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금사향 홍콩 아가씨 비밀
이원우
오늘도 김 기자(記者)는 흥얼거리고 앉았다, 금사향의 '홍콩아가씨'를 입에 올린 것이다. 별들이 소근대는 홍콩의 밤거리/ 나는야 꿈을 꾸는 꽃 파는 아가씨/ 이 꽃을 사 가세요 그리운 영란꽃/ 아아아아 꽃잎처럼 다정스런 그 사람이면/ 그 가슴 품에 안겨 가고 싶어요(1절)//이 꽃을 사 가세요 홍콩의 밤 거리/ 그 사람 기다리며 꽃 파는 아가씨/ 그 꽃만 사 가시면 그리운 영란꽃/ 아아아아 당신께서 사 가시는 첫사랑이면/ 오늘도 꿈을 꾸는 홍콩 아가씨(2절)
저 유명한 손로원이 작사하고 이재호가 작곡한 이 홍콩 아가씨는, 사향을 통해 세상에 깜찍한 모습을 드러냈었다. 1952년이다. 폭스 트로트, 2/4 박자. 폭스 트로트란 두말할 필요 없이 가벼운 춤곡이다. 사교춤과 평생 담을 쌓고 살아온 여든 살의 김 기자지만, 이 노래가 뜨면 그도 관광춤이 절로 나온다.
한때는 김 기자가 폭스 트로트(혹은 폴카) 곡만 스무 곡을 뽑아, 치료 음악으로 세상에 드러내놓은 적이 있다. 김정구의 '바다의 교향시'/ 박경원의 '만리포 사랑/ 진방남의 '꽃마차/ 백난아의 '낭랑 십팔세/ 백설희의 '딸 칠형제'/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자'/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등등. 그걸 마포구의 어느 노래 교실에서 한 시간 동안 메들리로 불러봤는데, 그 효과가 만점이었다. 한국 노인(할머니라는 게 낫겠다)들은 제 어디서나 노래만 나오면 관광춤이다. 거기 폭스 트로트(폴카)가 뒷받침된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공간이든지 들썩들썩한다.
그런에 적이 김 기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치료 음악 이야기를 갖고, 인천 계양구 팔송 노인대학에 들렀으렷다, 막바지에 피아노 반주를 하던 여학이 이러는 아닌가?
"기자님(선생님), 폭스 트로트가 만약 치료 음악이라면, 현제명의 '희망의 나라로'도 거기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대중가요 식으로 얼마든지 부르는 게 가능한 그 가곡을 갖고 노인들이 관광춤을 춘다? 개발의 편자입니다. '이별의 부산 정거장', 그 슬픈 가사에다 막춤을 얹는다는 고집, 꺾으세요. 실팹니다. 김 기자님의 치료 음악은--"
동료들이 아무리 만류를 해도 학생은 막무가내 자기 주장을 내세웠다. 김 기자는 코를 싸매고 수업을 끝내지도 못하고 돌아나오고 말았다. 강사 수당이랍시고 주는 봉투를 받으려는데, 학생과장이 하는 말이다.
" 저 학생은 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교사였습니다.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습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취재 차 김 기자는 신문사 편집국장과 함께 금사향(선생)을 찾은 것이다. 일산의 어느 요양원으로. 올해 딱 아흔 살인 그는 생각보다 정정했다. 기억력이 또렷해서 수십 년 전의 일화도 전부 재생시켜 들려 주었다. 셋이서 마침내 '홍콩 아가씨'를 입에 올렸다.
기가 막히게 맞았다. 남자인 편집국장도 무리 없이 잘 따라 불렀다. 금사향이 입을 열었다.
"가만있자, 이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친 것은 음역(音域) 덕분일 게야. 남여 모두에게 무리 없어요. 최고음은 '파(Fa)', 최저음은 '도(Do)'거든. 나 때문에 당시 산부인과 병원이 미어터졌단 말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편집국장과 김 기자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김 기자가 물었다.
"근데 선생님, 그 '영란꽃'이 무슨 꽃입니까? 저도 60년 넘게 그 노래를 불러 왔지만, 영란꽃 구경도 못했으니까요."
"몰라 나도--.얼마 전에 작고한 남백송 있잖아, 그 친구가 그러던데 자기의 히트 곡 '방앗간 처녀'에 나오는 '자명새', 구경도 못했다는 거야."
그 순간이었다. 턱받이를 두르고 간호사가 떠 주는 죽을 힘겹게 받아 먹던 어떤 할머니가 끼어든 것이다.
"그 영란꽃을 금사향 선생도 몰랐단 말이에요? 쯧쯧, 세상에--.내가 이래 봬도 숙명여고를 나왔는데, 우리 교화(校花)가 은방울꽃이라우. 영란꽃 혹은 영란화라고도 하지. 바깥에 나가 왼쪽으로 꺾어 3분만 걸어 봐요. 영란꽃이 지천으로 깔렸으니--. 못갖춘마디인 교가에도 그 꽃이 나와요. 내가 교가를 한 번 불러 보리다. (전략) '영란화' 송이송이 나랏내 나니(후략)"
그제야 셋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나오는 길이었다. 과연 일러 준 대로 간이 화단을, 흔히 보아오던 하얀꽃이 뒤덮고 있었다. 그러나 기분은 참 묘했다. 왜 저 꽃이 홍콩에서 그 시절 팔렸을까?
그러나저러나 김 기자는 이 번 일을 전화 위복의 계기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뱃속 깊은 데서부터 용틀임하는 느낌이라 소스라쳐 놀랐다. 뜬금없이 김 기자는 서영춘의 '서울 구경'(우리나라 노래가 아니다) 개사(改詞)한 것을 조그마한 목소리로 허공에 뿌렸다.
경상도 할마시 서울 간다고 기차 타는데/ 차표 파는 총각하고 실랭이 붙었네/ 아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딨능교/ 깎아 달라고 졸라 대니 우짜면 좋겠노/ 으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 으하하하으하하하하//기차가 뿡하고 떠날라 캅니데이/ 할마시가 깜짝 놀라 줌치를 풀면서/ 아 깎지 않고 돈 다 낼끼인께 기차 붙드이소오/ 아 뭐하능기요 돈 여기심더 기차 붙드이소오/ 으하하하하--
듣고 난 편집국장이 딴은 그럴싸하다는 표정이다. 김 기자는 이를 놓칠세라 한마디했다.
"폭스트로트입니다. 꿩 잡는 게 매지요. 치료 음악 완결편일지 모르지요. 스무 곡을 다시 고르는 데, 일조하십시오."
"이별의 '부산 정거장'도 '굳세어라 금순아'도 개사하세요, 하하."
"'홍콩 아가씨'는? 아마도 금사향 선생 생전에는 불가할 것 같습니다."
필자/ '76 <지우문예>/ '77 <수필문학>(김승우 발행/ 서울대 차주환 교수 추천)/ '83<한국수필(조경희 회장 추천)/ '97 <한글문학. 소설 신인상>(서울대 구인환 교수 추천)
* 한국 수필가협회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국제PEN한국본부(이사장 손해일)(/ 동 경기도 지역위원회 운영위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가톨릭문인회(회장 신달자) 회원/ 대한가수협회(회장 김흥국) 회원/부산 북구문화원 자문위원/ 한국여천차문화원 자문위원/ 26사단 홍보대사 및 안보강사/
*유네스코 부산협회 부회장(전)/ 부산명덕초등학교장(전)/ 부산북구문화예술인협회장(전)/ 부산북구문인협회장(전/ 초대 및 5대)/ 덕성토요노인대학장(전/ 21년 매주 무료 운영)
*저서 소설집 <새끼넥타이를 목에다 건 교장> <연적의 딸 살아 있다> 등 소설집 2권/ <어머니의 초상화> 등 수필집 15권/ 기타 3권 총 20권
* 수상
-황조근정훈장/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 봉사본상/ 부산교육상/ KNN 문화대상/ 교육부장관상
-한국수필사 제정 청향문학상/허균문학상/ 부산수필대상/ <문예시대> 문학 대상/ 부산가톨릭문학상/ 부산북구문학상/ 화쟁포럼문화대상(문학상)
-한국애견상/ 쿠알라룸푸르 한인회장 감사패/ 자랑스러운 부산교대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