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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암릉과 원시림과 뱀과 씨름한, 그래도 행복했던 황장산
1. 일자 : 2011. 8. 20 (토)
2. 장소 : 황장산(1077m)
3. 행로 및 시간
[안생달(10:30) -> 폐광(10:42) -> 작은차잣재(11:02) -> (송림) -> (백두대간 능선) -> 바위 전망대(11:46) -> (중식, 12:05) -> 멧등바위(12:15) -> 정상(12:34) -> (희미한 길) -> 감투봉(13:00) -> 배창골 안부(13:10) -> (길 헤맴) -> 배창골 계곡(14:14) -> 마을 입구(14:52) -> 안생달(15:05)]
4. 동행 : 성우, 막내
< 황장산 산행을 준비하여 >
8월초 잠시 주춤하던 비가 금 주도 변함없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다행히 금주 토요일은 모처럼 날씨가 맑을 것 같다는 예보에 지난 ‘주흘산 멤버’들이 다시 뭉치자 한다. 오늘 산행지는 그 때와 같은 문경 땅의 ‘황장산’이다. 핸드폰 문자로‘8시 분당 출발, 10시 30분쯤 문경 도착, 10:30 – 14:30 산행, 이후 목욕 + 뒤풀이’라는 메시지를 멤버들에게 보내니, ‘환상적’이라는 답이 온다. 기분이 좋아진다. 준비하는 자의 작은 행복은 바로 이런 것이다. 월악산 동남쪽에 위치한 황장산은 백두대간이 소백산을 지나 저수재와 벌재를 지나며 만들어 놓은 산으로 작성산, 황정산으로도 표기된 적이 있다. 실제 인근 단양에 황정산과 무주에 적상산이 실존하므로 이름이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이곳 저곳에서 수집한 자료에 의하면, 황장산은 깊은 골짜기의 원시림과 빼어난 암벽으로 유명한 산으로 조선시대에 황장목(수령이 300년 정도 되어 속이 누렇게 된 소나무)이 유명하여 봉산(封山) 되었다 한다. 황장산이 100대 명산 반열에 오른 이유는 ‘울창한 산림이 암벽과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다우며 황장목이 유명하고 조선시대 봉산 표지 석이 있는 등 경관 및 산림문화적 측면을 고려하여 선정’ 했다 한다. 직접 올라 내 몸과 눈으로 확인해 보아야겠다. 여러 산행 코스 중 생달리 안산다리를 기점으로 작은차갓재-정상-산태골-안산다리로 원점회귀 하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며, 차갓재부터 정상까지 이어진 백두대간 능선의 아기자기한 암릉미를 즐기며 사방에 솟아 있는 이웃 산들을 감상할 수 있다 하여 오늘의 길로 선택한다. 산행 코스를 점검해 본다. 분당에서 170km를 달려 생달리 안산다리에 도착해서 30분 정도를 오르면 작은차잣재에 닿고 헬기장과 전망바위를 지나 경치 좋은 멧등바위 까지는 1시간, 이후 20분 정도면 정상에 서게 될 것이다. 이후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감투봉에 오른 후, 여의치 않으면 곧바로 안부에 내려서 산태골로 내려오는데 1시간 30분을 예상한다. 식사 시간까지 고려하면 4시간 남짓의 산행이 될 듯하다. 길의 사정은 오름은 암릉 길이지만 경치가 좋아 걸을 만 할 것이고, 산태골 하산 길은 가파른 계곡 길이 될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아 여름날 걷기에 무리가 없는 선택일 듯하다. 몇 해 전 가을 월악산에 올랐다가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산군들의 파노라마 속에서 난 이미 눈으로는 황장산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문경, 단양, 괴산, 보은 지역은 백두대간의 가장 많은 구간을 포함하고 있다. 늠름하게 이어지는 대간의 산 너울이 눈 앞을 어른거린다. 어서 주말이 와서 마음 맞는 산 친구들과 함께 산에 붙어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 희망사항 >
오늘 산행 코스 중 차잣재에서 정상을 거쳐 황장재로 이어지는 길은 백두대간 길이다. ‘백두대간’이라는 말이 대중화 되기 까지는 여러 사람의 노고와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다. 내가 아는 바를 정리하면 이렇다. 적어도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백두대간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지리수업에서는 태백산맥, 노령산맥, 차령산맥 등이 한반도 지도에 굵은 선으로 표기된 것을 늘 보아왔지만, 노령/차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사실 지금도 모른다.) 시험을 위해 무작정 산맥들을 외웠던 기억이 전부다. 이러한 산맥의 개념은 1903년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의 ‘조선 산악론’에서 유래한 것으로 땅속 맥 줄기인 지질구조선을 기본으로 한 것이다. 그것이 일제의 한반도 수탈을 위한 수단으로 의도적으로 만든 것인지, 당시의 지리 연구 방식의 기본인지는 몰라도, 산맥 중심의 산 표기는 실제 산의 지형을 알려주지는 못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백두대간은 산의 실제 지형적 흐름 즉 ‘산경’을 기본으로 한 개념이다. 이
개념은 1769년 신경준 등에 의해 발간된 지리서 산경표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산경표는 우리 국토 산의 줄기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구분하고
기맥까지 기록한 책이다. 이 산경표에서 백두대간의 개념이 처음 등장하게 된다. 이후 산경표는 육당 최남선의 조선광문회에서 영인본으로 만드는 등 중요 자료로 다루어 졌으나, 일제시대를 거치며 잊혀진 책이 되었고, 1980년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씨가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는 어두운 책 장 안에서 방치되어 있었다. 오늘 산행은 대간 길을 걸으며 ‘산경표’를 만든 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적을 먼 발치에서 나마 바라보는 의식을 가져 보고 싶다.
< 문경 가는 길 >
막내와 함께 귀인중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분당 가는 길, 버스 안이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붐빈다. 하늘은 흐리다. 맑은 날을 기대했는데 ‘비’라는 대세를 이기지 못한다. 8시가 체 못되어 분당 도착. 네비에 ‘생달교회’를 입력하고 길을 나선다. 영동고속도로를 타는데 예전과 다르게 막힘이 없다. 자주 다니지 않는 사이에 도로 확장 공사가 계속 진행되었나 보다. 중간에 휴게소를 들렸는데도 문경에 도착하니 10시 30분이 되지 않았다. 도로에서 바라 보는 문경의 산은 연무 속에서도 우람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산 많은 고장에 도착했음을 직감한다. 안산다리를 지나 한백주 제조장 부근 도로에 차를 세우고 산으로 올라 붙는다. 비가 흩날리고 있다. 이 놈의 비 지랄 같다!
< 안생달에서 황장산 정상 >
간단히 비 채비를 마치고 도로를 따라 걸으니, 이정표가 나온다. ‘안생달, 해발 548m’길이 갈래지는데 무심코 좌측으로 들어서니 지나는 할머니께서 우측을 가리치시며, “황잔산 가는 거 아니야? 그리로 가”. 다시 지도를 본다. 좌측 길은 차잣재 길, 우측은 작은차잣재 길이다. 노인이 아니었으면 실수할 뻔 했다. 고개를 들어 가야 할 길을 올려다 본다. 커다란 암봉이 눈에 들어온다. 제법 험해 보인다.‘베바위’일 것이다. 정상은 그 뒤에 몸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도로를 따라 오르니 좌측으로 웬 공사장이 나타난다. 처음엔 누가 펜션을 짓나 보다 했는데, 입구에 도착하니 사진에서 보았던 폐광이다. 커다란 문은 간 곳을 모르겠고 관광지로 만들려는지 공사가 한창이다. 그 뒤편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계곡의 물소리가 들린다. 길 가에 물봉선이 분홍빛 자태를 요염하게 보이며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다. 어여쁘다
< 안달생 들머리 / 물봉선 > |
폐광을 뒤로 하고 산 길에 접어드는데, 입산금지 팻말이 있다. 어두운 길은 더욱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다시 돌아 와 공사장 관리인에게 길을 물으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맞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모두들 그리로 갑디다. 이 비 오는데 누가 단속하겠소.”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자신을 얻고 금줄을 넘는다. 길이 넓어 진다. 수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계곡이 시원하다. 키 큰 낙엽송이 호위하는 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원시림을 걷는 기분이다. 산 길 초입 나무의 식생이 매우 다양하다.
출발 30분만에 작은차잣재에 닿는다. 고도계의 높이는 760m, 표지판의 고도는 816m. 표지판의 고도가 맞았으면 하고 바래 본다. 어째던 높이가 꽤 되는 마을에서 올라온 탓에 고도에 대한 부담은 줄어들었다. 작은차잣재 이정표 바로 옆 헬기장을 지나 백두대간 능선 길에 접어 든다. 머리 속으로 그리던 바로 그 길을 걷는다. 초입에 잣나무 길이 나타난다. 해가 들지도 못할 만큼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 숲이 보기에 멋지다. 혹 소나무인가 하여 잎을 살피니, 다섯 개 잣나무가 맞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신다. 피톤치드가 느껴진다. 가슴이 시원하다.
이어지는 길, 평지능선을 기대했지만 굽이가 있다. 한참 오르막을 걸으니 비로서 시야가 트인다. 멀리 멧등바위가 자태를 나타낸다. 머리에 구름을 이고 있다. 본격 대간 능선 길이다. 바위가 잦아지고 벼랑에 선 소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연무에 젖어도 준수한 풍광이 이어진다. 풍광명미 ‘자연의 경치가 맑고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에 걸맞은 풍치 있는 멋스러운 전경이 이어진다.
< 잣나무 숲 / 멀리서 본 멧등바위 >
길은 조금씩 험해 지지만 그에 비례하여 볼 거리는 많아진다. 우측 발 밑으로 지나 온 생달리 마을의 모습도 보인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쉼을 갖는다. 이곳은 690km의 남한 백두대간 길의 중간 지점이다. 큰 고빗사위 없이 아기자기한 오르내림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더니 제법 긴 오름을 오르자 베바위 위 전망대가 나타난다.
< 전망바위에서의 풍경 >
능선 안부는 어디서 왔는지 한 무리의 산꾼들로 시끌벅쩍하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린다. 배낭을 벗고 쉬다가 바위 위로 오른다. 초입은 위험해 보이더니 막상 오르니 너른 반석이 있어 ‘식당자리’로 제격이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가까워진다. 자리를 편다. 성우가 새벽에 계란을 씌워 다시 싼 김밥과 샌드위치, 막내가 준비한 과일 등으로 푸짐한 점심 상이 차려진다. 난 입만 갖고 덤빈다. 비를 맞으며 대간 길에서 먹는 점심. 멧등바위 위로 구름이 내려 앉는다. 그 밑으로 개미처럼 꿈틀거리며 앞 서 간 산꾼들이 바위에 달라 붙은 모습이 보인다. 멀리 대미산 방면은 연무에 젖었어도 운치 있다. 신선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이 맛에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막내가 준비한 터키산 사과녹차를 마시는 것으로 ‘성찬 의식’이 끝났다. 연무가 점점 짙어진다. 빗발이 조금은 더 거세지는 것 같다. 서둘러 멧등바위로 향해야겠다.
< 멧등바위에서 1 >
멧등바위 앞에 선다. 직벽이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다. 위압적이다. 그 밑으로 두 개의 밧줄이 메어져 있다. 발을 딛기가 만만치 않은 바위 길을 내가 먼저 힘겹게 오른다. 다음은 막내. 중간지점까지는 힘차게 오르더니, 마지막 구간은 몹시 힘에 겨워한다. 성우가 밀고 나는 위에서 당겨 겨우 끌어 올린다. 그래도 우리 막내의 용기와 강단이 대단하다. 팔 힘이 조금 부족한 것 말고는 여느 산꾼 못지않다. 점점 산에 적응해 가는 모습이 대견하고 고맙다.
고진감래라고, 험로를 오른 고통의 열매는 달았다. 멧등바위 위는 그야말로 신선의 땅이다. 위험한 구간이 간간이 이어지지만, 바위 난간에는 여지없이 장차 ‘황장목’이 될 소나무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고, 간간이 바람이 불어 연무가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쉽지 않은 대간 길을 마음 맞은 이들과 함께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옛날 이 길을 누비며 지도를 만들던 이들도 혼자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벗이 있어 함께 하는 길에는 언제나 즐거움이 묻어난다.
연무가 점점 짙어지더니, 12시 30분 무렵에는 온 산을 완전히 덮어 버린다. 식사를 미리 한 것과
서둘러 멧등바위를 올라 선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좌우측이 모두 천애 낭떠러지 길이다. 날씨가 좋았다면 그 풍취가 대단했을 길이다. 모든 좋은 것에도 다
정절의 시기가 있나 보다. 아쉽지만 벼랑에 선 늠름한 소나무에서 위안을 찾고 길을 이어간다.
< 멧등바위에서 2 >
조금은 위험하지만 아기자기한 길을 10여 분 더 걸으니 황장산 정상이 나타난다. 성우 말대로 문경의 산 정상은 경치가 없다. 정상은 사방 나무로 둘러 쌓인 작은 공터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정상 부근은 좀 전에 만났던 산꾼들의 식사 장소로 어수선하다. 망설임 없이 하산 길로 접어 든다.
< 정상에서 험난했던 하산 길을 거쳐 다시 안생달로 >
황장산의 정상에서 대간 길을 따라 황장재로 이어지는 길은 좁았다. 빗방울이 제법 굵어진다. 5분 거리에 우측으로 희미하게 길이 나 있다. 출발 전 하산로로 점찍어 둔 산태골을 거쳐 안생달로 이어지는 길이 분명한데 이정표가 없다. 원래 일었을 것인데 누군가 없애 버린 것 같다. 웬 일 인지 모르겠다. 어차피 우리는 배창골로 하산 할 것이므로 개의치 않고 길을 간다. 간간이 나타나는 바위 길은 여전히 위험하다.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우측으로 희미한 하산 길이 보인다. 주변에는 돌탑도 있다. 배창골 안부가 분명하다. 그러나 내리막을 살피니 길의 흔적이 없어 보인다. 혹시나 하여 직진해 간다. 감투봉(1044m)로 추정되는 바위를 지난다. GPS는 언제부턴가 작동을 멈추어 있다. 지도를 본다. 황장재가 멀지 않아 보인다. ‘그래 황장재로 가자. 비도 오고 온 길이 험해 되돌아 쉽지 않으니 안전하게 하산하자’ 하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감투봉을 지나 한 참을 지났다 생각했는데 다시 암릉이 나타난다. 길의 흔적 뒤로 천 길 낭떠러지가 보이는데 손 잡을 곳이 마땅치 않다. 빗 길에 바위도 미끄럽다. 안되겠다. 길을 돌려야겠다. 난감하다. 분명 잘못 온 것은 아닌데 길이 끊어져 버렸다. 나도 나를 따르던 일행들도 난감해 한다.
< 황장산 정상에서의 마지막 미소 >
왔던 길로 돌아 가는데도 길이 낯설다. 샛길이 무척 많은가 보다. 새로 나타난 길에혹시나 이 길이 하산 길이 아닌가 하고 앞서가 본다. 여러 산에서 보았던 붉은 색 ‘山仰(산앙)’ 표지기도 보인다. 잠깐의 안도감이 생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길은 다시 흔적이 없어진다. GPS 상으로도 우측이 배창골이다. 트레버스 하듯 우측으로 내려 서는데 길 사정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신발이 푹푹 빠지는 낙엽이 쌓인 길에 최근에 무너진 것 같은 산사태의 흔적인 깨진 돌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밟으면 무너져 내린다. 나도 힘든데 성우와 막내는 오죽 힘들까 하는 생각에 얼른 길을 찾아야지 하는 일념으로 숲을 헤쳐 나간다. 30여분 없는 길을 만들며 내려간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린다. 온 몸이 땀 범벅 이가 된다. 우측으로 커다란 암름이 보인다. 그 밑으로는 그나마 낙엽이 덜해 걸을만하다. ‘저 바위 뒤편으로 길이 있을 것이야’ 하는 생각이 미치자 이것저것 볼 것 없이 헤치고 나간다. 길 앞으로 무언가가 기어 간다. 느낌이 더럽다.‘뱀이다!’ 순간적으로 움칠한다. 올 것이 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발 밑에서 무언가가 나올 것 같았는데, 걱정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내색을 하면 막내가 분명 패닉 상태에 빠질 것이다. 진 퇴 양 난!
“이 곳은 길이 아닌 가봐” 무의식적으로 말하고는 옆으로 돌아 선다. 내 예상 밖 행동에, 그들의 눈에도 상대적으로 덜 험해 보이는 길을 내가 버리니 못 미더워 하는 눈치다. 다시 발이 빠지고 돌을 잘못 건드려 미끄러지고 썩은 나무를 만져 주저 앉고를 반복한다. 그러던 중 ‘엄마야’하는 소리가 들린다. 막내가 뱀을 보아버린 것이다. 혼 미 백 산! 낭패다. 길도 없는데 겁까지 들어 버렸으니…… 성우가 뒤에서 막내를 위로한다.
잠시의 정적. 성우의 위로에 막내도 안정을 찾아간다. 매정한 나는 이 와중에도 길을 찾아야 한다는 단 한 가지 생각에 몰두되어 있다. 고도는 900미터 정도로 낮아졌다. 길은 여전히 밀림 속이지만 희망의 시그널(곧 없어지기도 하지만)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바위를 돌아 나오는 길에 다시 길의 흔적이 없어지고 또 헤매고 희미한 길의 흔적을 또 발견하고, ‘이 길이 맞을 거야, 아니 맞았으면’을 수도 없이 되뇌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 간다. 막내가 말한다. “그래도 난 오늘 산행 좋아,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길도 곧 찾을 것이고” 고마운 말이다. 대장 잘못 믿고 따라와 비와 돌과 뱀과 싸우고 이 어둡고 더러운 길을 내려 오면서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자 한다. 성우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미더운 사람들이다.
2시가 훨씬 지났다. 멀리서 물 소리가 들린다. 배창골이 멀지 않았다는 증거다. GPS도 정상 가동된다. 정규 루트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2시 14분 작은 개울을 건너자, 길의 흔적이 느껴진다. 위로 노란색 표지기가 보인다. 아! 마침내 길을 찾은 것이다. 그 감동이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바닥에 주저 앉는다. 감투봉 이후 무려 1시간 20분여를 산 비탈을 헤맸다. 짧지 않은 등산 인생에 최고로 힘든 여정이었다. 잠깐 동안 길을 잃고 헤맨 적은 여러 번 있었으나 오늘 같이 긴 시간을 불안에 떨어 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고 산 사태 난 길을……
잠시 후 안정을 되 찾고 나니 어디부터 잘못된 것이지 왔던 길을 머리 속으로 복기해 본다. ‘정상까지는 제대로 왔고, 정상 바로 밑 우측 산태골 안부에서 이정표가 없었던 것이 첫 번째 위험 시그널 이었는데 일지 못했다. 그 뒤 배창골 안부에도 이정표는 없었고, 감투봉에도 이정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대간 길 어디에도 이정은 없었다. 황장산 정상에서도 이정을 본 기억이 없다. ‘아! 안생달 초입의 출입금지 표시, 맞다. 웬 일인지는 몰라도 이 구간은 출입을 의도적으로 금지시키고 있다. 과거에 있었던 이정표도 그래서 없애 버렸다’. 이제야 우리가 길을 헤맬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해 진다.’ 분명 작년 6월 월간마운틴에 기록된 황장산은 입산금지가 아니었고 최근 산경표 앱에서 다운로드 받은 지도에도 배창골 길은 분명히 표기되어 있는데, 이 모든 일이 최근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40여분 계곡 길을 걸어 내려 갔다. 말이 길이지 이곳도 계곡 주변에 돌이 어지럽게 나와 있고 희미하게 연결되는 방치된 길이다. 그래도 모두가 불평이 없다. 비도 그쳤다. 모든 것이 1시간 반 전과는 다르다. 험한 경험을 한 끝에 나타나는 작은 불편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초 너무 빨리 내려오면 어쩌나 하면서 예정한 4시간 산행이 끝나고도 한참을 더 내려간 끝에 저 멀리 마을의 흔적이 보였다. 돌아 본 황장산은 모른 체 하며 말이 없고, 언제 비가 왔냐고 싶게 하늘은 맑았고 구름만이 비의 흔적을 품고 있었다.
돌이 어지럽게 흩어진 곳에 포크레인 한 대가 서 있다. 평소에는 질색하던
흉물스러운 기계가 오늘따라 반갑게 느껴진다. 길을 지나는 우리를 보고 포크레인 기사 아저씨 “내려 오는 사람마다 길을 잃었다 하네, 참 모를 일이야” 하신다. 그런 우리 말고도 길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단 말인가? 잠시 후 마을에서 만난 정상에서 본 산꾼은 일행이 연락이 안 된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자기는 정상에서 바로 내려왔는데 일행은 황장재에서 하산 한다고 하는데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만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짐을 느낀다.
< 고난 끝에 열린 하늘 / 긴 여정의 끝 >
< 에필로그 >
오늘 산행을 마치고 마음 속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은 ‘비, 백두대간, 출입금지, 헤맴, 뱀, 동지애’등이다. 이 놈의 비는 지겹도록 산행 내내 우릴 따라 다니며 괴롭혔고, 출발 전 대간 길을 걸으며 ‘산경표’를 만든 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적을 먼 발치에서 나마 바라보는 의식을 가져 보고 싶다고 했는데, 막상 산을 내려 와 생각해 보니 그 옛날 안전시설도 없는 저 산을 넘나들었을 고산자의 후예들에게 존경의 마음이 더 깊어졌다. 산에서의 안내 시그널에 조금 더 민감해 져야겠다. 초입의 출입금지 표시와 중간에 이정표가 없음을 인지했더라면 왔던 길을 되돌아 하산하는 것이 현명했을 것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좀 더 지혜로워 져야겠다. 길을 잃고 없는 길을 만들며 걸으며 뱀이나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겠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오늘 산행이 의미 있는 것은 함께 길을 가는 동지들이 있다는 것이다. 성우는 늘 든든하고 배려 깊고, 막내는 이제는 온갖 경험을 웃으면서 하는 확고한 정회원이 되었다. 이들과 함께할 앞으로의 산행도 기대가 크다.
아침에 일어나 서둘러 사진을 정리하고 일부는 성우와 막내에게 보냈다. 사진은 지난 일을 연속적으로 나타내 주지는 못한다. 사진 속에서의 풍경은 멋졌고 성우와 난 항상 웃고 있다. 사진에서처럼 어제의 일들이 앞으로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해 본다.
일요일 점심, 창을 비추는 햇살이 참 환하다. 모처럼 맑은 날씨다. 아니 쏟아지는 햇살이 감당이 안 된다. 이 햇살의 일부가 어제 문경에 내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 본다.
문뜩, 서늘한 바람이 분다. 이제 가을이 다가오고 있나 보다. 올 가을에는 많은 일들이 기대대로 이루어 졌으면 하고 바래 본다. 다음 주에는 一葉知秋(일엽지추)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 늘 푸른 소나무처럼, 늘 그렇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