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노조의 올해 임금인상 요구안을 분석한 결과, 오히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금융노조는 이번 임단협 교섭 방향을 '비정규직 차별철폐'라고 내걸고 있지만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차별이 더욱 심해져 임금인상 요구안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28일 금융노조에 따르면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정규직 9.4%, 비정규직은 19.9%의 임금인상을 요구할 예정이다. 노조의 요구안대로 임금인상이 될 경우 은행 정규직의 월평균임금은 현재 460만2천원에서 503만4,588원으로 오른다. 또 비정규직의 경우 158만9천원에서 190만5,211원이 된다.
결국 이 계산대로라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차이는 현재 301만3천원에서 인상 후 312만9,377원으로 오히려 11만원 가량이 더 벌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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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 차이는 이보다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정규직의 경우 호봉승급 등 자연인상분이 추가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16만원 가량의 격차가 생긴다. 노조가 임금인상 요구안의 배경으로 밝힌 '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을 통한 차별해소'와는 정반대가 되는 셈이다.
금융노조의 임금인상안이 이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를 더 커지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노조의 올해 임금인상률은 상급단체인 한국노총 임금인상 지도율을 따랐다. 한국노총은 올해 임금인상과 관련해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을 정규직의 85%까지 달성하도록 하되, 한번에 인상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해 7년의 기간동안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현재 정규직 임금의 52%수준인 비정규직의 임금을 올해는 57%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한국노총이 산출근거로 삼은 전산업 월평균임금은 206만4,510원으로 은행권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에 비정규직 임금수준은 107만3,550원으로 은행 비정규직과는 50여만원 차이가 난다. 결국 은행산업과 다른 산업의 평균임금 차이를 생각하지 못하고 상급단체의 요구안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비정규직단체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차별해소 문제를 '필요성' 보다는 '명분쌓기'로만 생각하는 한계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총 정길오 본부장은 "노총의 임금인상률은 전산업 평균임금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업종별로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7년 후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을 정규직의 85%로 맞추는 것이기 때문에 금융노조가 이를 잘 배분해서 임금인상률을 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별해소를 위한 비정규직의 임금인상과 관련된 금융노조의 무관심은 지난해 임단협에서도 나타났다. 금융노조는 지난해 임단협에서 비정규직의 임금인상률을 단순히 정규직의 2배 이상으로만 명시했다. 그 결과 지난해 각 지부별 평균 임금 타결률은 정규직은 4.11%, 비정규직은 8.84%였으며 임금격차는 올해 요구안과 마찬가지로 더 벌어졌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김성희 소장은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좀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단순히 정규직의 몇 퍼센트만큼 올릴 것이냐는 해결책은 오히려 고임금의 정규직과 저임금의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를 더욱 커지게만 만들 뿐"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노조 관계자는 "한국노총의 임금안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규직의 이해가 필요한데 아직 그런 환경이 조성되지 못했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한편 임금요구안 확정과 관련해 금융노조는 "아직 임금 요구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지부대표자회의와 중앙위원회 등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에 추가 수정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은행수익 4%면, 비정규직 월급 50% 올린다
정규직 임금인상 자제분보다 은행 순수익을 비정규직 차별 해소에 쓰는 게 더 현실적
지난해 7월 <매일경제>는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등의 자료를 근거로 은행들이 1년간 임금을 동결하면 7,200명의 신규직원을 채용할 수 있고, 절약된 인건비의 50%만 비정규직 임금인상에 사용해도 비정규직 급여를 30%나 올려줄 수 있다는 보도를 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손쉽게 비정규직의 급여를 올려줄 수 있는 방법을 <매일경제>는 외면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1/4분기 사상최대의 수익을 낸 은행들이 수익의 4%만 비정규직 임금인상에 사용을 하면 50%의 임금인상이 바로 가능하다.
지난해 19개 국내 은행이 낸 순이익은 모두 8조8000억원. 은행 비정규직 평균임금을 160만원으로 계산했을때 4만명의 비정규직 직원의 임금을 50%(80만원) 인상시키기 위해서는 3,520억원이 필요하다. 이는 순이익의 4%에 불과한 액수다.
당시 매일경제의 보도를 인용하면 임금인상의 소비진작 효과는 기존 직원의 임금을 5% 일괄인상할 경우 통계청의 지난해 1/4분기 가계수지동향에 나타난 한계소비성향을 적용했을 때 소득증가분의 47. 6%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절약한 인건비의 절반을 신규직원 채용에, 나머지 절반을 비정규직 임금인상에 사용하면 소득증가분의 75.0%까지 소비가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소득이 낮을수록 평균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이다. 즉, 정규직의 임금인상을 했을때 소비진작보다 신규채용과 비정규직의 임금을 높였을때 소비가 더 늘어나기 때문에 한 마리 토끼를 잡자는 것.
하지만 순수익을 분배해 비정규직 임금을 올릴 경우에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나은행의 경우 지난해 올린 수익은 모두 1조3천억원이고 이 가운데 주주에게 배당된 것은 1,300억원, 특히 외국인 대주주에게 배당된 것은 900억원 가까이 된다.
은행이 수수료 인상을 통해 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은 여러차례 보도된 바 있다. 서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어디에 먼저 써야 할지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