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9일, SBS와 MBC 속보를 시작으로 모든 언론이 일제히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101개 업체 불법파견 확인"이라는 제하의 보도를 내보냈다. 당일 8시, 9시 뉴스는 물론이고 다음날 조간신문에도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문제는 빠짐없이 실렸다.
8월20일 현자노조의 집단진정 이후 무려 넉달 가까이만에 언론보도를 통해서나마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전체가 불법파견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준 것이다. 그동안 불법파견 문제를 전국적인 이슈로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온 현대자동차 원하청 노동자 투쟁이 이제 조금씩 그 성과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언론보도에 노동부 중앙본부 근로기준국장까지 나와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사실을 확인해 주었으나, 끝내 불법파견 판정만큼은 내려지지 않았다는 소식이 함께 전해졌다. 비정규직노조에 취재차 전화를 건 일간지 기자들조차 "무슨 이유에선지 판정은 다음주쯤에 내겠다고 하네요. 여하튼 불법파견 사실만큼은 본부에서 확인해 주었으니 기사는 나갑니다"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비정규직노조는 즉각 상황파악에 나섰고, 노동부 측이 파견법 개악안 등 비정규 개악안을 내놓은 상황에서 현대자동차 대규모 불법파견 판정이 미칠 파장이 부담스러워서 결론을 내놓고도 판정을 미루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곧바로 다음날 아침 야간조를 중심으로 울산지방노동사무소 항의방문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불법파견 판정났다 바지사장 물러가라!" "현대자동차는 불법행위 사죄하고 정규직화 실시하라!"
긴급하게 소집된 항의방문 일정이었음에도 야간조를 중심으로 30여 조합원 동지들이 노동부 항의방문에 동참해 주셨다. 이미 노동부 앞에는 경찰과 노동부 관계자들이 전화기와 무전기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집회신고 안되었으니 불법입니다" "지금 안에서 과장급 회의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노동부 관내에까지 들어와서 집회를 한 적은 없습니다. 관례마저 어길겁니까"
그러나 분노한 비정규노조 조합원들의 항의집회는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었다. 과연 누가 불법인가! 힘찬 함성과 보고발언을 마치고 대표단을 구성한 후, 곧바로 노동부 항의면담을 위해 대표단이 들어갔다.
소장은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고 관리과장과 근로감독과장이 면담에 응했다. 분노한 조합원들은 "도대체 판정을 늦추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현대자본 봐주기 아니냐"며 목소리높여 항의하기 시작했다.
"언론이 앞서갔을 뿐입니다. 우리는 아직 결론을 안냈습니다. 빠른 시일안에 내도록 하겠습니다" - 도대체 이날 항의방문에서 이 얘기를 몇번이나 들었는지 셀수도 없다. 노동부 측은 끝까지 "중앙 본부 측이 언론플레이를 한 것일 뿐. 우리도 중앙본부와 엄청나게 마찰을 겪고 있다"며 잡아뗐다. 노동부가 얼마나 콩가루 집안인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이미 판정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처리방침을 묻자, "불법파견 판정이 나면 개선계획서를 요구할 것이고, 따르지 않을 경우 경찰에 고발하는 것이 노동부 방침"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이 답변에 대표단 전원이 흥분하여 "그럼 노동부는 뭣하러 존재하는 집단인가? 불법을 가만두고 방치하겠다는 것인가?"라고 공격에 나섰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불법이라며 공권력 투입 운운하던게 노동부 아닌가? 그런데 1만여명 불법파견이라는 파렴치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경찰 고발인가? 정몽구 회장 구속수사를 하던지, 특별근로감독 등을 통해 강력한 행정제재를 가하면 불법파견 문제 풀리게 되어있다"
노동부 측의 답변은? "그건 장관한테 가서 따지세요. 우리는 힘없으니" 참으로 어이없는 답변들 뿐이었다. 비정규직노조 대표단들은 앞으로 노-정 관계에 대대적인 충돌이 있을 것임을 경고하며, 비정규노동자들 분노의 심정을 담은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항의방문 일정 내내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것은 경찰과 노동부 관계자들만이 아니었다. (주)현대자동차 협력지원팀 관계자가 아침 일찍부터 노동부로 출근하여 우리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 직원이야~ 노동부 직원이야?
협력지원팀 관계자 왈, "자동차노조도 가만있는데 왜 비정규직이 와서 설치나?" 웃기지도 않는다. "비정규직이 와서 항의 좀 하겠다는데 왜 원청 관리자가 와서 설치나? 이러니 불법파견 문제 피해갈 수 있겠어?"
항의방문 직후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11월18일 노동부가 현대자동차를 파견법 위반 혐의로 동부경찰서에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 아직까지 고발인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12월1일 본관 앞 항의집회 한번 했다고 비정규노조 조합원 19명이 고소고발당한 건에 대해서는, 고발인조사도 신속하게 끝내고 벌써 우리 간부들한테 경찰에 출석하라고 소환장까지 보내면서, 현대자동차에 대한 고발 건은 고발인 조사도 안해?
결국 동부경찰서도 한통속이 아니던가! 1만여명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입다물고 있으면서, 안기호 위원장과 서쌍용 사무국장을 수배, 구속시키는 작태! 이것이 바로 노무현 정부의 노동행정이다. 노동자가 중간착취, 이중착취에 신음하며 죽어가든말든 '기업하기 좋은 나라'만 만들면 되는 노동행정!
그러나 비정규직노조의 투쟁은 이제 본궤도에 올랐고, 어떠한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끝까지 갈 것이다.
그동안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긴세월동안 고통과 설움 속에 살았던가! 그러나 이제 불법파견 판정으로 집단적인 정규직화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동료들과 손잡고 함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길로 나아가자! 어둡고 괴로웠던 지난날을 뒤로 하고 이제 정규직화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자!
모이자! 12월16일 오후 8시 본관 앞으로! 비정규직 똘똘 뭉쳐 불법파견 정규직화 반드시 쟁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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