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제27회 부산연극제 경연작 '밴드래기 아기' 공연을 마친 부산연극제작소 동녘 배우들이 무대에 걸터앉아 '관객과의 만남'을 갖고 있다. | |
"희곡을 쓰신 우혜선 배우께 묻겠습니다. 어떤 경험으로 작품을 쓰게 되셨나요." 지난달 30일 제27회 부산연극제 첫 경연작품 '호모 에로티쿠스'(교사극단 한새벌) 공연이 끝난 부산시민회관 소극장. 객석에서 제법 진지한 질문이 나왔다. 질문이 어려웠을까. 우 씨가 안절부절못했다. 잘못을 저지른 듯 불안해 하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어렵게 입을 뗐다. "아이구~, 교감선생님. 여기까지 오셨네요."
배우들이 현직 교사인 교사극단답게 이날 '관객과의 만남'에서는 재미있는 장면이 많았다. 남 노인 역을 맡은 배우 곽상국 씨는 관객을 '강제 동원'했다가 딱 걸렸다. 한 젊은 관객이 꼭 할 말이 있다며 손을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곽 선생님께 배웠던 제자인데요, '꼭 와야 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여자친구도 두고 왔습니다. 선생님 저 왔어요!"
부산연극제만의 묘미 '관객과의 만남'이 관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무대에서 객석으로 향하는 일방적 전달이 아니라, 객석에서 무대로 반응하는 쌍방향적 소통이다. 영화에서는 배우가 영화 속 의상과 분장 그대로 스크린을 뛰쳐나오기란 불가능하다. 연극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배우들은 연기를 마친 뒤 그저 무대 적당한 곳에 주저앉기만 하면 된다.
'관객과의 만남'은 배우와 친해지는 기회도 제공했다. '호모 에로티쿠스'에서 "꼴리네~"를 히트시켰던 황인업(박 노인 역) 배우는 실제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꾸부정한' 연기로 박수를 받았다. 황 씨를 아는 듯한 관객이 나이를 말하자 객석이 뒤집어졌다. "30대 나이에 노인 역을 소화하신 게 놀랍네요." 황 씨는 "제가 원래 나이가 들어 보입니다"며 객석을 진정시킨 뒤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두 달간 박 노인 역에 빠지다 보니, 진짜로 허리도 굽어지고 종아리도 땅기더라구요."
다음날 부산문화회관 중극장 '밴드래기 아기'(부산연극제작소 동녘) 공연 뒤풀이 역시 내내 유쾌했다. 한 관객은 양효윤(홍순이 역) 배우에게 "저도 목에 뭐가 났는데 치료해주실 수 있나요"(극 중 홍순은 곰보신랑과 문둥이를 낫게 한다며 뽀뽀를 한다)라며 기어이 양 씨를 끌어안는 데 성공했다. 교복을 입은 청소년 관객은 장독2 역을 맡은 백승헌 배우에게 "아까 넘어지신 게 설정인가요"(공연 중 장독2는 등장하면서 소품에 걸려 넘어져 무대를 뒹굴었다)라고 짓궂게 묻기도 했다.
동녘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질문도 나왔다.
"예전에 동녘의 '바리데기'를 보고 반해서 또 왔는데요,
'밴드래기 아기'도 한국적인 정서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신경을 쓰신 부분이 있나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심문섭 연출가가 직접 무대에 올랐다.
"굿하는 장면이나 라이브로 연주한 음악 부분에서
우리 정서를 현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이런 고민을 고구려밴드가 해결해줬고,
결과적으로 좋았던 것 같아요."
두 작품의 '관객과의 만남'은 우려됐던 어색한 분위기와 달리 웃음과 진지함을 되풀이하며 예정된 시간을 모두 넘겼다.
부산연극협회 강성우 사무처장은 "운영 초기 지정 사회자를 뒀다가, 올해는 극단 측이 직접 '관객과의 만남'을 끌어나가게 하면서 호응이 더 커졌다"며 "매 작품 첫 공연을 찾으면 누구나 배우와의 소통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