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이면 엘비스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멤피스의 ‘그레이스랜드Graceland(엘비스가 살던 집으로 지금은 엘비스 기념관이 되었다)’에서 엘비스 주간 행사가 열린다. 물론 전 세계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적인 이벤트지만,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를 추모하는 연례 행사이기도 하다. 화장실에 들어간 엘비스가 결국 저세상의 문을 열고 나간 것이 1977년 8월 16일. 평생 햄버거, 도너츠 같은 패스트푸드와 기름진 음식을 즐긴 엘비스는 만년에 변비 때문에 심한 고생을 했다. 화장실에서 몇 시간씩 앉아 있곤 했는데, 결국 그가 충실하게 믿은 하느님을 본 장소도 거기였다.
Elvis at the White House, 1970
황제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 올해 8월의 멤피스는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다. 16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이른바 ‘엘비스 동창회’의 티켓 가격은 75~150달러. 동창회인데 회비가 없을 수 없잖은가! 동창들 중에는 왕년에 날리던 퀸카 할머니들도 즐비하다. 이유인즉 엘비스가 찍은 서른한 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여배우들 중에서 거동 가능한 분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이기 때문. 동창뿐만 아니라 이른바 <엘비스 인사이더> 멤버십을 구매한 수많은 엘비스 팬들이 ‘하운드 독’이나 ‘핫브레이크 호텔’, ‘러브 미 텐더’ 같은 노래들을 흥얼거리며 멤피스를 순례할 것이다. 문자 그대로 그건 순례다. 왜냐? 성지를 직접 답사하는 일이니까. 엘비스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그는 죽어서도 계속 돈을 번다. 연예인 중에서 사후 수익액 1위를 기록한 사람이 엘비스다. 엘비스의 초상권을 갖고 있는 CKX라는 회사는 매년 2000억 원의 수익을 올린다.
Elvis Presley, 1973 Aloha From Hawaii television broadcast
한마디로 엘비스의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리스 신화는 이미 오래전에 완성됐지만 로큰롤의 신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사실 신화는 이런 식으로 시시각각 매 세대마다 만들어진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우리 세대의 신화는 다름 아닌 로큰롤의 신화다. 제우스는 엘비스 프레슬리고, 오디세우스는 비틀스다. 물론 지금의 신화가 CEO들의 진두지휘 아래 치밀하게 기획된다는 점은 옛날 신화하고 다르지만, 신화 속의 인물이 점점 현실을 박차고 공중 부양해서 비현실의 존재감을 획득해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하필 엘비스인가? 참 어려운 질문이다. 비틀스라면 그래도 이해가 간다. 비틀스에겐 전 세계의 소녀 팬들을 동시 다발로 경악케 한 전대미문의 문화 현상 이상의 뭔가가 있다. 후기에 나온 <화이트>나 <페퍼 상사의 고독씨 클럽 밴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가히 대중음악을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면서도 동시에 야성미 넘치는 스트레이트한 로큰롤 그대로가 아니던가. 그러나 엘비스는? 글쎄, 사실은 그가 예술가인지도 의문이다. 엘비스가 작곡한 노래는? 한 곡도 없다. 그렇다면 고매한 인격자? 엘비스의 배려심이나 세심한 감수성, 풍부한 감성 같은 것은 분명 인정해야 하지만 이를테면 엘비스와 소크라테스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도 아니면 굉장한 학식과 철학을 소유한 지성인? 사실 엘비스는 악보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성공한 억만장자? 물론 나중에 부자가 되긴 했지만 엘비스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금주법 시절에 문샤이너( Moon Shiner: 야밤에 몰래 술을 운반하는 밀주업자) 노릇을 하다가 단속에 걸려 복역까지 했다. 엘비스가 만진 첫 번째 기타는 두꺼운 도화지를 엮어 만든 장난감 기타였다. 자, 그런데 도대체 왜 엘비스인가?
Elvis Presley in his '68 Comeback Special
이렇게 다시 한 번 질문을 하고 보니 해답의 윤곽이 보이지 않는가. 엘비스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시 말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로큰롤 신화의 주인공인 것이다. 신화를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아버지가 감옥에 있는 동안 엄마는 주로 목화 따는 일을 해서 입에 풀칠을 한다. 아이를 놀이방에 보낼 수도 없어 밭에 데리고 나간다. 밭에서는 흑인들이 고된 노동을 참다 참다 블루스와 흑인 영가를 부른다. 밭이랑에 누운 엘비스는 옹알이할 때부터 그 블루스를 따라 부른다. 엘비스는 흑인들이 듣는 리듬 & 블루스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추고 자란다. 흑인의 목소리와 백인의 얼굴을 가진 가수면 성공한다는 말이 나돌 때 바로 그런 사람이 엘비스라는 것을 선 레코드사 사장이 알아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트럭 운전 아르바이트를 하던 엘비스가 음반을 취입한다. 흑인에게 배운 아랫도리 흔드는 춤을 과감하게 무대에서 선보인다. 어른들은 음란하다 하고 10대 아이들은 짜릿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10대이던 밥 딜런은 나중에 이렇게 말한다. “엘비스의 음악을 듣는 순간, 갑자기 감옥에서 풀려난 것 같았어요.”
Elvis movie G.I. Blues from 1960s.
늘 눈에 검은 마스카라를 칠한 엘비스. 사진 찍을 때 절대로 함부로 웃지 않은 엘비스(그는 “웃으면 여자 애들한테 인기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1960년대 말, 그 유명한 컴백 쇼에서 “내 음악은 모두 흑인들의 음악”이라고 자랑스레 말한 엘비스. 지나가다 맘씨 좋은 시골 아저씨 같은 분을 만나면 타고 있던 차를 그냥 줘버리던 엘비스. 기름진 음식 아니면 먹지 않은 엘비스. 나중에 100kg도 넘는 뚱보가 된 엘비스. 암페타민 같은 흥분제가 합법적인 약이었을 때 늘 그 약을 처방받아 친구들과 함께 복용한, 결국 나중에는 약물 중독으로 분열 증세까지 보인 엘비스. 그러면서도 닉슨 대통령 시절 연방 마약 퇴치 대사 비슷한 걸 하기도 했던 엘비스. 늘 미국을 사랑했고 FM대로 군 복무를 했으며 독실한 크리스천이던 엘비스. 여자들을 건드리긴 하지만 유부녀는 늘 친절하게 가정으로 돌려보낸 엘비스. 라스베이거스에서 쇼를 하고 삼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하는 동안 매니저 톰 파커 대령에게 끊임없이 속은 엘비스. 한마디로 가난했고 착했고 욕망에 충실했고 스스럼없이 보여주었고, 착취당했고, 지나치게 먹었고, 사랑했고, 살쪘고, 외로웠던 엘비스.
Elvis Presley's debut RCA album. Photo taken on January 31, 1955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욕망을 가장 솔직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 미국은 20세기 싸구려 문화의 진원지이며 그 문화의 속도감, 솔직함, 비인간적이고 반생명적인 매력을 전 세계에 전파한 나라다. 엘비스는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그와 같은 20세기 문화의 주인공이다. 20세기는 한마디로 위대함의 개념이 재설정된 세기다. 변변찮은 옆집 철이가 갑자기 TV에 나와서 다리 좀 떨더니 전 세계 여자 아이들의 우상이 되는 일은 엘비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의 텔레비전 비평가 톰 셸즈Tom Shales는 엘비스가 갖는 문화적 의미를 다음의 말로 잘 요약하고 있다. “엘비스가 나타나서 ‘하운드 독’, ‘블루 스웨이드 슈즈’, ‘핫브레이크 호텔’을 불렀을 때 그는 미국 주류의 엉덩이를 거세게 뒤흔들었다. 문화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원자를 분해하는 것 혹은 전구를 발명한 것과 같았다. 온갖 지옥이 자유롭게 풀려난 것이다.” ‘베토벤을 뭉개고Roll Over Beethoven’라고 노래 부른 뮤지션은 척 베리Chuck Berry지만, 그걸 증명한 사람은 엘비스 프레슬리다. 그래서 바로 엘비스인 것이다.
엘비스 프레슬리 신화를 만든 명곡 리스트!
Hound Dog 엉덩이를 선정적으로 돌리며 열창한 곡. 현란한 몸놀림으로 10대 소녀 팬을 울리고, 동시에 그들의 부모까지 울렸다. 음란하다는 지탄 때문에 TV 출현 시 아랫도리가 잘려서 방영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Don’t Be Cruel 이 곡이 없었다면 그가 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 ‘Hound Dog’과 함께 그를 스타로 만든 곡으로 로큰롤의 정수를 들려준다.
Love Me Tender 허리 돌리는 것을 잠시 쉬고, 길게 기른 구레나룻을 들이밀며 정말 ‘텐더tender’하고 ‘스위트sweet한’ 목소리로 팬들의 가슴을 술렁이게 한 발라드.
Jailhouse Rock <제일하우스 록>이라는 영화 삽입곡. 영화에서는 16명의 남성 댄서와 처음으로 안무다운 안무를 보여줘 한 편의 뮤직 비디오와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Can’t Help Falling in Love 낮게 깔린 중저음이 더욱 감미롭게 와 닿는 곡. 엘비스가 평소에 좋아하는 가수는 마리오 란자였는데, 그의 영향을 받아 마리오처럼 부르려고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무려 20주나 전미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200만 장이 팔려나갔다.
Are You Lonesome Tonight? 초기 시절 정제되지 못한 거친 음성이 아닌 다듬어진 감성적인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낮은 저음으로 ‘오늘 밤 당신은 외로운가요?’라고 말하는데 어느 여성이 안 넘어가겠는가.
Suspicious Minds 1969년의 곡으로 그의 마지막 넘버원 싱글 차트. 이 곡 이후 70년대로 들어서면서 그의 인기는 현격하게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It’s Now or Never 전성기를 누리던 당시 어쩔 수 없이 입영 열차를 탈 수밖에 없었던 엘비스. 하지만 이 곡 하나로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여성 팬을 모두 그 앞에서 열광하게 만들며 오랜 공백기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이탈리아 가곡 ‘O Sole Mio’를 모티브로 만든 곡으로 엘비스의 최다 판매 싱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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