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실컷 놀자
-편해문,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를 읽고
1.
이름을 짓는 일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부모의 마음, 자녀가 이렇게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자녀의 이름에 고스란히 담겼다. 첫째 아들은 우리 아버지께서, 아이의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 여러 가지 이름을 말씀하셨지만, 몇 개는 퇴짜를 놓았다. 한참을 고민하신 후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13:31-32)” 이 말씀을 근거로 이름에 숲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도 좋아하는 말씀이라 동의했다. 고심 끝에 내놓으신 이름은 “유림”이었다.
‘림’은 숲으로 하고, ‘유’를 어떤 한자로 할지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며칠이 지난 후 나는 아버지께 “놀 유”가 어떻겠냐고 말씀드렸다. 나는 아들이 즐겁게 살았으면 했고, 다른 사람도 즐겁게 해주는 큰 숲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버지는 반대하셨다. 이유는 놀기만 하면 ‘놈팽이’가 된다며 싫어하셨다. 아버지께서 워낙 부지런한 분이었고, 열심히 사셨기 때문에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셨던 것 같다. 나는 아버지와 다른 세대로 살고, 성격도 여유로운. 편이라서 아들이 여유를 가지며 살기를 바랐던 거다.
나는 여러번 아버지께 제 생각을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결국 아버지 뜻대로 ‘놀 유’가 아닌 ‘부드러운 유’를 쓰기로 했다. 그래서 첫째 유림이는 ‘부드러운 숲’이 되었다. 첫째는 우리 아버지를 닮아서 성격도 급하고, 말도 빠르고, 계획한 것은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반면 놀이에도 진심이다. 승부욕이 강해 모든 놀이에서 이기고 싶어 한다. 할아버지와 아빠의 바람대로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고맙다.
2.
편해문 선생님이 쓴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를 처음 들었을 때 제목이 마음에 쏙 들었다. 어른 중에 ‘놀이’에 진심이 분이 있다니 신기했다. ‘놀이’를 주제로 책 한 권을 쓰다니 놀라웠다. 저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궁금했다. ‘놀이’가 사라지는 우리나라 현실을 뼈아프게 지적했다. 내가 평소에 안타깝다고 느꼈던 것을 글로 써주셔서 한편 속이 시원했다. 그러면서도 아팠다. 놀이가 사라지는 현실이, 아이들에게서 놀이를 빼앗아가는 어른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저자는 놀이를 ‘밥’으로 표현했다. 놀이밥. 매일 밥을 먹어야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듯이 놀이밥을 먹어야 건강하게 자란다고 말한다. 정말 백퍼센트, 이백퍼센트 공감한다. 실컷 놀아야지, 지칠 때까지 놀아야지 아이들은 행복해 한다는 걸 매일 본다. 하루종일 놀아서 눈 아래 다크서클이 짙어져서 그만 놀고 가자고 해도 아쉬워한다. 노는 그 순간이 얼마나 즐거우면, 얼마나 행복하면 몸이 피곤해도 놀이를 그만두지 못하는 걸까.
이 놀이를 어른들이 빼앗아가고, 막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학교를 마치고 이런저런 학원을 찍고 돌아오는 아이들 얼굴을 보라. 월급도 없는, 월차도 낼 수 없는, 휴가도 없는 지독한 학습노동에 아이들은 절어 있다. 놀지 말고 공부해라가 아니라 이쯤 되면 놀지 말고 일하라다. (292)” 길거리에서 자기만한 책가방을 매고 학원을 가는 어린 아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안타깝다. 벗겨서 대신 들어주고 싶다. 무엇 때문에 놀지 못할까? “아이의 성적과 경쟁이 지금 아이를 놀지 못하게 하면서 밀어붙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인가. … 아이들을 사랑하는 부모들은 이토록 기막힌 상황 앞에서 왜 이렇게 무기력한 것일까. (293)” 아이들의 미래가 지금의 놀이를 막는다. 지금 공부해야 미래에 놀 수 있으니깐. 지금 놀이를 포기하면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는 걸까? “불안하면 놀 수 없다. 불안을 떨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놀이다. 그래서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이다. (304)” 아이들의 미래가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들의 불안이다. 불안이 놀이를 막고 있다. 동네에서 웃음소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
3.
어제는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올 여름 처음으로 워터파크를 갔다. 가까이 지내는 네 가정이 모여서 함께 갔다. 아이들은 며칠 전부터 갈 준비를 했다. 가는 날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시끄러워 잠에서 일찍 깼다. 갈 준비를 마치고 차를 탔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속도를 냈다. 네비게이션을 보니 딱 맞춰서 도착할 것 같았다. 다른 가정이 도착했다는 카카오톡 알림이 울린다. 마음은 더욱 급해진다. 지난 번 약속에도 늦어서 이번만은 늦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을 아이들이 알리 없다. 가서 무얼 타고 놀건지, 누구랑 놀건지 왁자지껄 떠들기 바쁘다. 가는 내내 조용할 틈이 없다. 뒤에서 신나게 놀 생각만 한다. 불안은 어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닐까.
첫댓글 우선 지호 쌤이 약속하신 기한(11일 화요일까지)을 잘 지켜서 글을 쓰신 것을 칭찬합니다😊
아이의 이름 짓는 일화도 인상적이고, 아이 이름에 '놀 유'자를 쓰고 싶을만큼 놀이에 진심인 선생님 생각도 잘 드러난 글의 앞부분(1) 엄지척!! ㅎㅎ
그런데 1의 마지막 문장 '할아버지와 아빠의 바람대로'에서 아빠의 바람은 앞문장을 통해 이해가 되는데 할아버지의 바람은 뭐였지 다시 찾아보게 됩니다. '부드러울 유'를 쓰게 된 할아버지의 바람은 글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놀이에 진심인 지호 쌤이 편해문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공감하는 부분(2)도 자연스럽게 연결된 느낌!!
3 부분은 2에서 언급한 '불안'과 이어지는 흐름이긴 하지만 약속 시간에 맞춰 가고 싶은 선생님의 조급한 마음과 아이들의 설레고 신난 기분이 앞부분에서 이야기한 불안이랑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생략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면 1, 2, 3으로 나누지 않아도 매끄럽지 않을까 싶었어용~
이상 지호 쌤 7월 글동무였습니다ㅋㅋ
오~~ 이렇게 꼼꼼하게 첨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감시간에 맞추느라 급하게 글을 마무리했어요ㅎ 예리하시네요!!
혜화쌤이 지적해주신 걸 바탕으로 다시 수정해서 올릴게요~
저도 혜화샘과 비슷하게 느꼈어요. 놀'유' 자를 쓰고 싶은 선생님의 마음과 아버님의 갈등 에피소드가 재미있어요. 그 부분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도 좋았을 거 같아요. 가령 지호샘은 왜 그렇게 노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또는 우리 사회에서 노는 걸 터부시하는 문화라던가... 마지막 단락에서 지호샘이 느끼신 '불안'이 일반적으로 노는 아이를 지켜보는 불안과는 다른 거 같아서 갸우뚱하게 됩니다.
미소쌤 댓글 감사해요^^ 꼼꼼하게 짚어주시고, 제안도 해주셔서 글 수정할 때 꼭 참고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