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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북쪽 기슭 한옥마을이 들어선 필동(筆洞)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흐르는 계곡과 천우각이 있어서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이름 있던 곳이다. 또한 청학이 노닐었다고 하여 청학동으로도 불렸다. 청학동은 신선이 사는 곳으로 불러질 만큼 경관(景觀)이 아름다워 한양에서 가장 경치 좋은 삼청동(三淸洞), 인왕동(仁王洞), 쌍계동(雙溪洞), 백운동(白雲洞)과 더불어 한양 5동(漢陽五洞)으로 손꼽히던 곳이다.
이곳의 옛 정취(情趣)를 되살려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골짜기를 만들고 물을 흐르게 하였으며, 정자(亭子)를 짓고, 나무를 심어 전통정원(傳統庭園)을 조성하였다. 약 2,400평의 대지 위에 서울의 팔대가(八大家) 중 하나였던 박영효 가옥(朴泳孝 家屋)으로부터 일반평민의 집에 이르기까지 전통한옥(傳統韓屋) 다섯 채를 옮겨놓았다.
이들 한옥들에는 집의 규모와 살았던 사람의 신분에 걸맞는 가구(家具)들을 예스럽게 배치하여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직접 보고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전통공예관(傳統工藝館)에는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로 지정된 기능보유자들의 작품과 관광기념상품을 늘 전시하고 있다(자료 : 한옥마을 홈페이지).
필자는 오래 전에 남산골 한옥마을이 문을 열었고 명절 때마다 뉴스를 통하여 이를 본 적은 있었지만 정확하게 그 위치를 몰랐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니 한옥마을은 서울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충무로역 3번 출구 "한국의 집"바로 옆에 소재하고 있어 찾기가 이외로 매우 쉬웠다.
남산골한옥마을을 알리는 정문을 지나자 각종 이벤트 행사가 진행되고 있어 의아하게 생각하였더니 바로 단오절(6월 19일)을 이틀 앞두고 서울단오민속축제가 2일 동안(6.16-6.17/토-일)열리고 있는 중이었다. 단오는 설날, 추석, 한식과 함께 우리 민족 4대 명절 중의 하나이다. 이를 두고 가는 날이 장날이며 금상첨화라고 해야할 것이다. 광장 한켠에서는 그네뛰기를 하고 있는데 천우각 앞 중앙무대에서는 각종 조명기구와 음향기기만이 앞으로 있을 공연을 미리 예고해주고 있다.
천우각 뒤쪽의 연못에는 잉어가 떼를 지어 한가로이 노니는데, 천우각 뒤로 우뚝 솟은 남산 N타워가 한옥마을에서 날린 고무풍선에 매달려 휘날리는 태극기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연못 곁에 자리잡은 <순정효 황후 윤씨 친가>에 들어서니 "단오음식 자연먹거리전"이 열리고 있다. 음식을 예술작품처럼 빚어 놓아 집 구경보다는 음식을 감상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이웃에 위치한 <전통공예관>에서는 여러 가지의 공예작품이 전시 판매되고 있다.
<해풍부원군 윤영택 재실>에서는 "조선시대의 부채"를 전시하고 있는데, 파초선, 태극선, 합죽선, 호랑이 민화부채, 꼬마태극부채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특히 전통한지를 재료로 만든 익살스런 인물상을 제작하여 눈을 즐겁게 하였다.
<박영효 가옥 안채>에서는 "서울의 지명 및 동명에 얽힌 전설과 설화"를 설명한 안내판이 전시되어 있다. 왕십리와 수송동, 경복궁과 종로, 역삼동 묘터, 도화동 등을 인형과 더불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다른 방에는 사극에서 많이 보아오던 전통가마가 놓여 있었는데, 연지분지 곱게 바른 아리따운 신부가 방긋한 미소를 지으며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오위장 김춘영 가옥>에서는 단오날 액을 물리친다고 하여 문기둥에 붙였던 단오부적을 전시중인데, 이런 방면에는 지식이 없는 필자는 쇠귀에 경 읽기이다.
전통찻집이라는 현판이 불은 가옥에 들어가 비빔밥 한 그릇으로 허기를 채운 후 정오부터 시작된 <다울국악예술단>의 민속공연을 지켜보았다. 먼저 아름다운 여성이 나와 장고춤으로 분위기를 잡은 후, 중년의 여성이 혼신의 힘을 다해 구성진 노래 가락을 뽑았다.
그 다음 진행된 심청전의 뺑파 창극은 공연 내내 청중의 배꼽을 빼게 만들었다. 남도 민요를 마지막으로 1시간 동안 계속된 공연이 끝났다. 공연 중에도 그네에서는 한 여성 출연자가 하늘 높이 공중 그네를 뛰어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다음 공연이 2시부터 시작되므로 후문방향으로 올라갔다. 청류정(聽流亭)을 지나자 일석 이희승선생 학덕추모비가 보였다.
그 위로 올라가니 <서울천년 타임캡술광장>이 나타났다.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맞이한 오늘날의 시민생활과 서울의 모습을 대표할 수 있는 문물 600점을 캡슐에 담아 400년 후인 서울 정도 1000년(2394년)에 후손에게 문화유산으로 전하고자 1994년에 매설한 것이다.
후문 근처인 관북루(觀北樓)에 오르니 이름 그대로 남산 북쪽의 시가지뿐만 아니라 맑은 하늘아래 북한산과 도봉산의 스카이라인이 선명하게 조망되었다. 공연장과 한옥마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지만 이곳 후문까지는 거의 찾는 사람이 없어 필자를 비롯한 불과 5-6명의 선택된 사람만이 누각의 난간에 앉아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잠시동안이나마 신선이 된 기분을 만끽 할 수 있었다.
2시부터 시작되는 공연을 보기 위해 내려오다가 카메라맨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유심히 보니 단오절인기 프로그램인 물창포에 머리를 감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다섯 명의 여자 어린이가 저마다 물동이를 앞에 두고 머리를 풀어 감는 동작을 하는데, 한 언론사 사진기자가 아이들에게 많은 주문을 하였다. 이를 앞에서 지켜보는 엄마는 자신의 딸자식이 예쁘게 사진이 찍히도록 감독처럼 코치를 하고 있었다.
필자도 자리를 비집고 카메라를 들이댄 채 몇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보급용 카메라로 찍다보니 평범한 사진을 얻고 말았다. 이를 보면서 느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통 언론에 보도되는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하여 사진기자들은 매우 피나는 노력을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리고 어린이들도 나중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좋은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하기 위해 출연진과 감독이 벌이는 치열한 싸움이 눈앞에 선했다.
먹거리 장터를 지나 광장으로 내려오니 2시부터 <한국정통예술단>의 외줄 타기 공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남자어린이가 나와 무대 위의 해설가와 함께 재담을 주고받으며 쉬운 것부터 시작하여 건너가면서 공중으로 뛰어 오르는 등 점점 어려운 기술로 이어졌다.
다음에는 나이 지긋한 남성이 출연했는데 이 분이 바로 영화 "왕의 남자"에서 줄타기로 이름을 날렸던 남자주인공 감우성의 대역으로 출연했던 권원태 줄타기명인이었다. 그는 외줄 위에서의 몸놀림이 방금 들어간 어린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줄을 타며 두 다리를 하늘 높이 쳐든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우뢰와 같은 박수 속에 관중이 주는 팁을 허리춤에 챙긴 후 외줄 위에서 공중으로 높이 솟아 180도를 회전하여 뒤로 돌면서 사뿐히 줄에 걸터앉는 묘기는 그야말로 줄타기의 진수였던 것이다.
비디오 카메라를 든 언론사 기자도 열심히 좋은 영상을 담으려고 눈을 부라렸고, 관중석에서는 색동옷을 입은 마스코트 둘이 어린이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기에 사진작가(필자와 같은 초보 아마추어 포함)들도 수시로 장소를 옮기며 좋은 작품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차양이 없는 계단에 앉은 관중들은 뜨거운 태양 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후끈한 열기를 녹이고 있었다.
오후 3시부터는 <풍장 21 예술단>의 전통 타악공연이 시작되었다. 남녀 6명이 한 조가 되어 장구와 꽹과리를 연주하였다. 뒤쪽의 연못을 잠깐 살펴보고 무대 옆으로 오니 다음 차례 출연을 대기중인 예쁜 여성이 모델이 되어 사진사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다. 탤런트 빰칠 정도의 미인을 보자 필자도 얼른 카메라를 꺼내 몇 컷을 찍었지만 인물용 렌즈로 갈아 끼울 틈이 없어 평범한 사진을 얻고 말았다.
방금 모델이 되 준 아가씨를 포함한 두 명이 장구춤을 추고 나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미녀가 우리가락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북을 치는 것을 끝으로 4시까지의 공연이 모두 종료되었다.
한 시간 동안 택견시범이 있는 후 저녁 공연은 7시까지 계속된다고 하였지만 사진을 찍을 욕심으로 아침 10부터 무려 6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나니 이제는 더 있을 기력도 없어 한옥마을정문을 나섰다.
왼쪽에는 충정사라는 이름의 절이 있는데 하나의 큰 건물에 방향을 달리하여 대웅전, 설법전, 비로전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것이 매우 특이하였다.
지하철 구내로 들어서며 오늘 하루 한옥마을에서 감상한 뜻깊은 전시회와 공연을 회상해 본다. 이곳에서는 4대 명절뿐만 아니라 입춘, 정월대보름, 동짓날에도 각종 행사를 진행하므로 평소는 물론 특정 세시절(歲時節)을 맞아 방문할 경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과 같이 이 마을을 찾는 외국인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입장료가 없다는 점이 큰 매력 중의 하나였다.(2007. 6.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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