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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아이들과 드라이브를 하다가 이젠 포항신항 배후 공장지대로 상전벽해가 된 흥해지역 바닷가를 지나다 보니 이십 수년전 6개월간 대간첩작전 경계 근무를 했던 곳을 찾게 되었다.
여자동기들은 내가 무슨 소리를 해도 이해가 안 될 테니까 그냥 헛소리라 생각하면 될테고 남자동기들, 특히 현역복무한 친구들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중대본부의 기동타격대 소속이있고 갓 일병 달고부터 상병달고 까지의 기간을 거의 막내 생활을 했었다. 원래 대간 경계부대에는 병력보충이 많이 되어 쫄병들이 개떼처럼 배치되지만 보름마다 꼬박꼬박 보급되던 앗세이 신병들은 전부 예하 소초에 보내지고 기동타격대에는 중대에서 꼴통들만 모아 월남전 용사였던 중대선임하사의 감시하에 사고를 치지 못하게 해 놓았으며 한 놈이 제대하면 신병으로 채워 놓는것이 아니라 다시 예하 소초에서 그에 버금가는 꼴통을 끌고 와서 병력수를 유지했으니 나는 지지리도 복도 없이 작대기 세개를 달때까지 내무실 막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걸레를 빨고 빗자루를 들고 물주전자를 나르는 것은 물론 꼴통 선임이 사고를 쳐서 모가지만 남기고 모래밭에 묻히면 삼시 세끼 꼬박 꼬박 츄라이(식판)를 날라서 그분에게 떠 먹여 줘야 하는 처지였다.
시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상병씩이나 단 놈의 손에는 물이 마를 날이 없었으니 아마도 계모의 구박을 지지리도 받던 콩쥐의 신세가 바로 내 신세 였을 것이다.
하여튼 조또 군대는 줄을 잘 서야하는 법인데.....
칠포해수욕장에서 해안가를 따라 포항으로 이어지는 도로가에서 백여미터 남짓 떨어진 소나무 숲속에 중본 병사가 짱박혀 있었고 도로가에는 위병소가 다음 사진처럼 위치해 있었다.
위장막이 쳐져 있는 저 위병소에는 선임이 라디오를 들으며 멍때리거나 야담과 실화와 같은 멋진 잡지를 보시면 나는 졸라 쫄아서 어느 방향에서 순찰차가 오나 귀를 쫑긋거리고 부동자세를 취하며 몇 시간을 보내야 했다. 300미터쯤 떨어진 고개마루를 막 돌아내려오는 차의 소리나 헤드라이트의 특징만으로도 군용 찝차인지를 대번에 알아야 했고 그게 말똥가리 두개를 달고 썬글라스를 끼고 개똥폼 잡는 대대장이 탄 대대 4호차인지, 아니면 그냥 군기순찰 나오는 배가 남산만한 주임상사 닷지차인지 즉각 파악할 수 있어야 했다.
이 위병소 뒤에는 꽈자 뿌스레기 몇 개만 놓고 있던 할매집이 있었는데 짬밥이 좀 차고 나서 그 집에 신속히 갔다 올때는 올가즘을 느끼기도 했었다.
위병소를 지나 중본 병사로 들어가면 우선 왼편에 주계(타군에서는 식당이라 하는데 우린 주계라고 부른다)가 있었다.
주계병은 내가 군생활 동안 본 가장 좃같은 새끼들이었으며 변태성욕자들이었으며 성격파탄자였다. 예하 소초와 달리 두명의 주계병이 있었는데 전라도 출신의 성격파탄자 선임은 주로 국자로 국의 간을 맞추는 일을 하거나 나같은 쫄병을 그 국자로 대가리를 찍곤 했다. 그러다가 그것도 심드렁해지면 한동안 모아놓은 정부미를 자루째 메고 나가서 그 할매의 가게에 가서 술과 라면으로 바꿔 먹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밤 늦게 술에 째려 들어온 선임하사의 비상소집에 빵꾸를 내는 바람에 산속 모래땅을 스스로 파고 그 속에 들어가서 손수 묻혀야 했고 어느날은 방탄복을 뚫는 특수부대 모기들에게 온 몸을 홀딱 내주며 철사로 손이 묶여 소나무를 안고 있어야 했었다.
나는 쫄병이었으니까 사고를 칠 짬밥도 못 되었고 기회가 온다 한들 그러지 않았겠지만 국가에서 내린 전투용 군량미를 모아 팔아서 술을 사 먹다 걸린 그 선임이 홀딱 벗고 철사로 손목과 발목이 묶여 꼼짝하지 못한채 벗은 온 몸을 모기에게 홀딱 내어주던 그를 보면서 남자에게 첫 순결을 바치는 여자가 저런 심정일까 싶었다. 더구나 해가 질때 쯤이면 그분의 벗은 온 몸에 액체 모기약을 정성껏 발라 주는 것도 내 몫이었으니 시바 내가 호모도 아니고 어떻게 그 짓거를 했을까 싶다.
그해에는 단 하루도 빼지 않고 7-8월 두달 동안 비가 내렸는데 억수같은 그 비를 밤새 홀딱 벗은 몸으로 맞는 그 선임을 보면서 사람의 목숨이 생각보다 질기다는 것을 알았고 동시에 한 여름임에도 찬 비를 맞아 오돌 오돌 떠는 그의 몸에 돋은 소름을 보면서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개쉐이는 절라 갈굼의 마귀였다......
그래도 주계병 중에 한 놈은 나보다 몇 기수 아래여서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놈에게 광선을 쏘면 나에게도 가끔씩 기합이 들곤 했다. 그 기합의 증거가 정성스레 튀긴 닭다리 였으니 원래 해병대는 맞선임을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증명된 셈이었다.
누가 언제 그렸는지 모를 벽화가 남았다.
스마일이라니.... 도대체 군대서 뭘로 웃어야 한단 말인가....
그땐 군인이 왜 아파야 하는지, 웃을 일이 뭐가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해에는 왜 그렇게 이면수어가 많이 보급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해는 꽁치만 줄기차게 나오더니...
이면수어국, 이면수어 튀김, 이면수어 조림, 이면수어 찜....... 하여튼 지금도 난 마누라가 이마트에서 떨이를 한다고 이면수어를 사겠다고 조또 모르고 덤벼대면 당장 이혼하자고 한다.
마누라는 내가 왜 그렇게 이면수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하는지 모를 것이다.
육개월 내내 이면수어만 먹으며 보냈던 내 심정을 돈가스와 파스타와 체리소주를 홀짝 거리며 사회에서 보냈을 지가 어떻게 알겠는가.....
아마 주계의 3대 원리였던가 보다.
"깨끗하게, 청결하게, 맛있게...."
깨끗하고 청결한 것은 말도 못하게 그러했다.
그러나 맛있게라니..... 시바 3년 묵은 정부미와 이면수어와 배추가 비싸다고 양배추로 담근 김치로 어떻게 맛있게 조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장금이도 군대 보내봐. 그게 가능한지....
이건 그 무시무시한 월남참전 용사가 하루 종일 짱막혀 자고 난 뒤 심심할때쯤 우리를 해괴하게 고문하던 선임하사 벙커인 동시에 방위병 숙소였다. 쳐다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부들 부들 떨게 만들던 그와 같은 인간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더 이상 만나 보지 못했다.
월남전에서는 만도칼로 베트콩 모가지를 잘라 히죽 웃으며 사진을 찍곤 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마 그 인간이라면 그보다 훨씬 더한 짓도 했을 것이다. 으... 지금도 꿈에 나올까 무섭다.
대신에 저 건물안에는 매일 아침에 들어와 주간 근무를 서다가 저녁때면 돌아가곤 했던 주간근무 방위와 이틀에 한번씩 들어와 야간 근무를 서던 야간근무 방위들이 우글거렸다.
우리 친구들 중에도 비교적 짧게 집에서 도시락 사 다니며 방위복무로 군역을 해결한 경우가 많을텐데 그들도 나름대로 애환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병방위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이가 얼마건 집에 갈 날이 얼마건 무조건 욕으로 시작해서 새디스트적인 신체 괴롭힘으로 막대하던 우리의 모진 고문을 겪어야 했던 그들은 얼마나 자신들의 운명을 저주했을까 싶다.
나도 나보다 5년이나 위였던 고등학교 선배가 한의대를 마치고 방위복무 중이었는데 그에게도 예외없이 개와 관련된 용어를 쓰며 대했다. 그렇지만 그가 소집해제 신고를 하고 떠나던 그날은 정중하게 본의가 아니었음을 사과하고 선배님이라고 깎듯이 호칭했었다...... 지금은 경기도 어느 곳에서 한의원 원장을 하시는 그분도 나를 용서 할 것이다.
분초장실이란 패찰이 달려있지만 그 때는 선임하사실이었다.
선임하사 그 인간은 느지막히 일어나 주계병이 냉큼 대령한 아끼바리 쌀로 지은 특별식을 깨작거리며 밥맛이 없다고 온갖 짜증을 내면서 자신의 전용 순찰용 닷지차를 타고 시내 다방에 가거나 마누라에게 가서 못다푼 육욕의 정을 나누는 날이 허다했고 그러다가 지치면 비상소집을 걸어 우리를 무적으로 만들어 주곤 했었다.
나는 정말이지 그가 나폴레옹의 화신이 아닌가 싶었다. 프랑스에 살았다던 나폴레옹은 '내 사전엔 불가능은 없다!'라고 씨부렸다던데 사실 그 말은 우리의 선임하사에게 꼭 어울리는 말이었다. 아무리 꼴통이 있더라도 3일 안에 충성스럽기 그지 없는 용사로 탈바꿈 시켜 그에게 절대 충성맹세를 하게 만들었으며 스무명의 병력으로 야삽과 곡굉이 만으로 단 한나절만에 산을 깎아 국제규격의 족구장을 만들어 내게 했다. 정말 신비스러운 것은 어느날 상급부대의 검열을 무사히 마치고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우리를 보고 산속에 버려진 콘크리트 전봇대를 두개 뽑아 오게 해서 그것으로 빨렛줄을 만든 가공할 그의 전투력이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을 우리 동기중에 전봇대를 삽으로 뽑아 어깨에 메고 산을 내려와 50미터 간격으로 다시 심고 유격용 자일을 메어 극한의 빨레줄을 만들어 본 놈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마 영천에서 포크레인 신이라 불리는 종인이 조차 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버려져 쓸모 없이 되어버려 도대체 무슨 용도로 사용되었을지 추측하기 어렵지만 이곳이 그땐 탄약고였다.
이중으로 쳐진 윤형철조망을 열고 들어가면 원시적인 경보장치가 상황실과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목제 팔레트 위에는 여러개의 나무상자가 있었으니 그 속에는 각종 탄약들, 소총탄, 기관총탄, 81미리 박격포탄, 크레모아, 수류탄 등등이 고이 누워 있었다. 마음씨가 천사같았던 조씨 성을 가진 선임을 따라 탄약을 점검하러 저기에 들어갈때마다 이걸 털어서 확 터뜨려 버릴까 생각을 했었다.... 잘 참았다.....
이 탄약고 뒷편 산은 정말이지 나에게 M60 기관총에 대한 지식을 속속들이 알려준 배움의 터전이었다.
애초에 난 소총병이어서 기관총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왜 그랬는지 그해에는 기관총 사격대회에 차출되어 두달동안 뺑이를 쳤다. 밤새 근무를 하고 나면 오침이 보장된다던 국방부 지침은 개쓰레기처럼 버려지고 아침만 먹고 나면 기관총 한 정씩을 안고 군산 출신인 선임을 따라 쫄래 쫄래 저 탄약고 뒷편으로 갔다.
뽀샤시한 그녀의 온 몸을 혓바닥으로 정성스레 애무하듯 나에게 할당된 기관총을 30분에 걸쳐 구석 구석 청소하고 나면 나를 비롯해서 세명의 쫄병은 선임 앞에 판초를 펴고서 수건으로 눈을 가린 다음 분해결합 시범을 보였다. 나중에는 40여초만에 완벽하게 분해결합을 해 내던 내 실력에 내가 감탄해서 정말이지 내가 이 기관총을 만든 호치키스라는 놈보다 더 잘 다룰 수 있다고 착각했었다.
병기 청소와 분해결합 시범을 끝내고 나면 이론 과업을 진행했다. 20년도 더 훌쩍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 배운 기관총 지식을 잊을 수가 없다. 10.432킬로구라무, 진내사격, 엠포차량장치대 어쩌구 저쩌구.......
백령도에서 사고를 치고 포항으로 전출되어 온 군산 출신 선임은 우리 셋을 일렬로 꿇어 앉혀 놓고 항상 문제 내기를 즐겼다.
졸리우는 눈을 가늘게 뜬채 먼산을 바라보면서 들리듯 말듯 지나가는 소리로 한번 휘딱 기관총 특성과 재원, 운용방법을 읊고 난 후 하나 하나 되짚어 가면서 우리의 이해와 암기력을 점검했다. 만약 제대로 못하면 반짝거리는 쇠로 된 기관총 개스활대로 철모를 벗은 우리 호박통을 사정없이 내리 찍었다. 다만 나는 거의 맞이 않았지만 울산의 어느 삼계탕집 아들이었던 선임은 정말이지 처절하게 맞았다. 그는 원래 병과가 기관총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암기하지 못하는지 불쌍해 보였다.
이론 과업이 끝나면 조총훈련이었다.
조총훈련이란 기관총을 실제 운용하는 연습이었는데 총의 거치에서 각 사격별 조치에 이르기까지 혓바닥 빠지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것도 심드렁해지면 드디어 철수 훈련을 마지막으로 진행했다.
철수 훈련이란 기관총 교범에는 전혀 없지만 군산 선임이 독자적으로 창안한 새로운 개념의 전투 형태였으니 소위 토끼기 였다.
10킬로가 넘는 기관총을 어깨에 얹고 우선 쪼그려 뛰기를 200개씩 시켰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지치면 그 상태에서 800미터 밖에 있던 해변 초소를 찍고 돌아오는 선착순을 시키며 그는 산 중턱에서 우리 셋의 미친 짓거리를 지켜 보곤 했다.
그 무거운 총을 메고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땅을 왕복으로 뛰어 갔다 오면 참말로 뒤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다만 해병은 기수였으니 늘 최종 100미터 앞까지 일등으로 들어오던 나는 선임이었던 두 사람 모두에게 선두를 양보해야 했으니 그것도 그 군산선임이 눈치채지 못하게 마치 일사병에 걸려 쓰러질듯 모션을 취하며 3등으로 쳐져야 했다. 하지만 선임은 모든 걸 간파하는 법이었고, 그런 우리의 꼼수를 넘길 분이 아니었다....
어쨋든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집의 아들이라던 그 선임도 가끔 우리를 감동시키는 일도 했으니 특히 기합든 주계장 선임이 간식으로 튀겨준 건빵을 우리에게 하사했는데 그냥 주시지 않고 모가지를 꺾어 하늘을 보게 하고 입을 헤 벌리고 있으면 하나씩 톡톡 던져 넣으셨다. 그리고 우리가 맛있게 냠냠 먹는 걸 확인하면 자신도 팔짝 팔짝 뛰며 좋아했고 기분이 더 좋아지면 군대오기 전 자신의 나이트클럽에 온 여자들을 따먹던 무용담을 침 튀기며 해주곤 했다. 그는 그때 요즘 얼굴은 못생겼지만 인기를 끌고 있는 추사랑인가 뭔가 하는 아기의 미소처럼 순진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아 힘들다. 좀 쉴란다.
첫댓글 글을 올리려면 만인이 즐거워할 야기들을 올리든가 맨날 군대 야기냐.여기가 군카페야? 적당히 좀 하셈. ㅎㅎ
참고로 칭구들 무지 보고픔.슬퍼~
좀만 기다려.
군대서 불륜 아줌마 아저씨 잡은 이야기 해주께...
@뱀딸기 산딸기 모야. 그런것도 있어? ㅋㅋ 진짜 세상 요지경이다.ㅋ~~
@지니여우 무장공비 침투하는 걸 잡으라고 고글이라는 야간투시망원경을 주거든. 그걸로 간첩대신 철없이 바닷가 구석에 연애하러 오는 아지매를 많이 봤다 아이가. 그런 행동을 브와여리즘이라던데 우리말로 옮기면 훔쳐보기, 혹은 관음증이라 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