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농쿠르가 새로이 드보르작 교향곡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는 최근에 몇번 좋은
결과를 보여줬던 베를린 필이 아니라 익숙한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다.
CD내지에 수록된 인터뷰에 의하면 아르농쿠르 가계가 보헤미안 즉 동유럽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하니 드보르작을 연주하는 그의 감회가 특별할 것임은 틀림없다.
교향곡 7번은 드보르작의 마지막 두 교향곡에 비해 드보르작만의 독창성은 떨어진다 할지라도
브람스를 계승하는 듯한 세련된 관현악과 친숙한 멜로디가 아주 인상적인 곡인데 아르농쿠르는
드보르작의 교향곡중 7번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면서 곡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97년 정명훈이 빈 필과 함께 DG에서 드보르작 교향곡 3번과 7번을 발매한데 이어 아르농쿠르의
신보가 나옴으로써 7번 교향곡의 음반이 최근 갑자기 풍부해진 것은 애호가로서 기뻐할만하다.
아르농쿠르가 택한 악단의 밸런스는 트럼본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이런 밸런스는 자칫 트럼본의 강한 고음이 트럼펫과 뒤섞여서 고음역의 디테일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는데 1악장과 4악장에서는 그런 염려가 조금은 사실로 들어나고 있는 부분도 있어서 좀 아쉽다.
그런 면에서 이 녹음은 같은 악단과 행해진 아르농쿠르의 슈베르트 교향곡 전집과 상당히 비슷한
인상을 준다. 필자의 취향엔 좀 더 트럼펫의 고음을 트럼본의 그것과 구별되고 빛나게 했었으면
하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현파트의 합주력은 새로 마스터링되서 갤러리아씨리즈로 98년 말에 재발매된 쿠벨릭/베를린 필의
71년 DG녹음과 비교해봐서 일사불란함은 떨어지지만 강약의 뉘앙스가 잘 조절되어있어서 일면
쑤셔박듯이 몰아치고 있는 쿠벨릭의 1악장보다는 더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곡의 서정성을 살리는데 성공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주 부드럽고 따듯하게 울리는
콘서트헤보우의 호른소리다. 1악장과 2악장에서 호른의 울림은 다소 과격한 트럼본에 좋은 대조가
되서 인상적이다. 특히 2악장은 전체 악장중 가장 뛰어나서 이렇게 뛰어난 곡이었나 새삼 다시
느끼게 할만하다. 이런 서정성은 3악장에도 그대로 이어져서 현의 조심스럽지만 잘 조절된 강약의
대비는 달콤하기 그지 없는 스케르초 악장을 쿠벨릭의 음반이나 정명훈/빈 필(DG) 보다도 더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다.
문제는 그런 편안함이 4악장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명훈/빈 필의 힘있는 연주가 비록
2, 3악장의 서정성을 약간 양보했다 하더라도 1, 4악장의 활화산같은 정열을 폭발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쿠벨릭/베를린 필의 질주하듯 내딛는 현은 비록 전악장에서 너무 거칠다고
느껴져서 단점으로 작용했지만 이런 밀어부치기식의 질주가 적어도 4악장에선 무모함이라기
보다는 자신감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어서 더욱 큰 대조를 보인다. 아르농쿠르/콘서트헤보우의
4악장은 너무 조심스럽게 진행되기에 그런 정명훈/빈 필의 열정도 쿠벨릭/베를린 필의 비장함도
찾기 힘들다. 콘서트헤보우의 팀파니는 좀더 단단하고 탄력있게 울렸어야했고 투티에서의 금관의
빛나는 음색도 찾아보기 힘들다. 전체적으로 4악장이 느슨해진 것은 지휘자 자신이 좀더 자신있는
확신에 찬 해석을 보여줘야할 부분에서 어쩐지 애매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인데 아르농쿠르
답지 않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 코다에서도 오케스트라의 포르테는 그 맨꼭대기를
차지해야할 트럼펫의 봉우리는 깍여있고 어정쩡하게 끝맺어버린다. 결국 여전히 필자의 드보르작
7번 초이스는 정명훈/빈 필이다.
김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