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와 연탄불
구연식
1990년대 중반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삼순회(부부 동반 대학 친구 모임) 부부들이 속리산 주위를 등산하기로 예정이 되었다. 그 당시는 대부분 개인 주택 난방 시설은 연탄에 거의 의존하는 형태였고 취사(炊事) 방법도 연탄불로 해결했기에 연탄가스 중독사가 언론에 늘 보도되었다. 그래서 집마다 혹 외출이나 여행을 할 때는 연탄불 불씨 살리기에 온 신경을 써야 했다.
이 모임은 가끔은 즉흥적인 결정에 의해서 무조건 출발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모두 다 40대 중반이라 기세와 허세가 등등했던 시절이어서 호주머니의 돈만 믿고 출발하여 객지에서 곤욕을 치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때마침 겨울방학이고 여동생 아들 두 명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우리 애들 세 명 그리고 내가 집안에서 좀 어렵고 지능이 낮은 6촌 여동생을 데리고 있어 총 여섯 명이 집을 보고 있으니 연탄불 이외에는 걱정 없어 큰딸과 6촌 여동생에게 연탄불 교체 시간만 몇 번이고 강조하면서 집을 나섰을 수 있었다.
여수와 광주에서 출발하는 친구들을 기다리는 시간에 나는 아침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치다가 친구들이 군산에 도착했다 하기에 겨울 잠바 하나를 더 걸치고 바로 일행과 시외버스를 타고 대전에서 하차하고 속리산 가는 버스로 환승하여 속리산 입구에서 내려서 걸어가니 정이품 소나무가 환영한다. 천년 고찰 속리산 법주사의 미륵불님을 경배하고 국보인 팔상전, 쌍사자 석등, 석련지를 대충 보고 동지 무렵의 겨울이라 신경을 쓰지 않으면 일조시간 내에 일정을 마칠 수 없기에 등산하고 하산 후에 자세히 보기로 했다.
그래서 세 부부 팀은 종종걸음으로 등산을 시작했다. 처음에 일행은 같은 보조로 걸었으나 세 팀이 조금씩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정상의 5부 능선 정도 올라가니 눈보라가 치고 제법 적설량이 많아 시야가 가리고 한발 한발 옮기는데 등산이라기보다는 극지 탐험대의 기분이었다. 그렇게 엉금엉금 기어가면서 7부 능선쯤 오르니 다른 팀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임시 천막에서 아이젠을 파는 사람만 눈보라 속에서 꿈틀거리며 보였다.
바닥이 민짜형인 테니스화를 그냥 신고 와서 빙판 위의 제동이 전혀 되지 않아 주위에서 새끼줄을 주워서 신발에 묶어 보았으나 산 능선의 미끄럼에는 잔꾀도 힘도 통하지 않아 난생처음 아이젠을 사서 테니스화 아래에 부착하니 등산 속도는 느리나 제동이 되어 오지 산중에서 돈의 가치를 실감했다. 그렇게 기면서 걸으면서 거의 산 정상에 올라왔다고 생각하고 등산 안내 표지판을 보니 문장대는 2㎞를 더 능선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가끔 구름 사이로 햇빛 비친 계곡과 산비탈의 나무와 숲의 상고대 서리꽃이 수정처럼 빛남을 볼 수 있어 악천후 속의 속리산 등산이 보상되는 기분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니 전문 산악인들은 우선 날씨가 궂어 오르지 않았거나 시간이 너무 늦어서 하산했다는 것으로 짐작되고 움직이는 동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아 인간이 살 수 없는 공간에 있다는 예감이 들어 왈칵 겁이 난다.
문장대에 도달하니 우리 일행 말고는 세 명이 더 있어서 조금은 안심이 된다. 문장대 바위는 얼어서 참기름 바른 것처럼 미끄럽고 쇠사다리도 얼어서 쩍쩍 달라붙는다. 속리산에 와서 문장대 못 오르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네발로 기어서 겨우 정상에 오르니 안개 속이라 지척을 분간할 수 없다. 이렇게 오기 반강제 반으로 속리산 등산을 마치고 잽싸게 내려오니 벌써 땅거미가 집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법주사 경내를 다시 자세히 보자는 것도 일소하고 허기진 배를 먼저 채우기로 했다. 우선 가장 가까운 식당에서 산채정식으로 식사를 하고 나니 한 발도 걷기 싫어서 식당 주인에게 사정사정하여 식당 집 안채에서 그냥 잠자리를 정하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코골이 대회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나이가 젊어서인지 아침에는 모두 다 거뜬한 것 같다. 여수 광주까지 내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점심 일직 후에 해산했다. 뒤로 눈 덮인 속리산 정상을 바라보니 햇빛에 번쩍거리며 오염된 인간들은 불허한다는 위용이다.
그렇게 속리산 여행을 마치고 군산 집의 대문을 여는 순간 여섯 아이가 일제히 경색하며 울음을 터트리면서 달려 나온다. 이유인, 즉 어젯밤에 우리 집에 2인조 강도가 들었다는 내용이다. 모자를 눌러쓰고 복면을 한 강도 두 명은 칼을 휘두르며 여섯 명의 어린것들을 한방에 몰아넣고 이불을 뒤집어씌우더니 이불 속에서 그대로 엎드리고 절대로 꼼짝 말고 밖으로 나오면 죽인다는 엄포였단다. 그런데 가끔 들리는 강도들의 소리는 돈이 없다는 불만스러운 욕 투정이었단다.
여섯 어린것들은 간이 콩알만 하여 숨도 못 쉬는 상황이었는데 그 속에서도 코를 골며 잠자는 막내 어린것도 있었고 제일 나이 많고 조금 모자라는 6촌 여동생은 이불 안에서 자라목처럼 얼굴을 쭉 빼더니 주위를 살피며 샛문을 배 깃이 열고 얼굴을 빼 꼼 내밀었다. 이때 강도 한 명이 달려와서 얼굴에 칼을 대고 이불속으로 다시 들어가라고 협박을 하니 ‘나 지금 연탄 갈 시간이에요, 안 갈면 연탄불 꺼져요’ 하면서 연탄을 갈러 간다고 억지를 부리니 강도는 어이가 없었는지 승낙을 하면서도 혹 다른 꿍꿍이짓을 할까 염려해서인지 6촌 여동생의 등 뒤에 칼을 들이대면서 연탄 가는 일이 끝날 때까지 감시하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니 안방에서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갔다는 상황이다.
안방에 들어가 보니 금품을 찾았는지 모든 베개와 인형은 칼로 파헤쳐 있고 장롱의 서랍은 모두 열어젖혀 있었다. ‘가난뱅이 교사 집에서 무엇을 갖고 가겠다고∽’
6촌 여동생은 오빠 댁에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함을 보여 주려고 그러했을까. 아니면 무지한 자의 용감성의 발로였을까? 아무튼 그 강도들 여섯 어린애한테 해코지하지 않고, 연탄불 안 꺼트리게 해서 고맙다.(2021.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