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지방에서 대관령 산길의 안전통행 또는 풍작·풍어와 같은 청안(淸安)을 기원하여 거행하는 동제(洞祭).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다. 단오굿·단오놀이·단양제(端陽祭)·단양굿·단양놀이라고도 한다. 단오날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잔치이며, 그 준비과정·규모 등이 매우 크다. 음력 3월 20일 신주(神酒)를 담그는 일부터 5월 6일 소제(燒祭)까지 약 50여 일에 걸친 행사이다. 형식은 지방관리의 대표와 지방유지가 나와서 유교식으로 제사를 올리고, 제사가 끝나면 그 지역의 가장 큰 무당이 주관하는 굿판이 벌어진다. 반주는 꽹과리·징·장구·쇄납 등으로 하며 주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각종 놀이가 벌어진다.
제사일정과 진행과정은 다음과 같다. 3월 20일 제수용(祭需用) 술을 빚고, 4월 1일 서낭에게 신주(神酒)와 시주(施主)를 올리고 삼헌(초헌·아헌·종헌)이 끝난 뒤, 무당들이 굿을 한다. 4월 8일 큰 서낭당(성황당)에서 굿이 벌어진다. 4월 14일 저녁에는 대관령국사 서낭을 모시러 떠난다. 16명의 악사와 관리들과 함께 남녀 무당 약 60여 명이 행진을 하는데, 옛날에는 모두 말을 탔고 그 뒤를 수많은 주민들이 따랐다. 송정(松亭)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서낭당에 도착하여 서낭당과 산신당(山神堂)에 각각 제사를 지낸다. 서낭당 근처에서 무녀가 굿을 하고 나면 한 나무가 흔들리게 되는데, 그 나무에 신이 내렸다 하여 그것을 벤다. 이를 신간목(神竿木)이라 한다. 산을 내려오는 행렬이 이조(吏曹:관리의 무리)에 가까워지면 시민들은 횃불을 들고 마중을 나간다.
서낭은 여서낭당에 모셨다가 다시 시내에 있는 큰 서낭당에 모신다. 오늘날은 큰 서낭당이 없어져 임시로 가설을 한다. 4월 16일부터 9월 6일까지 매일 새벽 관리와 무당들은 서낭에게 문안을 드리며 기원을 한다. 4월 27일 큰 굿을 하고 5월 1일부터 본격적인 단오제가 시작되는데 무당들의 굿과 가면놀이가 당집 앞에서 벌어진다. 이때 팻대를 만들어 그것을 매고 시가행진을 한다.
5월 5일 본제(本祭) 등 대규모의 제의(祭儀)를 행하는데, 가면놀이·씨름·그네·체육대회 등이 이루어진다. 팻대를 앞세우고 출발한 행렬은 큰 서낭당에서 약국서낭[藥局城隍]·소서낭[素城隍]을 거쳐 시내를 돌면서, 곳곳에서 여러 차례 굿을 한다. 저녁에 팻대는 여서낭당에, 신간은 큰 서낭당에 봉안한다. 5월 6일 큰 서낭당 뒷골에서 소제가 진행된다. 단오제를 위해 만든 신간·팻대 등 사용되었던 모든 물건들을 불태운다. 서낭이 다시 대관령으로 봉송되면 단오제가 끝난다.
마을굿에 유교식 제사의식이 첨가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인데, 당시에는 마을굿이나 백성들이 지내는 산신제·용왕제 등을 음사(淫祠)라 하여 금지령을 내렸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생활 속에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아온 민간신앙을 단절시킬 수는 없었고, 여기에 유교식 제례를 접목시켜 강릉단오제와 같은 새로운 유형을 창조하여 전통을 이어갔다. 그러나 일제의 민속문화말살정책에 따른 '굿의 폐지'(두레굿 제외)와 1970년대 새마을운동에 따른 각 마을의 당(堂) 철거작업이 진행되면서 종교적·오락적·사회비판적 성격을 지니고 있던 민간풍습은 잡다한 놀이로 변용되어갔다.
강릉단오제의 절차
강릉단오제의 시작은 신주빚기로부터 시작된다. 단오제 때에 쓸 술은 도가집에서 담그는데, 성황신께 올리는 술이기 때문에 도가는 몸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근신하여 부정을 멀리한다. 원래 신주근양은 예로부터 음력 3월 20일에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근래에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고 대관령산신제를 비롯해서 강릉단오제와 관련된 신을 모시는 제를 지내기 1주일이나 열흘 전에 담그고 있다.
신주를 담글 때는 무당들이 부정치기굿을 해준다. 이 굿은 신주가 부정타지 않고 잘 담궈 지기를 기원하는 내용과 신주빚기로부터 시작되는 강릉단오제가 무사히 잘 지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굿에 쓰이는 소품인 종이꽃과 종이로 만든 용선(龍船)과 등(燈)도 이때 함께 만들어진다. 종이꽃으로는 국화, 박꽃, 연꽃 등을 만들 수 있고 꽃 이외에 연봉(蓮棒)이 있으며, 완자무늬나 기둥무늬의 호롱불, 초롱등, 굇대등, 탑등과 같은 것이 있고, 용선은 물감으로 그림까지 그려서 커다랗게 만든다.
대관령산신제(大關嶺山神祭)
대관령산신제를 지내는 산신당은 대관령성황당에서 동북쪽으로 40m 정도 거리를 두고 자리잡고 있는데 단칸의 와가로 되어 있다. 당내 정면에 높이 3척 정도의 제단이 있고, ‘대관령산신지신위(大關嶺山神之神位)’라고 쓰여진 위패(位牌)가 있으며 그 앞에 향로와 촛대가 놓여 있다. 산신은 주신이기 때문에 매년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산신은 주인이고 성황과 부처는 손님이라고 한다. 음력 4월 15일 아침에 대관령 산신당에서 산신제가 행해지는데 관원에 의해서 삼헌이 이루어지고 홀기에 적힌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유교식 제의 형식이다.
대관령국사성황제(大關嶺國師城隍祭)
대관령국사성황제를 지내는 성황당은 당집의 형태이고 건평 5평 정도의 와가로 당내 정면(북측)벽에 제단이 있고 그 앞에는 제상이 놓여 있었다. 사당문을 좌우로 열면 국사성황상(國師城隍像)이 있고 그 앞에 촛대 둘과 향로 하나 동쪽에는 지화가 꽂혀 있다. 성황상은 궁시(弓矢)를 메 위엄 있는 노인이 백마를 타고 있으며 시종이 한 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한 손으로는 말채를 들고 있다. 성황신의 전후에는 호랑이가 앞뒤로 호위하고 있으며 화면에 ‘대관령국사성황지신위(大關嶺國師城隍之神位)’ 라고 세로로 써 있다. 이 영정은 원래의 것이 아니고 근래에 새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성황당은 4월 12일에 금줄을 쳤다가 15일 제시(祭時)에 떼기 때문에 3일간은 손님을 받지 않고 금기를 지킨다. 대관령국사성황제는 유교식 형태와 무속굿 형태가 결합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구산리 성황제 구산동의 성황당은 맞배지붕의 와가 고옥의 당집 형태로 되어있다. 성황당 안에는 정면 왼쪽으로부터 토지지신(土地之神), 성황지신(城隍之神), 영산지신(靈山之神), 여역지신(癘疫之神)의 위패가 나란히 있다. 대관령에서 국사성황신을 모시고 강릉시내로 내려오다가 이곳 구산리 성황당에 잠시 들러 머무르고 이곳에서 유교식 형태와 무굿 형태의 성황제를 지내고 난 다음에 강릉 시내로 행진하게 된다. 예전에는 대관령에서 국사성황신을 모시고 구산리로 내려오면 그때를 즈음해서 마을 사람들이 싸리나무와 관솔을 묶어서 만든 횃대에 불을 붙여들고 국사성황신을 영접했으며 구산동 성황당에서 성황제와 굿을 하고 강릉으로 향할 때면 저녁때가 되었는데, 구산리 마을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강릉시민들 수백 명이 횃불을 들고 마중을 나왔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구산(邱山)에서부터는 노화행렬(爐火行列)이 시작되었다.
학산리 성황제
학산리는 대관령국사성황신으로 좌정한 역사 속의 인물 범일국사가 탄생했다고 전하는 곳이다. 이곳에 대관령국사성황신과 그 일행이 도착하면 제물을 차려놓고 무굿 형태의 성황제를 지낸다. 이곳에서 강릉단오제 행사의 일환으로 성황제를 지내는 것은 1999년이 처음이었다고 하며, 대관령국사성황신을 모시고 와서 성황제를 지내는 이유는 국사성황신이라고 전하는 범일국사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성황제를 지내고 나면 대관령국사성황신을 모신 일행은 마을에 있는 석천(石泉)을 비롯해서 마을을 한바퀴 돈 뒤에 국사성황신을 대관령국사여성황신과 함께 단오제가 시작되기 전까지 봉안하기 위해 홍제동에 있는 대관령국사여성황사로 이동한다.
여성황제의(女城隍祭儀)
여성황사는 예전에 남문동(南門洞 : 지금의 공동변소자리)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지금은 수도관리사무소 후산록(後山麓)에 자리잡고 있다. 여성황사는 대관령국사성황의 부인인 여성황을 제사한 곳으로 세 칸짜리 와가로 되어있으며 신축이전된 지 얼마되지 않으므로 단청도 깨끗하고, 정면 벽에 여성황의 영정이 앞에는 호랑이가 그려 있다. 화상 앞에는 국사여성황신위(國師女城隍神位)라고 쓴 위패가 세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의 여성황은 강릉 사는 정씨(鄭氏) 가문의 딸이었다고 하는데, 여성황사의 관리도 주로 그 정씨 가문의 후손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대관령에서 국사성황을 모시고 4월 15일에 내려오면 단오제가 있을 때까지 이곳 여성황사에 함께 모셨다가 단오 일에 제사를 지내게 된다. 그리고 단오 일을 앞두고 큰 굿청으로 모셔갈 때까지 약 보름동안 부부 성황이 여성황사에 머물게 되는데 그 동안은 부부가 함께 있게 되는 셈이다. 성황을 모셔 가는 날에는 여성황제를 지내는데 그 의례 절차는 대관령국사성황제와 동일하고 제물의 진설도 대관령국사성황제와 같다.
영신제(迎神祭)와 국사성황행차
음력 5월 3일에는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신을 여성황당에서 굿청으로 모셔갈 때에 영신제를 지낸다.
조전제(朝奠祭)
조전제는 단오날 아침뿐만 아니라 음력 5월 4일부터 7일까지 아침마다 지낸다. 강릉시장이 초헌관이 되고 경찰서장이나 강릉교육장이 아헌관이 되는데, 사정에 따라 다른 기관장이 대역을 맡는 일도 있다. 조전제는 유교식으로 이루어지며, 대관령국사성황신과 대관령국사여성황신을 모셔놓은 단오장의 굿당에서 행해진다. 조전제의 의례절차는 대관령국사성황제와 동일하고 제물의 진설도 대관령국사성황제와 같다.
무속제의
강릉단오제는 영동지역에서 가장 큰 제의로 무속제의의 성격이 강하다. 5월 5일의 본제를 앞두고 남대천변의 굿당으로 모시는데 도중에 여성황의 생가라 전하는 정씨가와 옛날에는 소성황(素城隍), 약국성황에도 들러 굿을 했다고 한다. 여성황사에 합사한 수일 동안 굿을 했고 굿당에 모신 후로는 매일 조전제가 있었으니, 관원에 의한 유교제의가 끝난 다음에 무당들에 의한 굿이 있었고 단오날 무굿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1964년 당시 무녀 장대연은 열두거리라 해서 다음과 같은 거리로 구성되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① 부정굿 ② 성황굿 ③ 성주굿 ④ 군웅굿 ⑤ 세존굿 ⑥ 조상굿 ⑦ 설영굿 ⑧ 제석굿 ⑨ 당고매기 ⑩ 심청굿 ⑪ 손님굿 ⑫ 뒤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