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설민] <파이란> 최민식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에 삼류 건달도 못
되는 한 사내의 처량 맞고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콧등을 찡하게 만든다. 최민식은 이강재라는 사내의 볼품없는 인생을 시큼털털한 막걸리 내음처럼 그려낸다.
독하고 영리하며 잔인한 면이 있어야 성공(?)하는 건달 세계에서 그는 그야말로 적성이 맞지 않는 낙제생이다. 마음도 여리고,
끈기도 없고, 교활하게 머리 굴릴 줄도 모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물인 것이다.
덥수룩한 머리에 빨간 머플러의 조악한 차림새부터가 삼류임을 드러내는 그는 한심하면서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내다. 인생의 낙오자이지만 인간다움
만은 잃지 않은 그의 끈끈하고 뜨뜻한 속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최민식이 <쉬리>에서 보여준 북한 전사가 터프한 휴머니스트였다면
이 영화에서는 그 영웅과 완전히 반대되는 찌꺼기 인생의 페이소스를
물씬 풍긴다. 영웅과 반영웅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최민식의 연기가 예사롭지 않다.
그야말로 노숙자에 가까운 지저분한 몰골과 유치한 행동이 그의 껍데기라면 잘 알지도 못하는 여인의 자신을 향한 감사와 사랑의 말에 울먹이는 인간미는 그의 알맹이다.
이토록 인간 냄새 물씬 나는 인물을 최민식 아닌 누가 대신할 수 있을지 생각나지 않는다.
굵게 쌍꺼풀진 눈에 악의가 없어 보이는 것은 눈꼬리가 약간 처져서
만은 아니다. 그의 내면에서 우러 나오는 진한 호소력이 그의 눈빛을
축축하고 깊이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뭇거뭇한 수염 자국이 어울리는 소탈한 분위기가 그를 냉철한 인물과는 거리가 먼 배우로 만든다. 그래서 그는 늘 성공자가 아닌 실패자의 인생을 연기한다.
바닷가에서 그가 죽은 여인의 편지를 읽고 흐느낄 때 우리의 가슴이
찡한 것은 그가 젤소미나의 죽음을 듣고 울부짖는 잠파노와는 다른
인간이 까닭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구절은 최민식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남궁설민(파티마의원장, 성형미학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05/31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