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혼용무도’의 해가 지고, 2016년 병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해맞이 하면서 새해소원을 빌러 장도에 올랐다고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연말에 있었던 몇 가지 사건을 살펴보고 새해덕담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1) 지난 12월 28일 전격적으로 합의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연말 최대화제 아니었습니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시발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대단히 예민하고 휘발성이 큰 사회-역사-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수요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증언합니다. 1945년 해방된 이후 1948년 정부수립,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철저하게 은폐돼 왔습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43년 동안 이어진 역대 모든 권력자와 집권당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묻어두려 했던 것입니다.
국가를 잃어버린 20만 일제강점기 조선의 처녀와 소녀가 대만, 중국, 필리핀 여성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습니다. 하지만 장구한 세월 동안 국가는 그것을 묻었고, 김학순 할머니가 용감하게 사실을 세상에 알린 겁니다. 1992년 1월 미야자와 일본총리 방한 이후 매주 수요일마다 23년 동안 줄기차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열렸습니다. 정부가 완전하게 문제를 해결했다면 1,210회로 수요집회가 종결되었을 텐데, 그저께인 지난 12월 30일 결국 1,211회 <정기 수요집회>가 다시 열리고 말았습니다.
2) 그렇다면 이번 한일양국 정부 간에 합의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핵심쟁점은 무엇입니까?!
위안부 할머니들의 동의 없이 가해국과 피해국 정부 간의 합의라는 사실, 합의에 명시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합의가 어불성설이라는 사실, 10억 엔(97억 원)이란 푼돈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했다는 사실,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철거문제 등입니다.
한일양국 합의에 피해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동의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피해자가 가해국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할 경우, 가해국(일본)과 피해자 소속국가(한국)가 피해자의 동의 없이 그 피해에 대해 합의할 수 없다는 것이 법의 논리입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했지만, 1991년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과 정대협 같은 단체가 일본정부를 압박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번 협정에 ‘최종적-불가역적’이라는 언사가 삽입됨으로써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게 면죄부를 쥐어준 꼴이 된 것입니다. 여기 덧붙여 일본정부가 준다는 푼돈 10억 엔이 위안부 할머니들은 물론이고 한국인들의 정서에 심각한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그 돈 받겠다고 25년 <수요집회>를 해왔고, 지난 3년 한국정부가 일본과 마찰을 빚어왔느냐 하는 것이죠! 더욱이 한국정부가 일본이 준 돈으로 재단을 만들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는 데, 이것은 가해국 일본의 책임을 한국정부가 대신 떠맡겠다는 것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일본정부의 문제가 위안부 할머니들과 한국정부의 문제가 되어버린 꼴입니다.
사진으로 보셨겠지만, 2011년 12월 14일 천 번째 <수요집회>에서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한 평화의 소녀상 철거문제는 국가나 정부가 개입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제국주의 일본과 일본군의 만행을 한국인들과 세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그것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민간이 설치한 것을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들이 이번에 합의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핵심쟁점이라고 생각합니다.
3) 일본군 위안부 문제합의를 바라보는 해외언론의 보도태도가 궁금합니다. 어떻습니까?!
다수의 일본 언론은 “한국이 이번 합의와 함께 위안부 관련 자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하지 않기로 했으며, 한일양국의 합의내용을 공동문서로 남기지 않도록 요청했다는 사실, 일본 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전문제를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겠다는 한국 외무장관 입장을 중점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극우를 제외하고는 축제분위기라고 합니다.
<아사히신문>은 환영과 우려의 반응을 동시에 내놓았습니다. “이번 합의는 아주 좋은 해결책이며, 곧바로 완전한 합의에 이르기는 어렵겠지만, 대화의 끈을 붙였다”는 평가와 “이것은 본질적인 해결과 동떨어진 합의이며, 일본정부의 책임이 불명확하고, 한국정부가 소녀상 철거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반대여론이 커서 실현될지 의문”이라는 반응입니다.
그런데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보도가 흥미롭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합의는 아베 총리에게 중요한 성공이며,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한일양국의 화해를 촉구해온 미국에게도 간접적인 성공이다. 한국정부가 지금까지 고수해온 입장을 선회한 것은 오바마 미국정부의 지속적이고 때로는 직설적인 압력의 결과다. 위안부 분쟁을 해결함으로써 아베 총리는 한국을 협력국의 대열로 다시 데리고 들어왔다”고 지적했습니다.
4) 이번에 전격 합의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이것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
기시감이 있습니다. 한일국교 정상화 1년 전인 1964년 8월 미국은 이른바 ‘통킹만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듭니다. 1965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북베트남 공습에 들어갑니다. 당시는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냉전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입니다. 중국은 문화혁명을 코앞에 두고 있었고, 북한에는 김일성이 건재했지요.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일본과 한국의 국교정상화로 한미동맹과 일미동맹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일본은 1964년 동경 올림픽 성공으로 세계전역에 국위를 떨치고 있었고, 자신감이 넘쳐났던 시기입니다. 한국의 박정희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필요한 자금이 절실했습니다. 이런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져 국교정상화가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해방 (패망) 70주년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한 양국의 이해와 미국의 압력(중국 포위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위안부 문제 전격합의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5) 다른 문제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2014년에 한국이 무기수입국 1위에 올랐습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는 78억 달러 (9조 1,300억 원) 규모의 무기계약을 체결해 세계 최대의 무기 수입국가가 되었습니다. 2011년에 3위, 2013년에 7위였다가 드디어 세계1위에 올랐습니다. 전쟁하지 않는 나라가 전쟁 중인 이라크(2위, 73억 달러)보다 더 많은 무기를 사들인 것입니다. 그것은 남북한 긴장고조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하지만 최첨단 무기를 사들인다고 해서 긴장이 완화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첨단무기 구입에 앞장선다면, 북한도 덩달아 신무기를 개발하거나 수입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일방의 무장은 다른 쪽의 무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첨단무기로 국가안보를 보장받는 시대가 아닙니다. 남북의 평화관리와 적극적인 외교행보가 보다 전향적이고 효율적인 해결책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안보와 평화는 무기가 아니라, 평화구축을 위한 전방위적인 외교와 실천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6) 12월 29일 교육부가 발표한 ‘프라임 사업’으로 전국대학이 시끌벅적하다고 들었습니다?!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을 영문약자로 ‘프라임 사업’이라고 합니다. 대형과 소형 두 가지로 추진되는 프라임 사업은 사실상 대학 구조조정 사업입니다. 취업률이 낮은 인문계 정원을 줄여서 공대정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부 차관이 기자회견에서 “일부전공은 공급과잉이고, 공학 같은 일부전공은 사회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수요가 있는 쪽으로 변경하는 것이 옳다”는 말에 단서가 있습니다.
요즘 크고 작은 사립대학에서는 문과대 (인문대) 개편이나 폐지 혹은 축소가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는 “문송합니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공대 졸업한다 해서 취업이 잘 되는 것도 아닙니다. 길어봐야 10년 정도 다니면 잘린다는 생각에 입사지원도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또한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신입사원들마저 감원공포에 시달리는 형편이기 때문에 2-30만 청년들이 죽어라고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나라가 이런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인지, 참 아득하기만 합니다.
7) 하지만 어쨌든 2016년 병신년이 밝았습니다. 새해덕담을 조금 해주셨으면 합니다.
신년덕담, 참 좋은 말씀입니다. 누구나 새해 첫날 이런저런 다짐과 꿈을 마음속에 새깁니다. 작년에 이루지 못한 일과 꿈을 이루게 해달라고 힘차게 떠오르는 해를 향해 간절히 기원하기도 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저도 몇몇 성현의 거룩한 말씀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요즘처럼 세상인심 각박하고 경쟁이 치열할 때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리셨으면 합니다. <도덕경> 제67장에 “아유삼보 (我有三寶), 지이보지 (持而保之) 일왈 자 (一曰 慈) 이왈 검 (二曰 儉), 삼왈 불감위천하선 (三曰 不敢爲天下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역해보면 “내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어서 그것을 간직하여 소중히 지키고 있다. 그 하나가 자애로움이고, 그 둘이 검약이며, 그 셋이 천하를 위해 감히 나서지 않는 것이다.”
노자는 자애와 검약 그리고 감히 나서지 않음을 세 가지 보물로 일컬었습니다. 권세와 명예 그리고 물욕으로부터 벗어나면 평안과 건강이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오는 4월 13일 국회의원 총선이 있습니다. 유능하고 걸출하며 자애로운 분들이 대거 당선되어서 우리나라를 이끄는 동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논어>에서 공자가 주창한 말씀으로 새해덕담을 맺고자 합니다. 자하라는 제자가 거보의 읍재, 그러니까 군수가 되고 나서 정치를 묻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은 간결합니다. “무욕속 (無欲速) 무견소리 (無見小利). 욕속 (欲速) 즉부달 (則不達). 견소리 (見小利) 즉대사불성 (則大事不成). (<논어>, 자로 편.) 번역해보면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을 돌아보지 말라. 서두르면 이르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돌아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
“빨리빨리!”라는 말에 현혹돼 살아가는 21세기 한국인들이 깊이 새겨들을 만한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더 여유 있고 넉넉하게 살아봅시다. 하늘도 보고, 바람도 보고, 별도 달도 보면서 2016년 느긋하게 ‘호시우행’ 하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새해를 맞이 하는 말씀, 잘 새겨 읽었습니다. '지성을 통한 자기 해방의 교육사'를 쓸 수 있을까요? 칸트와 페스탈로지는 '가르치는 일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가능하다고 했답니다. 교육이 예술이 되는 그런 시스템은 수 세대를 거쳐 차곡 차곡 쌓이고 세련되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기초와 근본에 대한 생각을 아예 접어두고 눈에 보이는 것만 갈아끼우려는 조급증은, 우리 국민의 고유한 성격인지, 우리 권력엘리트의 야만성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되돌아올 수 없는 첫 발걸음을 내 딛고 그리고 그 길로 한결 같이 가야 할 터인데, 저 자신한테 그런 정신적 강인함이 있는지를 근심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전제조건이 가능해야 하겠군요. 첫째, 대단한 지성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 것, 둘째는 자기로부터 해방이 가능한 사람이어야 할 것, 세 번째는 교육의 역사에 해박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어 보입니다. 차고 넘치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름의 번뜩이는 지성을 소유한다는 일, 생각보다 어려워 보입니다. 더욱이 인간은 본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탐진치)'으로 가득찬 부족한 중생인데, 그런 자아로부터 해방을 꿈꾼다는 게 얼마나 가능할런지요?! 또한 교육사라는 것이, 문외한인 제가 생각해봐도, 태곳적부터 축척되었을 것이 자명해 보이는데, 흐음~... 한 번 선생님께서 도전해 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