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나드가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느냐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인 것만 말하자면,
빛의 구슬, 현실 세계와 환상세계
이 세가지입니다.
빛의 구슬은 유키네를 통해 '행복의 상징', 환상소녀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언급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소원을 들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드래곤볼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행복한 마음이라고 했는데 어째서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가하는 건 의문입니다만,
키사의 작품에 항상 박애정신이 보이는 것과도 관련이 있겠고, 행복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니까......
한편, 반대편 세계에서만 보인다는 설정은 토모야 눈에만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만든 듯합니다.
현실 세계는 마을과 사람들(+동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을에 무엇무엇이 있고 사람들은 누구누구인지 다 알테니 생략.
마에다 준은 환상세계는 그냥 환상일 뿐이라고 말했다는데,
이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위의 것들만으로도 된 세계관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환상세계는 실은 토모야 가족의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세계 - 어쩌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세계라고 여기는 겁니다.
특히 애니의 경우 이런 해석이 가능한데, 나기사의 죽음부터 우시오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가 꿈이었다고 해석하거나,
키사의 예전 작품 카논에서처럼 세계 자체가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 어쩌면 가상인 - 세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조: http://bnhikari.egloos.com/4243775)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클라나드에 순환(loop) 구조가 들어있다고 봅니다.
순환 구조는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원작 게임의 경우 순환 구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환상세계 마지막편(우시오 루트의 마지막 부분)에서 환상소녀의 입을 통해 그런 구조였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환상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떠나면 과거로 돌아간다는 정도만 나오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순환 구조가 클라나드 이전에 게임이나 애니에 별로 없었던 독특한 거라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만, 오락실 게임류에 이미 그런 구조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죽으면 끝이 아니고 - 제한된 횟수지만 - 다시 시작할 수 있죠.
다만 오락실 게임은 죽으면 게임의 맨처음이 아닌 그 판의 처음부터 시작하고, 노력 여하에 따라 순환 구조가 안 되게 할 수도 있다는 - 한번도 죽지 않는다면 - 점이 다르죠.
앞에서처럼 환상세계는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클라나드는 저 위에서 말한 것들에 이 순환 구조만 포함한 세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시오의 탄생부터 다시 시작하거나 (애니)
프롤로그를 볼 때마다 순환한다고 생각하고 순환할 때마다 빛의 구슬을 모으는 구조로요. (게임)
하지만 이 해석에는 문제가 있는데요,
순환구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면서 모순이 생깁니다. (예전에 얘기했듯이 클라나드는 과학을 다루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모순이 있으면 안됨.) 미래의 일이 과거에 영향을 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죠. (이것이 이해 안되면 '클라나드 속의 과학과 비과학'에서 말한 타임머신의 역설을 참고하세요.)
과거로 돌아가면서 직전까지 있던 일은 완전히 없던 일이 되어버리면 문제가 없지만,
빛의 구슬이 남아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희미하게 기억이 남아있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타임머신의 역설을 해결한 다중우주론(평행세계론)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즉, 앞에서 말한 모순은 하나의 우주만을 가정할 때만 생기는 거였음.)
(사실 다중우주론 없이 모순이 없는 해석이 가능하긴 한데, 그건 토모야가 미쳐서 상상속에서 과거로 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여기는 겁니다. 하지만 작품 속에 그런 암시가 없어서 이 해석을 배제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게임의 경우) 매번 새 게임(NEW GAME)을 누를 때마다 다른 세계(NEW WORLD)에 들어가게 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작품 속에 다중우주에 대한 암시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양복 신사나 코토미가 물리 이론이 찾아낸 숨겨진 세계를 언급했었고,
후루카와 부부가 토모야의 이름을 엄청난 스케일로 부르는 농담을 하는 장면(오카자키 은하, 대우주 토모야, 코스믹 토모야 따위로 부름)은 토모야가 우주를 초월해 다른 우주로 여행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암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또 하나의 우주가 뭐냐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애니의 경우는 루트마다 순환하는 걸로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환상세계만 다른 우주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 특별편들을 무시해야 하겠지만.)
아래 그림들이 그런 관점에서 변형된 경우인데, 현실 세계와 환상세계가 따로 존재하다가 융합하여 새로운 세계가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출처: http://yuratz.egloos.com/2348557)
이 해석은 애니 최종회(AS 22화)에서 창 밖으로 온통 솜뭉치 같은 수많은 빛들이 마을을 감싸는 것이 보인 이유를 세계의 융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환상세계가 겨울마다 파괴된다고 한 것은 문제인데, 나기사나 우시오가 쓰러진 게 겨울이 시작하는 시점이 아니고, 더구나 나기사가 어릴 때 죽을 뻔했다가 산 것도 겨울이니 환상세계가 주기적으로 파괴된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위의 마지막 그림에서 '아래 자료'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 그림입니다. (출처: Sankaku Complex)
이 해석은 AS 17~21화가 첫번째 세계의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고,
원작 게임에서 환상소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빛의 구슬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암시가 있기 때문에,
세계를 더 추가합니다. 곧,
토모야와 나기사가 사랑하여 결혼하나 불행한 결말. 이어지는 환상세계
→ 빛의 구슬 모음. 불행한 결말. (사실 게임에서는 이 과정에서 여러 번 순환)
→ 빛의 구슬이 다 모인 상태에서 시작. 토모요, 나기사, 우시오, 오래오래 행복하게.
여기에 환상세계를 나기사와 동일시하거나 (참조: http://gaemihalgi.egloos.com/583240)
우시오와 마을을 동일시하는 해석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참조: http://blog.naver.com/woozo2/140065581045)
이제 이 세계관에 제가 좀 더 문학적인 해석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일단 형식적인 구조 자체는 위에서 언급한 가장 많이 받아들여진 해석을 따르겠는데, (사실 환상소녀의 마지막 말들을, 빛의 구슬을 모아달라는 뜻이 아닌 모인 구슬을 쓰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구슬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해석도 틀리진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해석해도 이어지는 글은 O.K.)
제가 덧붙일 것은 왜 이런 구조를 택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클라나드의 세계는 불교적 세계관의 비유 또는 상징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순환 구조 - 윤회
환상 세계 - 저승(사후 세계)
빛의 구슬 - 공덕
곧 윤회를 반복하면서 공덕을 쌓으면 모두가 행복한 삶(진엔딩)을 살게 될 거라는 암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
이런 생각은 키사의 작품들이 박애정신을 담고 있다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키사의 작품에는 항상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 마에다 준은 현실에는 항상 착하게 사는데도 불행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괴로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생각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
이런 인생의 부조리를 해결하는 방법은 종교가 제시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트교는 천국을 도입해서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인간이 알 수 없는 신의 뜻에 따라 불행하게 살 수 있지만 죽은 뒤 천국에 가서 모든 보상을 받게 될 거라는 것.
한편 불교에서는 이 문제를 인과응보로 이해하는데, 불행은 과거의 업보 때문이고 착하게 산 만큼 환생했을 때 행복해 진다고.
혹시 마에다 준은 착하게 사는데도 불운한 사람들이 겪는 부조리에 대해 고민하다가, 일본이 불교 국가니까 자연스럽게 불교적 세계관에 생각이 미친 건 아닐까요?
하지만 불교의 세계관 그대로 게임을 만드는 건 무립니다. 환생할 때마다 캐릭터들이 바뀌어야 하니까요. (앺터 스토리 분량을 두 배로 늘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대신 비슷한 건 만들 수 있죠. 순환 구조와 다중우주론을 도입한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클라나드가 지극히 현실적이고 처참한 비극을 포함하는 이유도 설명되고, 왜 플레이어가 반드시 비극을 거치야 하고 빛의 구슬을 모아 진엔딩을 보기 위해 여러 번 반복순환하는 긴 여행을 해야 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근거를 댄다면, 신적인 존재인 환상소녀가 세계랑 동일시되는 것도 불교적입니다. 불교에서는 세상이 모두 부처라고 이야기하니까. (개념적으로 부처와 신이 다르긴 하지만.)
또 티벳 불교에서는 모든 사물에 영혼이 있다라고 한다는데 클라나드에서 마을이 영혼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사물에 영혼을 부여하는 건 신토(神道 일본 토속 신앙)도 마찬가지지만 신토가 불교와 결합되어 있으니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키사의 박애정신이 불교의 자비와 가까우니까 불교적 세계관에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죠.
뭐 제 생각이 절대 맞다고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애초에 클라나드는 여러가지 해석의 여지를 두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해석하느냐는 각자의 자유니까요.
모순만 없다면 어떤 해석도 가능한 자유가 클라나드에는 있습니다.
물론, 이건 염두에 둬야 겠죠. '클라나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렇게 볼 때 '가족'이라는 주제와 이런 세계관이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을 할 수 있겠죠?
중요한 건 결국 '인정'( 또는 사랑) 이나 '인연', '행복' 같은 것들일텐데,
이것들은 가족에서 찾을 수 있는 요소들이지만, 또한 위에서 말한 세계관의 바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클라나드는 세계관이 주제에 아주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댓글 하지만 빛의 구슬을 모은 토모야는 죽거나 불행해진다고 말했던 이타루 저주는...
그게 뭐임?
클라나드의 원화가이신 이타루쨔응이 한 망언입니다.
빛의 구슬을 모은 토모야는 죽거나 불행해 진다.
라는 말이었죠
이 말인즉슨 게임상에 나오는 빛의 구슬을 모으는 토모야(즉 플레이어)는 그 빛의 구슬을 환상세계로 전송 한 뒤 할일 다 마쳤으니 소멸된다. 라고 해석이 된다고 하더군요.
처음에 얼핏 이해가 안 되었는데 생각해 보니 오히려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아요.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산다면 굳이 다시 순환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죽거나 불행해지기 때문에 순환하는 거죠. 이타루의 발언 때문에 더더욱 불교적 세계관을 의심하게 되는데요. 업보가 남아있고 충분히 공덕을 쌓지 않는 한 윤회를 거듭하며 행복해 질 수 없는 것과 일치하니까.
히발 그러면 토모요짱과는 이루어 질 수 없는건가요
그 이야기라면 토모요 앺터에 나와있다면서요? 토모요 앺터가 클라나드 토모요 루트 뒷이야기로 알고 있는데요
아.... 안해보셨군요...
네타입니다...
엇 뭐 어차피 안 할 거였지만. 토모요와 토모야의 사랑은 또 다른 우주가 있다고 상상하는 수밖에는
굉장한 글이군요!! 잘 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