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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8일 토요일, 강원도 홍천의 백우산(白羽山) 산행에 나섰습니다. 홍천 백우산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여서 늦게 출발하였습니다. 7시 30분에 북문을 출발한 산악회 버스는 8시가 되어서야 동수원 KT앞 버스정류장에 나타났습니다.
버스에 올라보니 일요 산행과는 달리 빈 좌석이 한 개도 없었습니다. 계곡 산행이라는 여름 산행의 특성도 있으려니와 늦은 출발인 까닭에 아침 시간이 바쁜 주부들의 참여가 많았습니다. 대부분 남성들로 구성되는 일요 산행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앞뒤 대장을 비롯한 서너 명의 등산객은 통로에 보조의자를 놓고 앉았습니다.
버스는 하남 구리 방면으로 달리다가 팔당대교를 건너 양평으로 들어섰습니다. 한 여름을 맞은 남한강 강가의 수목들이 울창하였습니다. 어느 곳에는 들꽃 화원이 들어서 있었고 어느 곳에는 수초 가득한 연못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상습 정체 구간인 용인 마성터널 부근의 지체 현상을 피하여 우회한 이 도로도 많이 밀렸습니다. 가다 서다의 서행을 반복하였습니다. 토요 휴무일을 이용하여 교외 나들이에 나선 차량들이 많았습니다. 양평 휴게소에 이르러 살펴보니 차량이 밀리는 이유는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강원도 인제군 내린천 래프팅 체험에 나서는 대학생들의 대절 차량이 열에 여덟이었습니다.
버스는 새매기골을 힘들게 올라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은 11시경에 고갯마루에 올라섰습니다. 일행은 가족고개에서 하차하여 백우산을 향하여 발길을 옮겼습니다. 백우산 정상에 못 미쳐 시계가 확 트이는 전망대가 있었습니다. 전망대에서 발아래로 굽어보는 전경이 시원하였습니다.
해발 894M의 정상에는 백우산 정상을 알리는 하얀 표지가 서있었습니다. 그러나 풀숲에 가려 사방의 전망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백우산을 지나 매봉으로 향하는 길에 십자로의 갈림길이 있었습니다. 일행은 십자로를 지나 매봉으로 향하였습니다. 매봉에 가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매봉으로 보이는 봉우리는 매우 협소한 장소였습니다. 대여섯 명이 앉아 도시락을 먹을 공간도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일행은 확실한 표지가 있는 매봉을 찾아 앞서 나갔습니다. 매봉에서 후진하여 용소계곡으로 하산하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도 또 다른 매봉을 찾아 앞서 나갔습니다. 아마도 선두가 지닌 지도에는 그렇게 표시되어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몇 분을 더 나아가는데도 매봉다운 봉우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일행은 가던 길을 멈추고 오던 길로 되돌아 십자로를 향하여 후진하였습니다. 발길을 되돌리는 길에 백우산을 기념할 잘 생긴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소나무를 카메라에 담고 돌아서는데 문득 용소계곡의 큰너래소와 반송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너래소와 반송은 용소계곡의 명소였지만 오늘 산행코스에서는 벗어나 있었습니다. 시간을 단축하여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한 만나지 못할 장소였습니다.
그 때에 문득 매봉에서 반송과 큰너래소로 떨어지는 탈출로를 하나 개척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행에서 뒤쳐진 나는 반송과 큰너래소 사이로 떨어지는 능선을 타고 내려섰습니다. 전인미답의 숲길을 걷는 맛이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장마철에 들어선 백우산 서북 능선은 매우 미끄러웠습니다. 바윗돌에 낀 이끼를 밟으면 죽죽 미끄러졌습니다. 삭정이로 썩은 나무 고목은 손으로 잡자마자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산길에는 몇군데의 낭떠러지가 있었습니다. 2~3M의 높이의 낭떠러지를 우회하여 돌아가려니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지난 일요일, 덕항산 우중 산행에 젖은 6M짜리 로프를 말려두고 챙겨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2시간 쯤 산비탈을 내려가니 지도에도 없는 용소 폭포가 나타났습니다. 아마도 오늘은 이 용소폭포가 나의 원시적인 본능을 이곳으로 이끌어왔는가 싶었습니다. 폭포를 우회하여 아래로 내려서니 2단의 물줄기가 시원하였습니다. 폭포 주변에는 이름 모를 음지 식물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용소 폭포에서 용소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은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용소폭포를 살펴보고자 산길을 올라온 사람들의 흔적이었습니다. 용소계곡에서 용소폭포를 거쳐 매봉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확인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습니다. 나는 지금 반송과 큰너래소의 중간에 와있는 것은 분명한데 우거진 풀숲으로 정확한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용소폭포에서 시작한 계곡물이 본류에 합쳐지는 합수머리 부근에 붉은 함석지붕의 허름한 가옥이 하나 있었습니다. 폐가의 뒤뜰은 수풀이 사람 키만큼이나 우거져 헤쳐 나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마도 취나물을 가꾸던 텃밭이 분명하였습니다. 허리에 닿도록 웃자란 취나물 군락이 싱싱하였습니다.
반송과 큰너래소를 찾아 용소계곡을 좌우로 오르내리다가 작은너래소로 향하였습니다. 작은너래소를 향해 가는 중간에 길이 끊겼습니다. 숲으로 난 산길에는 산돼지가 참나물 뿌리를 헤쳐 놓은 흔적이 선명하였습니다. 용소계곡을 살피느라 산길에서 벗어나 냇가를 몇 번 들락거리다가 그만 방향을 잃었습니다. 불과 100M정도만 더 걸어갔으면 지도상의 작은너래소에 닿았을 것이었습니다.
전원을 꺼놓은 손 전화를 꺼내어 시각을 확인하려고 하였으나 불통지역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현재 시각 확인은 물론 산악회 모대장과의 통화도 불가능하였습니다. 그 때에 문득 냇물이 역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도상에 표기된 용소 곡의 표기로 보면 첫 민가와 고개가 있는 계곡이 상류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별다른 생각없이 계곡의 하류를 향하여 길을 걸었습니다. 인적이 뜸한 지역이어서 길이 끊겼다 이어졌다 하였습니다. 그 때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도 지도상의 반송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도상의 반송임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나는 지금 분명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그동안 하산은 언제나 계곡의 하류로 하였다는 통상적인 관념이 뇌리에 각인되었던 때문입니다. 그때서야 나는 오늘 만나보지 못한 용소계곡 상류에 위치한 또랑소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또랑소-작은 너래소-큰 너래소-반송-작은 용소-큰 용소로 이어지는 용소계곡 주요 명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큰너래소에서 반송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아름다웠습니다. 반석을 타고 흐르는 옥류에는 1~2급수에서만 서식하는 까만 다슬기와 누런 버들치가 살고 있었습니다. 계곡의 곳곳에는 앞뜰 만한 하얀 모래밭도 더러 있어 손발을 씻기 좋았습니다. 올 여름 이곳으로 피서를 온다면 한여름밤의 축제로 불리는 추억의 개똥벌레의 불빛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반송 어귀에서 길을 찾아 헤매다 등산화를 벗어 들고 계곡을 가로질러 건넜습니다. 계곡을 건너서자 경운기가 지나다닌 산길이 나타났습니다. 산길에는 작은 메뚜기떼가 이리저리 어지럽게 날았습니다. 농약에 오염되지 않은 산골이기에 만날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자 수심이 깊고 푸른 큰 용소, 작은 용소가 나타났습니다. 용소 계곡에는 피서를 나온 한 두 가족들이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의 일부는 올갱이로 불리는 다슬기 줍기와 물장구 치기에 한창이었습니다. 길가에는 잘 가꾼 고추밭과 오이 밭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홍천 시내에 내다 팔 상품으로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오이 밭에 자라는 작은 오이는 콤돔형의 길쭉한 캡슐이 오이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곧은 오이를 생산하려는 최신 오이 성형 재배법이었습니다. 성형의 열풍은 이제 사람은 물론 모든 동식물에게도 적용되는 용모 지상주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20세기의 속담이 그대로 적용되는 장면이었습니다.
두촌면사무소로 달려 나와 손 전화를 열어 보니 3시 50분이었습니다. 벌써 백우산 산행을 마치고 귀경할 시간이었습니다. 송기사님께 전화를 걸어보니 지금 막 산행을 마치고 간식으로 수제비를 먹는 시간이었습니다. 다행하게도 내가 도착한 두촌면사무소는 산행 도착지점인 가족동에서 12KM 앞선 지점이었습니다.
배낭에 도시락이 있었지만 부산이모집이라는 간판이 걸린 길가의 식당에 들어섰습니다. 아마도 식당의 안주인은 부산에서 이 마을로 시집온 사람일 것입니다. 늦은 점심식사를 부탁하였더니 닭국을 끓여 내놓았습니다. 닭국을 보니 얼마 전 재래시장에서 1,500원짜리 영계를 팔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지난 겨울에 시작된 조류독감 파동 이후로 생닭은 헐값에 팔리게 되었는데 그 여파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류독감 파문 이후 비브리오 패혈증으로 악플 광고된 두 사건으로 영세한 양계업자와 생선 횟집은 지금 문을 닫기 일보 직전일 것입니다. 부산이모집의 스물서너 살 난 수수한 시골 아가씨가 점심상을 차려왔습니다. 여러 가지 반찬이 나왔지만 호박전과 콩자반이 입맛에 맞았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땀에 젖은 머리를 감고 웃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두촌면사무소내의 원두막 쉼터에 올라 앉아 하이트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산행버스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버스에 올라 배낭에 넣어둔 백세주 한 병을 꺼냈습니다. 번번이 맨입만 가지고 다니며 맛좋은 감로주를 대접받던 일에 감사하여 모처럼 벼른 기회인데 오늘도 나의 불찰로 뚜껑을 열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고추, 양파 안주에 주변 아주머니들이 내놓은 오이를 고추장에 찍어 청아님, 구남님과 한두 잔 나누어 마셨습니다. 뒷좌석에 앉은 등산객이 준비한 시원한 막걸리도 나누어 마셨습니다.
홍천 휴게소에서 잠시 버스 타이어의 정비가 있었습니다. 차량의 오른 쪽 뒷바퀴 10개의 조임 나사 중 7개가 사라지고 없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양심 불량 도둑이 야간에 빼어간 것이라고 짐작하였습니다.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솟는 요즈음에는 기름 도둑과 타이어 도둑이 극성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다음 날의 운행에 대비하여 기름을 가득 채운 10여대 관광버스의 기름을 몽땅 도둑맞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관광버스회사의 실정을 매우 잘 아는 여타 기름장사의 소행이라는 것입니다. 통상 관광버스는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서 내일의 운행을 위해 실내 청소를 하고 기름을 가득 채운다는 것입니다. 또 얼마 전에는 새로 갈아 끼운 자가용의 타이어를 몽땅 빼가는 사건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벽돌로 차체를 받쳐 놓고 새로 갈아 끼운 네 개의 바퀴만 고스란히 빼어 갔다는 것입니다.
천만 다행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다행히 관광버스를 운행하는 버스 기사들은 출발과 도착에 앞서 항상 자기가 운전하는 버스를 점검합니다. 그런 준비 과정을 거치기에 일촉즉발의 사고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휴게소에서 차량을 정비하는 사이 청아님이 참이슬 세 병과 오징어포를 사 가지고 올라오셨습니다. 또 한 차례 서너 순배의 참이슬이 돌았습니다. 고교수님이나 강교장님이나 명예대장 청아님은 산을 닮은 심신을 지닌 분들이기에 산을 대하듯 편안하였습니다.
상습 정체 구간인 강원도 문막을 지나 경기도 여주에 이르는 길목에서 다리 아래로 섬강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치악산에서 발원하여 문막의 은섬포(銀蟾浦)를 지나 여주의 남한강 흥원창(興原倉)에 이르는 섬강은 장맛비에 수량이 많이 늘어나 있었습니다. 이곳 남한강 줄기인 섬강은 물이 맑고 깨끗하여 민물고기가 많습니다. 어느 때 한번 이곳으로 천렵을 나올 기회를 엿보아야 하겠습니다.
삼국시대에 시작되어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이곳 남한강 흥원창은 물길 수로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내륙의 물자를 모으는 조운제도의 집산지로서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쌀 200석을 실어 나를 바닥 낮은 평저선(平底船) 20척이 항시 대기하였던 곳입니다. 서해바다 아산만에 위치한 하양창(河糧倉)이 해운제도의 중심지였다면 남한강 여주에 위치한 흥원창은 조운제도의 중심지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물류의 중심지는 번창하고 물류의 변두리는 쇠퇴하는 이치가 한결같은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면 문막이나 용인 마성은 발전 가능성이 없는 지역입니다. 이름부터가 문막이고 마성(馬城)이니 어쩔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지난 해 10월 3일 개천절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어둠에 묻힌 개천을 열고 맑고 깨끗한 청계천을 복원하였습니다. 그의 이름 명박(明博)에 걸 맞는 맑고 밝은 청계천을 복원하였습니다. 그 일로 대권을 향한 징검다리 교두보를 놓으며 대다수 국민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장차 남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물류대통의 대운하 건설의 필요성을 광고하였습니다. 문경 새재를 관통하는 운하 건설의 청사진을 들고 나서는 그의 끝없는 도전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강은 강으로 흘러야 합니다. 댐으로 막혀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강은 강의 속성대로 내 몸속의 대동맥처럼 힘차게 소리내며 흘러야 할 것입니다. 산을 숨차게 오르는 사람들의 맥박이 힘차게 고동치듯 강물도 그렇게 여울목을 소리쳐 흘러야만 할 것입니다.
첫댓글 미지의 숲속을 러쎌 하시느라 고생 하셨지만, 진정 산행의 참맛을 느꼈을 것입니다. 조망이 없는 곳에서의 길 잃음에 시간이 다급하고,연락이 끓기고,사고나기 십상인데,차분히 헤쳐나가신 산꾼의 모습을 보았습니다.늘 건강하시구요. 08:14
어제 반 일고 오늘 반 읽고 긴 산행기에 용소계곡의 숨결이 나타나는군요, (올여름 휴가는 용소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 밑에서 보내면 어떨까 하는마음 간절하다.) ^^
용소계곡의 물줄기를 보는사람이야 시원 합니다만 순간순간 헤처 나오신 기지가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한 순간 이나마 피서 잘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