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자신의 몫을 다하고
하느님 곁으로 떠나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람의 모습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은
생명이 있던 없던간에 상관없이 제 몫을 다하고 떠나면
참 아름다와 보이리라.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던 성전 또한
그 아름다운 자리에서 충분히 제 몫을 다하였다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말할 자격이 있으리라.
춘천교구의 포천 성당,
이 성당이 지어질 50년대는 서울교구의 성당이었다.
오로지 신앙만이 살길이었던 순수한 신자들의 마음과
군인들의 합심으로 이 성당이 지어졌다.
40여년 이상을 포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곳,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초기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90년 여름 술취한 취객의 방화로 성당은 어느 날 밤에
그 스스로를 하느님께 번제물로 내어 주었다.
마치 그리스도가 제 몸을 바쳐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듯이...
전소된 성당안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마을에 하느님을 기억시키던 종.... 하나였다.
감실도, 성체도 그냥 타들어가는 것을
신부님, 수녀님, 신자들이 발만 동동 구르며 바라볼 뿐이었다.
신부님은 후일 강론을 통해
"그 날 타들어가는 성체와 함께 타죽지 못한 것이 한이었습니다."
라는 말씀으로 성당을 지켜내지 못한 탓을 자신에게 돌리며
신자들의 재기와 일치를 호소하셨다.
두번째 주임신부님이셨던 이석충(요한)신부님도
방송을 듣고는 후다닥 뛰어오셔서는
"어쩌다가 성당을 이렇게 태워먹었누?"하시며
본당 신부님을 위로하시고 먼저 논현동 본당에 와서
2차 헌금을 할 것을 제안해 주셨다.
포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사라졌다며
신자도 아닌 할아버님이 봉투에 몇십만원을 들고 오셔서는
다시 예쁜 성당을 지어달라고 하시고...
외국 신부님파, 한국 신부님파, 선교사파,,,, 등으로
나뉘어져 있던 신자들은
오직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치단결이 되었다.
그 후 성당을 오르내리던 언덕길,
아이들이 가위,바위,보를 하며
뛰어 돌아다니던 길은 이렇게 폐쇄가 되고
성모 동산으로 향하던 길도
이렇게 취객들과 본드족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렸고
성당의 크기와 장소의 문제로
새로운 위치에 성당을 짓고자 결정을 하게 되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성당의 전소는 취객의 실화가 아니라
마치 하느님의 계획이라고 여겨질 만큼
신자들은 신부님을 중심으로
모두 한 마음이 되었다.
성당에 오르 내리던 가장 큰 길은 잡초가 무성해졌지만
임시로 유치원 건물을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저녁 미사가 끝난 어스름한 노을이 세상을 덮을 시간에
함께 사는 수녀와 큰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타 들고는
이 길을 산책하고는 했었다.
우리는 아직도 마음안에 불탄 성당을 간직하고 있었다.
채 2년 동안 큰 빚도 지지 않고
새 성당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작은 본당, 포천 성당 모든 신자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허약한 체격임에도 불구하고 주일도 마다하지 않고
혼배성사를 주말이면 세번, 네번 집전해 주셨던 신부님,
그 피로연의 모든 음식들을 준비해 주면서
한 푼이라도 벌어 보겠다던 성모회,
후추를 한 봉지씩 들고는 동네의 각 식당을 돌아다니며
판매를 하시던 안나회 할머님들,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할머님은 오직 집에서
미싱으로 수의를 지어 팔아 그 돈을 성당 짓는 데에 보태셨다.
모든 형제들은 하루에 24시간도 모자란듯이
퇴근하면 바로 성당으로 출근해서 밤새 노가다...일을 하셨다.
밤에는 링거를 맞으시고는 또 아침이면 일어나
서울의 각 본당으로 구걸(?) 강론을 다니시던 신부님과
그저 아껴야 한다면서 그 큰 공사의 함밥집도
직접 운영하였던 자매님들.....
기적의 신화,
사랑의 신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새롭게 만들어진 이 길을 통해
할머니들은 유모차(지팡이 대용)에
호박 몇개, 오이 몇개, 토마토 등을 마당에서 따 오셔서는
일하는 이들에게 제공하셨고
깻잎 짱아찌를 만들어 주겠다고 개천에서 깻잎을 따다가
냇물로 굴러 팔이 부러지신 할머니도 기쁘게 젊은이들을 도우셨다.
모든 이의 몸과 마음이 합하여져서 아름다운 성전이 봉헌되었다.
성전이 봉헌되는 날 많은 자매들이 대성 통곡을 하고 울었다.
난 그들의 노고를 알기에 위로한답시고
"너무 많이 힘드셨죠.
그 동안 고생 많이들 하셨어요"라고 하니
그들의 대답이 "아니요. 너무 좋아서 우는 거예요"하더라.
그들은 주인이었다. 떠돌이가 아닌.....
주인의 기쁨을 맘껏 누리는 그들, 참 아름다왔다.
그러나 이 때부터 불탄 성당은
대축일 때나 가끔 행사를 위한 장소로 사용되게 되었고
사람들의 발길은 뜸해졌다.
이제는 불탄 성당이 새 성당을 멀리서 바라보며
그저 그리워 해야만 하는
기차길 같은 평행선이 되고 말았다.
새 성당에 대한 불탄 성당의 짝사랑이 시작된 것은
아마 이 때쯤이 아닌가 한다.
'위험하니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푯말과 함께 우리의 불탄 성당은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에게는 낯선 곳이 되었다.
이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이 성당에서 복사를 서던 아이들은
이제 중.장년의 어른들이 되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 곁으로 가기도 했다.
새벽이면 올라와 찬물 한잔 마시고는
내내 잡풀을 뽑던 보나 아줌마도 돌아가시고
호박을 들고 오시던 레지나 할머니도
깻잎 짱아찌를 해오던 테레사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새 성당을 짓느라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던 미카엘씨도,
요셉씨도 40세가 되기 전에
이 불탄 성당이 돌아간 하느님나라, 고향으로 되돌아 갔다.
성당이 전소될때 유일하게 남았던 성당의 종....
수십여년을 포천 곳곳에 하느님의 소리를 전하고
시간을 알리고 향수를 자아내고
마음의 안식을 주던 이 종도
이제는 너무 피곤한가 보다.
그 동안 간간이 대축일이나 행사때에
'내가 아직 이 곳에 있노라'
그 떨리는 소리로 울림을 주더니
이제는 그 쓸모도 쓰임도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저 건드리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위험한 물건(?)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종도 쉬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성당이 다 타버렸어도
새로운 성당이 생겨났어도
그래도 종과 함께 삶을 나누었던 이들에게는
마지막까지 종의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리라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정말 쉬고 싶나보다.
이제 그 단호한 결심을 보여 주듯이,
아니면 이젠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께 돌아간 예수님처럼
비스듬이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포천의 가장 높은 곳에서
수십여년의 세월을 함께 지냈던 종은
하늘로 돌아가 이 세상에서의 소풍,
포천에서의 소풍이 정말 아름다왔다고 말하며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느님께 들려주고
또 우리보다 먼저 떠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다시 기쁨과 활기를 찾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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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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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동... 포천 성당에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감동의 사연 뜻깊게 읽으니 다시 또 보게 됩니다. 보고 알게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충분한 자격이 되고도 남습니다...언제나 모든일에 선을 이루셨던 주님의 선하심을 다시 봅니다..감동과 희망을,그리고 기쁨과 찬미를 주는글 잘보았습니다!!
정말 좋은 그림과 성당이군요. 그런뜻이....늘 감사...
포천 지날때 그져 지나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긴 사연에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주님의 사업은 멈출수가 없나봐요.당신의 자녀들이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까봐 단결하는 모습으로 서로사랑하며 1나의 공동체를 이루어주심은 황상 께어 있기를 원하심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이렇게 깊은 사연이 있는 하느님의집 주님께서 편히 머무르소서~~~~~~~~~~~~~~~~~~~~~
우리의 믿음과 소망은 영원한것이기에 비록 지금은 서로 헤어져있지만 언젠가 우리모두 함께 입을모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느님 대전에서 영원한 기쁨의 찬송을 부를날을 고대합니다