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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답사기
길은 미지의 세상으로 향하는 과정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걷는 길도 그렇고, 어느 곳의 여행지도 길에서 시작되고 길에서 끝을 맺는다. 길에는 고개가 있고, 다리가 있고 나루가 있는가하면 골목도 있고 굴도 있다. 고개에는 어머님의 눈물이 있고 나루에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있다. 만남과 헤어짐이 길에서 이루어지며 아쉬움과 애절함이 있는가하면 기쁨과 환성이 터져 나오기도 하는 것이 길이다. 인생살이 모든 철학적 인문학적 사색거리를 내주는 길이 있어 사람들은 길을 걷는다.
여기 하동군, 길이 있다. 길도 수천갈래 길이다. 각 길마다 이름이 있고 그 이름마다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을 따라 가본다.
하동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섬진강과 화개장터와 토지문학관이다. 섬진강에서 잡아내는 재첩국을 모르고서야 섬진강을 말할 수 없다. 시원한 재첩국으로 해장을 하면 술꾼들은 비로서 하루를 시작 할 수 있다고 했다. 수박향이 난다는 은어회 한접시면 막걸리 두어병을 바닥 낼 수 있는데 주머니가 가벼운 것을 한탄해야 한다.
평택이 낳은 가객 정태춘은 곽재구의 시 유동나루를 노래하며 사라져가는 은어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일인들이 가져간 것이 어디 은어뿐이랴.
하동은 지리산 남쪽으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가 되는 섬진강 하구 동쪽에 발생한 도시라서 河東이다. 동으로는 진주, 산청과 접하고 서로는 구례, 광양, 북으로는 지리산을 머리에 이고 남쪽은 하동포구로 알려진 남해바다에 면해있다. 하동은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곳은 아니다. 하동은 남해섬으로 넘어가는 노량의 길목이다. 이순신장군의 노량해전이 기억속에 남아있는 곳으로 왜군이 전라도로 넘어오는 것을 방어한 전적지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이곳을 무대로 하는 것도 동학농민전쟁이 동기가 된다. 소설 속에 김개남이 등장하는데 이는 순천을 장악한 농민군이 광양을 제치고 하동으로 진격 진주로 진출하려던 교두보였던 지역이다. 이곳에 농민군의 흔적이 없을 손가. 박경리는 이점을 놓지지 않았다. 또 한 지리산 형제봉에서 흘러내린 크고 작은 계곡이 평사리에 와서 가라앉아 너른 들이 되는데 작가가 말한 대로 큰 부자 한둘은 나올법한 들이다. 이런 곳을 놓칠 수 없다는 듯 이야기는 평사리를 맴돌며 토지라는 방대한 역사소설을 토해낸 것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는 평사리엔 최부잣집을 재현해 놓고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07년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악양면과 화개면을 중심으로 한 슬로시티는 보전과 관광 그리고 주민들의 소득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슬로시티의 모범이 될 만한 곳으로 소개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먼저 지리산 생태권역이다. 방대한 지리산의 열아홉폭 치맛자락이 남해까지 펼쳐져 모든 사람이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다. 지리산은 모든 것을 품어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리산의 넉넉한 품으로 상처 난 사람들은 찻아들어 삶을 만들어 냈다. 아마도 지금까지도 상처 난 사람들이 머무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리산으로 오르는 서너 곳의 등산로와 하동호로부터 시작되어 쌍계사에 이르는 지리산 둘레길, 화개장터에서 덕천강에 이르는 이순신장군의 백의종군길, 서산대사 옛길, 쌍계사 10리 벗꽃길과 슬로시티 토지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가는 곳마다 풍광이 빛난다.
마을의 고샅길은 인생이고, 돌담길은 그림이다. 한적한 들판길은 풍경이되고, 송림우거진 오솔길은 고향이 된다. 그중에서도 화개장터, 쌍계사. 그리고 두 곳을 연결하는 벚꽃길, 평사리 벌판에 부부송, 최참판댁, 청학동 삼성궁, 불일폭포, 하동포구 백사청송, 차시배지, 칠불암의 아자방, 세이암 등은 이곳의 풍광에 이야기를 곁들이고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아우르는 장치들처럼 자리해 있다.
하동은 축제의 고장이다. 3월에 고로쇠축제, 4월에 화개장터벚꽃축제, 5월에 차문화축제, 9월에 북천 코스모스, 메밀꽃축제, 10월 달엔 세가지 축제가 함께 열린다. 이병주 국제문학제, 토지문학제, 악양대봉시 축제, 11월엔 참숭어 축제가 그야말로 잔치판처럼 벌어진다. 이런 축제들이 즐펀하게 벌어지면 사람들은 피로감을 쉬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축제가 번잡스럽지 않게 진행되고 있어 조용한 산골에 한바탕 사람이 사는 듯한 모습을 보여 활력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슬로시티의 자연경관보존과 지역민들의 삶과 문화를 보전한다는 취지를 잘 살려내고 있다고 본다.
대중관광지에서 보이는 억지로 보여주는 식이 아니라 걷는 길로, 자전거 길로, 자동차 길로 돌면 하동의 풍광이 스스로 내 곁으로 오도록 자연스럽게 배려하고 있다. 일반관광지의 떠들썩 함과 돈냄새와 땀냄새를 배제하고 조용한 사색의 공간이 되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곳이 돈과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냐 하면 그렇진 않다. 화개장터라는 집단시장은 시장 자체로 옛사람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이 호흡을 같이 하도록 배려했다. 또 가는 곳마다 이곳의 특산물들이 상품화돼서 길손의 주머니를 털게 하는데 그것이 고약하지 않게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녹차시배지가 있는 탓에 차재배가 많이 늘어났는데 각종 프로그램을 이용 관광객들로부터 주머니를 털어도 미소를 짓도록 하고 있다. 거리에도 감과 배등을 파는 농원들이 있어 길손의 목을 적시기에 맞춤하도록 한 것이다.
하동은 대중관광지와 슬로시티를 연결한 형태의 복합생태관광지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의 관광지는 첫째 경관이 수려하거나, 스케일이 크거나. 중요유형문화재거나 하는 중심이 있어야 유명관광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엔 우선 음식점이 있어야 하고 잠을 잘 곳이 있어야 한다. 그 외 즐길 거리나 쉼터도 갖추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 보니 관광지라고하면 시장판을 능가하는 복잡함과 피곤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즐비한 술집과 노래방으로 대표되는 관광지의 위락 시설들은 돈벌이를 위해 오직 존재할 뿐이다. 이름난 사찰 아래는 모두가 술집이고 노래방으로 구성돼있다. 호객행위는 물론이고 등산객과 관광객이 혼재되어 비틀거리는 우리나라관광지는 관광지로서 기능을 잃었다. 관광이 가지는 의미는 관광, 여행, 유람에서 역사, 문화, 자연 경관 등의 관광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편의적으로 교통 시설과 숙박 시설 등 관광객을 유치 할 수 있는 역사유적지, 경관자연지, 유원지, 놀이공원, 온천지 등인데, 이들 지역은 대부분은 산, 해안 등에 집중되어 있으며, 관광객으로 부터 얻는 소득이 지역 경제의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동 화개면은 천혜의 차나무 재배 조건을 갖추고 있다. 화개면의 주요 차 재배지역은 섬진강과 이의 지류인 화개천에 인접해 있다. 이지역은 안개가 많고, 다습하며, 차 생산 시기에는 밤낮의 기온차가 커 차나무 재배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1200여 년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왕조시대부터 궁중의 공납차로 진상품의 위치를 점할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다. 또한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덖음 기술’을 활용한 고급 녹차를 생산하여 다른 녹차와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다. 하동녹차는 일제 강점기 피폐화된 차문화의 시련을 딛고 일어나 1990년대 번성기를 주도하고 ‘왕의 녹차’ 브랜드로 재탄생하여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하동녹차는 그 전통성과 미래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올해 정부로부터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 받았다.
이렇듯 이 지역의 천혜의 자연조건과 그를 기반으로 하는 차는 슬로시티가 지향하는 자연생태계의 보존이라는 가치를 더욱 높이 끌어올리는 조건이 되었다.
사찰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쌍계사라는 절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쌍계사는 그만큼 유명한 사찰로 구례의 화엄사와 함께 지리산과 섬진강을 대표하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른 봄에는 벚꽃이 만발한다. 섬진강을 따라가는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인 19번 국도 변의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입구까지 이어지는 10리 길이 온통 벚꽃으로 뒤덮히는 것이다. 이 길이 유명한 화개장터 십리벚꽃길로 이 길을 걷는 연인들은 무사히 결혼까지 이어진다고 하여 혼례길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단다.
쌍계사 입구 다리를 쌍계석문이라 하는데, 양쪽에 있는 두 개의 바위에 각각 '쌍계'와 '석문'이라는 붉은 글이 쓰여 있다. 이 글은 신라가 낳은 천재 최치원의 글씨라 한다. 쌍계석문을 지나 5분쯤 숲길을 걸으면, 쌍계사 일주문이다. '삼신산 쌍계사'라는 현액이 걸려있는 일주문에서 보물 제500호로 지정된 대웅전까지에는 금강문(지방유형문화재 제127호), 천왕문(제126호), 범종각, 팔영루(문화재자료) 등을 거치게 된다. 거의 모든 건물이 일직선에 가깝게 놓여 있어 이 길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묘미를 안겨준다. 그중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 민족의 정서에 어울리는 범패를 만들어낸 곳이라는 팔영루가 눈길을 끈다. 팔영루 뒤쪽에 대웅전을 비롯한 경내의 주축을 이루는 건물들이 서 있다. 쌍계사는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신라 흥덕왕3년(828년) 김대렴이 당나라 사신으로 처음으로 차 나무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남쪽 줄기 쌍계사 일원에 심었다고 하며 일주문 못미쳐 차시배 추원비가 세워져 있으며 마을 차밭에도 차 시배지 기념비(도기념물 제 61호)가 있다.
이렇듯, 천년고찰쌍계사와 1931년 주민들이 심어 가꾸었다는 십리벚꽃길, 차재배지가 자연조건을 녹여 내는 경우라면 토지문학관과 주변은 테마를 이용한 관광지로 생태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주변 여러 환경들과 거리를 두지 않는 방식으로 관광과 문학, 예술이 어울리도록 자연생태계를 최대한 손대지 않는 노력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여는 관광지와는 차별성이 있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악양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 몸에 받은 땅이다. 평사리가 위치한 지명인 악양은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평사리 강변 모래밭을 금당이라 하고 모래밭 안에 있는 호수를 동정호라 했다. 악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 중에 소상팔경이 있다. 평사리에 위치한 동정호와 악양의 소상팔경은 이곳 사람들의 자랑거리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득 담긴 풍경을 자아낸다. 또한 형제봉 중턱 300m에 위치한 사적 제151호 고소성은 신라시대 축성한 것으로 섬진강과 동정호를 발아래 두고 천년의 발자취를 말해준다.
전체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섬진강을 따라 '박경리 토지길'을 마련해 두었다. 소설 토지의 실제 공간적 배경이 되었던 평사리를 지나는 1코스(18km)와 19번 국도를 따라 꽃길을 걷는 2코스(13km)로 나뉜다.
자연과 인위적 개발로 생태관광지를 두면 단순해지기 쉽다. 일부러 한 것은 아니지만 관광객들이 먹고 마시고 잠잘 수 있도록 장터를 한곳으로 배치해 장터자체가 역사와 쇼핑, 휴식, 외식 등의 관광지로 배치한데 의미가 있다.
화개장터는 조선 영조때(1770년)부터 5일장으로 전국에 명성을 떨쳤던 화개장, 지금도 영조 때와 같은 1일, 6일이 그대로 장날이다. 영호남 교류의 상징이자 교통길목에 위치해 예부터 명성을 떨치던 화개장을 2001년 봄에 복원했다. ‘화개장터’가 개장하면서 화개장의 명성을 회복하고 주변의 쌍계사 지리산 등과 연계한 관광문화 상품으로 주민들의 소득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 ‘화개장터’엔 지리산에서 자란 약초를 비롯해 남해안의 해산물, 잡화 등 눈요기 꺼리와 지금도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간 등 조영남의 노랫말 가사대로 ‘있어야할 건 다있고요 없을 건 없다’.
그 외에도 연계된 주변의 청학동과 칠불암 등 볼거리 화개면의 차만들기 체험학습장, 곳곳에 먹거리, 지리산 등산. 둘레길 걷기 등이 즐비하다. 이는 지리산이 품어주는 생태적 가치를 더욱 높이는 문명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지역으로 발돋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동의 슬로시티가 가지는 미덕은 지리산과 섬진강이다. 이는 우리가 가꾸고 보전해야할 의무가 있다. 관광과 주민소득에만 치우치다 보면 보전이 소홀해지기 쉽다.
슬로시티의 목적이 지속가능한 개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보전에 그 가치가 있다. 주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보전하고 생태계를 보전하는 것이 취지이다. 관광객이 늘어나 무질서하고 제한이 사라지면 보전은 어려워진다. 하동은 이점을 알고 있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보전하려고 하는 노력을 하며 최대한 개발을 억제하려는 힘이 존재하는 한 일반관광지와 같은 행위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개발행위를 하려는 사람들은 설악산에 지리산에 마구잡이로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든다. 결국 지방재정에도 도움이 되지못하고 환경만 훼손시키는 케이블카의 설치론자들의 개발 논리가 사라져야 한다.
중미의 코스타리카는 좁은 국토면적에도 4분지1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그곳에는 일체의 개발행위를 금지하고 있다한다. 도로 개설마저도 하질 않아 관광객이 불편해 하는데도 손을 대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한다. 슬로시티로 지정 받으면 개발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려고 했던 일부 지자체들이 국제적 망신만 당하고 슬로시티지정철회라는 오명을 주민에게 돌려주는 행위는 반복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참고: 대한민국 알프스 하동여행, 하동군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