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593>君子는 欲訥於言, 而敏於行이니라

‘논어’는 말과 행동의 차이, 이론과 실천의 괴리에 대해 반성하도록 촉구한다. 里仁(이인)편의 이 장도 그 하나다.
君子는 德을 닦는 사람, 주체적인 인격을 갖춘 사람이다. 欲(욕)은 주어가 ‘∼하려고 한다’의 뜻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이 장은 군자가 이리이리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 된다. 欲은 말하는 사람이 ‘∼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공자가 군자라면 ‘이리이리 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하고 권장한 것이 된다. 訥(눌)은 대표훈이 ‘말더듬다’이니, 언변이 부족함을 訥言(눌언)이라고 한다.
그러나 군자라고 해서 일부러 말을 더듬는다면 옳지 않다. 이 장의 訥은 ‘말더듬다’가 아니라 ‘말을 신중하게 한다’로 풀이해야 한다. 옛 사람은 遲鈍(지둔)이라고 풀이했다. 敏(민)은 본래 부인이 머리를 매만지고 열심히 제사 일을 돕는 것을 의미했는데 그 뒤 敏捷(민첩)하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放言(방언·말을 함부로 함)은 쉽다. 그렇기에 말을 신중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 力行(역행·실행에 힘씀)은 어렵다. 그렇기에 행동을 민첩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가벼움을 고치고 게으름을 경계하는 矯輕警惰(교경경타)의 방법이다. 이러한 일은 내 자신이 篤實(독실)하게 수행해야지 남 눈치를 보고 명예를 탐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장은 學而(학이)편에 나오는 ‘敏於事而愼於言(민어사이신어언)’장과 통한다. “일의 실천에서는 민첩하고 말에서는 신중하다”라는 말이다. 또 같은 里仁편에, “古者(고자), 言之不出(언지불출)은 恥躬之不逮也(치궁지불체야)”라는 장이 있다. “옛 사람이 함부로 말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실행이 미치지 못할까 부끄러워서였다”라는 말이다. 言行一致(언행일치)를 중시하라는 이 가르침이 오늘날 큰 울림을 지닌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한자 이야기]德不孤라 必有隣이니라

‘논어’ 里仁(이인)편의 이 장은 음미할수록 새 희망을 갖게 한다. 덕을 닦는 사람은 같은 뜻을 지닌 사람과 연대하기에 결코 외롭지 않을 수 있다고 일러주기 때문이다.
孤(고)는 외롭다는 뜻이니 孤立(고립), 孤獨(고독)이란 말이 모두 이 글자를 사용한다. 不孤(불고)는 외롭지 않다는 말이다. 必(필)은 ‘반드시 ∼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이 글자는 본래 창날을 자루에 장착하는 부분을 나타냈다. 지금은 木부에 必자를 쓰는 글자가 따로 있다. 必을 ‘반드시’의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假借(가차)의 용법이다. 有(유)는 ‘∼이 있다’는 말이다. 隣(린)은 본래는 신성한 장소를 나타냈으나 이웃이란 뜻으로 바뀌었다. (린,인)으로도 적지만 뒷날 만들어진 글자다.
學而(학이)편에서 공자는 “벗이 먼 곳으로부터 오니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말했다. 또 옛 성인 舜(순)은 한곳에 정착하길 세 해 만에 도읍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周易(주역)’ 乾卦(건괘) 文言傳(문언전)에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기질이 같은 사람은 서로 찾는다”는 뜻의 ‘同聲相應(동성상응), 同氣相求(동기상구)’라는 구절이 있다. 같은 덕의 사람은 서로 응한다는 同德相應(동덕상응)의 사실을 말한다. ‘史記(사기)’ 伯夷列傳(백이열전)에서 司馬遷(사마천)은 이념 때문에 외롭게 죽어간 백이와 숙제를 조문하면서 그 점을 강조했다.
한편 ‘주역’ 坤卦(곤괘) ‘문언전’에 “군자는 敬(경)으로써 안(마음)을 곧게 하고 義(의)로써 바깥(일)을 바르게 하므로 敬과 義가 확립되어 德이 외롭지 않다”라고 해서 역시 ‘德不孤(덕불고)’가 나온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敬과 義의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음을 뜻하므로 里仁편과 다르다고 했다. 정약용은 敬과 義를 확립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풀이해서 둘이 통한다고 보았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