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합니까?는 물음에 대답하심
누가복음 17:20-21 /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어느 날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서는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올 것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면 하나님의 나라가 왜 아직도 실현되지 않는지를 따지며 예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곧 메시야이심을 부정하는 것에서 입니다. 이제까지 예수께서는 무리들에게“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다”(눅 9:27) 라고 말씀하셨으며, 70인을 각 동네에 보내실 때도“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눅 10:9) 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한 벙어리 된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실 때는 무리들에게“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눅 11:20) 라고 말씀하셨기에,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 땅에 이미 와 있어야 하며 유대인들의 눈에 보이는 나라의 상태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에서,“우리 눈에 보이는 이 광경이 진짜 하나님의 나라이냐? 우리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있는 것이냐?”라고 할 눈앞에 쫙 펼쳐진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보이는 게 없으니 이를 문제 삼고 예수께 트집 잡는 빌미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오셨다면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시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뭔가가 보이는 게 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으니,“과연 하나님의 나라가 오긴 온 것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는 뭔가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오긴 뭐가 온 것이냐? 도대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온다는 것이냐?”라는 악한 의도에 의한 질문을 예수께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고 아는 것은 바리새인을 포함하여 유대인들이 갖는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의 조상인 다윗왕 이후 누렸던 이스라엘 왕국에서 보고 있는 것이며, 시드기야왕 때 바벨론에 남왕국 유다가 멸망한 후 바사(페르시야) – 그리스 – 로마에 이어져 지배당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할 다윗왕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기다림에 있었습니다(참조. 행 1:6).
그런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마 1:1)께서 등장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가르치시고 권능을 행하시는 것에서 예수님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곧 선지자에게서 예언되어 온 메시야라고 하면 그분에 의하여 있을 로마로부터의 해방으로 바벨론 포로 이후 600여년에 걸쳐 계속된 압제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이스라엘의 회복에서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보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들의 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하는 그 어떤 것의 표징(징조)도 보이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은 이것을 가지고 예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토를 다는 것으로 삼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께 나아와“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는 것입니까?”라고 이 질문은 바리새인들이 유대인을 대표하여 정말 궁금하여 알고자 하는 심정에서 진지함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이심을 부정하는 것에서 비꼬고 멸시하는 것에서 하는 것이며, 그러한 것에서“네가 과연(정말) 그리스도이시냐?”라고 하는 예수님을 시험하는 의도에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의도성은 (1)“하나님의 나라가 왔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왔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왔다는 것이냐, 그런데도 네가 메시야냐?”라고 하는 하나님 나라의 임함과 그 나라를 다스리는 주를 심하게 부정하고 있음을 깔고 있으면서 (2)“도대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는 것이냐?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는 오는 것이냐?”라고 하는 것에서“네가 메시야라고 하면 언제쯤이 되어서야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냐? 하나님의 나라가 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 그 때가 오지 않았는데, 네가 메시야냐”라고 예수님의 메시야이심에 대한 불신앙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에 대한 실체를 알려주시는 가르침으로 삼으셨습니다.“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답변은 예수께서 그동안“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 11:20) 라고 말씀해 오신 하나님의 나라는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인이 바라보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는 다른 것에서입니다. 예수님은 총독 빌라도에게“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려주셨듯이 이 세상에 속한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형태에 의한 나라로 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이스라엘이 왕국의 형태로 있었던 나라,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이후 바사(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지배에 있어 온 유다가 독립하여 나라다운 국가의 형태를 되찾는 것에서 유일신 하나님의 종교를 신앙하는 하나님의 나라로 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해 오신 하나님 나라의 임함은 그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로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기도문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듯이“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속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에서 보듯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영웅이 등장하듯이 메시야가 나타나고 군사를 모집하여 군대를 동원하고 전쟁을 치러서 빼앗는 눈에 보게 되는 것이 있어지면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들어오는 것에서 임하는 것이니(눅 16:16),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는 자마다 물과 성령으로 나는 거듭남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요 3:3, 5).
그러니 말이죠.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게 와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라고도 못합니다. 팔레스틴 땅에서든 또 다른 땅에서의 장소에서든 그곳에 세워져서 보게 되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에서, 사마리에서, 땅 끝에 이르기까지 온 땅에 전파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성령과 물로써 거듭남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그 나라를 소유하고 그 나라의 삶을 사는 것이기에 하나님 나라는“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온 우주를 바꾸어 놓는 미래에 있을 묵시론적 변혁으로만 알고 있으나, 하나님 나라는 이미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자들 안에 임한 내적인 영적 실체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인격과 사역 속에 현존하며, 그를 통해서 믿는 자들 안에 즉시 임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인격과 사역에 의해 현재적 도래로 세상 끝날까지 전파되어 가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받아 그 나라의 백성이 되기 원하는 사람에게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시인하며 즉시 주님으로 받아드림을 통해 실현되어집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는 도래하여 새시대가 시작됨으로 그 나라는 즉시 우리 가운데 있게 된 것이요 우리는 그때부터 그 나라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해서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가 세워지는 현상에 의해 눈으로 보게 하는 일을 통해서 우뚝 선 나라를 보게 하는 것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그분의 나라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오는 것이며, 이는 예수께서 죄 사함을 통하여 영생을 주시는 구주로서 세상에 오심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말이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하나님 또한 부인하는 자이며, 그는 하나님의 나라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은“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합니까?”라고 하는 질문을 하는 것을 통해서 사실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시오 아버지로부터 그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이시는 구주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시면서 그러한 예수님을 부인함에 있어 비꼬고 멸시함에 있는 바리새인의 악함을 드러내 주십니다. 그는 그렇게 예수님을 부인함에 있으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모두에게서 부인 당함에 있을 것이어서 하나님 나라 밖에 있게 될 것이며, 이는 그 자신의 행함으로 인해 슬피 울며 영원히 가슴 치는 불행이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기록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볼 수 있습니다.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마 22:13)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 24:51)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 25:30)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눅 13:28)
여기서 거듭되고 있는 표현인“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는 예수님을 부인함에 있어 배척함에 있은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하나님 나라 밖으로 내쫓김에 있게 된 데 대해 큰 후회 속에 있을 것이지만 돌이킬 수 없을 것에서 하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에 의헤 하나님 나라가 임한 자는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2-43)
라고 하신 낙원에 주와 함께 있는 것이 실현되는 것으로 심령(마음)으로만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 실제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는 그들의 나라로 있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에 있음으로,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2-4)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2:1-5)
라고 하신 약속에 참여함을 받은 복 있는 자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 그분이 어디에 가시든지 그 뒤를 따름에 있음이 이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