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0. 12. 14. 11:04
헤이그특사 이상설선생이 쓴 '數理'에 현대수학 등장
'수학 독립'
한국의 근대수학 자생적 연구 밝혀져…
日 "한국에 수학전수" 주장 근거 잃어
한국의 근대수학은 구한말 이후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 일본수학계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조선의 근대지식인들이 자생적으로 수학을 연구했다는 사실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1899년 완성된 수학서 '수리(數理)'이다.
이 책에는 '正弦(정현·현재의 sin)', '餘弦(여현·cos)', '正切(정절·tan)'처럼 표현만 다를 뿐 그 의미는 오늘날과 똑같은 삼각함수 공식이 등장한다. 또 ³√182284263 = 567 같은 세제곱근 문제, 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 2차 방정식도 등장한다.
이는 그 이전 어떤 조선의 수학책에도 나오지 않는 현대적 기호와 부호들이고 이후 일본수학을 수입한 근대 조선의 수학책들과도 분명히 구분되는 방식들이다.
▲ 이상설선생(사진 왼쪽)이 쓴 수학책 ‘수리(數理)’의 한 페이지. 갑(甲)을 a, 을(乙)을 b, 병(丙)은 c, 자(子)는 A, 축(丑)은 B, 인(寅)은 C로 각각 바꾸고, 正弦(정현)은 sin, 餘弦(여현)은 cos, 正切(정절)은 tan로 바꾸면 오늘날 쓰이는 것과 똑같은 삼각함수 공식이 된다.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흥미롭게도 이 책의 저자는 헤이그 밀사 사건의 주역인 부재(溥齋) 이상설(李相卨·1870~1917) 선생이다.
우국지사로만 알려졌던 이 선생은 1895년 근대 교육기관으로 거듭난 성균관의 초대 관장(이전까지는 성균관 수장은 '관장'이 아니라 '대사성'이라 불렀음)을 지냈던 학자였다. 성균관대학교 수학과를 중심으로 최근 국내 수학자들은 수리를 포함한 이상설 선생의 저작 연구를 통해 조선의 근대 수학이 한일병합 이전에 이미 상당히 진보해 있었음을 밝혀내고 있다.
◆서양 기호채용, 한글도 들어 있어
이상설선생이 집필한 '수리'의 전반부는 중국의 근대수학책인 '수리정온(數理精蘊)'을 주로 발췌한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는 수리정온에는 없는 근대수학의 새로운 개념들이 들어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서양에서 사용하던 기호들이 들어가 있는 점이다.
'수리'에는 방정식과 연립방정식이 기호화돼 있고 제곱근( )과 복호(±)를 포함한 2차방정식의 '근(根)의 공식'도 오늘날과 같은 기호로 적혀 있다. 이 같은 기호를 썼다는 것은 '수리'가 이전의 조선산학에서 근대수학으로 도약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다.
이전 조선의 수학책들은 '말 4필과 소 6마리의 값을 합하면 48냥이고, 말 3필과 소 5마리의 값을 합하면 38냥이라는데 말과 소의 값은 각각 얼마인가?'처럼, 문제를 말로 풀어냈다. 수학적인 기호가 없었던 탓이다.
'수리'에 나오는 구면삼각법도 수리정온에는 없는 내용이다. 오늘날 중고등학교 수학교과서에 나오는 사인(sin), 코사인(cos) 등을 이용한 삼각함수의 풀이 법들이 그 예이다. 이상구 성균관대 수학과교수는 "이상설선생의 저서들을 살펴보면 조선말기 수학과 과학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면서 "특히 기호를 쓰고 한글을 병용한 점 등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고 했다.
◆성균관엔 스캔들대신 수학이 있었다?
최근 TV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로 새삼 주목받고 있는 성균관(成均館)은 당대 석학들과 정치가들을 배출한 조선 최고의 '싱크탱크'였다. 성균관은 1895년 정식 교육기관인 경학과(經學科)를 설치하며 지리·산술 등의 강좌를 개설하고, 교수임명제와 입학·졸업시험제를 실시하는 등 근대교육방식을 시도했다. 이런 근대성균관의 초대관장이 바로 이상설선생이었다.
초대관장인 이 선생인 바로 '수리'의 저자라는 점에서는 국내 수학계는 성균관에서도 수학강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성균관대 이상구 교수는 "이상설선생이 집필한 '수리'가 1886년경 집필이 시작돼 1899년쯤 마무리됐다는 점을 보면, 당시 성균관에서 근대수학을 가르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1900년 이상설선생이 집필한 '산술신서(算術新書)'가 당시 교사를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이었던 한성사범학교에서 교과서로 쓰였다는 점 역시, 성균관에서 자체 제작한 교재로 근대 수학을 가르쳤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수학에서 시작된 근대과학의 뿌리찾기는 화학과 물리, 식물학등의 분야로 번지고 있다.
이상설 선생은 당시 물리학책 '백승호초(百勝胡艸)'와 화학책 '화학계몽초(化學啓夢抄)', 식물학책인 '식물학(植物學)' 등도 저술했다. 이들 책 속에는 현대의 역학, 자기학, 분자식, 주기율표, 일반생물학의 내용이 담겨 있다. 고려대와 서강대, 성균관대, 단국대 등에서 모인 20여명의 과학자들은 최근 이들 책에 담긴 근대 과학의 내용을 추적하고 있다.
박영민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이상설 선생의 식물학은 영국의 식물학책을 번역한 중국 책을 필사한 것으로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근대 식물학 서적"이라고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