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나. 군(軍)병원에 '유아용' 기도삽관호스가 있다는 사실을, 거기다 소아용 엠브백(소생기)도 구비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훈련 도중 다친 군인들이 치료를 받는 군병원에서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하고 궁금증이 생긴다면 지금부터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해보자.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이었던 군병원이 일반인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제 군병원은 더 이상 군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열린 병원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경기도와 국방부는 지난 7월 민간응급진료협약을 맺고, 경기북부 지역 내 4개 군병원에서 24시간 민간인 응급진료를 시행해오고 있다. 이들 중 한 곳인 국군청평병원을 찾았다.
초등생·중년여성도 군병원 응급실
#사례 하나
초등학교 1학년인 김수지 양(가명)은 가족들과 가평으로 캠핑을 왔다가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그러나 가평 인근에는 응급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마땅치 않았다.
김양은 군병원을 찾았고, 얼음찜질 및 이마와 눈 부위에 응급처치를 받았다. 상태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이곳의 적절한 치료 덕분에 예쁜 얼굴에 화상 자국이 남는 불상사를 모면했다.
#사례 둘
지난여름, 등산을 하던 오현진 씨(가명·50)는 독사에 물렸다. 독이 온몸으로 퍼지기 전에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 여성은 군병원에서 독을 제거하는 약물조치 등 초기응급진료를 받은 후 구리에 있는 대학 병원으로 후송됐다. 빠른 응급진료가 없었다면 환자가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를 긴박한 상황이었다.
응급진료를 위해 최근 국군청평병원을 찾았던 여러 환자들의 실제 사례들이다.
아직까지는 일분일초가 시급한 심각한 응급환자가 발생한 적은 없지만, 청평병원의 경우 이들처럼 초기에 응급처치로 혜택을 톡톡히 받은 환자들은 지난 6개월간 모두 50여명에 이른다.
이들 응급환자들 대부분은 지역주민들과 가평을 찾은 관광객들로 두드러기, 열상, 곤충 교상 등 야외활동에서 많이 생기는 질환으로 군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민간 응급진료 초기엔 군병원도 '당황'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국군청평병원의 전경
1951년에 세워진 국군청평병원은 현재 임상 14개 과(내과, 일반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치과 등)가 개설되어 있으며, 38명의 군의관이 치료를 담당하고 있다.
아직까지 일반인을 상대로 한 외래진료는 없지만 응급진료는 상당히 활발한 상태다. 물론 아직 응급진료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아직은 부족한 부분도 많다.
"처음에 민간인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데 환자보호자 분들이 어디에서 기다려야 하냐고 물어 당황했습니다. 군병원이다 보니 보호자 대기실 같은 곳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거죠. 민간 병원 같은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예상치 못한 문제가 종종 생깁니다."
국군청평병원 이재혁 병원장
국군청평병원 이재혁 원장은 민간인 대상 응급진료를 실시함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군병원의 '특수성'을 꼽았다.
민간병원과 달리 군병원은 특수한 임무와 목적을 가지고 있어 자체 시스템과 민간응급진료를 어떻게 접목해 나갈 것인 지가 고민인 것.
이 원장은 "보안문제는 군병원에 있어 피할 수 없는 딜레마"라며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의 경우 군의 정식 절차를 받고 들어오기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군병원은 통제와 보안이 필요한 곳이라 향후 시스템 정비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만약 환자나 환자보호자가 병원 내 지정된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들어간다거나 사진촬영 등을 하게 되면, 이는 군 보안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
더구나 진료비 문제도 군병원을 당황스럽게 했다. 민간인들은 으레 진료를 받고 진료비를 내는 것이 당연하지만, 군병원에게 이는 너무도 생소한 일이었기 때문.
"응급진료의 필요성만 생각했지, 정작 진료비 수납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환자분들은 돈을 내겠다고 하는데, 담당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적이 있었습니다. 절차상 여러 가지 대비를 한다고 하는 데도 6개월이 지난 요즘도 종종 일반인 환자로 인해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응급진료 덕에 높아진 지역주민의 軍 신뢰
응급실에서 근무 중인 권혜영 중위
사실 민간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군병원에게도 낯선 경험이다. 그러다 보니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툭툭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이재혁 원장은 오히려 민간응급진료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군부대 인근 지역주민들이 군대를 무조건 반기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민간응급진료를 통해 군이 지역사회에 더 많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 주민들도 군인들을 함께 사는 지역 일원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군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도가 높아질 것입니다."
이런 기대감은 일선에서 주민들을 치료하는 군의관들도 마찬가지였다.
강석연 군의관은 "군인들만 치료하다가 일반인들을 새롭게 만나니 재밌기도 하다"면서 "야간에 응급상황으로 군병원을 찾는 환자분들이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고 상태가 나아졌을 때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간호장교인 권혜영 중위는 "다양한 연령대의 새로운 케이스 환자들을 접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배우는 점이 더 많다"며 "근처에 병원이 없어 불편해 하던 주민들의 호응이 뜨겁다"고 전했다.
부족한 병실·낙후된 시설 개선돼야
국군청평병원의 일반인 대상 응급진료는 올해 신정 연휴에도 계속됐다.
경기도가 최근 군병원을 이용한 주민의견을 수렴한 결과, 24시간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군병원의 열악한 시설과 주민들이 쉽게 사용할 수 없는 구급차는 개선점으로 지적됐다.
특히 노후된 병원시설은 국군청평병원 뿐 아니라 대다수 군병원이 갖고 있는 약점 중 하나다. 응급환자를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고, 의료기기 등이 낙후된 것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경기도는 지난 12월 9억3000만원의 중앙응급의료기금을 마련해 군병원 응급실 기능 보강, 장비 확장 등을 위해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군병원의 민간인 치료에 따른 의료사고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대비해 책임보험도 준비 중이다.
경기도 보건위생과 관계자는 "응급진료실 기능 보강 등 앞으로 군병원에 대해 경기도가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며 "지역 주민들의 군병원 이용이 더욱 많아지도록 인터넷 등을 이용한 홍보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간인 이용가능 경기북부 군병원 현황
▲국군청평병원(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031-584-1363
▲국군벽제병원(경기도 고양시 벽제동) 031-962-1188
▲국군양주병원(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031-857-0963
▲국군일동병원(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031-531-0803
※응급상황 발생 시 경기도 북부지역 내 군병원을 이용하려면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국번 없이 1339)나 119구급대(국번 없이 119)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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