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헌력의 제정과 시행
아담 샬이 마테오 리치의 요청으로 명나라에 건너온 것은 우주의 조화가 출간된 지 3년 후인 1622년이었어. 그가 예수회에 가입하여 천문학과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1611년이니 틀림없이 케플러를 알고 있었을 거야. 그러나 그것은 예수회에서는 금지된 이단 학설이었어. 예수회에서 공인하는 우주 모델은 브라헤의 지구‧태양 중심설이었지. 아담 샬이 새로운 역법을 제작한 것은 1627년이야. 그러나 제작만 했지 반포하지는 못했지. 금나라가 쳐들어오자 숭정제가 자살해버렸기 때문이야. 명은 망하고 새로운 제국 청이 들어섰어.
새 제국은 새 역법이 필요했어. 청나라 황제 순치제는 불과 7세 때인 1644년 새 역법을 제작할 적임자를 정하기 위해 시합을 벌였단다. 그해 8월에 일어날 일식을 정확히 예측한 사람에게 흠천감(欽天監)을 맡겨 새 역법을 제작토록 하겠다는 거야. 이 시합에 대통력 역관, 회회력 역관, 그리고 아담 샬이 참여했어. 결과는 아담 샬의 완승이었지. 아담 샬은 불과 몇 초 차이가 나기는 했지만, 매우 정확하게 일식을 예측해서 황제와 섭정자들을 놀라게 했어. 회회력 역법사가 2등, 대통력 역법사가 3등이었는데, 그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참수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어. 아담 샬은 순치제의 신임을 얻어 감정(監正)이 되고 자신이 제작한 숭정력을 보완해 시헌력으로 반포한 거야. 이때가 1644년이야.
아담 샬은 1645년 시헌력에서 사용한 티코 브라헤의 관측치와 계산법을 정리한 서양신법역서를 한서(漢書)로 편찬 저술했지. 그런데 이것을 저술하는 과정이 흥미로워. 아담 샬은 중국어와 한문에 능통했던 마테오 리치와는 달리 중국어만 할 줄 알았지 한문은 쓸 줄 몰랐거든. 그래서 저술은 부득이 아담 샬이 중국어로 구술하면 서광계가 한문으로 받아 적는 방식으로 진행돼. 이런 방식으로 앞에서 말한 유클리드 기하학을 비롯한 수많은 서양 고전 과학서를 번역했어. 서광계는 마테오 리치를 청나라의 관료와 황제에게 소개한 장본인이야. 마테오 리치의 전도로 세례를 받기도 했지. 그렇다고 서광계가 서양의 우주론이나 천문학에 이해가 깊었던 것은 아니었어. 그러니 서광계는 브라헤의 우주론이나 지구‧태양중심설을 그대로 한문으로 옮길 수는 없었겠지. 서광계가 평생 지니고 있던 동양적 세계관과 중화주의가 짙게 배어있을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중국의 역법이 유럽의 그것 못지않게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야. 중국의 역법 원리는 중국인들의 세계관, 우주론과 강하게 결합해 있어서 쉽사리 깰 수 없는 것이었지. 하나는 절기 배치법이야. 중국의 전통 역법에서 1년에 24개의 절기, 더 정확히 말하면 12개의 절기와 12개의 중기를 두었는데, 그 간격은 15일로 정해져 있었지. 이것을 평기법, 혹은 항기법이라고 한단다.
또 하나 중국 전통 역법의 원리는 윤달배치법이야. 삭망월이 29.53일이니 평기법을 써서 절기와 중기를 15일 간격으로 배치한다면, 삭망의 시점과 절기의 시점이 매달 조금씩 어긋나게 될 거야. 이것이 33개월 동안 쌓이게 되면, 중기의 위치가 한 달을 건너 다음 달의 맨 앞쪽에 위치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겠니? 이 중간에 끼인 달을 ‘중기가 없는 달’이라고 해. 그런데 달의 이름은 그 달에 들어있는 중기에 따르거든. 예를 들어 동짓달은 중기가 동지인 달이야. 그래서 중기가 없는 달은 이름을 붙일 수가 없게 되는 거야. 이것이 바로 윤달인데, 그 전 달의 이름에 ‘윤’을 붙여 부른단다. 4월이 지나 들어간 윤달은 ‘윤4월’이 되는 거지. 이런 방식으로 윤달을 배치하는 것을 무중치윤법(無中置閏法)이라고 한단다. 무중치윤법은 평기법과 함께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유지되어온 중국 전통 역법의 원칙이야.
아담 샬이 구술한 역법서가 서양신법역서라고 말했지? 그런데 이 책 이름은 알고 보면 썩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실제로 유럽에서는 이미 1582년 기존에 사용해 오던 율리우스력을 폐지하고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새로운 역법인 그레고리력을 제정해서 시행하고 있었거든. 이 역법은 순수한 태양력이야. 아마도 아담 샬은 중국인들에게 서양의 이 새로운 역법을 소개했을 것이 분명해. 그레고리력에 기초해서 북경의 위‧경도에 맞추어 칠정의 운동을 예측하는 역법을 제작하면 훨씬 간편하고 정확했을 것이니 말이야. 이걸 보면 시헌력은 서양의 신법인 그레고리력에 따른 역서가 아니라는 말이지. 아담 샬은 중국 전통의 근본적인 원칙에 대한 중국인들의 신념을 무너뜨리기 어려웠기 때문에, 태음태양력의 전통에 따를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렇다 하더라도 시헌력에는 아담 샬이 관철한 ‘서양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었어. 절기 배치 문제가 그래. 시헌력은 절기의 배치에서 중국 전통의 평기법이 아니라 정기법을 택했어. 정기법은 24절기의 간격을 15일 간격으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태양의 움직임에 맞추어 배치하는 방법을 말해. 너도 알듯이 지구는 태양 둘레를 타원으로 공전하지 않니? 더욱이 태양이 그 타원의 한 가운데에 있지 않고 한쪽에 치우쳐 있고 말이야. 또 지구는 공전하면서 태양과 가까운 지점에서는 속도가 느려지고 먼 곳에서는 빨라지지 않니? 이러한 부등속운동을 법칙으로 정식화한 사람은 케플러지만,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천문학자들도 이 현상을 관측했어.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미 이것을 이심원 운동을 통해 자신의 지구 중심 태양계 모델에 반영했던 거야. 그래서 아담 샬은 태양이 움직이는 거리가 계절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는 관측 사실을 무시하는 것은 일‧월식의 추산과 오행 출몰의 예측을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했어. 그것을 무기로 중국의 역법가들을 설득할 수 있었단다.
그렇지만 서광계와 흠정감 관원들이 볼 때 시헌력은 ‘서양의 신법을 이용해 제작한 역서’가 아니라 티코 브라헤의 지구‧태양중심설과 관측치를 빌어와 제작한 ‘중국의 새로운 역법’이어야 했어. 중국인들은 서양신법역서를 “탕법(湯法)”이라고 불렀지. 그들의 그러한 의도를 완성한 것은 70년이 지난 1722년 일이었어. 매각성과 하국종이라는 역산가들이 서양신법역서에 남아있는 서양식 우주관과 천문사상을 완전히 중국화하여 중국의 전통적인 역법의 언어로 쓴 역상고성 상하편을 편찬했어. 물론 두 사람은 당시 흠천감 감정이던 쾨글러(Ignatius Kögler, 戴進賢. 1680~1746)의 도움을 받았지. 중국인들은 이것을 “매법(梅法)”이라고 불러. 매법은 1726년부터 적용되었단다.
그런데 매법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태양계 모델에 기초한 것 아니었겠니?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계산치와 관측치 사이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청 조정에서는 쾨글러에게 명해 새로운 역법을 제작하도록 했단다. 쾨글러는 동료 페레이라와 함께 역상고성의 오차를 없애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 그는 티코 브라헤의 지구‧태양중심설을 전제하는 한, 근본적인 오차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케플러의 행성 운동의 법칙을 이용하기로 한 거야. 예수회에서 금지하고 있었지만, 사정이 워낙 급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지. 그리고 당시 최신 관측자료인 카시니(Giovanni Cassini. 喝西尼, 1625~1712)의 관측치를 사용해. 그래서 이 역법을 “갈법(渴法)”이라고 부르는 거야.
쾨글러는 케플러의 이름(刻白爾)은 밝혔지만, 케플러가 전제하는 지구가 돈다는 사실은 전혀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계산식과 관측치만을 빌어와 칠정의 운동을 거의 완벽하게 계산해낼 수 있는 새로운 역법 체계를 완성했어. 그의 저서는 1742년 역상고성 후편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단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오늘날 음력이라고 부르는 시헌력법이 완성된 거지. 역상고성 후편으로 보강된 시헌력은 중화민국이 건국될 때까지 별다른 수정이나 보완 없이 사용되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