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당을 옮긴 김원길·박상규 의원이 입당과 동시에 홈페이지를 닫아버려 구설수에 올랐다. 철새정치인을 비판하는 항의글을 남기러 이들 의원의 홈페이지를 찾은 네티즌들은 헛걸음만 한 꼴이 됐다. 인터넷강국 대한민국 국회의원 상당수는 어제도 오늘도 홈페이지에 “서비스 준비중입니다”만 안내글만 띄우고 있다.
<인터넷한겨레>가 2일 현재 국회의원 271명(한나라당 150, 민주당 104, 자민련 10, 민주국민당 1, 하나로국민연합 1, 무소속 5)의 홈페이지를 대상으로 관리실태를 조사한 결과, 48명(17.7%)의 의원이 홈페이지를 개설하지 않거나, ‘공사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주요 콘텐츠의 갱신날짜, 게시글 최근등록일, 담당자 답변 유무 등 홈페이지 관리와 운영에 초점을 맞췄다.
네티즌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후단협 소속 일부 의원들(민주당 김명섭 김영배 송석찬 유재규)과 최근 당을 옮긴 의원들(한나라당 전용학 김원길 박상규)은 홈페이지를 만들지 않았거나 ‘공사중’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정균환 민주당 의원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을 한 의원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하루 평균 60~70여개의 글이 올라 네티즌들의 정치적 관심을 반영했다.
자유게시판 질문에 직접 답변하는 의원은 거의 없었다. 성인광고를 여러달째 방치해 자유게시판인지 성인쇼핑몰인지 구분하기 힘든 곳도 있었고, 게시판은 개설했지만 쓰기단추가 없어 게시글이 전혀 없는 곳도 있었다. 과학기술대통령을 외치며 당내 경선에 나섰던 이상희 한나라당 의원의 홈페이지는 ‘공사 중’이었다.
반면, 홈페이지를 적극적으로 운영·관리하면서 유권자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특히 초·재선 의원들은 게시판 질문에 성실히 응답하는 등 인터넷을 이용한 의정활동에 적극적이었다.(민주당 송훈석, 한나라당 정의화) 이들은 보좌관을 뽑을 때도 홈페이지 관리능력을 중시한다.
대부분의 의원 홈페이지엔 특징적 메뉴가 없었지만, 일부 의원들은 사이버보좌관·이메일정책자문단(민주당 박주선, 한나라당 안상수·남경필), 정책신문고(민주당 이창복), 법률·의료 전문가 상담(민주당 송영길), 장애인발언대(한나라당 심재철), 장기바둑 서비스(한나라당 박종웅) 등을 제공했다.
박동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미국·일본·영국 등에 비해 의원들의 홈페이지 보유비율은 높지만, 의사소통의 질적인 면에서는 부족하다”며 “상당수 의원들은 20대 유권자들의 낮은 투표성향을 감안해 단지 면피용으로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른바 ‘노무현바람’에서 볼 수 있듯이 인터넷을 정치적 의사표현 도구로 활용하는 네티즌들에게 적응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은 도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홈페이지 왜 없나 알아봤더니
해당 의원과 보좌진을 상대로 인터넷 홈페이지가 없는 이유와 앞으로 개설 계획을 물어보니, 답변 형태에 따라 ‘수수방관형’ ‘소신파’ ‘얌체족’ ‘막가파’ 등 4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홈페이지가 왜 없거나 연결이 안되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의원 보좌진은 “서버 이전으로 개설이 늦어지고 있다”거나 “곧 문을 열 계획이다”고 답변했다. 홈페이지 운영에 별다른 관심과 의지가 없는 이들은 ‘수수방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비례대표 의원들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전화나 팩스로 다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홈페이지 필요성을 못느끼며 앞으로 만들 계획이 없다”고 ‘소신파’ 응답을 하기도 했다. 의정활동을 홍보하기 위해 회기 중이나 선거철에만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얌체족’도 많았다. 홈페이지가 없는 한 의원 보좌관은 “홈페이지 없는 것이 무슨 문제냐 만들어놓고도 갱신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큰 문제다”라고 반박해 ‘막가파’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