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98 .4. 7(화) 저녁7시
2. 장소: 우리집 거실
3. 내용: 새우 싸움에 고래등 터지다.
나의 자녀는 년연생 머슴아이로서 덩치도 비슷하고 나이차이가 없어 집에서 항상 친구처럼 지낸다. 우리집은 아파트가 아니고 주택이라 내가 몇 년전부터 거실의 높은 위치에 농구 골대를 달아 주었다. 시간만 나면 꼬맹이들은 신나게 거실에서 거리농구를 즐긴다. 그것도 매일 내가 퇴근한 시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정점수를 정해 놓고 사투를 벌이다 시피한다.
큰놈은 원래 운동을 많이 하는 편이라서 신경을 쓰지 않는데 작은 아이는 활동적이지 않아 자기 형과 집에서 농구라도 하면 그것이 바로 운동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래집에서 쿵쿵거린다고 해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4월 어느날 저녁 내가 퇴근을 해서 T.V을 보고 있는데 둘이서 농구 시합이 벌어졌다. 내기 시합인지? 아니면 친선게임인지? 는 몰라도 둘이서 정신없이 게임에 몰두를 하고 있었고 그날 따라 웬지 신경이 기슬렸다. 그 이유는 내가 전날 회식을 했기 때문에 몹씨 피곤한 상태였었다.
시합을 벌이는 도중에 반칙문제로 두아이가 실랑이가 벌어졌다. 큰아이가 야! 임마!! 네가 반칙했잖아!!! 임마!!!! 하자 작은 아이가 뭐! 임마!! 니가 했잖아!!! 하고 받아 쳤다. 서로가 잘했다고 큰소리치면서 분위기가 험악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에 큰 아이가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하면서 십원짜리를 썼다. 작은 아이도 질세라 계속적으로 임마!! 임마!!! 하는 것이였다. 가만히 듣자 하니 갈수록 태산이고 피곤이 더해 나도 모르게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서 둘 아이를 내 앞에 오게 했다. 차렸! 열중 쉬어!! 차렸!!! 하고서 바로 큰 아이에게 한차례 뺨을 후리 갈겼다. 바로 이어 작은 아이에게도 똑같이 빰을 때리고 두놈 다 한번만 더 싸우면 그냥두지 않겠다고 윽박 질렀다. 그리고 내 앞에서 꺼져!! 하면서 각자 방에 가도록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였다. 그 싸움이 있고 난 후부터 두 아이는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였다. 물론 집안에서 농구는 말할것도 없이 하지 않고 집구석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집사람이 낌새를 차리고 자꾸 아이들에게 서로가 얘기 할 것을 종용해 봤지만 아이들이 할리가 없었다. 은근히 집사람이 나에게 화살촉을 돌리면서 아이들 노는데 괜히 참견하여 집안 꼴이 이렇게 되었다고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금의 분위기가 더 좋은데 뭐 그리 걱정하는냐고 잘라 버렸다. 그런데 아이들의 침묵 행진이 한달이 가도 두달이 가도 묵묵 부담이였다. 이쯤되니 나도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아이는 그래도 성격이 원만하여 자기 형한테 전화가 오면 전화왔다는 말을 걸지만 큰 아이는 동생한테 아무런 반응을 주지 않고 행동으로 대신했다. 한번은 큰 아이가 수학여행을 4박5일 동안 다녀 왔는데도 둘이서 잘 갔다 왔는냐? 또 잘 있었는냐? 말 한마디 없이 지나치는 것을 보고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난감하였다. 분위기 파악을 못한 집사람은 자꾸만 아이들에게 얘기를 하라고 강요만 할뿐 뚜렷한 대안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해 추석이 다가왔다. 항상 집사람과 아이들 함께 시골로 가는데 그때에는 집사람을 먼저 보내고 두아이만을 데리고 추석 당일에 내 차로 내려갔다. 원래 작은 아이는 차만 타면 잠을 자는 습성이 있었고 큰아이는 말똥말똥 잠을 자지 않고 목적지까지 간다. 그래서 내가 큰 아이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다가 지난번 농구사건을 들먹이면서 동생과 말을 하지 않아 너희 엄마와 이 아빠가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당시 아빠가 개입하는 것이 아닌데 이제 와서 보니 내가 잘못한 것 같다고 얘기를 꺼내니 큰 아이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아빠!! 얘들 싸움에 어른이 끼어 드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새우 싸움에 고래등 터지는 격` 이라고 따끔하게 아빠를 질책 하였다. 그래 이 아빠가 잘못했는데 네가 형이고 하니 동생한테 얘기를 먼저 걸어주면 정말 고맙겠다고 하니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였다.
시골에 도착하여 큰 아이가 작은 아이에게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응어리진 것이 한순간에 풀리면서 대화가 오갔다. 나중에 집에 도착하여 집사람이 어떻게 해서 애들이 대화를 하는지? 그리고 그 계기가 무엇인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내가 시골 갈 때 있었던 얘기를 죄다 해 주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항은 부모가 자녀들이 서로가 의견 차이로 다툴 때 절대 개입치 말고 스스로 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힘의 논리에 의해서 부모가 개입되면 문제가 해결된 것 같지만 실제로 문제의 핵심은 해결되지 않고 각자의 마음에 상처만을 안겨 준다는 것이다. 특히 이럴때 한 자녀의 편을 들어주면 다른 자녀는 마음의 큰 상처를 입고 세상을 어둡게 보면서 살아 간다는 것이다. 확대 해석을 해보면 이러한 문제는 우리회사에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노사문제이며 이러한 문제가 발생되면 절대 제3자에 의해서 해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인간의 마음은 너나 할것 없이 똑같기 때문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사례에서 보듯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내가 개입하여 약 6개월만에 대화가 이루어지고 근 1년만에 거실에서 농구하는 모습을 볼 때 열질 깊은 물속은 들여다 볼수 있어도 한질 안되는 사람의 마음속을 볼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물론 고통이 따른 만큼 얻은 것도 없지 않다. 이제는 아이들이 절대 상대의 비위에 거슬리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성숙된 모습을 볼 때 부모로서 흐뭇하기 짝이 없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부모는 부모이기 이전에 교육자로서 역할을 동시에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이 시대에 살아가는 모든 부모님들이 알아야 할 지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어리석은 부모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