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누 리브스(Keanu Charles Reeves)는 1964년 9월 2일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태어났다. 지질학자인 그의 아버지 새뮤얼 노울린 리브스는 하와이언과 중국인의 혼혈이었고, 그의 어머니 패트리시아는 영국인이었으니, 과연 그의 정확한 국적을 말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것 같다. 그의 이름 키아누(Keanu : Key-ah-nu)는 하와이 원주민의 말로 '산 위에 부는 시원한 미풍'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키아누 리브스가 태어난지 2년 후, 1966년에 그의 가족들은 호주에서 일년정도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그의 여동생 킴이 태어나지만 곧 그의 부모는 이혼하고, 아버지는 하와이로, 어머니는 두 아이와 함게 뉴욕으로 각각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이혼후 뉴욕에서 폴 애론이라는 브로드웨이/헐리우드 감독과 만나 결혼한다. 그들은 캐나다 토론토의 히피구역에서 살지만 일년 후에 이혼한다. 이 곳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캐나다 시민권을 얻게 되고, 아직도 이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폴 애론과의 이혼 후 그의 어머니는 두 명의 남자와 더 결혼을 했다. 그녀는 먼저 록 프로모터인 버트 밀러와 결혼을 하는데, 밀러와의 사이에서 1976년에 키아누 리브스의 배다른 동생 캐리나가 태어난다. 밀러와의 이혼 후 그의 어머니는 헤어 살롱을 경영하는 잭 본드라는 사람과 네번째 결혼을 하지만, 역시 이 사람과도 94년에 이혼한다. 지금 그의 어머니 패트리시아는 데이빗 보위와 돌리 파튼 등 유명한 가수들의 의상을 주로 다루는 의상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이렇게 화려한 결혼생활을 한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면서 키아누 리브스는 사랑하는 것들 두 가지를 끌어안고 산다. 아이스 하키(그는 이 일에 꽤나 열심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의 별명은 하키에서의 그의 포지션을 딴 "The Wall"이라고 한다.)와 연극이 그것이었다. 그의 학교생활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해서 고등학교를 네 군데나 옮겨 다니다가 결국 17살이 되던해에 학교를 중퇴하게 된다(그의 고등학교 시절 교사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학교에 별로 잘 적응하지 못했고, 숙제같은 것은 매번 잊고 등교해서 웃으면서 다시 집으로 가곤했던 그런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는 아이스 링크에서 스케이트 날 갈기, 파스타 만들기, 정원사 등의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연극배우가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결국 84년에 그는 토론토에서 상연된 <늑대소년 (Wolfboy)>이라는 연극으로 무대 데뷔를 하게 된다. 이 연극에서 동성연애자를 연기하면서 그는 토론토에서 나름대로 센세이션을 몰고 온다. 그리고 몇개의 캐나다 TV 드라마에도 출연해서, 그리 비중있지 않은 역들을 맡기도 한다.
그의 장편영화 데뷔는 <Flying(Dream to believe로도 알려져 있다)>(86)이라는 영화였다. 그 이후에 몇편의 TV영화에 출연하다가, 같은해 로브 로우가 주연을 한 <영블러드(Youngblood)> 로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에 처음 출연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그가 사랑하는 일 두가지, 즉 연기와 아이스 하키를 동시에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그의 양아버지 폴 아론이 알려준 주소와, 3천 달러, 낡은 볼보를 가지고 헐리우드로 향한다.
그의 첫 매니저는 '키아누'라는 그의 이름이 너무 이국적이라고 해서 예명을 "K. C. Reeves"로 지어줬지만, 이 예명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리고 이듬해 87년, 그는 데니스 호퍼 등의 배우가 출연한 범죄 드라마 <River's Edge>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며 헐리우드 제작자들의 시선을 끌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 출연한 몇편의 영화에서 그는 '비뚤어진 십대 소년'역을 계속해서 연기하게 됐다. 그런 그의 역할중 가장 인상깊었던 연기는 <엑설런트 어드벤쳐(Bill & Ted's Excellent Adventure)>(89)에서의 '테드'역 이었다. 그리고 91년 '여걸' 캐드린 비글로우 감독의 <폭풍 속으로(Point Break)>에서 패트릭 스웨이즈의 상대역으로,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에서 그의 가장 친했던 친구 리버 피닉스의 동성애 연인 역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92년 위노나 라이더와 게리 올드만이 주연하고 프랜시스 코폴라가 연출한 <드라큘라(Bram Stoker's Dracula)>에, 93년에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범작' <리틀 부다 (Little Buddha)>에서 싯타르타역으로 출연, 그리고 '헐리우드의 세익스피어'라고 불리우는 케네스 브레너 감독의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등 '작가'로서 인정받고 있는 감독들의 작품에 출연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결정적으로 알린 영화는 아무래도 94년 흥행, 비평 모두에서 성공을 거둔 얀 드봉 감독의 액션영화 <스피드(Speed)>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키아누 리브스의 리버스 엣지>에 함께 출연했었던 데니스 호퍼와 대결을 벌이는 경찰역으로 전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이 영화는 총 30억 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였고, 키아누 리브스의 게런티는 7백만 달러로 껑충 뛰게 되었다.
그러나 <코드명 J(Johnny Mnemonic)>(95), <구름 속의 산책 (A Walk in the Clouds)>(95), <체인 리액션(Chain Reaction)>(96), <필링 미네소타(Feeling Minnesota)>(96)등의 그의 후속작은 흥행 면에서나 비평 면에서나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95년, 그동안 꿈꿔왔던 연극 '햄릿'에 출연하기 위해 캐나다로 돌아간다. 그의 햄릿 역에 대해서 평론가들은 대체로 우호적인 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해에 그가 베이시스트로 있는 락 밴드 '독스타(Dogstar)'의 여름 투어를 마친다. 또한 <내가 마지막으로 자살을 기도했을때(The Last Time I Committed Suicide)>(97)라는 인디 영화에서 자그마한 역할로 출연했다. 한편 96년 '독스타'는 유럽과 극동지방 투어를 별 탈 없이 마친다.
97년 공개된 <데블스 애드버킷(The Devil's Advocate)>에 출연한 뒤 그는 99년 또 하나의 '대박'인 워쇼스키 형제의 두번째 작품 <매트릭스 (Matrix)>에 출연하면서, 또 한번 액션스타로서의 자리를 굳히게 된다. 그리고, 그는 <매트릭스> 2,3편에 개런티 3억달러를 받고 출연하기로 하고 워너브라더스사와 계약을 했다.
그를 동성연애자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지난 94년 할리우드 음반 경영자 데이빗 게펜과 결혼했다는 루머가 나돌면서 였는데 이는 헛소문으로 판명났다. 아마도 그가 첫 연극작품 <늑대소년>과 구스 반 산트의 <아이다호>에서 맡은 동성애자 역할때문에 그런 루머가 만들어 진것 같다. 그는 산드라 블록, 아만다 드 카드넷(듀란 듀란의 존테일러의 전처), 캐리 앤 모스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 F i l m o g r a p h y
첫댓글 정말 도움 많이 되는 자료 감사하게 잘봤어요 ~~키아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어 좋네요 *^^*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ㅎㅎ 좋은 자료인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