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 새 세기 벽두부터 국역풍수론(國域風水論)적으로 별 해괴망측한 일이 다 일어나고 있다. 최근 일본 우익단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검정본(후쇼사 출판)으로 제출한 중학 역사교과서의 내용만 해도 그렇다. 조선을 '잠들어 있었던 나라'로 단정짓는가 하면, 우리 한반도의 모습을 '일본에 끊임없이 들이대고 있는 흉기'에 비유하는 등, 온갖 비속어들을 총동원해 한국을 폄훼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 정부가 교과서 일부 내용을 재검토해 줄 것을 요구하자, 이제는 또 한반도를 '일본을 향하여 대륙에서 돌출해 나온 한 개의 팔뚝'으로 교묘하게 말을 바꿔 쓰고 있다. ' 흉기'라 하든 '팔뚝'이라 하든 그 표현은 사실상 오십보백보다. 자기 나라 2세들의 교육용 교과서에 흉기나 팔뚝 같은 저속한 말들을 써서 학생들을 호전적으로 키우든 말든 그것은 내 알 바 아니지만, 남의 나라 땅을 그같 이 폄훼하는 것이 세계 역사상 유래없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 생김새를 '날강도'나 '산도적' 같이 생겼다고 면전에다 대놓고 막말을 하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불과 100여년 전 일제 강점기 때 제국주의 어용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가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를 토끼 형상으로 폄훼하더니, 이제는 아예 한국이라는 나라를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흉기와 팔뚝같은 용어를 아무 거리낌 없이 써대고 있으니, 일본 역사교육이 발전하고 있는지, 아니면 퇴보하고 있는지 심히 헷갈릴 지경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런 막말을 한 일본 전기통신대의 니시오 간지(西尾幹二)교수나 그런 소식을 접한 우리 국민 모두가 다같이 그런 표현이 어떤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별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그런 추측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반도를 그런 식으로 묘사하는 것이 어떤 범법행위에 해당하는 가를 알았더라면 니시오 간지는 감히 그같은 표현을 함부로 쓸 수 없었을 테고, 또한 우리 국민이 그런 표현이 얼마만큼 국가 위신을 떨어뜨릴 수 있는가를 진작 알았더라면 교과서에 '종군위안부' 내용을 게재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범국민적으로 궐기하여 일본이 우리 국토를 깔보듯 비하한 만행 을 규탄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여기에서는 일단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이끌고 있는 니시오 간지라는 사람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도록 하자. 그는 1999년 10월에 이미 '국민의 역사'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종래의 역사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실로 괴이하기 짝이 없는 일본사관(史觀)을 펼친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80여만부의 책이 팔려나가고, 소위 스타 교수로 뜨게 되면서 그에게도 중학 역사교과서를 집필할 기회가 주어진 것 같은데, 문제의 발단 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그런 독단과 아집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애초부터 일본 문부성이 역사 교과서를 집필할 기회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 교과서에, 일반인들이 그저 심심풀이로 읽어 넘길 '국민의 역사'에 나오는 내용을 자아 도취에 빠진 그가 그대로 베껴 써넣은 것은 불을 보듯 자명했던 일. 아닌게 아니라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최초 검정본을 보면 그런 우려가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반도가 일본에 적대적인 대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면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최적의 기지가 돼 후배지(後背地)를 갖지 못한 섬나라 일본은 자국의 방위가 곤란 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반도는 일본에게 끊임없이 들이대는 흉기가 되기 쉬운 위치 관계였다"고 기술한 대목이 바로 그 좋은 예다. 이 내용은 결코 역사적인 기록에 근거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역사적 사실을 논리 성 있게 분석한 것도 아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한 역사학자의 개인적인 심증에 따른 독단적인 역사 해석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제 아무리 자기 나라 조상의 한반도 침략 행위를 합리화시키고 싶더라도 어찌 실재성과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학자가 그런 가상의 시나리오 같은 자의적인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이던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한.일 관계의 역사적 기록과 경험으로 보자면 오히려 일본 땅이 '한반도에 끊임 없이 들이대고 있는 흉기'라고 표현해야 백번 옳은 것이다. 그래도 후배지 운운하는 것을 보면 전문 지리서적 몇 권 정도는 읽은 사람 같은데, 그렇다면 마땅히 흉기나 팔뚝 같은 말 대신 '육교'라는 용어를 썼어야 지당하지 않은가.
어찌 자기 나라의 위치를 표현하는 데는 '후배지(배후지 혹은 Hinterland)가 없다'고 하는 그럴듯한 지리 학술용어를 쓰고, 대륙과 섬을 연결하는 우리 한반도의 육교적 위치관계를 표현하는 데는 흉기와 팔뚝 같은, 그 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지리 용어(?)를 썼다는 것인지 그 저의를 심히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정부로부터 그같은 책내용들을 수정해 줄 것을 요구받은 그가 '내정간섭' 운운하면서, 어찌보면 단순한 학술적 문제에 불과한 교과서 파동을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비화시키려 한 것만 봐도 거기에는 분명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그 어떤 흑막이 게재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이제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 니시오 간지의 이른바 '한반도 흉기설' 내지 '한반도 팔뚝설'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우리 한반도를 대륙으로부터 돌출 해 나온 흉기라 하든, 혹은 팔뚝이라 하든 그것은 모두 한반도 전체의 생김새에 관한 것들이다.
그것을 풍수에서는 물형론적(혹은 형국론적) 국역 풍수론이라 한다. 땅의 생김새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물형론인 것이요, 한 나라 국토 전체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국역풍수론이 되는 셈이다. 우리 한반도 물형론의 역사는 한마디로 무척 다양하고 화려하다. 조선조 한때는 한반도의 형상이 마치 중국대륙을 향하여 읍(揖)하고 있는 듯한 노인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우리나라와 중국이 친하게 지내온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얘기도 있었고, 또한 우리나라 지형은 행주형(行舟形)이기 때문에 선체(船體)의 흔들림을 막기 위해 상대적으로 영남 땅보다 산이 적은 호남지방의 운주사에다 천불천탑을 세우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뿐 아니다.
일제 강점기 초기 육당 최남선의 한반도 호형설(虎形說)은 당시에 토형설(兎形說)로 우리 한민족으로 하여금 황국신민화를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게끔 획책했던 일본제국주의의 어용학자 고토 분지로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풍수론이라 한다. 땅의 생김새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물형론인 것이요, 한적은 호남지방의 운주사에다 천불천탑을 세우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뿐 아니다. 일제 강점기 초기 육당 최남선의 한반도 호형설(虎形說)은 당시에 토형설(兎形說)로 우리 한민족으로 하여금 황국신 민화를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게끔 획책했던 일본제국주의의 어용학자 고토분지로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린 그야말로 멋진 풍수 대반격이었다.
하지만 작금에 이르러 니시오 간지가 주장하는 한반도 흉기설 내지 팔뚝 설은 이들 예전의 국역풍수론적 물형론들과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반도 자체의 생김새를 근본으로 하는 주체적인 물형론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대륙의 일부로서 한반도를 고려하고 있을 뿐더러 오로지 자국의 지정학적인 위치와 관련된 편견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형상을 제멋대로 비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지세의 흐름을 어느 정도 반영하면서 토형 설을 주장했던 고토 분지로는 거기에 비하면 그래도 훨씬 더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던 셈이다. 어찌됐든 니시오 간지의 한반도 흉기설 내지 팔뚝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매우 중차대한 국제적 범죄 행 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첫째, 한반도의 형상을 흉기 내지 팔뚝으로 묘사한 것은 일본의 새로운 21세기형 대(對)한반도 풍수침략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니시오 본인은 영토를 침공한 것도 아닌데 어찌 침략으로 볼 수 있느냐고 강변할 지 모르겠으나, 알고보면 일제 때처럼 반드시 우리 땅에 쳐들어와 목재를 마구 베어 일본으로 반출하고, 명산에다 쇠말뚝을 박는, 등등의 작태들을 보인 것만이 풍수침략인 것은 아니다. 언어 폭력도 폭력이요, 필설에 의한 국가모독도 모독인 것은 틀림없다. 남의 나라 국가 원수를 비방하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을진대 하물며 남의 나라 국토를 제멋대로 비하함에랴.
둘째, 실사(實史)가 아닌 허구적인 가설로 일본 사람들에게 옛 제국주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평화공존을 표방하는 작금의 세계 정치 흐름에도 역행할 뿐더러 일본사람들의 대(對)한국관(觀)을 왜곡시켜 한.일관계를 언젠가는 파국으로까지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니시오 자신이야 어디까지나 역사적인 사실을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하는 가운데 한반도를 대륙에서 돌출해 나온 흉기 내지 팔뚝으로 묘사한 것이지, 그것이 현재와 미래의 한.일관계에 무슨 큰 영향을 주겠는가 하고 오리발을 내밀 수도 있겠지만, 그런 국토 형상론은 알고보면 국가가 있고 국토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일제시대 때 교육받은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를 우리 고유의 호랑이 형상이 아닌 토끼 형상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점을 한번 감안해보라. 잘된 교육이든 잘못된 교육이든 일단 한번 교육 받은 내용은 그 기억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하다.
니시오가 새로운 일본역사를 정립 한다는 것을 빌미로 일본사람들로 하여금 한반도를 지금부터 흉기 내지 팔 뚝으로 여기게끔 하는 교묘한 술책을 부리고 있는 것이 더욱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도 모두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무리 이웃 나라들로부터 옛 조상의 침략행위에 대한 사과를 요구받고, 또한 자라나는 일본 2세들의 국가관과 민족관이 해이해졌다한들 어찌 대학교수이자 학자인 사람이 그같은 졸렬한 방법을 쓸 수 있다는 말인가.
일본 사람들이 우리 땅을 흉기나 말뚝으로 보는 것이 겁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니시오는 자신의 엉뚱한 역사왜곡으로 수많은 선량한 일본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비정상적인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자기 스스로 오히려 일본의 국익에 반(反)하는 자해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1995년 9월 말레이시아 이포국제풍수심포지엄에 참가했을 때 필자는 사석에서 싱가포르의 저명한 풍수사 진군영(陳軍榮)으로부터 기상천외한 괴(怪)풍수설을 들은 적이 있다. 얘기인즉 일본 열도는 사슴형의 홋카이도, 기린형의 혼슈, 매(鷹)형의 시코쿠, 거북형의 규슈 등 이른바 4수(四獸) 기격(奇格)의 섬으로 돼 있는데, 바로 그 때문에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는 일본으로부터 시달림을 받을 운명을 타고났으며, 남북이 분단된 것도 모두 일본 열도 때문이라고 했다.
그에 대해 필자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그런 훌륭한 형국을 갖춘 땅으로 봐주는 것까지는 좋으나 한.일관계를 두 나라 국토의 형국과 운명론적으로 결부시키지는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만약 니시오가 그 말을 들었더라면 어떠했을까. 모르긴해도 속으로 엄청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현대 학문을 하는 학자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학자는 알다시피 감정으로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아직도 늦지는 않은 듯하다. 역사교과서 최종 승인이 내달에 결정된다니까 지금이라도 니시오는 자신이 집필한 교과서에 '한반도는 대륙으로부터 돌출해 나온 팔뚝'이라 쓴 내용을 '한반도는 대륙과 섬을 연결하는 육교'로 고쳐 써넣어야 한다.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국민의 역사'라는 책에 한반도가 대륙으로부터 돌출해 나온 흉기로 묘사돼 있는 것을 내 모르는 바 아니나, 그에 대해서도 더 늦기 전에 한.일 양국의 유력 일간지에 자신의 사과문을 게재하는게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만약 자신의 고집을 끝까지 관철하려 들다가 한반도를 열렬히 사랑하는 애국적인 한국 역사학자나 지리연구자들 중 혹여 어떤 사람이 일본 열도의 형상을, 동쪽은 망망대해인지라 항상 동아 대륙쪽을 향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음흉한 도적같이 생긴 땅'이라고 그 모양새를 비하한다면 그때는 또 어찌하겠는가. 아마 입이 열개라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불미스런 한.일 양국간의 국토 형상에 대한 상호 비방 논쟁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라도 니시오, 당신의 대(對)한국민에 대한 사과는 빠르면 빠를수록 효과가 있지 않겠는가.
어찌됐든 삼천리 금수강산의 한반도 형상을 흉기와 팔뚝으로 폄훼.왜곡 하는 대단한 용기(?)를 보인 니시오, 당신의 학자적인 양심을 끝까지 한번 지켜보도록 하겠다.
이몽일 <풍수학자. 지리학박사> 영남일보 2001. 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