 이유로 죽게되죠..말씀드린 대로 해방시키면 보호의 의무가 관습적으로 붙어서 돌봐줘야 합니다. 오히려 손해지요..
'진정한 로마인' 대카토가 그 분야(?)의 전설입죠 (과히 조지 소로스급ㅋㅋ)
일단 누군가의 변덕으로 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부터 노예제도-인신을 물건처럼 소유하는 형태의-는 옹호의 여지가 없습니다. 나나미 여사 로마뽕이 터무니 없는거죠-_-;;;;;
일본할매책에서 그 부분을 감명깊게 읽었는데 배신감이 드네...사실 관계를 공부 안해도 이 글이 더 사실에 가까울거라는 느낌이 팍팍오네.왜냐면 할매가 묘사한건 거의 가족관계처럼 따스하거던...내가 로마시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인간의 본성은 시공을 초월해서 비슷한데 주인과 노예관계가 그렇게 따스할리가 있나ㅋㅋㅋ
근데 그 할매가 하두 번지르하게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잘해서...그건 그렇고 지금 살기 힘드네 뭐네해도 역시 지금이 제일 좋은 시기고 앞으로는 더 좋아질거임!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았던 노예는 어느 시대나 존재했겠죠.. 그런데 그것이 일반적인 경우는 당연히 아니죠;
낮에 죽어라 경작 → Ang ? → 낮에 죽어라 경작 → Ang ? 엔들리스 슬레이브 ..
당시 한나라는 제민지배체제였죠. bc 1세기 기준이면 한나라에서 사는게 더 좋을듯 합니다 ㅡ,.ㅡ;
사생활의 역사를 읽어보니 확실히 로마인이야기는 심하게 미화된 면이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