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사도운동(이단)을 경계하는 이유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경배와 찬양이라는 무기로 기도모임을 필두로하여 믿는 자들을 미혹하고 있는 운동, 바로 신사도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앞서 빈야드운동(이단)에서 출발한 것으로 늦은 비 신학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인데, 늦은 비 운동은 1949년 미국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운동이며, 신사도운동은 한국에서 지난 2007년과 2009년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합신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운동입니다.(2011년 주요 교단 이단목록 No. 39)
이들의 목적은 새로운 기독교이며, 자신들의 운동에 참여하는 자는 요엘의 군대(예수군대)와 군사로, 거기에 동참하지 않는 교회와 신자들은 종교의 영에 사로잡힌 자로 개혁되어야 할 주체로 봅니다.(신사도운동의 실상과 실체를 만나고 나면 얼마나 교회를 변질되게 하고 기독교자체를 무너뜨리는 운동인지 쉽게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운동이 말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고 황당한데 하나님이 자신들을(예수님 시대와 같은) 사도로 세우셨으며 별도로 직통계시(성경에 없는 예언)을 주는 데 그 이유는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기기 위해서이며(대추수) 이를 위해 많은 능력을 주셨고(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별도로 주셨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줘야 하며(임파이테이션:전이) 이것을 위해서는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이 필요하며(왕의 군대)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비즈니스(일터사역)를 중심으로 세속의 물질과 부를 교회로 글어들여야 하며(킹덤나우, 7대 권역운동)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을 물리적인 천국(하나님의 나라)로 바꾸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이교도로부터 회복(백투 예루살렘)하고 나서 유대인들이 개종하고 나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들 중 성경과 맞는 가르침이 있는가요? 하나도 없습니다.
먼저 자신들을 사도로 세우셨다는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이었으며, 특별히 다메섹 만남으로 사도라 칭함 받는 사도바울을 비롯하여, 소스데네, 바나바 등도 있습니다.(고전 1:1, 갈 1:1, 행 13:13~14:7) 오늘날 신사도들과 다른 것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었고, 초대교회의 사도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사도운동은 피터와그너라는 사람이 사도권을 인정하고 폐합니다. 즉, 사람이 사람에게 너는 사도다! 사도가 아니다!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또 다른 말로 보면 피터와그너란 사람이 재림예수님이네요? 참으로 참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직통계시부분인데, 이것은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받았던 하나님의 계시(말씀)로 성경이 기록되지 않았을 시대입니다. 또한 이 선지자의 역할은 신약시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증언하는 것이었으며, 요셉이 꾼 꿈 또한 신약시대의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예표하는 그림자로 볼 수 있습니다.(창 50:20)
그러므로 이 요셉의 꿈은 청소년과 청년들에 주신다는 꿈과 비전의 말로 설교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모세오경으로 불리는데, 신약시대 오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모세의 오경(구약성경) 또한 자신을 증거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5:43~47)
이러한 계시(구약성경의)들은 모두 신약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하는 것들로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구약의 모든 예언들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공관복음이라 불리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행적과 이적들마다 구약시대 선지자들로 예언한 말씀을 이루려 함이었다라고 계속 말씀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신약시대 예수님께서 구세주, 메시아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예언된 증거와 예표들이 모두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호 11:1 = 마 2:15, 렘 31:15 = 마 2:18, 신 8:3 = 마 4:4, 시편 91:11 = 마 4:6, 신 6:16 = 마 4:7, 신 6:13 = 마 4:10 이 외에도 열거할 수 없이 많습니다.)
즉, 직통계시를 받을 때의 선지자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그 선지자의 종결은 말라기서에서 예언된 엘리야, 세례요한이었습니다. 즉 세례요한을 끝으로 선지자가 더 없다는 말입니다.(말 4:5~6, 마 11:2~15)
그럼에도 신사도운동에서는 자신들이 다시 오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엘리야인양 떠드는데(그래서 이들의 가르침과 잘 맞는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을 그리도 열창하는 모양인데)말씀을 제대로 읽고 해석하지 않은 표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성도로서 우리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읽고 듣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지, 예언을 받고 방언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이 한 구절도 없습니다.
세 번째로 대추수를 봅시다. 이들의 운동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긴다? 한 눈에 봐도 인간적인 노력이 포함된 인본주의적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사람들의 힘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긴다니? 이런 말씀이 예언된 성경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꼭 이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겨야할 이유는 또 뭔가요? 사람이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긴다는 내용은 구약에도 없고, 신약에도 없습니다. 도대체 어떤 말씀을 근거로 자신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긴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의 재림이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움직인다면 그는 신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닌, 사람들의 노력과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알라딘 램프이지(시크릿, 긍정의 힘) 그게 무슨 우리가 믿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일 일을 모르게 하셨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아버지만 아시며,(마 24:1~25:13) 그 날은 도적같이 올 것이니 베드로사도는 성도인 우리에게 늘 깨어 거룩함과 경건한 행실로 살라고 부탁하셨던 것입니다.(벧후 3:8~13)
네 번째로 성령의 기름부으심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에게 이미 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구해야할 것도 아니며, 논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요일 2:18~27) 믿는 성도들에게 이미 있는 것을 마치 자신들이 특별히 받은 것처럼 또한 기도와 찬양과 사도행전에서 마가의 다락방처럼 성령을 주소서하는 기도는 전혀 아닙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하시며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성령, 바로 이것이 임한 사건입니다.
이 이후에서는 예수님을 믿음과 동시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이미 믿는 자는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께서 계시는 전이라 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매주 매일 성령을 초청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이고 버리운 자가 아닌가 의심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고를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 믿는 모든 자에게 이미 있는 것입니다. 신사도운동가들이 말하는 성령세례와 기름부으심, 이러한 특별한 사상들이 마치 신천지에서 말하는 144,000의 무리를 모으며 자신들이 그 세대라는 가르침처럼 대추수를 위하여 자신들만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입은 자라는 의식은 참으로 이단적입니다.(물론 이미 이단운동이지만)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계속 논한다는 것은 그 안에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는 것이며, 성령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징표이며, 또한 매주 성령이여 오소서 초청한다는 것은 설날과 추석에 저승에 있는 귀신을 불러내어 조상에게 밥먹이는 행위로서 지극히 미신적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임파테이션은 전이인데, 나눠준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나누는 것입니까? 이것은 임파테이션이 아니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한 말씀으로도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를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심입니다.(행 2:1~42) 즉, 구원얻는 성도들이 더욱 많아진다는 것이지, 자신들의 특별한 능력을 이전한다는 이러한 행위는 전혀 아닙니다.
여섯 번째로 왕의 군대를 말합니다. 소위 인적 물적자원을 동원한다? 이것 또한 성경에 전혀 없는 내용입니다. 이들의 가르침대로라면 하나님께서는 기도온의 300용사가 아니라 10만 대군을 양성하셔야(조선시대 율곡이이의 10만대군 양병설)했습니다. 이들의 가르침대로라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에게 메뚜기와 석청을 먹일 것이 아니라(막 1:1~8) 뷔페와 고기를 매일 먹이셔야 했습니다. 구약에서 모세는 애굽에서의 왕궁에서 누리는 호화스런 생활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기를 즐겨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히 11:24~26) 우리는 왕의 군대가 아니라 우리는 그저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아버지와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요(요 1:12) 주님의 귀한 어린 양들입니다.(시편 100:3)
일곱 번째로 일터 사역을 중심으로 한 세속적 부와 물질입니다. 한 눈에 봐도 세속적인 영광을 추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마음이 하나님이 아니라 땅의 것을 찾으며, 육의 것을 생각하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이니 나라를 립서비스 하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게 땅의 것과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골 3:1~6, 롬 8:5~9)
또한 구약말씀을 인용하여 세속적 부를 강조하는데, 실상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하나님 자신이며(시편 16:2), 신약에서는 지속해서 부유함에 대해 경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마 6:24, 딤전 6:7~10, 6:17~21, 히 13:5~9) 주께 나아와 영생을 물었던 재물이 많은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떠난 것을 남의 이야기처럼 듣지 않기를 권합니다.(마 19:16~22) 십자가의 도는 부와 물질이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행 2:14~42, 고전 1:17~25) 오늘날 신사도운동안에서 퍼진 번영신학의 산물입니다. 세속적 부와 물질..
여덟 번 째로 하나님의 나라, 그것도 세속적 부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를 일군다니,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면 어련히 성도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하겠습니다. 참으로 참람한 외침이지요. 우리가 평안하고 잘 입고 먹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의지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구약에서는 도리어 우리가 배부르고 등 따시면 하나님을 떠나라 우려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신 8:11~14)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그리워하며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고생시키시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까?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애굽에서는 그래도 떨어지는 고기라도 있고 마늘도 있고, 국거리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곳은 광야이니 무엇이 풍족하겠습니까?
사람은 간사하여서 겉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구한다고 기도하지만 거기에 붙는 옵션인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 것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구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마 6:33)
고난의 인물로 불리는 욥, 그러나 사탄은 의미있는 한 마디를 던집니다.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섬기겠나이까?” 그러면서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까닭이 바로 그의 집과 그의 소유에 있다고 말씀합니다.(욥 1:8~11) 너무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이유, 새해마다 복받기를 구하는 사람들, 축복대성회에는 사람들이 몰리지만 하나님을 알아가는 사경회는 없는 오늘날, 이들이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속적 부와 영광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백한 다윗은 그가 왕궁에 있을 때가 아니라 죽음에 쫓길 때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사도운동과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하는 우리들은 혹시나 우리를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하실 경제대통령의 예수님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는 지 깊이 상고할 일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6
아홉 번 째는 백투 예루살렘입니다. 역시 성경에 없는 내용입니다. 유대인들이 이교도들로부터 벗어나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하셨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천사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입니다.
백투예루살렘이 모든 족속일까요? 백투예루살렘이 땅 끝일까요? 유대인들이 개종하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약속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도리어 그 날이 오면 도적같이 오되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이렇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백투예루살렘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우리가 가져야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과 주 예수를 향한 믿음이지, 백투예루살렘에 자기 삶을 드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사도운동을 쫓지 말고, 말씀(성경)을 쫓으십시오.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의 계시(말씀)입니다. 성경은 폼으로, 우리 인생의 경건에 재료로 갖다놓은 베스트셀러가 아닙니다. 우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며, 노인보다 지혜롭게 하고, 깨끗한 행실로 살아가게 하며, 구원의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하는 유일한 능력입니다.(요 17:17, 시편 119:9, 99~100, 딤후 3:15~17)
in Jesus Christ..
죄인 중에 괴수..
배병두(대구서문교회 성종고등부 교사).. 2012.1.20
출처. 창골산봉서방 - 자작글나눔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