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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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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禪詩 스크랩 禪宗五家의 詩歌 경계 8. 황룡종 선시
원명 원적 추천 0 조회 116 18.10.19 14:5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禪宗五家의 詩歌 경계 / 이은윤


8. 황룡종 선시

 

황룡혜남黃龍慧南(10021069) 선사가 개산한 임제종 황룡파는 시흥 넘치는 선승과 거사가 기라성같이 나열해 있다. 회당조심晦堂祖心 · 동림상총洞林常總 · 진정극문 · 도솔종열兜率從悅 · 별봉조진別峰祖珍 · 각범혜홍覺範慧洪 · 청원유신靑原惟信 · 보은법상保恩法常 선사 등과 소동파蘇東坡 · 황산곡黃山谷 · 장상영張商永 거사 등의 번뜩이는 문재와 시학 소양은 시학사에도 찬란한 금자탑을 남겼다.

 

혜홍慧洪 스님의 문집인냉재야화冷齋夜話(10)는 엄우嚴羽창랑시화滄浪詩話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선 교류의 고전이며 소·황은 당송 8대가에 속하는 宋代의 걸출한 시인들이다


황산곡은 여본중呂本中과 함께 자연산수에서 느낀 감오를 중시하는 강서시파江西詩派라는 선시 시단을 형성, 선과 시가 어우러진 탁월한 인격 정신을 제시했다산곡의 인격정신은 이미 도신 · 홍인 · 혜능 조사와 백장 선사 등에서 보여진 바 있는 일상생활 중에서 자성 심지心地가 일대의 광명을 발하는 초탈 자심自心을 말한다. 이게 바로 선경禪境이다

선경이란 정욕情欲이 그친 심리 상태를 말한다.

 

황룡종 시선 감오의 두드러진 특징은 황룡종 3요 묘지에서 비롯하는 용맹 분방한 기질과 전고典故의 창조적 운용, 구중궁궐의 궁녀가 품은 연정을 선리와 상통시킨 염정우화艶情寓話 등을 통한 물속의 소금 맛같은 미감이다.

 

황룡종의 종요는 생연生緣 · 불수佛手 · 여각驢脚으로 초관-중관重關-뇌관牢關을 삼는 

황룡삼관과 청원유신의 山是山 산은 산이고, 水是水 물은 물산수 3단계의 철오徹悟 변증법이다.

 

황룡은 세 개의 관문을 통해 중생과 부처가 평등하다는 관념에 입각한 고도의 자신감을 고취했다. 자신이 곧 부처이므로 절대 부처를 자신 밖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은 주체적이고 웅맹 분방한 기질을 갖게 했다.

 

회당조심은

사자불식조잔獅子不食彫殘 

   사자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다 남긴 고기를 결코 먹지 않으며,

쾌응불타사토快鷹不打死兎 독수리는 죽은 토끼를 낚아채지 않는다.”

는 설법으로 학인들의 자신감과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웅맹분방한 기개를 찬양했다.

이같은 분망한 기질은 황룡종 선시에 취의醉意와 광태를 유발시켰다.

 

황룡종의 분방함과 호방함은 마침내 심문분心聞賁 선사에 이르러 세 가지 예술 비평을 통해 3대 묘지의 선요를 개방함으로써 그 결정판을 내놓았다.

‘3요 묘지

1이백시가李白詩歌 이백의 시가,

2요는 공손검무公孫劍舞 공손의 검무’,

3요는 장전초서張顚草書 장전의 초서.

 

시선 이백의 분방한 시가와 공손의 혼을 빼는 검무, 장전의 신비한 초서는 성당盛唐 시기의 시가 · 무용 · 서법이다.

 

심문 선사는 이백의 격정과 공손의 하늘 높이 뛰어오르는 기세, 장전의 나는 듯한 신운神韻을 황룡종 선요의 세 가지 요점과 비교해 평했던 것이다.

 

3요 묘지가 추구하는 정신적 지향점은 참선자의 무한한 주체성 개척에 있다

광무는 참 생명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한 칼에 84천 대군을 소탕하듯 정식情識과 더러운 먼지로 뒤덮인 의식을 완전 소탕해야만 본래의 청정한 평상심을 계속 지켜 나갈 수 있다. 평상심이 보지保持되면 신부는 당나귀를 타고 노파는 나귀 고삐를 끌 때처럼 신부와 노파라는 분별심이 없어진 순진무구한 선경의 정상에 도달한다.

 

구월중양九月重陽 99일 중양절에는

이하위불성의以何爲佛性義 무엇이 불성의 의미를 드러내는 현현일까?

죽엽우인기무분竹葉于人旣無分 죽엽과 사람에 이미 분별이 있을 수 없으니,

국화종차불수개菊花從此不須開 국화꽃도 이를 따라 피지 못하는구나.


별봉조진 선사의 시법이다

죽엽이하의 두 구는 두보의 시구일九日에서 인용한 것이다

죽엽은 맛 좋은 미주를 가리킨다. 당시 두보는 병환으로 음주가 불가능해 이미 술을 마시지 못하는 가운데서 담담한 국화 감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술을 마시며 국화를 감상하던 지난날의 풍류를 아쉬워하는 두보는 내가 술을 마시지 못하니 국화도 따라서 꽃을 피우지 못한다는 희화적이고 해학적인 구기口氣를 농하고 있다


조진은 이 시법에서 두보의 시를 빌어 불성은 결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현실 인간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리禪理를 설파한다. 인간이 아픈 게 곧 부처의 아픔이다.

 

구일九日 중양절重陽節

중양독작배중주重陽獨酌盃中酒 중양절 대작할 사람 없어 홀로 술도 못 마시고

포병기등강상대抱病起登江上臺 병든 몸 부등켜안고 일어나 강 언덕에 오르네.

죽엽어인기무분竹葉於人旣無分 죽엽청주도 나에게는 이미 소용이 없고

국화종차불수개菊花從此不須開 이제부터 국화꽃이 피어도 (즐거움)이 없네.

수방일낙현원곡殊方日落玄猿哭 타향에서 해가 지니 검은 원숭이 (슬프게)울고

구국상전백안래舊國霜前白雁來 옛 조국에는 서리 내리기 전에 흰기러기 날아오는데

제매소조각하재弟妹蕭條各何在 형제자매 쓸쓸하고 외로운데 어디에 가있나?

간과쇠상양상최干戈衰謝兩相催 전란과 늙어 쇠약함, 둘이 서로 재촉하네.(초조하게 하네)

九日 : 99일 중양절, 국화주 먹으며 명절을 보내는 풍습

음력陰曆 99. 중구重九라고도 하는 데, 9는 원래原來 양수陽數이기 때문에 양수陽數가 겹쳤다는 뜻으로 중양이라 함

獨酌 대작對酌할 상대相對가 없이 혼자서 술을 마심

盃中酒 잔속의 술. 못 마시다.

抱病 병든 몸 부등켜안고

起登 일어나 오름

竹葉 죽엽청주

於人 나에게는

旣無分 이미 소용이 없다

從此 이제부터는

殊方 타향

舊國 옛 조국. 사방四方으로부터 적의 침공侵攻을 받기 쉬운 지세에 있는 나라

蕭條 쓸쓸하고 외로움

干戈 전란

衰謝 노쇠함

兩相催 양쪽에서 재촉함

는 두보杜甫 55세에 기주에서 기거寄居할 때 늙고 병든 몸으로 늦가을 음력 99일 명절名節인 중양절重陽節을 맞아 홀로 높은 산에 오르며 좌절挫折과 곤고困苦와 고통苦痛과 절망絶望 속에 살아온 스스로의 삶을 관조觀照한다.

자연경관自然景觀과 대비對比하여 심경心境을 표출表出한 이 시는 칠언율시七言律詩로 두보의 서글픈 심경心境을 묘사描寫한다.

首聯99일 중양절重陽節은 국화주菊花酒를 마시며 즐기는 명절名節인데 타향他鄕에서 곤고困苦한 세월歲月을 보내는 두보杜甫는 같이 대작對酌할 사람도 없고 건강健康도 허락許諾되지 않아 술 한 잔 못 마시고 병病 들어 쇠약衰弱한 몸으로 일어나 강언덕을 올랐다.

頷聯은 건강健康이 쇠약衰弱해진 두보杜甫에게는 죽엽竹葉으로 담근 청주淸酒도 이미 소용所用이 없고 국화주菊花酒를 담그는 국화꽃이 피어도 이제는 즐거움이 없다고 서글픈 현실現實을 묘사描寫한다.

頸聯은 타향他鄕살이 서러운데 해가 지니 검은 원숭이 슬프게 울고 옛 화려華麗했던 조국祖國은 서리 내리기 전에 흰 기러기 날아왔는데,

尾聯은 쓸쓸하고 외로운데 형제자매兄弟姉妹는 각각 흩어져 어느 곳에 있는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란戰亂과 늙고 병들어 쇠약衰弱해 가는 이 두 가지가 두보杜甫의 수명壽命을 재촉하는 것 같다고 한을 표출表出한다.

 

회당조심과 진정극문 · 감당문준 · 별봉조진 선사 등은 황룡종 고전 인용의 명수였다.

선리 설파에 이같이 고전 시사詩詞를 끌어들인 전고의 창조적 운용은 황룡종 선시의 예술적 표현력을 풍부하게 했고 의취義趣 심원한 설법의 예술적 매력을 한층 드높였다. 고전 시사의 신비롭고 고상한 운치는 백화난만한 춘색 같은 예술적 효과를 냈다.

 

황룡종 선자들의 전고는 물속의 소금 맛 같은 짜릿한 미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선의 심미정취는 영정寧靜 · 쾌담恬淡 · 몽롱朦朧 · 유원悠遠 · 공령空靈으로 요약된다.

황룡종은 이같은 선의 심미 정취를 그려내는 의상으로 늦은 봄 · 잔화殘花 · 두견새 · 늦가을 · 서풍 · 낙엽 · 세모 · 풍설 · 유랑자 · 기러기 등을 활용한다.

 

춘이모낙화분분春已暮落花紛紛 

   봄은 이미 저물어 꽃잎이 흩날리는 가운데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니

하홍우下紅雨 마치 꽃잎의 붉은 비에 비쳐 마치 붉은 비가 내리는 듯하구나.

남북행인南北行人 남북을 오가는 사람들

귀불귀歸不歸 어떤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어떤 사람은 돌아가지 않는데,

천림만림명두우千林萬林鳴杜宇 온 숲속에는 두견새 우는 소리네.”


범경梵卿 선사의 게송이다. 시정 넘치는 법문이다.

늦은 봄 지는 꽃잎이 비 오듯 떨어지고 두견새는 피를 토하며 울어대는데 학인들은 도를 닦는 답시고 동서남북 유랑행각이 분주하다.

늦봄 낙화라는 자연 경관은 시인의 생명과 연계돼 이질동구異質同構의 의경을 보여주면서 선자는 모름지기 맑고 평안하며 고요한 본래면목(고향)으로 되돌아가는 반조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함축하고 있다.

 

마음이 미혹하면 법화에 굴림을 당하고 마음을 깨치면 법화를 굴린다는 뜻이 뭡니까?”

풍난조성쇄風暖鳥聲碎 

   봄날 온화한 바람이 따스함을 날라다 주니 새들의 지저귐 소리 요란하고,

일고화영중日高華影重 해가 높이 뜨니 꽃 그림자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답고 선명하다.”

 

혜천惠泉 선사와 한 학인의 선문답이다. 혜천의 답은 한 편의 시다

혜천의 대답은 당 두순학의춘궁원春宮怨의 명구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혜천은 봄날의 풍광을 빌어 미오와 깨달음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사랑하는 애인과 생이별하고 궁중으로 들어간 궁녀는 구중궁궐에 갇혀 성은도 입지 못한 채 깊은 원망과 한 많은 비정의 나날을 보낸다. 새 울고 꽃피는 화사한 봄날이 와도 그 경관을 기꺼이 감상하지 못하고 생각에 더욱 마음 아파하면서 구중궁궐이 그저 원망스럽기만 하다. 마음에 득실을 따지는 공리적 계산을 담고서 눈앞의 사물을 보면 곧 미오가 된다. 경전에 굴림을 당해 현전現前의 아름다운 경치를 제대로 감수치 못한다면 마치 한 많은 궁녀의 봄날 유원幽怨이나 다름없다.

득실의 망념을 벗어나 눈앞의 대상에 기꺼이 감응하면 두두물물이 진리고 현전한 경관 가운데서 유열과 쾌락을 느낄 수 있다는 법문이다.


춘궁원春宮怨 봄날 궁녀의 원망 / 두순학杜荀鶴   

조피선연오早被嬋娟誤 일찍 예쁘다고 뽑힌 게 잘못이지

욕장림경용欲妝臨鏡慵 치장하려고 거울 보며 게을러지네

승은부재모承恩不在貌 은총을 받는 것은 얼굴이 아닌데

교첩약위용教妾若為容나에게 얼굴 꾸며 맵시내라 하네

풍난조성쇄風暖鳥聲碎 바람이 따시니 새소리 요란 하고

일고화영중日高花影重 해 높이 솟으니 꽃그 림자 겹쳤네

년년월계녀年年越溪女 해마다 이맘 때 고향 계집애들은

상억채부용相憶采芙蓉 연꽃 따던 때 나를 생각해주겠지.

 

인물이 예쁘다고 궁녀로 선발되어 들어왔으나 황제의 은총을 받지 못하고 따뜻한 봄날 바깥세상의 꽃과 새소리를 들으며 거울 앞에서 얼굴을 꾸며야 소용없음을 한탄하였는데 이는 위의 은총을 받는 것은 얼굴모양이 아니고 아첨이나 교태에서 나옴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어릴 때 고향에서 놀던 벗들을 그리워하는 시이다.

 

약위용若爲容어떻게 얼굴 맵시를 내겠는가?’ 하는 반문법을 써서 얼굴을 꾸며야 소용이 없음을 강조한 것. 이는 <시경-백혜>에 나오는 구절로 豈無膏沐誰適爲容=머릿기름이 없을까마는 누구 보라고 얼굴 꾸밀까?”하는 심정과 같이 황제의 은총을 잃은 지금의 심정을 읊음.

새소리가 요란스레 부서져 나오는 것을 표현한 말

월계녀越溪女전국시대 미인 서시西施의 고양인 완사계浣紗溪에 살던 때의 어린 계집애들여기서는 자신을 서시에 비유하여 어릴 때 벗들과 연꽃 따던 시절을 그리워한 것임.

이글에서 문제구인 年年越溪女相憶采芙蓉에서 월계녀를 서시에 비유한 자신으로 보면 상억相憶이 어울리지 않고 공억空憶이라고 해야 될 것임. 그래서 월계에서 함께 연꽃 따던 친구 계집애들, 해마다 서시 같은 처지에 있는 나를 생가해줄까?’ 해설한 것임. 이 시에 압구壓句風暖鳥聲碎日高花影重이라고 예로부터 평해 옴.


작자소개

두순학杜荀鹤 자는 언지彦之, 자호는 구화산인九華山人. 지금 안휘성安徽省 사람. 대순大顺 2(891)46세 때 진사 시험에 합격. 마지막으로 양태조梁太祖로부터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임명된 뒤 5일 만에 죽음. 그의 시편은 당나라 말기의 군벌정치의 혼란상을 표현한 것이 많음. 문집으로 <당풍집唐風集> 전함.

 

 

황룡종 선시에는 산거山居와 목우를 등장시켜 어떠한 구속도 없는 자유를 누리는 도인을 나타내는 의취가 풍미한다.

 

천봉정상일간옥千峰頂上一間屋 높은 산꼭대기의 한 칸 초옥

노승반간운반간老僧半間雲半間 노승이 반 칸을 차지하고 구름이 반 칸을 차지하고 산다.

작야운수풍우거昨夜雲隨風雨去 지난 밤 구름이 몰고 와 몰아치고 간 풍우의 급함은

도두불사노승한到頭不似老僧閑 노승의 한담 자적과는 다르다.


지지志芝 선사의 게송이다

노승의 산꼭대기 초옥에는 찾아오는 사람 없고 오직 흰 구름만 때때로 오간다

지난 밤 급히 몰아치고 간 풍우는 산의 푸르름을 더해 주었지만 풍우가 보여준 바쁜 쾌질의 속도가 감히 어찌 노승의 느릿한 한가로움과 자적보다 값지다 할 수 있겠는가.

 

황룡종 선시는 일용시도日用是道보다 촉목보리의 감오를 중시한다. ‘일용시도는 일상생활 중의 감오에 중점을 두지만 촉목보리는 자연산수에서 느끼는 감오에 중점을 둔다.

 

황산곡의 개오 이야기를 보자

그가 회당조심 선사를 찾아와 선법의 요체를 묻자 회당은 내 자네한테 숨긴 게 없다.”고 가르쳐 주었다. 황산곡은 나름으로 이해한 회당의 가르침을 여러 번 설명해 보려 했으나 매번 입을 열기만 하면 그게 아니다.”라고 꾸짖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황산곡이 스님을 따라 산행을 하면서 시봉 노릇을 했다. 마침 물푸레나무 꽃이 만개해 그 향기가 온 계곡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이때 회당이 산곡에게 물었다.

 

물푸레나무 꽃향기가 나지 않느냐?”

, 납니다.”

내 자네한테 눈꼽만큼도 숨긴 게 없네.”

 

이 한 마디를 다시 듣는 순간 황산곡도 도의 편재성을 명명백백히 깨쳤다. 황산곡이 목서향木犀香을 통해 깨친 일화는 자연산수에서 진여 법성을 감오하는 황룡종의 촉목보리를 대표한다.

 

진여 법성으로서의 자연산수는 모든 사람의 면전에 명명백백히 나타나 있다. 회당은 산곡에게 말한다. 일출 · 운산雲散 · 화소花笑 · 새들의 울음 · 가을 산 · 낙엽 · 푸른 하늘 · 보름달 · 푸른 대나무 · 노란 꽃 등등 어느 하나 내가 너한테 숨긴 게 없지 않느냐고.

 

장구성張九成 거사의 은사인 도솔종영 선사는 자연에서 감오한 동정일여의 촉목보리를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죽죽영소竹竹影掃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그림자가

계진불동階塵不動 계단을 쓸어내지만 계단의 먼지는 전혀 움직임이 없다.

월월윤천日月輪穿 달이 바다 속 깊이 뚫고 들어가지만

해수무흔海水無痕 물에는 상처 하나 나지 않네.


선사들의 생사 심미관을 대표하는 안영한담雁影寒潭도 자연에서 감오하는 촉목보리다. 기러기 날아갈 때 강물에 그림자 비친다. 그러나 그 그림자는 기러기가 날아가 버리면 없어진다. 이때 강물은 기러기 그림자를 더 이상 붙잡아 두려하지 않는다. 기러기 또한 강물에 그림자 드리울 생각 전혀 없다. 그저 날아가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생사도 이 같은 수월상망水月相忘의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면 쉽게 초월할 수가 있다.

 

계성편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說 계곡물 소리가 모두 부처님의 84천 법문인데,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 산색인들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랴.

여래팔만사천게如來八万四千偈 여래의 84천 법문을,

타일여하거사인他日如何擧似人 다른 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와 비슷하게라도 드러내 보여줄 수 있을까.


소동파가 동림상총 선사로부터 받은 무정설법無情說法화두를 참구하던 중 여산 폭포 앞을 지나다가 폭포 소리를 듣고 깨친 후 읊조린계성산색溪聲山色이라는 개오시다

역시 자연에서 진여 법성을 감오하는 촉목보리다.

 

황산곡의 선심이 탁월한 인격 정신을 지향하는 데 비해 소동파의 선리는 인생은 꿈과 같다는 인생관에 기초한 초탈지심超脫之心을 강조한다.

 

황룡종의 거물 거사로 재상까지 지내고 나름의 선사상을 정립해 가지고 있던 도솔종열 선사의 제자 장상영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선사상은 세간과 출세간을 회통하는 선불교의 실천으로 유교와 불교의 통일을 주장했다.

 

황룡종의 종요인 황룡 3과 청원유신의 견산見山 3계단은 송명 이후 선종의 주류를 이룬 간화선의 기초다.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간화선과 묵조선의 대립은 그 중요 배경이 선학 자체의 의미보다는 사대부 거사들을 챙취하기 위한 투쟁에서 시작된 것으로 정치 사회적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유신의 견수 3계단은 황룡종뿐만 아니라 남종선의 독특한 심미 감오를 드러낸 선종 미학의 명구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그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가 갖는 뚜렷한 세 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자연산수에서 느끼는 투철한 촉목보리를 어느 명구보다도 특징 있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정감적 교감을 벗어난 주객쌍망主客雙忘 · 능소쌍망能所雙忘의 직각 관조를 시어체로 표현한 영롱한 선시의 백미다.

철오徹悟의 경계를 경상境象으로 현장감 있게 드러내 밝고 텅 빈 투명한 예술 경계를 보여주고 있다.

 

황룡종은 단명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시와 선의 교류에 큰 공헌을 남겼고 후일 많은 공격을 받은 심미시파의 예술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황룡종이 오래 지속치 못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 같은 심미시에 대한 공격과 왜곡 때문이다.

 

 

9. 결어


선종의 인식방법인 이물관물以物觀物은 시학 발전, 특히 심미감을 심화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초지성 · 초공리超功利 · 무의식 상태서 자아를 물화物化시키는 이물관물을 비롯한 촉목보리 · 상대적 대립의 초월 등과 같은 선사상이 시학에 끼친 영향은 유협의 문심조룡文心彫龍과 엄우의 창랑시화라는 시학서가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이물관물은 공리관념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일반의 이아관물以我觀物과는 전혀 다른 심미적인 관물방식이다.

 

심미시파는 선종의 흥취와 묘오 · 직관적 감오 등을 빌어 예술의 이상을 실현하면서 시가 이론체계를 정립했다. 시학의 심미 이상도 선이 만고장공萬古長空 일조풍월一朝風月을 통해 순간 속에서 영원을 추구하는 선의 심미 체험과 일치한다. 선이 지향하는 생활방식은 시인의 심미적 자각을 유발, 시인의 심미 추구 의욕을 촉진시켰다.

 

시단은 선리禪理를 시에 도입, 선이 시작詩作을 돕게 함으로써 시가 심미의 이상을 형성했다. 선리를 성공적으로 시에 도입한 대표적 사례는 소동파의 현언시玄言詩.

 

宋代 이후에도 시가 발전에 대한 선종의 영향은 계속돼 시단은 선종에서 많은 영감과 예술적 기교를 빌어다 썼다. 그러나 시학사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둔 시선詩禪 교류시대는 宋代를 정점으로 해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선은 인간의 심성을 정화하고 숭고한 정신세계를 소조塑造하는 공정이다. 시와 예술의 존재 이유도 전적으로 선과 일치한다. 하늘처럼 높기만 한 불교 이상을 현실화시켜 재가 수행과 거사 불교로 생활 불교화한 선종의 시정 넘치는 촉목보리와 일용시도는 사대부들의 구미에 딱 맞아 떨어졌다.

 

선사상은 세속적인 물질생활을 선뜻 포기하기 싫어하면서도 한편으로 고상하고 우아한 공령적空靈的 정신을 향수하고자 하는 사대부들의 인생 태도를 수용하는 안성맞춤의 의탁처였던 것이다. 물론 남종선의 출발은 농민과 유민을 배경으로 한 농민선이었다. 그러나 점차 신흥 사대부들의 이같은 욕구와 융합하면서 사대부선으로 바뀌어 시선 교류라는 커다란 선림의 물줄기를 형성했다.

 

시와 선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적지 않다. 그러나 당송대의 시학에 관한 한 선을 떠나 시를 논하기 어렵다. 선의 심미 직각은 예술 직각을 고양시켜 시 · · 화 등의 예술 창조의 기적을 탄생시켰다. 오늘날에도 선서화 · 선시라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모두가 시선 교류의 역사가 남겨 놓은 그림자다.

 

선의 시화, 시의 선화禪化가 새롭게 모색돼 이선조시以禪助詩’ ‘이시조선以詩助禪의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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