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소견으로는 위빠사나를 포함한
불법수행의 방법론에 있어
아비달마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나는 걸로 생각됩니다.
(우리 까페에서 있었던, 지금도 있을, 수행법에 대한
일련의 토론 내지 논쟁도 이와 조금은 관련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장 가깝다고 하는 남방불교에 있어서도
(그 주석적인 전통이나 아비담마에 관한 현대의 논문들에서조차)
'abhidhamma'는 '부처님 법에 대한 (연구)'란 뜻을 넘어
'최상의 법(승의법,paramatthadhamma)'이란 의미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David J. Kalupahana는
'A History of Buddist Philosopy'
(김종욱 역, <불교철학사>,시공사,1996. pp238-239) 에서
팔리 논장에 추가된 마지막 부분인 <kathaavatthu,논사>에서조차
절대주의(paramattha, 승의)적이고, 실체주의(savbhaava, 자성)적이며, 환원주의적인 이분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불법에 대한 해석에 이런 태도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 비실체성(무아)과 의존적 일어남(연기)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아비담마의 내용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고오콤의 책을 읽으면서 이런 절대주의적인 경향이 느껴졌습니다. 이는 부처님이 초기에 설하신(숫따니빠따, 쌍윳따니까야 등)
무아나 연기법과는 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초기경전은 일상적 용어를 주로 구사하고, 아비담마책은 상당히 철학적인 용어를 구사하는데서 오는 차이점도 있습니다)
허나,
이 책이 좋은 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오온, 십이처, 마음 등에 대해 아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설명은 저자도 말하듯이 이론을 위한 이론(철학)이 아니라 실천수행을 위한 앎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비달마적인 불법 해석이 부처님의 본래 종지를
올바로 드러내지 못할 수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비판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불경원전 자체도 사실 역사적 산물이고,
따라서 아비달마적인 체계를 깔고
주석적으로 쓰여진 경전이 많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제 소견으로 아비달마 시대에 부처님의 법을
소위 아비달마적으로 해설한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제자이고 수행자들인 그들 논사들의 불법해석을
열린 마음으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실천수행의 뗏목으로 말입니다.
아무튼 아비달마적 교리요강서가 불경만 못하다 하더라도
가슴을 열고 불법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눈푸른 수행자에게는
중요한 자료가 되리라 생각하면서 이 책을 띄웁니다.
책으로 엮기 좋게 B5크기로 편집해서 올립니다
이 책 번역서가 홍종욱 역, <마음은 이렇게 움직인다-윤회의 길, 열반의 길>, 경서원, 2001. 8월에 나왔습니다.
참고하면서 영어공부도 함께 하시면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