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대강진을 경험하면서-[당신이 창조주입니다](창1:1)-
나는 와세다(早稲田)에 있는 재일대한기독교회 총회사무실에 있었다.
그 동안 밀려 있던
그런데 갑자기 사무실이
지진으로 인하여 많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항상 있었던 작은 지진으로 여기고
[지진이 왔네요]라고 말하고는
컴퓨터를 들여다 보며 기사를 정리하였다.
그런데 흔들림이 지금까지의 보통 지진을 넘어서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토상(佐藤信行、RAIK所長)이 사무실 문으로 다가가서
사무실 문을 열고는 [책상 밑으로 들어가세요]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책상 밑으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자, 또 다시 크게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책상 밑으로 들러갔다.
하지만 휴대용 카메라 생각이 났다(기자(?) 정신이었던가?).
책상 밑에서 가방을 이끌어 카메라를 꺼내어 들고
책상 밑에서 나와
이미 책장에서 쏟아져 떨어진 서류와 책들이 산란되어 있는 곳들을
찍기 시작하였다(지금은 컴이 이상하여 사진을 올릴 수 없음).
그러다가 잠시 조용해졌다.
그래서 지진이 끝난 줄로 생각하고
사무원 집사님과 총간사님과 더불어 모두가 모여서
[우와 정말 큰 지진이었습니다]라면서
함께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마자
다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흩어져서 우왕좌왕하였다.
동시에 열린 사무실 문 이외에 새로운 철문이 닫혔다.
방화 문인 것 같다.
나는 그런 문이 있었는지,
처음 알았다.
아마 방화 문이 지진의 흔들림을 감지하고 스스로 닫힌 모양이다.
그러자 5층 사무실 전체 사람들이
복도에 나와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바깥으로 내려가야 하는지, 그대로 있어야 하는지]
엘리베이트는 이미 움직이지 않은 모양이다.
6층 사람들이 중앙 복도로 우루루 내려 왔다.
그때 잽싸게 교회 카페와
관동지방회 소속 교회 카페에 이런 글을 올렸다.
[돌목사,
이렇게 큰 지진이....우와....여러분!!! 괜찮습니까......???]
그리고 나서 사토상(佐藤さん)과 나는
지진으로 인하여 쏟아져 내린 서류와 책들을 정리하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너무 많이 흔들렸기에
우리들도 바깥으로 내려 가기로 결정하였다.
2층으로 내려 갔을 때,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바깥으로 나가면 화장실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2층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보고 있는데
소변이 멈출 정도로 화장실이 심하게 흔들린다.
[헉!]
하마터면 손과 옷에 소변 칠갑을 할 뻔하였다.
소변 후의
특유의 몸 떨림을 할 여유도 없이
손도 씻지 못하고 부랴부랴 1층으로 내려 와서 중앙 정원으로 나가자
아내가 보였다.
너무 반가워 안아 주고 싶었지만
소변을 보고 난 후에
손을 씻지 않았음이 생각이 났다.
아내는 두 아들을 걱정하였다.
[학교에서 비상연락이 올 텐데 아이들은 괜찮을까요?]
[지진이나 재해가 나면 가장 안전한 곳이 학교니까 괜찮을 꺼야!]
일본 기독교 회관(日本基督教会館) 정원에는
백 여명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집에 돌아 갈 수 있을까?]면서
자기 가족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우리 부부는
와세다(早稲田)에서 미나미아오야마(南青山)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혹시 오오에도선(大江戸線)은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지하철이므로
괜찮을 지도 모른다고 판단하여
메이지도오리(明治通り)로 걸어갔다.
그러나 지하철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버스다.
버스 정류장에서 시간표를 보니
약 5분 후에 버스가 온다는 것을 확인하고 생각하였다.
[버스를 타고 시부야(渋谷)까지만 가면
도보로 15분 정도 걸어가면 집이다].
드디어 버스가 왔다.
그러나 버스는 뒷문만 열고 승객 3명을 내리고는
문을 닫고는 그대로 떠나 버렸다.
그러자 우리 앞에서 줄을 서 있던 일본 아주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불평을 늘어 놓았다.
[아니, 3명을 내렸으면 3명이라도 태우고 가야 하잖아!]
우리는 버스를 포기하고
다시 걷기로 결정하였다.
수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 모여 있거나 걷고 있었다.
동경에 사람들이 많다고 하지만
길 거리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갑자기 하늘도 검은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였다.
아침의 일기예보는 분명히 하루 종일 맑음이었는데
무슨 날벼락인가?
꽃가루 병이 있는 나는
꽃가루 예보에도 관심이 많기에
반드시 일기예보와 꽃가루 예보를 확인한다.
그런데 먹구름에다가 빗방울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아내는하며 빙긋이 웃어준다.
[정말 모든 준비를 하고 다니는 A형 이네요. ㅎㅎㅎ ]
도중에 약 10층 건물의 유리가 깨져 보도에 흩어져 있었다.
여전히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역 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신쥬쿠(新宿)에 도착하니
지하철 안내 간판이 무너져서 경찰들이 밧줄로 고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꽃가루 병으로 인한 재채기가 연속적으로 시작되었다.
항상 휴대하고 다니던 휴지도 한꺼번에 없어졌다.
그러자 아내가 손수건을 꺼내어 준다.
너무 고맙다.
작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숨을 쉬자
대학생 시절 때 경험한 채류탄 생각이 났다.
신쥬꾸(新宿)를 지나 가는데 아내가 말했다.
[너무 힘들어요. 쵸코라도 사 먹고 힘을 내야겠어요]
그러나 보이는 편의점마다
인산인해로 줄을 서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기에
모든 편의점을 그대로 지나쳤다.
그때 우리 앞에서 열심히 택시를 잡으려는 아주머니가
차도와 보도를 오가면서 안절부절이었다.
몹시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다.
아내와 나는 안타까웠다.
그러나 빈 택시는 오지 않는다.
그때, 어느 신호에서 한 대의 빈 택시가 왔다.
내가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택시는 조금 앞에서 멈추어서
다른 손님을 태웠다.
아내와 나는 [합승이라도 해 주지] 하였다.
그 아주머니는 이제
아예 도로를 내려가서 갓길을 걸어 갔지만
우리들과 헤어질 때까지
도로와 보도를 오가면서
안절부절 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아야 했다.
아내와 나는
[재해가 일어나면 움직이지 않고 택시를 기다리는 것이 지혜다] 라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배가 고파왔다.
벌써 두 시간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내는 가방에서 바나나를 꺼내어
한 개로 나누어 주자, 나는 농담으로 말했다.
[당신은 지진으로 건물에 갇혔어도 하루는 살아 남았을꺼야. ㅎㅎㅎㅎ]
화장실도 가고 싶었다.
공중 화장실로 가자 긴 행렬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또 참기로 했다.
이윽고 오모테산도(表参道) 지름길을 거쳐서
미나미 아오야마(南青山)에 도착하였다.
지하철 역 앞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아직도 지하철이 정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각 커피 가게마다 사람들이 만원이었다.
뉴스를 보면서 교통이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서서히 방제 모자를 쓴 소학생들(小学生)이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내와 나는 지인인 일본 학부모가 경영하는 문방구 가게에 들러
[부모가 학교로 데리러 가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한다.
우리 부부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작은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소학교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강진 후에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다.
작은 아들은 소학교 5학년이지만
아마 [코 앞에 집이 있는데 금방 데리러 올 것이라] 생각하며
간절히 부모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멀리에 사는 부모도 학교로 빨리 데리러 왔는데
가까이에서 사는데도 늦게 왔다]고
부모를 원망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큰 몸은 흔들렸겠지만, 마음 만은 흔들리지 마라].
부랴부랴 소학교에 도착하니
현관은 이미 비상체제이다.
부모임을 확인하고
3층에 있는 작은 아들 교실에 가니
절반 정도의 학생들이 부모를 기다리고 있다.
아들이 반가워 한다. 담임 선생님도 완전 무장으로 반겨준다.
[전화가 불통이었는데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와세다에서 걸어서 왔습니다]
[헉! 그래도 감사합니다. 빨리 데리고 가세요].
작은 아들은 학교를 나오자 마자
우리가 예상한 대로
온갖 불평들을 늘어 놓는다.
그래서 늦게 온 죄(?)로 과자를 사 달라고 한다.
아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작은 빵 가게와 작은 슈퍼로 갔다.
그러나 주먹밥(오니기리)과 빵은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몇 가지 과자와 반찬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아내는 큰 아들(중2)을 데리러 중학교로 갔다.
잠시 후에 네 가족이 상봉(?)하여
짧은 포옹을 하고 기뻐하였다.
급하게 텔레비전을 켜니
우리들이 경험한 지진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천지를 뒤집어 놓은 듯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방영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집은 여진으로 인하여 계속 흔들린다.
더 큰 지진과 여진이 올지 모른다는 보도를 한다.
그러자 작은 아들은
집에 있는 모든 비상식량들을 모으고
자기만 테이블 밑에 만화를 비롯한 모든 물건들을 챙긴다.
[나쁜 놈! 자기만 살려고….ㅎㅎㅎㅎ]
그러나 큰 아들은 컴퓨터로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흥분된 얼굴로 전국 상황을 전해준다.
일본 텔레비전은 모든 방송이 지진 소식이다.
너무나 비참하다. 눈물이 나온다.
교인들과 일본 전국에 있는 교회들도 걱정이 된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연락을 하니
모든 전화들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보도를 보고
일부러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이것이 현실에 대한 도움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컴퓨터 전화를 통하여
한국의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 받은 모양이다.
오늘 아침에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교인들에게 연락을 하였다.
나는 목사이기에
이러한 지진에 관한 상황들에 대하여 무지하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더불어 함께 사는 길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나만 안전한 것으로 감사기도가 가능한 것인가?
우리 나라는 지진이 없어서 축복받은 나라인가?
우리 교인들은 안전하니 감사한 일인가?]
목사로서 어떤 설교를 하여야 하는가?
숙제만 남는다.
나는 이번 지진을 경험하고,
또한 여러 사태들을 경험해 가면서 느끼는 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1:1)이다.
이 말씀으로 많은 설교를 하였지만
현실 속에서 고백하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과 경험이 걸린 것 같다.
[하나님! 당신이 창조자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동경에서 지진 <5강>에도 흔들리는 죄인들입니다.
주여! 부디 모든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몸은 흔들려도 마음과 믿음이 흔들리면 죽습니다.
그리고 흔들리는 영혼들은 여권을 챙겨 일본을 탈출하려 합니다.
이상한 사람들은 유언비어와 욕설들로 일본이 더 파괴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흔들지 마세요.
우리는 당신의 피조물입니다. 당신이 창조주입니다.
아셨죠? 더 이상 흔들지 않으실 거죠? 부탁합니다.]
첫댓글 꼭 지진현장에 함께 있었던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무엇보다 고통과 아픔 당하는 이웃들에게 무어라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일본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암튼 기도합니다. 하나님! 속히 회복되게 하옵소서...
감사합니다...목사님....첫 연락의 번호와 성함이 찍힌 것으로 감동하였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마음은 언어가 아니라 믿음과 사랑이겠지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