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데카르트-뉴턴 모델
역사적으로 인간이 동물과 크게 구별되지 않았던 시대에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이 없이 본능에 따라 살았을 것이다. 적어도 동물에게 생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고 본다면.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즉 인간이 비로서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최초로 등장한 생각의 틀거지는 ‘신화적 사고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본능에 따른 행위가 절대자의 대리인(제사장)에 의해서 주어지는 금제나 강제에 따라 거부되거나 강화되는 행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다 안정적으로 집단적으로 생존을 실현하는 관점에서 볼 때 신화적 사고방식에 따른 실천행위는 본능에 따른 실천행위보다 우월했다. 신화적 금제나 강제는 일정한 범위내에서 반복성을 갖는 자연현상을 반영하는 직관에 기초하고 있는 측면(부분)이 있었기에 생존의 가능성을 향상시키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일부분의 성공’은 미래에 대한 예측을 기반으로 하여 형성된 것으로 어느 정도 최소한의 자연과학(예측)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었기에 본능에 따른 실천행위보다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로 신화적 사고방식은 본능에 따른 아무 생각 없음보다 우월한 사고방식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으며, 지배력(권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주류를 형성하던 서양의 신화적 사고방식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 ‘자연철학적 사고방식’으로 대체 되었다. 자연철학의 가장 강력한 특징은 자연과학적 사고방식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고, 또 실질적으로도 자연과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신화적 사고방식의 극히 일부분을 차지하던 직관에 기초한 예측력이 자연철학적인 합리적 논리적 사유방식에 따라 도출되는 보다 정교하고 보다 전면적인 예측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그래도 여전히 지금의 과학적 지식에 비추어보면 말도 안되는 주장이나 설명들이 태반이기는 한 것 같지만.)
그리스에서는 탈레스가 세계의 근원은 신이 아니고 물이라고 봄으로써 신화적 영역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세계의 근원이 물이라는 것은 만물이 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이다. 탈레스는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익숙해진 사실들을 동원함으로써 비합리적인(?) 신화적 설명방법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탈레스의 이런 정신은 ‘자연적인 것은 자연적인 것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유의 출발점이 된다. [자연과학과 형이상학, 에코리브르, 송병옥 54]
고대 그리스 시대에 자연철학적 사고방식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은 여러 개의 도시국가체계, 빈번한 왕래, 그리고 잦은 전쟁 등의 시대적 환경 속에서 특정한 도시국가가 다른 도시국가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기기 위해서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미래를 보다 더 정확하게 예견(예측)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였다. 그러한 사소한 예측조차도 특정한 도시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예측(자연철학, 과학)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근대과학의 특징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 정신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류사회에서 유일하게 그리스 문화권에서만 현대과학의 싹이 텄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가능한 여러 형태의 사유 틀 속에서 그리스 정신만이 현대과학과 가까운 사유 구조를 보여주었다. 근대과학을 주도한 케플러, 갈릴레이, 그리고 데카르트도 모두 그리스 정신의 상징인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꿈을 이룩한 사람들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근대과학뿐만 아니라 현대과학도 그리스 정신의 소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송병옥 53]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의 결정판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이들은 과학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혹은 조금 심하게 과장해서 표현하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너무나도 뛰어난 천재여서 그 당시의 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후 천년 이상 동안 발견되고 발전할 과학적 지식까지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사유체계를 구성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천년 이상 동안 과학으로부터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도록 만들고 말았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과학적 사고방식에 기반한 자연철학의 완성,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역설적이게도 천년 이상 동안 지속된 새로운 신화적 사고방식의 출발점이 되었다.
14세기 중엽이 되자 봉건적·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의 지배에 붕괴를 가져오는 새로운 태동이 점차 강하게 나타났다. 즉, 직인들이 도시에서 기술을 개량한 것에 힘입어 사회적 생산력이 높아짐에 따라 물질적 생산과 생산물 판매에서 지도적 지위를 차지한 사람들의 부가 증가했으며 사회적 지위도 높아졌다. 그 결과, 그때까지는 주로 인간의 원죄라든가 죄로부터의 영혼의 구원과 같은 종교적·신학적 문제에 지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지식인들은 현세의 문제, 나아가 부의 소재가 되는 자연 및 직인의 기술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의 이동은 천국이나 인간의 타락과 구원 등에 대해 교회가 가지고 있는 권위에 구애받지 않고, 또한 자연 현상에 관한 성서의 기록이나 교회의 견해에 무조건 구속당하지 않고 자연 연구를 수행하고자 하는 지향을 낳았다. 그리하여 자연과 사회 전체를 신을 정점으로 하는 계층적 구조로 본 토마스 아퀴나스의 포괄적이고 통일적인 목적록적 세계관 ― 13세기 후반 이래 가톨릭 교회가 공인한 세계관이 붕괴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대에 근대 자연 과학의 기초가 다져지고 자연 과학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일찍이 보여 준 위대한 업적이 이루어졌다. [http://blog.daum.net/annabellee2/6092389]
스콜라 학파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처음 반대한 사람으로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모든 형태의 지식을 방법적으로 의심하고 나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직관이 확실한 지식임을 발견했다. 사유를 본질로 하는 정신과 연장(延長)을 본질로 하는 물질을 구분함으로써 이원론적 체계를 펼쳤다.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체계는 본유관념으로부터 이성에 의해 도출된다는 점에서 직관주의적이나, 물리학과 생리학은 감각적 지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경험주의적이다. [다음 백과사전, 데카르트]
근대정신의 요체는 무엇보다도 ‘거대한 기계로서의 자연이라는 이념과 ‘자연은 수학적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갈릴레이의 글 속에서 잘 나타난다. 타톤의 지적과 같이 이 말 한 마디로 형이상학의 중심 개념인 ‘형상’과 ‘질’을 가지고 있는 고대 그리스의 ‘실체성’을 부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연을 단지 어떤 ‘양적인 것의 현상’으로만 보게 되었다. 자연과학의 기본정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고, 특히 물리학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 [송병옥 60]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이미 결정된 것은 법칙에 근거한다. 이 법칙은 기계론의 법칙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자연적 대상의 성질이 인과법칙에 따르는 결정론적 사고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즉 결정론자들은 사물 자체의 성질이 기계적 결정론을 따르며, 이 결정론이 사유의 필연적인 원리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사유의 원리는 기계적 원리와 동일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사물이 기계적 결정론의 법칙에 의해서 파악되고 설명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된 것이다. ……. “누구든지 충분한 지식만 가지고 있다면, 경험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기계적 법칙에 의해서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이 근대적 자연관을 대표하는 명제이다. 달리 말하면 근대적 자연관은 자연의 엄격한 기계적 결정론에 따른 법칙성을 믿었으며, 이것에 근거해서 자연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 설명은 예측을 포함한 것이다. 근대과학자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현대과학자들까지도 얼마간의 수정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이런 결정론을 확신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기계론적 사고방식으로서의 근대정신은 현대과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송병옥 61]
“정신에 속하는 것으로 신체의 개념에 포함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신체에 속하는 것으로 정신의 개념에 포함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데카르트에게 자연은 기계적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고, 자연을 구성하는 물질세계의 모든 것은 각 부분의 ‘배열과 운동’으로 설명 가능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그는 “장인이 만든 기계와 자연만이 만든 각종 생물체 사이의 차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것은 식물이나 동물이 단순한 기계로 만들어졌고, 인간도 그 육체는 하나의 정교한 기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데카르트의 이런 자연에 대한 기계론적 영상은 그 이후 과학의 지배적인 모형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자연을 이해하는 근본 도식이 되었다. [송병옥 66]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정교하게 다듬어진 데카르트의 사상을 종합해서 하나의 체계로 만든 학자가 뉴턴이다. 데카르트는 17세기에 과학의 개념적인 기본구조를 만들어냈지만, 이를 수학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려는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는 자연에 대한 이론을 개념적으로 윤곽을 잡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수학적 능력이 뛰어난 뉴턴은 데카르트의 못다 이룬 꿈을 실현했다. 그는 기계론적 자연관의 완전한 수식화에 성공했고,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베이컨, 갈릴레이, 그리고 데카르트의 업적을 종합하여 하나의 큰 체계를 완성했다. [송병옥 71]
뉴턴은 그랜트햄에서 기초교육을 마친 후 1661년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했다. 당시는 과학혁명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케임브리지대학도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 체계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도 다른 학생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으나, 곧 데카르트를 접하게 되었고 우주의 모든 물리적 현상을 운동과 물질로 설명하려는 기계적 철학에 매료되었다. [다음 백과사전, 뉴턴]
<프린키피아〉에서는 기계적 철학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체계에 관한 설명이 없다. 다만 눈에 보이는 물체의 운동을 엄밀한 계량적 방법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새로운 역학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운동법칙에 근거한다. 첫째, 물체는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현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둘째, 운동량의 변화는 주어진 힘에 비례한다. 셋째,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있다. 이 운동법칙으로 구심력을 계량적으로 유도해낼 수 있었고, 케플러의 제3법칙을 대치할 수 있었다. 그결과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운동뿐 아니라 지구나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의 운동도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태양계의 모든 천체운동을 지배하는 단일한 힘을 상정하고 그것을 중력(gravitas:라틴어로 '무거움'이라는 뜻)이라고 불렀다. 이 중력(또는 만유인력)은 혜성의 운동이나 조석현상의 설명에도 성공적으로 적용되었고, 우주의 모든 물질입자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프린키피아〉의 출판으로 그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다. 대륙의 과학자들은 원거리(遠距離)작용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뉴턴의 이론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기술적인 완벽함에는 찬사를 보냈다. 영국에서는 젊은 과학자들이 곧 뉴턴의 뒤를 따랐고 그의 후원하에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그래샴 칼리지와 같은 주요대학의 교수직을 이어나갔다. [다음 백과사전, 뉴턴]
계몽주의 시대에 뉴턴의 위업에 반한 사람들이 사회적 지식에서도 뉴턴과 같은 신기원을 이룩한 인물이 되어보겠다고 애를 썼다는 점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계몽주의자들은 뉴턴이 자연의 법칙을 찾아서 자연을 통제했듯이, 사회현상도 법칙을 찾으면 빈곤이나 범죄나 전쟁과 같은 문제들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생시몽, 콩트, 헤겔 등이 역사에서 법칙을 찾아보려 시도했고, 마르크스는 역사가 계급투쟁이라는 동력에 따라 단계별로 발전한다는 그림을 그렸다. [프레시안, 박동천 칼럼]
근대과학의 급격한 발전은 중세 기독교의 신화적 사고방식을 비주류로 밀어내면서 기계론, 결정론, 과학적 확실성(예측 가능성)에 대한 믿음으로 대표되는 과학적 사고방식이 모든 학문분야에서 다시금 주류가 되도록 만들었으며 아직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분야에서 균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탈근대, 포스트모더니즘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근대적 믿음이 무너진 학문분야, 즉 기계론, 결정론, 과학적 확실성(예측 가능성)이 무너진 학문분야는 다름 아닌 물리학 분야이다.
물리학(뉴턴의 고전물리학)은 기계론, 결정론, 과학적 확실성(예측 가능성)의 종합판 결정판이었으며, 동시에 근대적 믿음을 무너뜨리는 선봉장이었다. 1905년부터 등장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슈뢰딩거 등의 양자역학 (현대물리학)은 뉴턴의 고전역학을 포괄하면서 보다 강력한 설명력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근대적 기계론, 결정론, 과학적 확실성(예측 가능성)에 대한 믿음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고 있다.
현대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은 근대적 기계론, 결정론, 과학적 확실성(예측 가능성)의 기반을 뿌리 채 흔들고 있는데, 과연 흔들리고 있는 뿌리는 어떤 것들이며, 어느 정도나 흔들리고 있는가?
아직까지 양자역학이 의미하는 바가 종합적이고 일관되게 이해되지 못하고 있으므로 사람들마다 이에 대한 입장은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나타날 수 있다!) 근대성의 원천과 완성이 자연과학에 기반하고 있듯이 탈근대의 원천과 완성 또한 자연과학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본능적 사고방식 --- > 신화적 사고방식 --- > 자연철학적 사고방식 --- > 새로운 신화적 사고방식(중세 기독교) --- > 과학적 사고방식(데카르트-뉴턴 모델) --- > 새로운 신화적 사고방식(???)
양자역학적으로 볼 때 새로운 ‘신화적’ 사고방식은 얼마든지 ‘과학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는 반복적으로, 나선형으로 순환하는가? 고대 이래로 줄곧 신화적 사고방식이 주류를 형성해온 것으로 보이는 동양적 사고방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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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맘:몸 원문보기 글쓴이: 맘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