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문
2014년 4월 16일, 우리 단원고등학교 교육가족은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꽃 같은 아이들을 잃는 참사를 겪었습니다. 진도 앞바다가 울었고, 하늘과 땅이 눈물로 젖었습니다. 우리 사회 모든 사람들이 같이 아파했고, 고통에 동참해 주었습니다.
이제 꽃 같은 아이들이 떠난 지 1년 9개월이 지났습니다. 참사 당시의 슬픔과 고통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갔고, 언론이나 사회적 관심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적 관심이 멀어졌다고 해서 희생된 학생들, 유가족, 단원고등학교가 입었던 상처가 치유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이어지는 유가족의 절규와 눈물, 절망과 분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그 많은 시간을 견뎌오신 유가족 슬픔에 공감하며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기적적으로 생환해 돌아와 학교로 복귀하여 친구와 함께 오지 못했다는 자책감, 참사에 대한 공포 등의 어려운 역경을 견디고 이제는 졸업을 한 학생들의 아픔과 상처,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던 부모님들의 눈물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또한 참사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상 초유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진도와 안산, 학교를 오가며 묵묵히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경기도교육청, 안산시청의 노력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편, 아끼는 학생들을 갑자기 잃고,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통을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생환해 돌아온 학생, 재학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교육활동에 전념해 준 학교와 선생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 동안 단원고등학교의 교육 정상화를 위해 정부, 경기도, 경기도교육청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성원과 지원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원고등학교는 여전히 다른 학교에 비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행정과 예산이 아무리 적극적으로 지원이 된다고 해도, 그것이 교육가족이 겪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 심리적 부담을 상쇄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학교에는 희생된 학생들의 추억과 흔적이 남아 있는 10개의 교실이 존치되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추모를 위한 방문객들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이제 그 10개의 교실은 세월호 참사의 추모 공간이 되었습니다.
참사 당시만 해도 이 공간은 아이들이 꼭 돌아올 수 있다는 염원의 공간이었고, 아픔과 상처를 공유하는 추모와 기록의 공간이었습니다. 추모객이 끊이질 않았고, 추모의 글이 이어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모두가 공감했습니다. 그 공간은 반드시 그렇게 있어야 한다고 공감했습니다. 사상 초유의 엄청난 참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우리는 잊고 있었습니다. 학교라는 공간에는 다른 학생들이 있었다는 점을 잊고 있었습니다. 바로 학업을 중단할 수 없는 재학생들이었습니다. 학교는 희생된 학생들만 다녔던 곳이 아니라 다른 많은 학생들이 학업을 이어가는 곳이기도 하다는 점을 우리는 잊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참사에 슬퍼했습니다. 동아리 선배와 후배, 같은 동네에서 어울리던 학우를 어느 날 갑자기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막연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도 겪어야 했으며, 자기도 모르는 새 터져 나오는 울음과 눈물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학업을 중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도 자신의 삶을 살아야 했고,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의 부모도 자식을 위한 뒷바라지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학교도 문을 닫을 수는 없었습니다. 희생된 학생들의 공간만을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학년이 지나면 아이들은 진급을 해야 했고, 신입생을 받아야 했고, 학교가 갖는 본래의 교육 기능을 멈출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14년 11월 말부터 희생 학생들의 10개 교실의 존치 여부에 대해 고민했고, 유가족들과 해결 방안을 협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방안을 같이 고민했습니다.
단원고등학교 교육가족과 유가족 간에 서로 협의하는 과정에서 논의가 되었던 방안이, 학교 내에 위치한 실내체육관인 단원관으로 희생학생 교실 공간을 이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유가족도 이러한 방안에 동의하는 의사를 표시했었습니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 교육감님은 우리보다 더 큰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유가족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고, 유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희생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교실을 그대로 존치하겠다는 결단을 내리신 겁니다.
우리는 교육감님의 큰 뜻과 결단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교육감님의 유가족을 생각하시는 마음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존치 교실이 희생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는 온전한 추모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10개의 교실에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재학생과 신입생에게도 10개 교실의 의미와 가치, 취지를 설명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학부모님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설득하는 노력도 하였습니다.
지난 1월 12일, 단원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생환해 돌아온 학생들을 포함해 87명의 학생이 졸업을 하였습니다. 희생 학생들의 명예 졸업이 함께 이루어지지 못한 점에 모두 가슴 아팠습니다.
지금 단원고등학교에서는 아직 희생학생들의 10개 교실이 아직도 그대로 존치되고 있습니다. 일부의 유가족과 시민단체에서 10개의 교실을 영구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월이 되면 학교는 300명의 신입생을 맞이해야 하는데도 교실이 여전히 존치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지난 1월 20일, 교육감님과 면담을 가졌습니다.
교육감님께서는 졸업식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10개의 교실이 존치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매우 미안해 하셨습니다. 우리는 교육감님께서 작년 12월, 졸업 때까지만 교실을 존치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울러 교육감님께서는 존치되고 있는 10개의 교실은 재학생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학교는 추모의 기능을 하는 곳이 아니라 교육 본래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교육감의 말씀에 우리는 충분히 공감했습니다.
존경하는 교육감님,
교육감님께서 저희들에게 말씀하신 사항을 조속히 이행해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합니다.
학교는 추모의 공간이 될 수 없습니다. 추모는 학교 밖에서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희생학생들을 추모하는 일에 언제든 동참할 것입니다. 다만 그 추모가 학교 안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학교는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학교는 학생이 온전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곳이어야 하고, 학부모가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10개의 존치 교실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 단원고 교육가족은 앞으로도 심리적, 정신적 어려움을 계속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은 존치 교실을 보면서, 이어지는 외부 방문객을 보면서, 종종 치러지는 추모 행사를 보면서 자신의 의도나 관심과 관계없이 심리적, 정신적 부담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학교 안에서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학습 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같은 마을에서 만나는 이웃인 유가족의 아픔을 잘 알고 있음에도 자식의 현재와 미래를 우선 생각하는 재학생 학부모로서는 많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나아가 유가족과 본의 아니게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희생 학생들의 존치 교실은 학교의 재학생들에게 돌려줄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야만 단원고등학교는 진정한 교육의 출발점을 다시 추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아픔이 크실 유가족 여러분,
유가족의 아픔을 누구보다 먼저 보살피신 교육감님,
심리적 불안감과, 죄책감, 엄숙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재학생들의 입장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단원고등학교의 교육이 정상화되고,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 단원고등학교 교육 가족 일동은, 희생 학생들의 추모를 위한 일에 언제든 마음을 같이 할 것이며, 앞으로 단원고등학교 교육의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5년 2월 2일
단원고등학교 교육가족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