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 이준 열사와 홍암 나철 대종사의 인연 > 엊그제, 회사로 친히 찾아오신 이양재 선생(리준만국평화재단 이사장)과 이준 열사의 외증손자로서 현재 유족대표로 있는 조근송 선생을 만나뵈었다. 이때 이준 열사와 나철 대종사의 인연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준 열사의 아들인 이용 장군이 대종교인이었던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 을사오적 암살 실패로 투옥중이던 나철(당시 나인영)을 구제하기 위하여 당시 검사였던 이준 열사가 ‘은사안 초록’을 고종에게 올렸다. > 그러나 이하영, 이윤용(이완용 형) 등의 매국 대신들은 뜻 있는 지사들이 출옥되면 자기들의 위치가 곤란해 질 것을 두려워하여 이준 검사의 '은사안'에 오른 우국지사들을 모조리 삭제해 버렸던 것이다. > 이리하여 이준 열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고 국법을 공정히 집행하려면 먼저 이따위 비법 월권행위를 하는 자들부터 탄핵 숙청해야 할 것을 결심하고 분연히 궐기하여 공판사상 전무후무한 상사의 숙청을 대상한 공개재판을 국민 앞에 단행하여 군국의 왕헌과 법조 규강을 바로잡았다. > 이것은 실로 당대 완고 부패한 봉건 권가에 대항한 민권의 수호와 국민의 재산과 사회질서를 바로 잡은 우리나라 준법투쟁의 효시가 되는 것으로 볼수 있는데 이로 인해 당시 이준 검사는 곤장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이준은 곤장을 맞고와서 바로 일터로 복귀하였다고 한다. > 결국 고종은 나철과 오기호등 을사오적 주살 주동자들을 사면한다. 고종이 한 일 중 잘한 두가지 일중의 하나인데 나머지 하나는 백범 김구의 사면이다. > 나철(나인영)은 이준이 조직한 헌정연구회에서 함께 활동했다. 이를 보면 나철과 이준은 동지였다. 어느 면에서 보면 이준의 국혼의 부활론은 나철이 대종교의 중광으로 성취된 것이기도 하다. 같은 길을 가는 동지란, 같은 일을 함께 만들고 함께 성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