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 그리고 선
오늘은,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입니다.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에 감사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모습을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토마스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은, 토마스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라고 말하였지만,
토마스는,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토마스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토마스는 예수님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토마스 는 없었습니다.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 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처 처음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토마스가 없었던 것은,
토마스의 잘못 이라기 보다, '예수님의 선택'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토마스만 없을 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복음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토마스가 없을 때, 당신 모습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심으로써,
토마스를, ’당신을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행복‘에로
초대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다'는 것은,
허황된 이야기,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생각되지만,
우리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느 아이의 생일에, 아빠가,
아이의 생일 선물을, 미리 아이의 방 안에 놓아두고서, 그 아이에게,
’내가 네 생일 선물을 방에 놓아 두었어.‘ 라고 말했을 때,
아이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첫 번째로는,
그 아이가, ’나는 아빠가 말씀하신 선물을 직접 확인해야 믿을 수 있어‘
라고 생각하고, 방에 가서 그 선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도 있고,
두 번째로는,
그 아이가, ’아빠가 분명히 내 선물을 내 방에 두셨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아빠가 준비한 선물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
믿을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 아이는, 어떤 경우에 더 행복할까요?
그 아이는, 그 선물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지 않고서도,
아빠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방에 선물이 있다는 것을 믿었을 때,
훨씬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직접 눈으로, 직접 체험으로, 확인하고서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예수님께서 하실 말씀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훨씬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눈에 보이는 표징들을, 기적들을
드러내지 않으신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를 더 큰 행복을 초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 이시고,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이끌고 계시고, 초대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