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볼일 많았던 8월 13일 야간산행
유성우를 보러 12일 산행을 가자는 남편의 제안에 선뜻 동의했던 건 우리 주위에 남편을 선뜻 따라 나설 사람이 없을 거라는 안스러운 마음 때문이었다.
평평한 능선을 걷는 일이 아니면 산과는 인연이 없는 마누라인지라 늘 지치지도 않고 거절을 당하면서도 산행을 제안하고 또 제안하는 남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많았다.
고객을 모집하는 편지에 이성구님의 ‘야간산행’ 시까지 담아서 지인들에게 모조리 돌렸지만 묵묵부답.
결국 결혼 30주년을 맞이한 해에 쉰 부부 단 둘이 로맨틱(?)한 산행을 하겠구나 생각했다.
D Day 저녁 퇴근해서 단전호흡까지 마치고 밤늦게 돌아와 보니 남편이 들떠있었다.
고객 모집에 성공한 것이다. 첫 성과라니....
성과치고는 고객의 질이 좋았다.
느림보학교의 새 사무국장 주정흔교수님과 교수님의 제자 30대 뇌색남 조선생이었다.
주교수님은 곽노현교육감님이 첫 눈에 그 끼를 알아봤을 만큼 시와 가무에 능하고 야간산행을 즐겨하시는 분이라고 한다.
고갱님, 감사합니다
남편은 유성우 맞이 야간산행을 앞두고 흥분해 있었다.
그 때 나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몇 몇 지인들에게 보낸 카톡메시지에 답이 온 것이다.
한 선배가 남편이 요즘 격무에 바빠 하지 못한 야간산행을 몹시 그리워한다는 전언이었다.
혹시나 하고 운을 떼었더니 저녁 약속을 마치고는 한 달음에 집으로 오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날씨가 잔뜩 찌푸린데다 물방울까지 몇 개 맞았다며 별을 볼 수 있을지 걱정을 했다.
일단 10시에 다시 날씨를 체크하고 연락을 하기로 했다.
남편은 배낭을 꾸리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술안주와 돗자리를 챙겼다.
유성우는 누워서 맞이해야 한다는 뉴스를 읽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머리 전등에 작은 손전등도 2개 챙겼다. 물과 게토레이도 넉넉히 배낭에 담고 조금 일찍 약속장소(우리집 앞)로 나갔더니 주교수님과 조선생이 먼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두 분과 먼저 산길을 나섰다.
축지법 등산객과 등산하는 법
10시 15분 날씨가 괜찮아서 별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전화를 받은 선배부부는 스포티지를 몰고 정말로 바람같이 내 눈앞에 나타나셨다. 두 분을 기다리며 나는 편의점에서 생막걸리 두 병을 준비했다. 나는 그 차를 얻어 타고 승가사로 향했다. 승가사 올라가는 차도는 네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길이라 한 번 길을 잃기는 했지만 5분 전에 떠난 세 사람은 우리 시야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꿀텅거리며 겨우 겨우 올라가다보니 세 사람이 우리에게 손을 흔든다. 일행을 만나면 선배남편은 함께 산행을 하고 선배가 운전을 해서 여자 둘만 승가사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선배남편은 거친 산길이 불안하셨던지 운전대를 양보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 셋은 먼저 승가사에 도착해 차를 한켠에 얌전히 주차하고 잠시 대화를 나눴다. 한 3분도 지나지 않아 불빛이 어른어른 하더니 기적 같이 세 사람이 나타났다. 내 걸음으로는 한 시간 걸렸던 길이었는데 이 세 분은 거친 숨소리도 없이 작은 불빛만 반짝거리며 홀연히 나타났다. 이분들은 축지법을 쓰시나? 같이 걷지 않았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ㅋㅋ
집 근처 뒷산을 무시하지 마라
반가운 마음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돌계단을 올랐다.
한참을 올라가는데 남편이 외친다.
“이 길이 등산로 아닌 것 같아요.”
이 무슨 심쿵하는 소리인가?
되돌아 내려와 겨우 등산로 입구를 찾았다.
무슨 등산 가이드가 아무나 쭐래쭐래 따라가다가 이런 망언을 하다니...ㅜㅠ
본격적으로 약간은 겁나는 난생처음 야간 산행이 시작되었다.
구기동에 이사 온 이후 일주일에 한두 번 탕춘대 능선을 걸었던 게 도움이 되었던 겔까? 별로 힘이 든지 모르겠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그랬단다. 집 근처 뒷산을 무시하지 말라고....
딱 내게 맞는 말이었다. 중간에 한 번 정도 쉬었지만 자정까지 별 어려움 없이 정상 사모바위에 다다랐다.
야간산행 시 가이드를 잘 고르자
도착 후 돗자리를 펴고 막걸리와 안주를 풀었다.
첫 잔은 고시래 하며 선배가 산에게 뿌렸다.
피 같은 술을 뿌리는 게 아까웠을까, 산을 훼손하는게 안타까웠을까?
“그렇게 많이 뿌리면 산이 싫어합니다.”
선배 남편의 핀잔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급 공감을 표한 뒤 종이잔을 부딪쳤다.
“유성우를 위하여~~”
빠르게 막걸리를 한 잔 혹은 두 잔을 마시고 모두 자리에 누웠다.
12시가 넘으면 떨어진다는 별똥별은 나타나지 않았다.
갑자기 불신의 마음이 저 밑에서 올라 오길래 핸드펀으로 네이버를 켰다.
13일 유성우를 검색하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유성우는 새벽3시 정도에 쏟아진다는 뉴스가 나온다.
이 철없는 남편을 어찌할꼬....ㅠㅜ
무려 3시간 30분을 산에서 기다려야 유성우를 볼 수 있다니....
선배남편은 13일 오전 중요한 회의를 준비하느라 연신 뉴스 검색을 하고 있었다. 잠시 누워서 쉬던 선배 부부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먼저 하산에 나섰다. 얼마나 미안하던지....
나머지 일행은 꼼짝도 안하고 누워있었다. 별똥별이 쏟아진다는 3시30분까지 자리를 지킬 기세였다. 두 분이 떠난지 한 10분 되었을까....
쏜살같이 별 하나가 오른쪽으로 사선을 그으며 떨어졌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나만 본 것이다.
역시 하느님은 착한 사람에게 선물을 먼저 주신다니까....ㅎㅎ
선배 부부도 조금만 더 계셨으면 함께 봤을텐데.... 아쉽기만 했다.
다른 이들도 모두 경계모드에 들어갔다. 그 후 30분간 다섯 개 정도를 더 보았다. 아쉽게도 나는 한 개만 더 보는 데 그쳤다. 사방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위치와 시선에 따라 감탄을 지르기도, 놓치기도, 애석해 하기도 했다.
그 걸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우리는 쏟아지는 유성우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프랑스 과학자가 예측했다던 3시 39분까지 그 곳을 사수하기로 했다.
점점 바람이 불더니 으슬으슬 춥기까지 했다.
돗자리를 이불처럼 둘둘 말아 거지 신방을 차렸다.
그 순간에 웬 꽃거지가 생각나는지....ㅋㅋ
한 시간 정도는 금새 갔다.
남편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서 시작해서 ‘주막’ ‘승무’ ‘청포도’ 등 수 많은 시를 암송했다. 조선생의 자작시도 이어졌다. 슬슬 지겹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노르웨이 피오르 크루즈에서 들었던 강남 스타일이 생각났다.
산꼭대기에서 한 밤 중 강남스타일을 들으며 싸이의 천재성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그리곤 복면가왕의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의 노래를 메들리로 들었다. 누군지 참 고맙게도 좋은 노래 메들리를 유투브에 올려놓다니....
조용한 산에서는 핸폰 스피커 소리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어찌나 아름답고 신나는 곡들인지.... 김연우의 가창력에 다시 한 번 감사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별은 내 가슴에.....
3시20분부터 본격적인 채비를 하고 자리에 누웠다. 10분쯤 흘렀을까?
별이 제법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유성 두 개 밖에 보지 못했다.
그러다 너무도 밝고 명료한 유성이 바로 머리 위에서 직선으로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저기 저기 소리를 질렀다. 네 명이 동시에 보면서 함께 소리를 질렀다.
점점 더 밝아지는 별똥은 마치 내 가슴에 불을 지를 것 같은 기세로 떨어졌다. 불꽃놀이 불똥이 내게 떨어질까 두려웠던 것처럼 별똥이 내 몸을 태울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별은 내 가슴에’는 머릿속에서 나온 드라마 제목이 아니었다.
이건 정말로 경험담이었다.
정말 가슴 속으로 별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이 강렬한 느낌을 네 명이 동시에 느끼다니.... 우리는 흥분해서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고 공감하며 억만겁의 인연을 쌓았다.
그 후에도 몇 개의 유성을 더 보았다.
시계를 보니 3시 40분이었다.
과학의 위대함이라니....
5분만 더 기다려보고 추가적인 유성이 없으면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내려오는 길은 어두웠지만 힘들지 않았다.
가슴에 별을 달고 있으니 사방이 환한 느낌이었다.
한 시간 남짓 걸려 집 근처에 도착했다.
또 다른 멋진 추억을 꿈꾸며 우리는 얌전히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첫댓글 다음 야간 산행에는 꼭 참석해야 겠습니다. 한폭의 그림같은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이제야 정신줄 붙잡고 카페 문을 열어보니....그림 같은 이야기 안에 제가 있네요^^. 다만 왜곡된 사실 두가지는 바로잡습니다. 승가사까지 축지법 쓰듯 순식간에 올라간 건 맞는거 같은데...사실은 만난지 알마 안되는 저와 양교수님의 머쓱한 관계가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거...양교수님 눈치보느라 쉬자는 말도 못하고 숨차 죽는 줄 알았답니다



인되지 않은 아직은 '說'이라는 점^^ 눈치없이 따라나선 
똥
야간산행, 오래도록 잊지 못할겁니다


그리고..제가 음주가무에 능하다는 건...사실이
와~~눈에서 멋진 풍경을 그자리에서 같이 보는것 같아요~^^
정말 잊혀지지않을 시간이었겠어요~
아흑~~상상만으로도 감동 그자체네요^^
어젯밤 감동을 담은 남편의 자작시를 이곳에 소개합니다.^^
< 산정의 유성 > 150813
성긴 그물을 메고
떨어지는 별을 담으러
깊은 밤, 산에 오른다.
그리던 손님을 맞으러 역으로 가듯,
유성우를 반겨 안으러
산정으로 향한다.
온통 어둠인 넓은 바위에 몸을 누이면
산이 날 안아주고,
풀벌레가 노래를 부르면
구름과 바람과 별이 춤을 추었다.
긴 꼬리의 눈물을 남기고 숨어버리는 유성
사라지는 작은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것인지
내 방에 돌아와서는
나를 따라 온 별이 놀랄까 봐
천천히
아주 천천히
불을 켠다.
아~~~ 시가 너무 아름다워요. 같이 별을 본것처럼 생생히 전해지는 느낌이네요.
으악 양교수님......저 출판기획자로서 무지 탐나는 저자입니다요....책제목과 컨셉이 막 떠오르는 중 ㅋ
그 밤이, 그 별똥별이 다시금 눈에 선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사람의 시를 읽는 기분이란....^^*
이런... 북한산에 다녀온지 8개월이 지나서야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뇌색남이란 별명도 붙여주시고.... ㅎㅎㅎ 앞으로 뇌색남이란 이미지를 실추시키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