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 선생의 4대조 윤효정의 고택 이름이 '녹우당'입니다.
고산 선생이 82세 되던 해,
고향인 해남으로 내려오면서
임금에게 하사받은 수원의 집을 해체하여
한강을 통해 이곳까지 배로 운반해
종가에 덧대어 일자형으로 지은 집으로
지금도 그 후손이 살고 있습니다
뒷산에 자생하는 비자나무 숲에
바람이 지나가면, 빗소리를 내며 흔들린다고
지어진 당호가 녹우당(綠雨堂)이랍니다.
녹우당의 랜드마크인 500년 묵은 은행나무는 보호수인데,
가을에 오면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합니다.
때마침 녹우당도 보수중이고,
전시관도 보수중이라 관람을 못했답니다.
전시관 안에는 공재 윤두서의 유명한 '자화상'도 있고
고산의 문집과 공재의 주옥같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관람이 안 되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일인자가 정철이라면
시조문학의 일인자는 윤선도라고 말하는데
그의 연작시조 '어부사시사' 40수를 능가하는 시조는
아직 이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으니 말입니다~~ㅎㅎ
녹우당은 강진에 유배되었던
다산 선생의 외가이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유배생활 동안 녹우당에서 8수레의 장서를 빌려보며
엄청난 양의 저술작업을 했고
초의선사 역시 녹우당의 장서와 화첩을 빌려 소치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러니 녹우당이 가히 호남의 문화적 산실이라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지 싶습니다.
은행나무와 함께 보호수로 지정된
잘 생긴 소나무도 만나고,
윤효정 선생의 사당 건물 뜨락에
흐드러지게 피어 담장 바깥으로
눈부신 꽃송이들을 드리운 목련을
한참이나 쳐다보다 발길을 돌렸습니다.
해남에 왔으니 도솔암은 가야지요?
땅끝에서 만나는 하늘끝 암자라고 쓰여 있네요
좁은 산길을 걸어가다보면,
달마산은 기암괴석들이 절묘해서
꼭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축소해놓은 모습입니다.
아직은 시기도 이르고, 제법 추운 날씨인데,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어 있네요.
양지바른 쪽에만 화사하게 피어있던 진달래를 보며
눈호강 제대로 하고 갑니다.
마침내, 커다란 바위 암벽 사이로
신선의 거처처럼 탈속적인 건물 귀퉁이가 보입니다.
세상에서 젤 작은 법당을 가진 도솔암
3평이나 될까요?
사람 3~4명 들어가면 가득차는 좁은 공간이지만
기운이 좋아 청화스님 같은 큰 스님들이 수행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일행들은 바깥에 두고,
저는 들어가서 108배를 하고 나왔어요.
바위 벼랑 한쪽에 자리한 후박나무 한 그루
척박한 환경에서도 뿌리내려 제법 큰 나무가 되어
작은 법당과 함께 조화를 이룹니다.
담벼락 같은 바위 사이로 내다보면
멀리 진도가 아스라히 보인답니다.
삼성각 가는 길에 올려다보면
까마득한 벼랑 위에 제비집처럼 작은 암자가 하나 매달려 있어요
삼성각에 들어가 잠시 참배하고,
삼성각 앞에서 내려다본 해남의 바다와 들녘이랍니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아주 세차게 불었어요.
그래도 어디선가 봄이 오는 느낌,
한 폭의 진경산수화 같은 풍경에
자꾸자꾸 시선을 빼앗기며 걸어 나왔답니다.
이번 봄꽃 여행에서
담양은 시기가 조금 이른 듯했답니다.
호남 5매중 담양의 계당매는 이미 죽었고
소쇄원의 소쇄매를 만나러 들어갔지만,
제월당 앞의 소쇄매는 아직 피지도 않았고,
죽림서원의 죽림매 역시 이제 작은 꽃망울이 맺혀 있었어요.
무등산의 북쪽 자락에 위치하는 담양은
광주보다도 기온이 한참 낮았고
꽃 피는 시기도 제법 차이가 났어요.
담양 8매를 만나러 가려면
호남 5매가 피고난 뒤,
아마도 10일 후쯤에 나서야하지 싶습니다.
해저물녘의 소쇄원 제월당 앞의 풍경
묵은 산수유 한 그루만 노오란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답니다.
이번 명품 매화를 만나러 나선 길은
봄꽃 여행과 함께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조금 부족해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오감과 마음이 행복했던 귀한 여정이었답니다.
함께 해서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